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화와 경쟁에서도 살아남게 할 힘
[404호 커버스토리]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있다. 가장 최근에는 〈범죄도시4〉가 그랬다. 약 100년의 한국 영화 역사에서 천만을 넘긴 한국 영화는 24편이고, 외화를 포함하면 33편이다. 5천만 인구에서 다섯 명 중 한 명이 영화를 본 셈이니, ‘천만 관객 돌파’는 흥행의 공인된 지표임이 분명하다. 2014년에는 무려 4편이나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명량〉, 〈국제시장〉, 〈인터스텔라〉, 〈겨울왕국〉).
영화의 위력이 이토록 커진 이유는 무엇일까? 바쁘게 사는 한국인들이 영화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일 것이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에 자극과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영화 평균 상영 시간이 110분이니, 두 시간만 투자하면 적어도 몇 주는 너끈히 버틸 대화 소재를 얻을 수 있다. 덤으로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해하는 눈도 얻는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선인지 모호해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영화를 보며 나름대로 주관을 세운다.
이야기는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행복 같은 결핍된 정서적 필요를 채워주고, 〈범죄도시〉에서 보듯 사적 복수 같은 간절한 소망을 등장인물을 통해 간접경험하게 도와준다. 이야기는 로망과 판타지, 비전과 희망, 때로는 눈속임과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혹하기도 하나, 사람들은 뻔히 알면서도 이야기에 빠져든다. 치밀한 플롯이 설계한 장치에 이미 걸렸기 때문이다. 영화 도입부가 짜릿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복잡하다
단순계와 복잡계라는 용어가 있다. 이 개념은 1990년대에 한국에 도입되었다. 현재 우리는 단순계에서 복잡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 세상이 복잡계로 이동하게 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디지털과 인터넷 혁명이다. 인터넷은 우리가 어디 있든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해주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지역과 시간의 제한 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은행 거래를 하고, 콘텐츠를 즐기고 공유할 수 있다.
인터넷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정보, 심지어 진리와 삶의 지혜까지 담고 있다. 몇 번의 클릭으로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찾아 활용하고, 이를 콘텐츠로 재창조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경험의 부재를 느끼게 되었다. 그 공백을 유튜버들이 채워주고 있다. 그들은 대신 먹고, 대신 여행하고, 대신 책을 읽어주며 우리와 경험을 공유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생이 왜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복잡한 현실과 지성의 한계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들은 그 공백에 ‘운명’을 대입시켰다. 그러자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비참하거나 잔인한 것이 아니라 절대적 운명이 만들어놓은 질서를 따르는 것이 되었다. 그렇게 하자 힘겨웠던 삶이 견딜 만해졌다.
인간은 단순계의 논리를 따라 살아왔다. 모든 게 연결된 복잡계와 달리 단순계에서는 모든 것을 인과관계로 설명한다. 산속의 옹달샘이 시냇물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작은 공동체가 도시와 국가로 성장한다. 그러나 기술, 교통망, 기상 현상, 생태계, 주식시장 등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단순한 예측이 불가능해진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복잡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복잡계는 질서와 무질서가 뒤섞인 〈매트릭스〉 같은 세계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만나는데, 이를 지혜롭게 푸는 것이 문해력이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복잡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해야 한다. 복잡한 것과 혼잡한 것은 다르다. 혼잡한 것은 엉킨 실타래와 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뒤엉켜있어도 원인과 결과를 파악하면 결국 풀 수 있다. 반면 복잡한 것은 구성 요소 자체가 아니라 구성 요소 간의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이 변수다. 이게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낸다.
지하철 노선은 복잡해 보여도 일정한 패턴을 따른다. 반면 복잡계는 다르다. 모든 요소가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매우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로 인해 날마다 펼쳐지는 그림이 복잡해서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영화 관람은 이런 복잡한 뇌를 잠시 재미있는 이야기로 속이는 시간이다. 진짜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질서 속에서도 밟고 설 디딤돌이 필요하다. 이것이 문해력이다.
인간에겐 두 가지 사고 모드가 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는 용어1)가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2011년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2)이란 책을 썼다. 원서 제목은 ‘Thinking, Fast and Slow’이다.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를 빠르게 하는 ‘시스템 1’과 느리게 하는 ‘시스템 2’로 설명했는데, 이 설명은 문해력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시스템 1’은 빠르고 자동적이며 직감적인 사고를 처리하고, ‘시스템 2’는 느리지만 심사숙고하는 사고를 담당한다. 카너먼은 인간의 뇌가 이 두 가지 사고를 효율적으로 분담하여 최소의 노력으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시스템 1’은 직관적이고 빠르지만, 자기가 본 것이 전부라고 여기는 단점이 있다. 반면 ‘시스템 2’는 논리적이지만 느리며, ‘시스템 1’이 답을 주지 못할 때 작동한다.
