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날들의 영성

[406호 이한주의 책갈피]

2024-09-01     이한주

작년 봄에 뜻밖의 돈이 생겼다. 우리 교회를 응원하는 어떤 분이 예배당 리모델링에 쓰라고 꽤 큰 금액을 헌금하신 것이다. 헌금을 받고 보니 다른 욕심이 생겼다. 리모델링에 필요한 자금을 보내달라 기도하지 않았지만, 이 헌금을 기도의 응답으로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헌금이 아니라, 기도 응답으로 받은 헌금이라고 하면 얼마나 은혜로운가?

하나님께서 기도에 선명하게 응답하신 이야기가 우리 교회에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로 공동체를 결집하는 게 목사의 책임이고 능력이란 생각도 들었다. 여러 번 생각하다 보니, 더 좋은 공간을 마련할 자금을 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는 듯했다.

“교회 공간 문제로 고민하면서 리모델링에 필요한 자금을 보내달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우리 교회를 다니지도 않는 분이 이렇게 큰돈을 헌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 공동체를 세우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되고 우리 교회는 특별합니다.”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을 주제로 설교문을 여러 번 썼다 고치며 완성했다. 하지만 결국 이 설교를 하지 못했다. 내가 기도했던 것은 리모델링 비용이 아니었다. 임대료가 싼 건물을 찾는 일이었다. 이것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분명히 알고 기억했다. 내용을 조금 바꾸어 감동적인 설교를 하는 데 성공하면, 다음에는 더 감동적인 설교를 위해 더 많은 걸 바꾸고, 그다음에는 감동을 위해 없는 이야기도 만들어낼 것 같았다. 꾸며낸 이야기에 감동하는 교인들을 보고 나면 더 이상 설교에 진심을 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011년 맨부커상 수상작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다산책방)는 기억에 관한 소설이다. 자신의 젊은 날을 회상하던 주인공 토니는 기억이 실제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165쪽)

인간은 자기 인생을 선별하고 왜곡해서 실제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인생 이야기보다 더 쉽게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낼 수 있는 것이 자기 인생과 관련된 하나님의 이야기다. 하나님은 그런 이야기에 제동을 걸지 않으시고, 직접 거짓을 폭로하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반기를 들려는 마음 없이 아멘과 할렐루야로 응답한다. 목사로 살아온 날이 길어지고, 목회가 어려울수록 하나님 이름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꾸며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유혹이 커진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미국의 작가 매릴린 로빈슨은 40년 동안 단 다섯 편의 장편소설만 발표했지만 현존하는 최고의 작가로 꼽힌다. 그중 네 편이 ‘길리아드’라는 가상의 마을에서 목회하는 존 에임스 목사와 주변 사람들 이야기인데, 작가는 이 연작소설들을 통해 신앙과 인생의 신비를 탐구한다. 연작 중 3부에 해당하는 《라일라》(은행나무)에서 에임스 목사의 젊은 아내인 라일라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궁금한 게 많다.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하다. 그녀에게 소중했던 이들이 대부분 종교 없이 살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라일라는 이 문제를 남편에게 물어보지만, 에임스 목사는 천국과 지옥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라일라가 “당신은 목사치고는 설명을 잘 못 하네요”라고 말하자, 존 에임스 목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당신이 실망했다면 그것도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에게 설명하려다 보면 내가 믿지도 않는 말을 하게 될 텐데.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난 다른 무엇보다 그게 가장 두려운 것 같아요. 난 정말 목사는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종교에 관해선. (181쪽)

사람들은 목사에게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명확한 답을 듣기 원하지만, 목사에게도 분명히 믿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자신이 하는 말과 믿는 말의 간격을 줄이려고 애써도, 그 간격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천국과 지옥처럼, 처음에는 분명했던 답이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모른다고 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과 교리를 지키려는 책임감에 목사는 ‘내가 믿지도 않는 말’로 기독교를 설명한다. 존 에임스는 그런 설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그는 거짓말로 잘 설명하기보다, 설명을 잘하지 못해 미안한 쪽을 선택한다. 그런데 이렇게 미안하다는 사과로 끝낼 수 없는 때가 있다. 믿지 않는 말을 해서라도 누군가를 위로해야 할 때다.

 

임종을 앞둔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신 분이 있었다. 아버지가 예수님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처럼 마지막 순간에라도 복음을 믿고 천국에 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부탁을 받고 호스피스 병동에 찾아가 죽음을 앞둔 노인에게 시편과 사도신경을 읽어준 후에 물었다.

“우리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아버님도 영원한 생명을 받으실 거지요?” 여기에 대한 답은 ‘예’ 아니면 ‘아니오’인데, 노인은 ‘예’도 아니고 ‘아니오’도 아닌, ‘어으’ 하는 소리를 냈다. 이 뜻 모를 소리에 잠시 당황했지만, 나는 영접 감사 기도를 드렸고 며칠 뒤 장례식에서 유족들에게 아버지를 천국에서 만날 수 있을 거라 설교했다. 장례가 끝난 후에도 이 일이 자꾸 생각났다. 노인의 마지막 신음이 무슨 뜻이었는지, 그분이 정말 천국에 갔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어으’를 ‘아니오’로 해석했으면 그분은 천국에 가지 못했을까? 애당초 나에게 그런 권한이 있기는 있었을까? 내가 믿지도 못하면서 했던 설교는 정말 거짓말이었을까?

은혜로운 이야기와 영혼 구원의 승전보 대신, 꾸며내다 실패한 이야기와 나도 믿지 못하는 설교를 했던 일이 기억에 남았다. 이것밖에 안 되나 싶어 의기소침해지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노년의 기억을 블랙박스에 비유했던 대목이 생각났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으면 테이프는 자체적으로 기록을 지운다. 사고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난 원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 사고가 없으면 인생의 운행일지는 더욱더 불투명해진다. (183쪽)

노년의 기억처럼 영성의 기억도 블랙박스와 비슷하다. 사고 기록만 남은 것이다. 사소하지만 제때 응답받았던 기도들과 믿음으로 격려하고 용기를 주었던 일들은 정상 운행,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지워진다. 실패하고 믿지 못했던 일들만 사고처럼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지워진 날들에도 중요한 것들이 있다.

언젠가 부분적으로 아는 날들이 끝나고 내가 나를 온전히 알게 될 때가 온다(고전 13:12). 내가 나를 온전히 알게 된다는 말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더기가 된 기억들이 제자리를 찾고, 아무 일도 없어 지워졌던 평범한 날들의 기억도 복원된다는 뜻일 것이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처럼 지나온 삶을 확인하게 될 때, 아무 일도 없었던 날들에 숨어있던 응답과 믿지 못했던 말로 전했던 진리를 보게 되리라.

지워진 날들에 더 큰 은혜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놀라고 감동할 그때를 기다린다.


이한주
대전 주사랑교회 담임목사. 중앙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했다. 책과 책 읽는 사람과 책 읽고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