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론적 사유로 형이상학을 혁신해낸 철학자 ― 루뱅 대학교 윌리엄 데스몬드 명예교수
[406호 우리 시대 종교 사상가들과의 만남 시즌2]
윌리엄 데스몬드(William James Desmond, 1951-)는 아일랜드 태생 철학자로, 사이론적(metaxological) 사유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형이상학·종교철학·미학·윤리학 등 다방면에서 독창적인 철학을 내놓은 우리 시대의 사상가다. 아일랜드 코크 대학교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학위 취득 후 아일랜드 코크대와 메이누스대에서 가르치다가 미국 메릴랜드 소재 로욜라대에서 10년 넘게 교수로 재직했다. 이 시기 미국 헤겔학회 회장과 미국 형이상학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1994년부터 2016년까지 벨기에 루뱅 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일했으며, 은퇴 후 같은 대학교 명예교수이자, 미국 빌라노바 대학교 철학과 데이비드 쿡 기금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은 《존재와 사이》, 《신과 사이》, 《윤리와 사이》, 《예술과 절대: 헤겔 미학 연구》, 《헤겔의 신: 위조된 분신》, 《신의 선물: 기본값으로서의 무신론에서 계시의 놀라움으로》 등이 있다. 이 인터뷰에서 데스몬드는 자신의 독특한 사이론과 형이상학에 대한 해명, 현대철학을 이해하는 여러 방식, 사랑과 악에 대한 사유,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오늘날 시대에서 선과 평화에 관한 성찰 등을 나눈다. 인터뷰는 2월 29일 윌리엄 데스몬드 교수의 자택에서 이루어졌으며, 루뱅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 중인 김광철 선생이 사진 촬영 등 여러 도움을 주었다.
- 우선 철학자가 되기까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아일랜드 코크의 포프스 키(Pope’s quay)에 있는 성 마리아 도미니코 소수도회에 수련 수사로 잠시 계시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셨는지요? 공부 경험과 초기 이력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일랜드 코크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아일랜드에는 가톨릭 신앙이 일상에 매우 강하게 들어와 있었지요. 전통적인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고, 사제가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다음 단계로 가기 직전에 거치는 성 핀바르 파란페리스라는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도미니코회에 열일곱 살에 입회한 것 같군요. 거의 1년 동안 있었죠. 이를 수련의 해(Novitiate year)라 부릅니다. 이 기간에 수련자들이 계속 수도회에 머물고 싶어 하는지 살펴봅니다. 저는 그곳을 떠났지만, 결코 종교로부터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 어린 청년이었어요. 떠날 때 겨우 열여덟 살이었으니까요. 당시는 그저 더 넓은 세상을 좀 봐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었습니다.
그 후에는 코크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공학을 전공하고자 등록했어요. 물리학, 수학, 화학 등 모든 과학 과목 성적이 매우 높았거든요. 솔직히 제 마음은 그쪽에 없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교양학부로 전과했고, 영문학을 하고 싶었죠. 시에 관심이 컸어요. 철학 수업도 들었는데, 그 첫해 철학에서 발견한 무언가가 저를 강하게 이끌었습니다. 시에 관심이 있었지만, 시에 대한 태도 중 하나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거였어요.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써야 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그게 좀 멍청한 일이라 생각했어요. 상상력을 발휘해 글을 쓸 때 정신을 멈춘다면, 제가 가야 할 길이 아닌 것 같았지요. 그렇게 학부에서 철학과 영문학을 복수전공했습니다.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철학을 계속 공부했는데, 그때 콜링우드(R. G. Collingwood)라는 영국 철학자의 미학과 상상력 개념을 연구했어요. 그러다 보니, 시와 철학의 강한 결속이 일어났습니다. 이후 진학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는 코켈만스와 함께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현상학을 하러 갔었죠. 그곳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큰 도전이 되는 어려운 텍스트였지요. 지금은 매우 잘 숙지하고 있지만요.