‘시스템 1’은 빠르고 자동적이기에 무의식적으로 판단한다. 보는 즉시 느끼고 판단하지만, 빠른 판단 덕분에 상황을 어림짐작하게 되어 편향된 사고를 갖기 쉽다. ‘시스템 1’에서 어떤 대상을 보고 느끼고 끌리는 감정이 천천히 생각하는 ‘시스템 2’ 단계로 넘어가면 주의를 집중하게 되고, 일회성으로 끝날 수 있는 느낌이나 끌림이 믿음과 신념으로 바뀐다. 그 결과 훈련할수록 노련해지고, 이는 노련한 직관으로 이어진다.
여호수아 9장 내용이 이를 확인해준다. 이 본문은 여호수아가 기브온 주민에게 속아 화친을 맺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낡은 옷을 걸치고 기운 신발을 신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말라서 곰팡이가 난 빵과 포도주가 담긴 찢어진 가죽 부대를 보니 먼 지방에서 온 사절단이 분명해 보였다. 여호수아는 그들과 화친을 맺은 후 사흘 뒤에 속은 줄 알았으나, 하나님 이름으로 약조했기 때문에 깨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한 ‘시스템 1’의 실수였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1890년 《심리학의 원리 1》·《심리학의 원리 2》3)에서 연상적 추론과 진실한 추론이 두 가지 사고를 형성한다고 주장했다. 연상적 추론은 과거 경험에서 얻어지고, 진실한 추론은 새롭고 낯선 시나리오를 통해 습득되는데, 이는 후에 ‘시스템 1’과 ‘시스템 2’의 토대가 되었다. 심리학자 마이클 포스너와 찰스 스나이더가 1975년 윌리엄 제임스의 아이디어를 살짝 바꾸어 ‘연상적’(associative)을 ‘자동적’(automatic)으로, ‘진실한’(true)을 ‘조절된’(controlled)으로 표현하니 훨씬 이해하기 쉬워졌다.
2011년 대니얼 카너먼은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는 용어를 빌려 자동적인 사고와 의식적인 사고의 차이를 설명했고, 이는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시스템 1’에 휘둘리는 ‘시스템 2’를 훈련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시스템 2’는 돈을 버는 기업가에게도 중요하여, 빌 게이츠나 일론 머스크가 ‘시스템 2’를 독서로 활용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통찰은 어디에서 왔을까
유튜브를 보면 일론 머스크에 관한 콘텐츠가 꽤 많다. 그는 좌충우돌하는 행동 때문에 미운털이 박히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영화 〈아이언맨〉 현실판 모델로 테슬라, 스페이스X, 뉴럴링크를 경영하는 그를 부러워한다. 그의 독특한 점은 자신이 내건 요구 사항에도 의문을 제기하라고 주문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가 재구성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통찰력을 어떻게 얻었을까?
누군가 그에게 기계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어떻게 얻었냐고 묻자, “책을 많이 읽었다”고 답했다. 머스크는 하루에 두 권씩 책을 읽었다. 하루에 열 시간씩 독서하고 1만 권을 읽은 뒤 사업을 시작해 성공한 CEO로 유명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4), 《파운데이션》5) 시리즈와 《파이널 인벤션》6) 등을 읽으며 우주 이주와 인공지능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
머스크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해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도 “주제를 가리지 말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말한다. 한번은 페이팔, 솔라시티, 테슬라, 스페이스X가 너무나 다르고 규모도 엄청난데 어떻게 동시에 해낼 수 있느냐는 질문도 받았다. 그의 답변은 간단했다. 무슨 일이건 가장 기초부터 분해해가면서 추론해보라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1원칙’(First Principles Thinking)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기존에 만들어진 것을 토대로 응용하는 방식을 선택하지만, 머스크는 다르게 접근한다. 예컨대 전기차를 만들 때 고가의 배터리 팩이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때, 그는 코발트, 니켈, 알루미늄, 탄소섬유, 분리용 중합체, 이 재료를 담을 캔을 모아 배터리 모양으로 결합해 가격을 낮췄다.
민간용 로켓을 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생산 단가가 왜 비싼지 고민했다. 설계를 다시 해서 공정을 단순화하고, 알루미늄, 티타늄, 인코넬, 구리 같은 재료를 확인해본 끝에 제작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었다. 단번에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그가 배터리 팩과 로켓을 분석한 방식은 문해력이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의 사업 적용을 문학 용어로 바꾸면 ‘낯설게 하기’가 된다.
직원들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근거해 단가를 줄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가장 이상적인 완성된 모습을 상상한 뒤, 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최적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해결책을 찾았다. 통찰은 완성된 형태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는 화성 이주 아이디어를 SF 소설을 읽을 때 얻었다. 문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열어준다. 소설은 문해력을 위한 최고의 도구다.
