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수상자 발표] ‘복음’과 ‘상황’을 잇다

[지령 400호 기념 공모 심사평] 최우수상 : 구선우, 우수상 : 민대홍 정태형

2024-07-31     강경희·박대영·이현주·정한욱

지난 몇 년간 〈복음과상황〉의 한 해 계획을 논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던 의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필자 발굴’과 ‘독자 기획’이었습니다. 30여 년의 역사를 보면, 복상이 교계에 알려지지 않은 낯설고 새로운 필자를 발굴하는 등용문 역할을 톡톡히 한 시절도 있었습니다. 이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이들이 오늘날 교계 내 중견 작가로서 자리 잡은 모습을 보면, 때때로 잡지 본연의 역할 중 하나인 필자 발굴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다른 한편, 과거부터 복상은 삶의 자리에서 ‘복음’과 ‘상황’을 고민하시는 독자들의 목소리와 기획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힘쓰는 매체였습니다. 지금도 필자 중 독자의 비율이 적지만은 않습니다만, 기고를 넘어서 공모전 같은 형식으로 구체적인 기획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지 않겠나 하는 의견도 가끔씩 나왔습니다. 마침 올해 복상이 지령 400호 발행을 기념하게 되어, 몇몇 교회와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필자 발굴’과 ‘독자 기획’ 두 가지를 모두 담아내는 ‘연재 기획 공모전: ‘복음’과 ‘상황’을 잇다’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본지 400호 기념 ‘연재 기획 공모전: ‘복음’과 ‘상황’을 잇다’는 6회 이상의 연재물(자유 주제, 우리 시대 상황을 신앙 및 신학과 연결하는 기획)을 공모하여 최우수상 200만 원 1명, 우수상 50만 원 2명을 선정하고, 원고료를 추가로 지급하면서 실제 복상 연재까지도 이어가는 기획이었습니다. 박대영 광주소명교회 책임목사를 심사위원장으로 선정하고, ‘독자위원’ ‘평론가’ ‘출판인’ 등의 요건에 맞춰 정한욱 원장, 강경희 평론가, 이현주 대표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하여 약 석 달 동안 접수된 원고들에 대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사전 논의를 거쳐 6월 10일, 6월 24일 두 차례 줌 미팅을 통해 최우수상 1편과 우수상 2편을 선정할 수 있었습니다.

총 24명분의 원고를 응모 요건 충족 여부와 상대적인 질적 수준 등을 고려해 편집부에서 한 차례 추렸고, 본선에는 15편의 원고가 올라갔습니다. 투고자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심사위원들이 본선에 오르지 못한 9편의 원고도 살펴보기를 원하여서, 혹 아까운 작품이 있다면 재론에 붙이는 조건으로 전체를 공유했습니다. 심사에 있어 어떤 선입견에도 흔들리지 않게끔 모든 작품을 블라인드로 평가하고(편집부에서 사전 작업을 통해 신상 정보가 노출되는 부분을 블라인드 처리했습니다), 신인의 작품은 별도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하고 심사에 임했습니다. 최종 논의에서는 6위까지의 작품을 놓고 격론을 벌였습니다. 완성도나 다른 면에서 우수하더라도, 연재 기획으로서 복상에 게재하기에 충분한지를 더 중점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선정된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최우수상: 〈동물기〉(구선우), 우수상: 〈대안 언론가로서의 함석헌 읽기〉(민대홍) 〈우울증 권하는 교회〉(정태형).

선정작들은 편집부와의 논의를 통해 보완하여 빠르면 올해 하반기, 늦으면 내년에 복상 지면을 통해 인사를 드리게 됩니다. 아깝게 선정되지 못한 분들도, 향후 맞춤한 기회에 기획이나 기고를  부탁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모전을 처음 진행하다 보니, 홍보도 미진했고 연재 기획이라는 글의 성격과 분량을 고려했을 때는 신진 필자를 발굴하기에 문턱이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 외에 여러 아쉬움도 있습니다만, 2-3회 이어갈 때는 부족한 지점을 보완하여 공모전을 더 안정적으로 꾸려내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의견과 질책, 후원과 성원 바랍니다. 공동주관 및 후원 등으로 함께해주신 교회 및 단체에, 그리고 응모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편집부를 대표하여 강동석 드립니다.