헤겔의 변증법적 사유는 매우 강력하고 매력적이지만, 저는 연구 초기 단계에서 이미 초월성과 타자성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헤겔의 변증법이 더 강한 의미의 초월에 관한 정의를 실현하지 못한 채로, 내재성 측면에서 초월을 재형상화한다는 느낌을 직관적으로 받았지요. 당시 플라톤에도 관심을 두었는데요. 플라톤은 철학자인 만큼 위대한 시인이었고, 내재성으로 그치지 않는 일종의 변증법 실천에 관한 감각이 있습니다. 이 시기부터 아우구스티누스에도 관심을 두었습니다.
제 박사논문은 《욕망, 변증법, 그리고 타자성: 기원들에 관한 논고》로 출간되었어요.1) 거기서 욕망인 에로스가 더 상대적인 위치에서 더 절대적인 위치로 나아가는 운동을 다루지요. 마지막 부분에 “절대적 기원”이라는 말을 썼는데, 신과 관련해 거창한 종교적 단어를 사용한 셈이지요. 1978년에 학위를 받았으니 스물일곱쯤 쓴 것입니다.
그 후 미국에서 몇 년 동안 가르쳤는데요. 우리 가족은 아일랜드에서 다시 살고 싶었습니다. 이내 아일랜드로 돌아가 학생들을 가르쳤지요. 1년은 전임, 1년은 시간제, 그다음 1년은 전임으로 가르치는 일을 했지요. 어린 아들과 가족이 있었기에 더 안정적인 직책을 얻고자 했습니다. 그때 미국 메릴랜드의 로욜라 대학교에서 자리를 얻었어요. 예수회 대학이었고, 1982년부터 1994년까지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예수회와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또한 미국 형이상학회 회장으로도 선출되었습니다. 당시 《존재와 사이》를 썼는데, 사이론적 형이상학에 관한 최초의 방대한 진술을 담고 있습니다.2) 그 외에도 여러 책을 썼지요. 그 후 1994년에 루뱅 대학교로 와서 2016년 은퇴 후 다시 미국으로 갔어요.
- 제가 선생님 수업을 들을 때 흥미로웠던 것 하나는 철학사, 특히 근대철학을 이해하는 관점이었어요. 유한주의(finitism)라는 말로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셨죠. 이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또한 근대성을 비판적으로 보신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 사유와 통하시지만, 여전히 포스트모더니즘과 거리를 두시는데요. 선생님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과 어떤 점에서 다르다고 보시나요?
칸트 종교철학에서 신의 개념, 칸트가 신을 끌어들이는 방식은 신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우리 도덕성의 정초로서 신의 존재를 요청하는 것이지요. 헤겔은 이런 요청을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요청은 여기 있는 사람과 요청된 대상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의미하는데, 저도 그런 간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헤겔은 지양된 차원의 무한주의를 요구해요. 저는 헤겔 이후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니체와 같은 이들에게서도 절대자에 대한 다른 방식의 요청들이 나타난다고 말하려 했어요.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차원에서 인간성의 완성을 요청하고, 포이어바흐는 신적 속성을 회복하려고 어떻게든 인간에게 인간성의 완성을 요청합니다. 그런 속성이 신의 것이 아니라 실은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니체의 ‘위버멘쉬’(초인/극복인)도 요청된 신입니다. 니체는 신이 단지 요청이나 가정일 뿐이라 말하면서, 초월적인 것을 가정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러다 막상 위버멘쉬의 꿈이 니체에게서 나오지요.
이렇듯 인간의 유한성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형태의 요청적 유한주의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일종의 요청적 무한주의로 불리는 것을 생산합니다. 인간의 자아가 스스로 무한화하기를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포이어바흐에겐 인간 종이 실제 주체이고, 내가 개인으로서 주체인 것이 아닙니다. 인류 전체가 절대자를 소유한 셈이지요. 마르크스는 무한한 것을 찾으려는 충동이 있습니다. 무한한 것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내려는 충동이기도 하지요. 저는 이것이 후기-헤겔주의 문화에서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우리는 지금도 더 과학주의적이고 사이버네틱(인공두뇌학)적인 형태로 그렇게 살아갑니다. 요즘은 트랜스휴머니즘과 더불어 그렇게 살려 하지요. 이런 사유에 속한 이들은 니체의 사촌과도 같아요. 컴퓨터 알고리즘이 우리를 순간이동시키거나 의식을 어딘가에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은 종류의 초월에 대한 꿈이지요.
