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남기지 않기

[406호 월간 에디터의 도전]

2024-09-01     편집부

남은 음식이 생기면 어김없이 초파리가 몰려들었습니다. 사무실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초파리를 불러들이지 않으려면 초파리 퇴치제, 초파리 트랩… 등이 있지만 무엇보다 음식물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죠. 더욱이, 환경을 위해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제로 푸드웨이스트’ 캠페인도 있더라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에디터들은 기간을 정해서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2주간 음식 남기지 않기! 각자 식사 전후로 사진을 찍어서 2주간의 행적을 가늠했습니다. 에디터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이번 도전은 복상 뉴스레터 〈서사의 서사〉 디자이너이기도 한 이예은 객원기자도 함께했습니다.

정민호: 남은 음식을 보관했다가 다시 꺼내 먹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는 이사 올 때 샀던 음식까지 포함해 냉장고에 있던 음식들을 한 번에 모두 처리했습니다(버렸습니다). 이후 집 냉장고에는 제가 마시는 물만 남아있어요. 냉장고 전원을 꺼버릴까, 생각도 했습니다.

음식은 제가 먹을 것만 딱 주문해서 먹고, 그 자리에서 모두 없애버리고 있어요. 게으른 1인 가구원이 초파리와 음식물 쓰레기 없이 살아남는 생존 전략이죠. 자취한 지 3년 만에 터득한 지혜입니다.

제게 음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온전히 제가 고르고 선택한 음식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와 함께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주문한 음식입니다. 전자는 주로 혼자 있을 때, 집에서 먹는 식사가 그렇고요. 후자는 회사에서, 데이트하면서, 사람들과 만나면서 식사할 때 그렇습니다.

이번 도전도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주어지는 음식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뜨면 나도 모르게 내 앞에 놓여있는 음식들을 보면서, 내가 정말 나의 의지로 일상을 통제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문하게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도전은 도전이니까, 내 앞에 놓인 그릇만큼은 클리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위기가 찾아왔어요. 강릉으로 가족들과 여름휴가를 갔는데, 아침 식사로 순두부 정식을 먹게 되었죠. 양이 엄청 많았어요. 절반 정도 먹었더니 배가 불렀죠. 조금만 달라고 미리 말할 용기나 앞을 내다보는 능력은 제게 없었습니다. 시작부터 실패. 그리고 사람들과 다 같이 먹는 음식은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 양이 많거든요.

제가 식당에서 음식을 남긴다고 해서 저에게 당장 어떤 어려움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처리해주고, 저는 그냥 일어나면 되니까요. 그런데 이 도전을 하면서 깨닫게 된 바가 있습니다. 음식을 남기지 않게 되는 곳이 제 입맛에도 맞는, 만족도 높은 식당이라는 사실을요. 음식을 남기게 되는 곳, 남기지 않고 다 먹게 되는 곳을 잘 구분하여 기억해 두어야겠습니다.

이번 도전을 하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얼마나 나오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하루 동안 버려지는 음식이 1만 톤이 넘는다고 해요. 1만 톤이면 얼마나 많은 양일까 생각하다가, 나라도 음식을 덜 남기면서 살고 싶어졌습니다. 쉽지 않겠지만요.

이예은: 저는 잘 먹는 사람입니다. 어릴 적부터 “복스럽게 잘 먹는다”는 말을 자주 들으며 자랐어요. 지금도 저보다 큰 남자친구와 마라탕집을 가면, 제가 재료를 더 많이 담아서 먹습니다. 가격 차이도 꽤 크게 나죠. 그렇기에 이번 도전은 제게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사실 저는 ‘죽’을 잘 먹지 않거든요.

전 좋아하는 음식만 잘 먹습니다. 식은 죽은 반의반 그릇도 다 못 먹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메뉴가 나오면 시키지 않아도 그릇을 싹싹 비우지만, 쓴 나물처럼 별로 젓가락이 가지 않는 반찬이 잔뜩 나오는 식당에선 한없이 작아집니다. 밥 없이는 반찬도 잘 안 먹죠.

매 끼니 원하는 것만 먹을 수 없었습니다. 미역 줄기와 콩자반, 연근, 각종 나물이 한 상 가득 채우는 식당에서 모든 접시를 비우기란 고된 일이었어요. 밑반찬을 많이 준다는 이유로 좋아하던 식당도 부담스러워졌죠. 여럿이 하는 식사 자리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 책임을 미루기도 했습니다. 실패를 반복하며, 평소 당연하게 했던 ‘원래’ 저의 식생활이 참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어른이 되면 편식을 안 할 것 같았는데, 여전히 콩, 팥, 쓴맛 나는 나물이나 채소 등을 먹지 않습니다. 이미 더 자라기는 어려운데 말이죠.