아래는 심사위원장의 총평과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입니다.

두 차례 줌 미팅을 진행했다.

현실 이슈를 성경적으로 해석하는 시도가 활발해지길
박대영
광주소명교회 책임목사

우선 〈복음과상황〉 연재 기획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제게는 큰 영광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사회가 시대정신을 망실한 채 표류할 때 교회마저 대안적인 메시지와 소망을 충분히 주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기획을 통해 복음으로 시대를 해석하고 그리스도인의 바른 시선과 자리를 찾고자 한 복상의 노력에 깍듯이 칭찬을 보냅니다. 모두 24편이 응모되었는데, 첫 기획 공모전이어서 덜 알려졌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아서인지 참여가 저조했습니다. 그중 15편을 본선에서 심사했습니다. 본선에 오르지 못한 9편도 응모 요건을 갖추지 못했을 뿐 다뤄준 주제와 전개 방식이 적실했고 참신했습니다.

본선에 오른 15편을 심사위원 4명(강경희, 정한욱, 이현주, 박대영)이 ‘기획의 구성력’ ‘기획의 시의성’ ‘원고의 완성도’ ‘원고의 차별성’ 등 네 항목을 기준으로 삼아서 심사했습니다. 15명 중 9명의 응모자가 이미 상당히 알려진 분들이거나 책을 출판한 경력이 있는 분들이었는데, 선입견 없이 보자는 취지에서 심사위원들에게는 응모자의 정보를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채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15편의 본선 진출작 중에는 생태/환경 관련된 주제를 다룬 글은 3편, 교회/성경 관련된 글은 6편, 문화/예술/역사에 관한 글은 6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예 작가를 발굴하려는 취지에는 못 미쳤고, 기성 작가들의 응모작들이 대체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6위 이내에 든 작품들은 한두 번 읽어서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구성력이나 시의성 면에서 우수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의 기호에 따라 더 관심을 끄는 주제들이 있었고, 기존에 나온 책들과 차별화된 기획들에 더 높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다만 대부분의 응모작이 원고 마감 시한에 임박해서 제출되었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실제 기획물을 싣기 시작할 때 얼마나 보완하여 완성도를 더할 수 있는지를 감안해서 심사했습니다.

심사위원들 중 다수가 〈동물기〉(구선우)를 1위로 선정해주셔서 최우수상 당선작을 뽑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반려 문화가 보편화된 시대에 이 연재는 동물 묵상을 넘어 동물신학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신선하고 시의적절한 기획이 돋보였고 여태 본 적이 없는 글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추었습니다. 두 편의 우수상으로는 〈대안 언론가로서의 함석헌 읽기〉(민대홍)와 〈우울증 권하는 교회〉(정태형)를 선정했습니다. 〈대안 언론가로서의 함석헌 읽기〉는 현재 상황을 방불할 만큼 침묵과 왜곡을 강요당하던 시대에 언론가로서 함석헌의 역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가장 시의성을 갖춘 기획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우울증 권하는 교회〉는 세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나라 전체가 정신적 병리 현상을 보이는 것 같은 시대에 교회에서도 신앙에 있어 인간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을 신학적·교리적으로 뒷받침해 주려는 교회의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잘 드러낸 기획이었습니다. 거북하고 불편한 주제를 용기 있게 다뤄준 것에 큰 점수를 주었습니다.