이런 것은 실제로 신적 선물에 대해 다공성(porosity)을 따라 겸손하게 자신을 여는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도래할 신을 만들어낼 인간의 작업이에요. 우리가 바로 도래할 신인 셈이지요. 오귀스트 콩트를 읽을 때, 저는 그가 역사의 세 단계를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단계, 형이상학적 단계, 과학적 또는 실증적 단계. 종교적 단계는 일종의 애니미즘이죠. 형이상학은 중간 단계로,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인데, 그는 이것을 청소년기라 말합니다. 다음으로 과학적 단계에 도달해요. 제게는 유한한 과학의 절대화로 보입니다만, 어떻게 그것을 종교의 대체물로 볼 수 있도록 유혹받게 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사상가 파스칼은 인간이 무한하게 초월한다고 말합니다. 다만 절대적 초월, 즉 신의 초월이라는 척도 아래 있기에 자신을 무한하게 초월합니다. 인간 초월의 척도로서 절대적 신의 초월에 관한 감각이 많은 서구인에게서 상실되었고, 저는 이를 재앙적 손실로 여깁니다. 어떤 이들은 (지젝이 라캉과 관련해 논하듯이) ‘대타자’는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값싼 레토릭에 불과합니다. 가장 궁극적인 물음을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 나오는 농담처럼 만드니까요. 우리에게 가장 궁극적인 물음 중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더 큰 무언가에 의해 측정되는데, 그 ‘더 큰 것’은 무엇인가?’
포스트모더니티에 관해 물으셨는데, 때로 그것은 근대성(modernity)의 일부 측면을 강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탈근대성은 근대성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정립하지만, 때로는 근대성에서 실제로 해방되기보다 근대성의 어떤 측면을 강조하는 데 그칩니다. 1950년경 로마노 과르디니가 《근대의 종말》(Das Ende der Neuzeit)을 썼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예수회가 자신을 아르헨티나에서 유럽으로 보내 과르디니를 연구하게 했을 때 그에 대한 박사논문을 쓰려 했었죠. 과르디니는 이미 근대의 종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저는 그것이 서구 인류의 ‘힘에의 의지’가 특정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감각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과 핵에너지의 출현과 함께 말이죠. 우리는 이미 포스트모던 세계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1968년 이후 프랑스에서 비롯한 일부 철학은, 20세기 초반 프랑스나 독일의 철학에 비해 지적 진지함의 수준이 훨씬 낮아 보였습니다. 또한 인류에 대한 자기기만의 씨앗을 포함하고 있었지요. 몇몇은 가부장제나 ‘대타자’의 족쇄에서 모두 해방될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듯했는데, 이제 그런 종류의 언어가 진부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인간의 자유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고, 상호 관계 및 자연과의 관계에서 합리적 척도를 찾는 노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 자연스럽게 신에 관한 물음을 던지겠습니다. 존재와 신에 대해 생각할 때 다음과 같은 경향이 중요하게 나타난 바 있습니다. 장-뤽 마리옹은 존재 없는 신에 대해 말하고,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간접적으로 신 또는 신적인 것을 사유하면서 그것을 존재와는 다른 것으로, 즉 존재-신학에 오염되지 않은 신에 관해 사유하고자 합니다. 이 철학자들과 선생님의 접근 방식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선생님이 존재를 보존하면서 신을 생각하려 한다는 것 같습니다.
