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 상담소
[406호 공간 & 공감]
실내는 생각보다 안온했다. 작은 테이블 하나와 고객용으로 준비된 파란색 다리에 검은색 뚜껑의 간이의자가 두 개 놓여있었다. 사주 상담사는 메뉴판을 주고 ‘어떤 상담’을 받을 것인지 물었다. 메뉴는 다양했다. 관상, 손금, 연애운과 금전운, 그리고 사주풀이. 고민 없이 사주풀이를 선택하자, 1인당 2만 원이라고 했다. 분명히 외부에 세워져있던 입간판에는 ‘사주 5천 원’이라고 쓰여있었는데…. 의아해하자 상담사는 그건 약식이고 1인당 2만 원을 내야 ‘정식’ 사주 상담이 가능하다고 했다. 식사에도 정식과 간식이 있듯이 사주에도 정식과 약식이 있는 것인가. 사주를 선택하면 관상, 손금도 끼워서 봐주겠다고 했다. ‘그래, 기왕 왔으니…’ 라는 생각에 ‘정식’을 주문했다.
여러 주제의 책을 잡스럽게 읽어 치우다가 우연히 접한 《명리: 운명을 읽다》(강헌 지음, 2015)를 읽고, 사주팔자로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동양 인문학이 흥미로워진 터였다. 사주팔자는 태어난 연, 월, 일, 시를 토대로 총 여덟 글자를 네 개의 세로축과 두 개의 가로축으로 구성하여 사람의 운명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특히, 완벽한 사주는 없다는 점, 그리고 사주팔자란 바꿀 수 없는 고정된 운명 결정론을 말하거나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운명을 현실에 맞게 조율하면서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해준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명리학은 부족한 기운을 보충하고 넘치는 기운은 적절하게 다스리고 사용하면서 스스로 운명의 주체자가 되어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으니 ‘실전’을 해보고 싶은데, 기독교 신앙인으로 생활해온 터라 어쩐지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호기심과 관심은 여기서 멈추고 글로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으로만 만족하고자 했다. 그렇게 일상을 보내다가 이태원에 커피를 마시러 갔을 때였다. 카페에서 나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데, 추운 날씨에도 젊은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모습이 시선을 끌었고, 나도 함께 그 무리에 줄을 서고야 말았다. ‘이건 배움이야!’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비닐 천막 속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낯선 세계로 한 걸음 내딛는 모험을 감행했던 것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사회가 혼돈의 시간에 헤맬 때, 서울의 성수동에서는 ‘성수당’이 화제였다. MZ세대들이 즐겨 찾는 성수동에는 크고 작은 브랜드가 일시적으로 오프라인 행사를 열 수 있는 ‘프로젝트 렌트’라는 공간이 있는데, ‘성수당’은 이 공간을 운영하는 회사에서 기획한 점집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82-2호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 이수자인 김가근 님과 함께 진행한 이 행사는 한 시간 만에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사주, 점, 타로 등 인간의 운명을 다루는 일들은 일시적 팝업에서 그치지 않고 대중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는 것 같다. 지난 6월 SBS에서 방영된 〈신들린 연애〉는 무속인들이 출연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인데,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화제다. 무당, 사주가, 타로이스트가 자신의 연애 ‘운명’을 점치는 과정에 대한 흥미가 대중에게 관심을 끌었다. 또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동네 생활 커뮤니티로 역할을 확장하고 있는 당근마켓에도 동네에서 사주 상담을 한다는 거래 글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을 보면 그만큼 수요가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사주, 신점, 타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애플리케이션 ‘천명’은 이미 10만 명 이상이 다운로드했고 한 달 이용자가 무려 45만 명이라고 한다.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현실의 불안을 해소하고 미래의 두려움에 대비하는 이 거대한 움직임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K-POP을 비롯해서 K-푸드, K- 방역 등 종목과 종류를 가리지 않고 각종 ‘K’가 선진적 사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지만, 저축은행 사기, 펀드 사기, 전세 사기, 코인 사기, 폰지 사기 피해자들이 계속 나오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다. 주택 가격이 솟구치는데 가만히 있으면 ‘벼락거지’가 되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마련한 집은 높아진 금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급매’로, ‘경매’로 팔려나간다. 출산율이 최저여서 “한국 망했네요!”라는 해외 유명학자의 말은 주목하여 보도하며 인구 소멸 문제를 다루면서도, 애 키우고 일하는 부모들의 한숨은 들리지 않는 이곳. 이런 아이러니한 사회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린 불안하다. 대책은 늦고, 책임지는 사람은 없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뭐라도 해야 한다’라는 불안의 절벽으로 내몰렸다가, ‘뭘 해도 안 될 거’라는 무력감의 벽 앞으로 다다른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했다가 무력했다가, 또 불안하다 그리고 무력하다. 사실 나 역시 ‘실전 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불안’했던 내 마음의 기댈 곳을 찾아, 불안과 무력을 오고 가는 생활의 탈출구를 찾고 싶어서 사주 상담소로 들어갔던 건 아니었을까.