지난 주말에는 도전하는 동안 “나 원래 그래”라며 남겼던 음식의 총량만큼 더위를 먹어 버렸습니다.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길 한복판에 주저앉을 뻔했죠. 겨우 집에 도착해서는 오자마자 약을 먹고 누웠습니다. 가만히 배를 붙잡고, 유난히도 더운 이번 여름을 떠올렸죠. 제가 남긴 음식들이 쌓여, 버린 배달 봉지들이 쌓여, 기후재앙이 거대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연하게 여긴 일들이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픈 몸으로 먼저 감각했습니다.

고통은 지구에서 연결된 우리 모두에게 돌고 도는 것 같습니다. 서로가 아파하는 세상에서 ‘원래 그렇다’라는 말만큼 성의 없는 변명이 또 있을까요? 변화가 필요함이 분명해졌습니다. 아무튼 적게 담고, 적게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모두를 위해서요.

이범진: 저는 원래 음식을 남기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집에서 먹을 때도 반찬까지 싹 다 먹어서 밥을 차린 사람이 저를 보고 항상 흐뭇하게 웃어주곤 해요. 아이들이 남긴 음식도 다 먹어 치우곤 했어요. 제가 눈에 보이는 음식이라면 다 먹는다는 걸 아는 아내는 부러 반찬을 조금씩 꺼내놓기도 했어요.

그런데 수년 전 혈당 관리를 해야 하는 몸이 되고서는 탄수화물을 극단적으로 줄였어요. 당연히 음식을 남길 수밖에 없게 되었죠. 식당에서 나오는 밥 한 공기를 다 먹으면 큰일 나요. 늘 밥은 1/2, 1/3만 먹어요. 이번 ‘음식 남기지 않기’ 도전이 필연적으로 어려웠다는 핑계입니다.
생각해보면, 저 어렸을 때는 음식 남기지 않는 게 미덕이었어요. 칭찬받을 일이었고요. 그래서 더 잘 먹으려 했던 것 같아요.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먹어라, 교육받고 자랐고요. 특별히 못 먹는 음식도 없고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선진국형(?) 부모들의 “얘야, 네 몸이 더 중요하단다, 못 먹겠으면 남겨라”라는 말이 매체를 통해 소개되더니, 이제 음식 남기지 말라는 말은 못 하게 된 시대인 듯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 개발도상국 세계관이 익숙한 사람인 건데요. 아무튼, 이번 도전을 하면서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내가 먹을 만큼만 받는 게 도전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느꼈어요.

강동석: 도전 과제를 듣자마자, 정말 쉽지 않겠구나 싶었습니다. 남들보다 입이 짧은 편이고, 소식을 하다 보니 종종 “왜 그렇게 남겼어?” 하는 말을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 말들에 위축될 때도 있어서, 많이 먹으려 노력해보기도 했지만 잘 안되더라고요.

음식에 호불호가 명확한 편이지만, 우스갯소리로 캡슐 하나 먹어서 영양분이 다 해결되면 그것만 먹고 살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음식 욕심이 없기도 합니다. 하루 두 끼를 먹는데도 별로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고요. 카페에서 자의적으로 디저트를 주문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뭘 먹든지 제겐 양이 많아 보여요.

옛날 생각도 많이 났습니다. 사실 저희 집은 어머니 빼고 다 비슷한 성향이라서, 어머니가 아버지와 형과 저 때문에 남은 음식 먹느라 살이 찌곤 하셨습니다. 한창 성장기에도, 다른 집 같으면 한두 끼에 다 없어질 반찬들이 거의 며칠 동안 방치되다가 버려지는 꼴이었으니까요. 음식물 앞에서는 죄인 같은 마음이네요.

아무튼 도전은 자율 배식대에서 먹을 음식만 담아와서 먹는, 주일예배 후 점심 때만 오롯이 성공한 것 같아요. 그리고 평소라면 비우지 않았을 그릇을 비우려다 보니, 먹은 양이 많아 몸이 무거워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전보다 돌아다니기 힘들었습니다. 식사 전후로 사진 찍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음식 남기지 않기’ 도전 중이라고 공언하게 되기도 하고요. 확실히 이전보단 음식을 남기지 않아요.

도전 중에 일지라도 썼어야 했나 싶습니다.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 100% 확인이 되지는 않아서요. 그리고 2000년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빈그릇 운동’을 찾아보니 세세한 실천 방안이 많더라고요. 이런 자료를 참고하면서 더 구체적으로 도전했어도 좋았겠다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도전을 통해, 스스로 관대해지기도 했던 음식물 쓰레기 배출에 대해 깊이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2010년을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원년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번 도전을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2010년 기준으로 각 가정에서 음식물 쓰레기의 20퍼센트를 줄이면 5조 원 이상의 사회·경제적 이익과 더불어 400만 톤(수입·유통·조리·처리 포함)이 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니, 앞으로도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나가는 데 더욱 유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도전을 막 강요할 수는 없을 듯해요. 최근 섭식장애와 관련한 책을 읽었는데요. 외모에 대한 불만족, 다이어트 집착으로 걸리는 ‘귀족병’이라는 식으로 이 장애에 관한 잘못된 선입견이나 편견도 많고, ‘음식을 남기지 말라’는 압박이 이런 장애를 가진 누군가에겐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겠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