우선, 지난 세기 많은 작업이 하이데거에게 너무나도 큰 빚을 지고, 지나치게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가 하이데거의 이른바 ‘형이상학의 극복’, 형이상학 비판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제 생각에 하이데거는, 적어도 경력 초반부에 새로운 종류의 형이상학을 원했습니다. 형이상학을 쇄신하고자 했고, 그다음 나중에 형이상학에서 멀어집니다. 그가 ‘존재’라는 단어에 일종의 독점권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데, 《존재와 시간》을 썼다는 사실과 관련합니다. 저는 이의를 제기하며, 여러 번 이 점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저는 존재에 관해 네 가지 의미 측면에서 발전시킬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존재는 여러 의미로 말해지며, 철학자들은 이 의미들을 탐구하도록 요청받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어쩌면 하이데거에게서도 목격되는 경향은 다수를 하나로 환원하려는 시도입니다. 지배적인, 주된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저는 그런 시도가 존재의 다의성에 충실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는 제가 존재의 일의적 의미, 다의적 의미, 변증법적 의미, 사이론적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륙철학 전통에 속한 많은 사람은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하고 싶어. 형이상학을 넘어서고 싶어.’ 제가 보기에 당신이 인터뷰한 철학자 중 많은 이가 제가 했던 방식으로 이 문제와 씨름하지 않았습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현재의 물음들만이 아니라 이전 사상가들에게서 다르게 발견될 가능성들과의 대화와 관련한 색다른 방향도 제시하지 않았지요. 이는 단순히 학문적 탐구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의성은 인정받아야 할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편적 사유 없이는 길을 건널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의성도 중요합니다. 이것은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심지어 신학적 중요성을 내포하지만, 일상적 중요성과 우리가 과학 등을 보는 방식에 대한 중요한 의미도 가집니다.
이런 문제들의 심연과 이 문제들의 상호 관계를 탐구하는 일을 시작하려면, 헌신적이고 인내심 있는 사유가 필요합니다. ‘하이데거가 형이상학은 존재-신학이라 말했고, 분명히 우리는 더 이상 존재-신학을 하고 싶지 않거든’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그런 사유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런 태도는 대화를 차단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전의 몇몇 사상가들에게 존재-신학과 같은 게 있더라도, 또 하이데거가 그것을 비판적 어조로 말했다는 사실 자체가 비판적 어조의 작업 자체를 정당화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포스트모던 사상이 일종의 이성주의적 계몽주의의 특정 우상들을 비판한 것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세계에 자신만의 이성을 강요하고, 실제로 사태를 왜곡하는 이성적 계몽주의의 한 형태가 있다는 점은 이해할 만합니다. 하지만 많은 포스트모던 철학 자체가 낭만주의와 계몽주의의 혼합에서 비롯한 특정한 흐름의 후예이며, 20세기를 거치는 와중에 다양한 요인을 따라 변형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와 중세 사상가들의 연구가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그들을 보고 “철학에는 열린 잠재력이 있고, 항상 그래왔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날 사상은 데리다가 공격한 로고스중심주의가 아닙니다.
저는 존 카푸토, 장-뤽 마리옹, 리처드 카니, 제프리 블뢰클이 하는 모든 작업을 이해합니다. 또 실제로 레비나스를 굉장히 존경합니다. 그가 처음부터 정신적 진지함을 가진 철학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는 하이데거의 위대한 숭배자로서 처음에는 하이데거주의자였습니다. 후에는 하이데거의 나치즘에 충격을 받았지요. 그가 쓴 《전체성과 무한》은 제목 자체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는 전체성을 통해 하이데거의 존재 개념을 비판하면서, 무한을 말합니다. 이때 무한은 선, 즉 존재 저편의 플라톤적 선의 열림입니다. 존재 너머를 엿보는 감각은 제가 쓴 《신과 사이》의 과장적(hyperbolic) 탐구에도 등장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는 ‘존재’는 다양한 가능성에 인내심을 가지고 탐구하기를 요구하며, 또한 제가 ‘과잉 결정’(overdetermination)이라 부르는 것, 즉 유한화될 수 없으며 우리는 유한과 무한 사이의 경계로 데려가는 ‘너무나도 많음’(too muchness)의 감각으로 이어집니다. 찰스 테일러가 말하는 내재적 틀이나 유한성의 철학들과 관련해서 보자면, 그것들이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고 한다면 유한성에 충실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우리의 유한성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유한성은 자신을 넘어선 무언가에 열려있습니다.
- 선생님은 아가페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지적하신바, 역사적으로 철학에서 사랑이나 아가페에 관해 논하기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아가페는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 적용할 수 있으며, 이때 인간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일반적으로 신의 사랑을 의미하는데요. 인간은 어떻게 신의 아가페를 보여줄 수 있나요?
