나만의 여가 공간을 찾아서
[404호 공간 & 공감]
영화관에 갔다. 그동안 벼르고 별렀던 영화관 나들이는 마음먹은 지 석 달 만에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사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는데, 영화표 가격 때문에 고민하는 사이 그 영화는 상영관에서 내려가고 말았다. 다큐멘터리영화라 상영관도 많지 않았고 상영 시간도 비인기 시간대였다. 1만 5천 원이라는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라고 하지 않나.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관객들에게 오기까지 닿았던 수많은 손길, 시간과 정성은 영화표 가격이 모두 담을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상영되는 영화는 좀 기다리면 집에서 OTT로 볼 수 있으니까 사실상 0원’이라는 계산법이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 날, 머릿속 계산기를 내려놓고 영화관에 가고 싶어졌고, 걸어서 10분 거리 영화관에 갔고, 극장에서 가장 빠른 시간대 영화표를 끊고 팝콘과 콜라를 양손에 든 채 어두운 상영관으로 입장했다. 계단을 오르면서 내 좌석을 찾을 때 마음이 살짝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래, 나는 휴식이 필요한 인간이었지.
그동안 일하면서 쌓인 스트레스는 동네를 산책하거나, 맛있는 것을 만들어 먹고, 책을 읽으면서 해소해왔다. 일주일에 한 번 꿀맛 같은 휴일을 꾹꾹 눌러 담아 알차게 지내고 싶었고 그럴 때마다 실패 없는 여가와 놀이를 목표로 조사하고 실행했다. 즉흥형 인간이 시간을 아껴 쓰기 위해 일시적으로나마 계획형 인간으로 스스로를 변모시키면서 아슬아슬하게 일상을 꾸렸다. 가정경제 계획에 따라 책정된 문화비 항목의 예산을 초과하지 않으면서 최대 만족을 추구하기란 편의점에서 엄마 손맛을 찾는 일만큼이나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취향은 자연, 걷기, 책, 대화 쪽으로 개발되어온 터라, 산으로, 공원으로, 도서관으로, 박물관으로 향했고 이런 여가는 꽤 만족스러워서 다시 월요일을 시작할 힘을 주었다.
결핍이 곧 창조의 근원이라고 했던가. 사실 이런 여가 취향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가끔 비디오 대여점에서 〈후뢰시맨(플래시맨)〉, 〈강시 소자〉, 〈쾌걸보이 아지〉 같은 비디오 영화를 1,000원 주고 빌려 오면 동네 친구들과 함께 시청했고, 책 대여점 ‘책과함께’에서 어린이 소설을 대여해 돌려가며 읽다가 누구 한 명이 연체라도 하게 되면 하루당 100원씩 연체료를 물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에는 N분의 1 개념이 없었고, 우리 중 좀 잘사는 애가 몇 번 그리고 나머지는 한두 번씩 돌아가면서 값을 냈던 것 같다. 비디오와 책을 빌려 읽는 경우보다 동네 빈 땅과 골목에서 고무줄놀이, 다방구, 숨바꼭질, 얼음땡, 오징어게임, 땅따먹기, 달리기처럼 그냥 사람만 있으면 되는 놀이를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심심했고, 심심한 친구들끼리 모였고, 무엇을 하고 놀면 재밌을까 궁리하고, 해 질 때까지 놀다가 깜깜해지면 집에 돌아가는, 이 모든 과정이 놀이 그 자체였다.
노는 데 돈은 필요 없었다. 설사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어린이들에게 쥐여주는 돈이라는 건 없었다. 중학생이 돼서야 ‘용돈’이라는 개념의 실체를 알았던 걸 보면 초등학생 때까지 나와 내 주변 친구들 동네 언니·오빠들 중 ‘용돈’을 받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간식이랄 건 없고 그냥 밥만 있던 시절, 자녀가 공부할 때 예쁘게 깎은 과일을 접시에 담아 간식으로 제공해주는 곳은 전화를 받을 때 “평창동입니다”라고 하는 2층 저택에 사는, 티브이 드라마에서만 있다고 믿었으니까. 1980년대생이지만, 1960년대 분위기가 가득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도 모르겠다. 개인 전화는 없었고, 집에서 가족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전화기만 있었기 때문에 친구랑 놀기 위해 약속을 잡으려면 친구네 집에 전화를 걸어서 “안녕하세요? 거기 ○○○ 네 집이죠? 저는 ○○○ 친구 박진영인데요. ○○○ 있나요? ○○○ 좀 바꿔주세요”라는 전화 예절을 배워야 했다. 혹시라도 부모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받으실까 봐 마음 졸였고 몇 번을 연습했지만 실전에서는 떨리고야 마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노는 데 자원은 없었고 넘어야 할 산은 많았던, 창의성이 꽃피우기 딱 좋았던 시절이었다.