그 밖에도 현대미술의 시선으로 ‘사랑’을 다채롭게 논한 〈러브즈(loves), 사랑의 상투성에도 불구하고〉(고경옥), 그리고 생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지구를 지켜라! ‘Genesis 1:28’〉(박제민)와 〈해방을 넘어 생태로, 기후위기 너머 ‘탈성장 사회’로〉(김영준)는 해당 분야에 전문가다운 기획과 글이었지만, 복상 연재에 적합한지 여부나 기획의 차별성이 뚜렷한지를 놓고 이견이 있어서 당선작에는 들지 못했습니다. 〈아슬란 스토리텔링 원정대〉(황재혁)는 톨킨과 루이스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내용을 이어가는데, 두 인물을 내세운 것이 도리어 좋은 콘텐츠에 방해가 된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김춘수 시인의 손자가 할아버지의 작품과 삶 속에 담긴 예수 이야기를 풀어낸 〈내 속에 자리한 예수〉(김현중) 역시 다들 흥미롭게 읽은 수작이었고 독특한 기획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성서오독, 기독교 2000년 체제가 무너짐〉(정병선)은 매우 민감하고 어려운 주제를 다소 거칠지만 비교적 설득력 있게 제시해서 이후의 글이 궁금해지는 응모작이었고, 구약에 나타난 이방인들을 향한 시선을 통해 타 종교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인식 방식을 제안한 〈다른 종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조미정)에서는 안정된 전문가의 묵직함이 느껴졌습니다. 주일학교 교육의 문제를 다룬 〈그거 왜 하는 거예요?〉(민희진)와 교회와 목회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기 시작한 10년 차 여성 목회자의 묵상을 담은 〈하라는 목회는 안 하고〉(박나래)는 교회의 불편한 현실을 잘 담은 글이었습니다.

적절한 격려와 편집자의 손을 거치면 알찬 단행본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응모작들을 읽어가면서, 각 영역 전문가에 의해 손에 잡힐 듯하고 피부에 와닿는 현실 이슈들을 성경적으로 해석해내는 이런 시도들이 더 활발해지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에는 좀 더 충분히 홍보하고 더 큰 상금으로 유혹하여 새로운 작가들이 많이 발굴되고 시의적절한 사안들이 더 능숙하게, 더 발랄하게, 더 기발하게 다뤄지기를 기대합니다.

단단한 결심과 열심의 초대장
강경희
문학평론가

6편 이상의 글을 연재하겠다는 마음이 보통의 각오는 아니겠지요. 무엇보다 24편의 투고작을 읽으며 진지하고 단단한 결심을 느꼈습니다. 심사로 시작했는데, 행복한 초대의 자리로 마무리합니다. 결과를 뒤집으면 동기가 보입니다. 많은 원고에서 우리 시대의 ‘결핍’을 읽었습니다. 결핍의 다른 말은 ‘간절함’이겠지요. 생태와 환경, 교회와 역사, 예술과 사랑, 노동과 질병, 그리고 말라버린 예수님과 시련당하는 성서의 자리가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동물기〉는 인간 중심의 동물학을 종교적 차원의 동물 묵상이라는 신선한 시도로 전환한 산뜻한 읽기를 선사했습니다. 〈대안 언론가로서의 함석헌 읽기〉는 기독 역사와 언론을 잘 알고 있다는 우리의 착시와 난시를 교정해주는 안경 같은 글입니다. 〈우울증 권하는 교회〉는 삶의 최전선인 일상과 교회의 문제를 ‘현장’에서 짚어낸 반성문 같았습니다. 〈내 속에 자리한 예수〉는 혈육인 할아버지, 시인, 종교적 영성으로 이어지는 김춘수 문학의 고찰이라 흥미로웠습니다. 신앙과 현대미술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운 〈러브즈(loves), 사랑의 상투성에도 불구하고〉는 학문적 깊이를 내장했고, 폐허의 현실에서도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잊지 말 것을 재확인한 〈지구를 지켜라! ‘Genesis 1:28’〉는 먹먹한 논리로 다가왔습니다.