7년 전 9월 혼인 예식을 올리고 동유럽의 조지아(Georgia)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조지아는 러시아,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흑해를 낀 나라인데 당시에는 여행 정보도 많지 않았고, 한 달 동안 떠나는 긴 여정이었기에 온갖 자료를 끌어모아 끝나지 않는 준비를 하고 또 했다. 항공권, 숙소, 환전 등 기본적인 것은 물론이고 도시별 동선을 계획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지에서 이동하는 교통 시스템은 아날로그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리 준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덜 준비된 채로 ‘안전’을 최우선에 두면서 트빌리시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택시비를 10배 이상 냈다는 사실은 한 달 뒤 신혼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가는 날에서야 알았다.
안전을 도모했으나 피할 도리는 없었다. MBTI가 즉흥형인 P인 사람이 일시적으로나마 계획형 인간이 되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봉고차처럼 생긴 대중교통을 타고 2시간 남짓 달려 ‘사랑의 도시’라고 불리는 시그나기(Signagi)에 도착했다. ‘테무네 집’이라는 현지인 가정에서 2박 3일 머무는 일정이었다. 7세기에 지어진 아름다운 정교회 보드베 수도원과 조지아의 성녀 니노를 기리는 치유의 성수가 유명하고, 무엇보다 시그나기 성벽과 설산을 함께 보는 경관이 참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틀 동안의 짧은 여정을 마무리하고 시그나기를 떠나기 하루 전 다음 날 차표를 미리 사두기 위해 버스터미널에 갔다.
터미널은 동네 너른 공터였고, 그 공터 한구석에 매표원 한 명이 겨우 들어가 앉을 수 있는 간이 건물이 서있었다. 거기에서 한 노인이 문을 열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 잠에 겨워 조는 것이 아니라 그는 마땅히 해야 할 임무인 양 잠을 자고 있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짧은 영어로 내일 트빌리시로 가는 버스 티켓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조지아어로 몇 마디를 하고 난 뒤 다시 잠을 청하려 했다. 우리는 떠나는 버스를 붙잡듯 간절하고 다급하게 손짓, 발짓을 포함해서 ‘트빌리시’, ‘티켓’, ‘투머로’ 이 단어들만 반복했다. 조지아 말을 좀 익혀올걸. 그러자 그는 동양에서 온 이 세상 물정 모르는 친구들을 긍휼히 여기는 눈빛으로, 너의 무지로 나의 단잠을 방해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듯한 말투로 “tomorrow? tomorrow!”라고 말했다. “아? 아~!” 그제서야 우리는 내일 차표는 내일 사라는 그분의 뜻을, 그 나라의 여유로운 교통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셋은 왠지 모르게 한참을 깔깔거리며 서로를 보며 웃다가 그럼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나누고는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와서 다음 날 떠날 채비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둘이 함께하는 삶도,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 일에 오늘 만족하면서 살자고 다짐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가 함께 사는 집을 “tomorrow, tomorrow”라고 짓고, 명패를 만들어 친구들이 집에 방문할 때마다 우리 집 이름의 기원과 조지아에서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7년이 지난 요즘의 우리는 자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하다. 지금처럼 둘이 살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둘 중에 누구 한 명이 죽으면 남은 한 사람은 혼자 견디기 어렵지 않을까? 우리가 ‘근로’해서 소득을 생산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뭘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서울 말고 다른 지역에서 살 수 있을까? 지금 여기를 살지 못하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가지 못한 내일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쓴다. 누군가 드론을 띄워 내 인생 전체를 조망하면서 나의 현재 좌표를 확인시켜주고, 다음 스텝을 차근차근 안내해서 최적화시켜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 금세 소름이 끼치고 만다. 그래,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봉건사회 신분제랑 뭐가 달라? 이미 완성된 그림은 존재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차근차근 뚜벅뚜벅 걸어가야 내 인생이지. 실패하기 싫고, 시행착오를 겪고 싶지 않고, 헤매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실패와 후회 없는 인생은 없다고.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은 실패 없는 인생이 아니라 실패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라고 다짐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데서 오는 불안을 오늘을 사는 모험의 지렛대로 삼고 가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설득한다.
그날의 관상, 손금, 그리고 사주풀이 결과는 기억나지 않는다. 늦겨울이었지만 그날 몹시 추웠던 것, ‘이래도 되나?’ 싶었던 약간의 죄책감 같은 감정만 남아있다.
박진영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책 읽기와 걷기, 여행을 좋아하고 “one life, live it”의 줄임말 ‘올리’로 활동하는 자기(self)연구자. 녹색정치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