올해 계획 중 하나는 3개월 동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지 않는 것, 더 정확히 말하면 포모(FOMO) 증후군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포모(FOMO)는 ‘Fear of missing out’의 약자로,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뜻한다. SNS는 원래 친구들과 소식을 공유하는 용도로 이용했다. 자주 만날 수 없으니, 온라인에서라도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손바닥 크기의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곳곳을 볼 수도 있고, 새롭게 나온 제품이나 정보를 빠르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도 꽤 도움이 되었다. 생활에 필요한 ‘꿀팁’들도 많아서 유익했다. 눈떠서 눈 감을 때까지 양치하다가,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쓸모없이 버려지는 자투리 시간에 짬짬이 정말 짧은 시간 동안만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유용하고도 재밌는 도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점차 혹여라도 놓치고 지나간 것 중에 중요한 정보나 꼭 알아야 할 소식이 있을까 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시로 손가락으로 화면을 쓸어 내려 ‘새로 고침’을 했다.
그런데 핸드폰에서 제공하는 앱 사용 시간 분석을 보니 충격이었다. 하루 네 시간이나 SNS를 하면서 지낸 날이 허다했다. 정말 티끌 모아 태산! SNS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포착해놓은 편집된 세계임을 알면서도 그곳 사람들처럼 놀고 싶고, 쉬고 싶었다. 그들이 가는 곳에 나도 가고, 그들이 먹는 것을 나도 먹고, 그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해보고, 그들이 좋다는 것을 나도 사고 싶은 충동이 내 삶을 가득 채웠다. 멋있는 사진이 올라오면 ‘나도 언젠가’라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저장해두고 일주일에 하루 여가를 계획할 때 저장된 게시물을 참고하여 촘촘하게 계획을 세웠다. 내 대부분의 여가는 SNS에서 봤던 것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줄 서는 걸 정말 싫어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맛집’으로 저장된 그 집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놓고 뙤약볕에 서있었다. ‘파스타는 집에서’라는 나름의 원칙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 생기는 카페를 쫓아다니느라 안식처 같은 단골 카페에는 갈 시간이 없었다. 커피를 즐기기보다 피드에서 자주 봤던 곳을 직접 가봤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 저장된 리스트를 쫓아가기 벅차던 어느 날, ‘왜 나는 저기도 못 가고, 저것도 못 사고, 저것도 못 먹는 걸까?’ 속상해하며 지친 내가 보였다. 남들은 다 하는데 나만 못 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내 인생만 똑같이 반복되는, 심심하고 무료한 삶처럼 느껴졌다. 불행한 것처럼 느끼는 나 자신이 낯설었다. 잘 쉬고 싶고, 제대로 놀고 싶어서 정보를 찾고 남들이 좋다고 검증해준 곳들을 쫓아다니느라 온라인과 길거리에서 에너지를 쏟아붓는 이 생활이 도리어 나를 피곤하고 지치게 했다.
그래서 작년 12월 어느 날 SNS 세계에서 탈출을 감행했다. 로그아웃만 하면 다시 로그인할 것 같아서 계정을 ‘비활성화’하고 앱을 삭제했다. 링크 주소가 남아있으면 알파벳 한 글자만 쳐도 해당 주소가 주르륵 딸려 나와 나를 낚아챌 것 같아서 인터넷 검색 기록을 비롯해 SNS와 관련된 데이터는 모두 삭제했다.
그러자 쉬는 날마다 찾아다니던 ‘힙’하고 트렌디한 것들로 인해 놓친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샌드위치 만들고 커피를 내려 공원에 갈 열정을 잃어버렸고, 나만의 커피 취향을 찾기 위해 신중하게 원두를 고르고 집에서 손으로 천천히 내려 테이스팅 노트에 적힌 ‘베리’, ‘다크초콜릿’을 찾기 위해 온 신경을 미각에 집중했던 시간이 사라졌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요리책을 펴서 차례차례 레시피를 따라 면을 삶다가 좋아하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어 이름도 없는 나만의 방식으로 변주된 파스타를 만들던 재미를 놓쳤다. 언젠가 성공하면 반드시 사겠노라 다짐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한참을 들여다보던,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조선백자에 대한 애정은 미지근하게 식었다. 나는 스스로 재미를 찾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남들을 따라 하는 시간에서 벗어나 보니, 무언가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던 삶이 조금 헐렁해진 기분이었다. 음악 앨범의 트랙과 트랙 사이 잠깐의 공백처럼 일상에 마디가 생긴 느낌이랄까. 앞으로 나를 위한 여가 공간은 영화관이었다가, 한강공원일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면서 인왕산일 것이고, 서점과 도서관, 오래된 카페일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활동을 위한 전혀 낯선 공간이 열릴지도 모르겠다. 다시 좋은 정보와 새로움을 찾다가 타인의 욕망과 나의 것이 한데 뒤섞여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것을 좇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때마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쉼과 여가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답하며, 이 과정을 이정표 삼으면 ‘지금, 여기’가 곧 나만의 쉴 공간, 놀 공간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박진영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책 읽기와 걷기, 여행을 좋아하고 “one life, live it”의 줄임말 ‘올리’로 활동하는 자기(self)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