위기와 시련은 다시 ‘본질’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난감한 처지와 절망의 시대에도 살아있는 말은 빛을 발했습니다. 탄생은 축복이자 기대입니다. 〈복음과상황〉의 손짓에 응답한 소중한 말의 씨앗들이 아름다운 열매로 영글기를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21세기를 다채롭고 치열하게 조명한 멋진 글들
정한욱
안과전문의,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저자

본선에 올라온 15편의 글은 무엇보다 다채로웠습니다. 에세이뿐 아니라 소설, 대담, 소논문 등 여러 장르의 글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다뤄진 주제도 ‘교회’와 ‘사회’를 넘어 환경, 동물권, 현대미술, 문학, 심리학, 성서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다원화된 세상에서 ‘복음’과 ‘상황’을 연결하는 일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졌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한 과제가 되기도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최우수상에 선정된 〈동물기〉는 우리에게 친근한 여러 동물에 대한 묵상을 통해 최근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동물권 혹은 동물신학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 참신한 기획이 돋보였습니다. 우수상 선정작 〈우울증 권하는 교회〉는 기독교 신학의 핵심 담론 중 하나인 ‘죄’가 유발하는 죄책감과 우울증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솔직하면서도 따스하게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작인 〈대안 언론가로서의 함석헌 읽기〉에서는 함석헌이라는 과거의 ‘대안 언론가’를 통해 현재 언론이 처한 위기를 조망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아쉽게 당선되지는 못했지만 기후 환경 위기를 다룬 〈지구를 지켜라! ‘Genesis 1:28’〉과 〈해방을 넘어 생태로, 기후위기 너머 ‘탈성장 사회’로〉가 보여준 시의성과, 현대미술과 기독교 신앙의 통합적 이해를 시도한 〈러브즈(loves), 사랑의 상투성에도 불구하고〉의 높은 완성도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위기’와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붕괴’ 같은 암울한 전망이 공공연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때, 21세기 대한민국 상황을 다채롭고 치열하게 복음으로 조명해낸 멋진 글들과 만나 기쁨과 희망을 얻었습니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글과 책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길 기대합니다.

갇히지 않은 ‘복음’의 새 언어를 기대하며
이현주
사자와어린양 대표

‘글로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는 직업적 다짐이 심히 흔들리던 중에 〈복음과상황〉 연재 기획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차 심사를 통과한 작품 15편을 받아 검토하면서 ‘글로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각자 삶의 자리에서 여전히, 묵묵히, 글을 쓰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는 생각에 뭉클했습니다.

15편 모두 ‘상황’ 안에 ‘복음’을 녹여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목회와 캠퍼스 선교 사역 현장에서 길어 올린 뼈 있는 질문들, 예수 정신을 잃어버린 교회에 대한 일침과 대안, 문화·예술·역사에 내재되어있는 그리스도교적 세계관과 정체성에 대한 담론, 기후위기 시대 그리스도인의 역할 등. 어느 작품 하나 버릴 것 없이 다양한 관점과 글쓰기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돋보였습니다.

저는 출품 원고 가운데 〈동물기〉를 최고작으로 꼽았습니다. 〈복음과상황〉에서 제시한 심사 기준과 더불어 ‘콘텐츠의 참신성’에 나름 가산점을 주어 평가했습니다. 〈동물기〉는 지금껏 제가 생각해보지 못한 주제라서 그런지 제목과 차례에서 먼저 주목을 끌었고, 글 전개 방식 역시 처음 가졌던 호감을 무너뜨리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다음 글은 어떻게 펼쳐낼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심사를 마치고 이 글을 작성하기 직전, 우연인지 필연인지 ‘글 없는 그림책의 거장’(이라 일컫는) 피터 콜링턴의 《작은 기적》을 읽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정신을 담았지만 교회의 담을 넘어 그 누구라도 ‘복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이와 같은 작품이 다음 공모전에는 더 많이 출품되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교 안에 갇히지 않은 새 언어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작품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