문해력을 높이려면 독서를 확장해야 한다
삶은 작은 차이로 달라진다. 아주 작은 습관 하나가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요즘 새삼 놀라는 점은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같은 세계적인 기업인들이 엄청난 양의 책을 읽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바쁜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얻은 지혜를 자신들의 사업에 적용해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시큰둥하게 바라보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이 재구성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난제를 해결하는 능력까지 포함된다. 기업 현장 실무자들도 문해력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업무 지시서를 잘못 이해해 실수하는 신입사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영상 시대라 할지라도 문서는 여전히 직장 내 의사소통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Z세대 중 책 같은 인쇄물을 선호하는 비율은 3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수는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코닥 필름이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필름 회사의 경쟁자는 다른 필름 회사였지만,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시장 자체가 사라졌다. 이러한 상황을 미국 교회들이 먼저 겪었다. 20여 년 전 뉴욕주 버펄로 구시가의 교회들이 주중에는 비즈니스 공간으로, 주말에는 예배 장소로 사용되던 것이 생각난다. 당시에는 세속화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교회가 살아남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의 의미만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다.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이 문해력이다. 문해력이 약하면 겉으로 나타난 현상만이 전부인 줄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시스템 1’이 보여주는 세계이다. ‘시스템 2’가 보여주는 세계는 더 깊고 더 넓다. 이러한 세계를 경험하며 문해력을 키워야만 우리는 머스크처럼 상상한 것을 현실로 만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열어갈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과 신앙 서적을 주로 읽지만, 독서의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다양한 책을 ‘시스템 2’가 일깨우듯이 천천히 생각하며 읽어야 문해력이 향상된다. 이를 위해 《배움의 발견》(열린책들)을 추천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배움과 신앙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회고록으로, 16세가 될 때까지 학교에 가보지 못한 소녀가 배움에 눈뜨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을 읽듯 《배움의 발견》을 읽으면 무엇이 보일까
《배움의 발견》 첫 장을 읽어보면 저자 타라 웨스트오버가 어렸을 때 경험한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다섯 살 무렵 집이 정부 요원들에게 포위되었던 기억, 아버지가 기도한 후 냉장고에서 우유와 요구르트, 치즈가 사라진 일, 아버지와 할머니가 매일 다투던 모습,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고, 침대 옆에 피신용 가방을 두고 대피 연습을 했던 일 등이 적혀있다.
이 모든 것이 ‘시스템 1’에서는 단기 기억으로 처리될 것이다. 이런 일들이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사실인지 허구인지 구분 없이 말이다. 가볍게 읽으며 ‘아, 특이한 어린 시절을 보냈네’라고 느끼는 것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스템 2’로 소설을 읽듯 천천히 읽으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진다.
소설에서 첫 장의 역할은 등장인물 소개와 메인 스토리로 이어질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은 회고록이니 주인공은 이미 나왔다. 바로 ‘나’이다. 첫 장에서 ‘나’를 관찰하면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첫 장 끝에서 초록색 침엽수들이 황갈색 흙과 대비되어 검은색으로 보이고, 오늘은 영 필름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끼는 저자의 느낌이 보인다. 이런 느낌 바로 직전에 할머니가 같이 떠나자고 한 제안을 거절한 후 밀기울을 물에 말아 먹는 장면이 나온다. 할머니는 타라에게 물었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니?” 타라는 “안 가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어떻게 알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시리얼을 우유에 부어 타라에게 주었고 타라는 허겁지겁 시리얼을 먹었다. 할머니는 “새벽 5시쯤 일어나서 우리랑 함께 가자. 학교에 보내줄게”라고 말했다. 타라는 학교라는 곳을 상상해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타라의 모습은 문해력이 없는 삶에 대한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우리의 관점과 지식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다. 타라는 할머니의 제안을 거절한다. 타라의 속마음은 책에 적혀있지 않지만, 첫 장 끝에서 검은색으로 보이는 나무와 죽어가는 여름, 혼란스러운 머릿속 묘사를 통해 그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안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만, 그것은 저절로 발현되지 않는다. 타라 역시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녀의 무언가는 조금씩 막연한 느낌으로 쌓이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그런 순간을 찾아가는 게 독서이며, 이런 경험을 많이 하면 문해력이 좋아진다. 문해력이 좋아지면 알게 된다. 의견 충돌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과 더 크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은 한 번 정해지면 바꾸기 어렵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이 단단한 마음이 바뀐다. 책을 읽고 이야기 속에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있던 것이 발현된다. 이는 종이책, 특히 문학을 읽을 때 가장 높게 나타난다. 독서를 통해 문해력이 높아지면 측정할 수 없는 힘이 생기고, 그 덕분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게 되며 우리의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1) 이 용어는 논문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K. E. Stanovich, R. F. West, 〈Individual differences in reasoning: implications for the rationality debate?〉,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Vol. 23 No. 5》(2000), 645-665쪽.
2) 대니얼 카너먼, 이창신 옮김,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 2018)
3) 윌리엄 제임스, 정양은 옮김, 《심리학의 원리 1》·《심리학의 원리 2》(아카넷, 2005)
4) 더글러스 애덤스, 김선형·권진아 옮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책세상, 2005)
5) 아이작 아시모프, 김옥수 옮김, 《파운데이션》(전 7권, 황금가지, 2013)
6) 제임스 배럿, 정지훈 옮김, 《파이널 인벤션》(동아시아, 2016)
이정일
문학연구공간 상상 대표이다. 영문학과 신학을 공부하여 박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고,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 《문학은 어떻게 신앙을 더 깊게 만드는가》, 《나는 문학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