저는 우선 철학의 에로스적 측면을 매우 진지하게 다뤘지요.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주요 분석, 즉 디오티마의 분석을 알고 계시다면, 욕망, 에로스는 결핍에서 시작하여 다양한 사랑의 대상과의 관계, 궁극적으론 아름다움 자체와의 관계를 통해 충족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는 겁니다. 결핍에서 충족으로 이행하는 움직임이죠. 이는 플라톤에게 매우 풍요로운 개념으로 나타났지만, 철학자들은 이미 실재하는 충만함에서 시작하는 움직임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탐구하지 않았어요. 결핍에서 충만함으로 가는 게 아니라, 이미 실재하는 충만함, 자신을 넘어서는 과잉의 충만함에서 시작하는 움직임 말이죠.
인간 존재에서 제가 언급한 예로는 관대한 행위가 있습니다. 관대함은 이미 실재하는 충만함 가운데 타인에게 주는 거예요. 이상하게도, 이때 자신을 넘어서 주는 행위를 통하면서도 충만함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충만함을 나눔으로써, 충만함은 퍼져나가고 더욱 증가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아가페적 초월의 움직임은 철학자들에 의해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고 느꼈어요. 그 이유 중 하나는 에로스와 아가페가 다분히 그리스도교적 개념으로 여겨져 다루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학자들 사이에선 1930년대 안데르스 니그렌의 《에로스와 아가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에로스는 자기-추구적이고, 아가페는 이타적이라는 단순한 이원론을 설정합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에로스와 아가페의 대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이원론적 해석이지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런 해석은 에로스와 아가페의 본질에 맞지 않으며, 신학자들조차도 아가페를 제대로 탐구하지 않아요. 신약성서를 읽거나 검색해보면, 아가페라는 단어가 약 118번 나옵니다. 에로스는 신약성서에 몇 번 나올까요? 검색 결과를 봤을 때, 나오지 않습니다. 필리아라는 단어와 아가페가 같이 나오지만, 아가페가 가장 선호됩니다.
철학적 주제에 관심을 두는 철학적 신학자나 다른 일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제가 시도한 만큼 심각하고 광범위하게 아가페적인 것을 사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적절하게 다뤘는지는 별개 문제이고요. 저는 종종 신학 콘퍼런스에 초대받곤 하는데요. 이때 콘퍼런스에 모인 이들은 에로스, 또 신의 에로스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지만, 신의 아가페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 문화의 반영이라 생각해요. 우리 문화는 과도하게 에로스화되어 있어서, 에로스를 이야기할 때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아가페는 마음속에서 자기부정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아가페의 본질이 전혀 아닙니다. 물론 때로는 ‘아니오’라 말해야 합니다. 내게 빵 한 조각밖에 없는데 당신이 배고프다면 내가 먹지 않고 당신이 먹기를 바라며 줄 수 있지요. 이는 어떤 면에서 자기부정이지만, 단순히 부정의 관점에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아가페를 이야기할 때, 일부 사람들이 이 아가페적 기원의 개념을 사용하여 무에서의 창조(ex nihilo) 개념을 이해하려 시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도한 성적 욕구의 시대를 살지만, 저는 성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이 서로 다정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 없었겠죠. 하지만 신의 사랑에는 너무나 신비로운 면이 있어서, 아가페적 용어로 이야기하면 우리는 놀라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이상하지 않아? 심지어 사랑받을 수 없는 이들도 사랑하라고 하는 것이?’
제게 아가페는 매우 인간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자신을 계산하지 않고, 자신을 넘어서 자신의 것을 주는 관대함의 주제, 주면 무언가가 더해지는 이상한 신비이지요. 이것은 제로섬 경제가 아닙니다. 내 결핍이 당신의 충만함이 되고, 내 충만함이 당신의 결핍이 되는 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충만함이 되는 것입니다. 즉, 신약성서 이야기들과 비슷합니다. 빵과 물고기를 나누는 이야기에서 보듯, 나누어 줌으로써 오히려 증가하고, 처음보다 끝에 더 많아지지요.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처럼,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종종 생각합니다. 아침에는 그들이 주울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만나가 있었죠. 우리가 선물의 세계, 즉 신성한 선물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 신은 인색하게 주는 자가 아니라는 점은 신약성서의 신에 대한 비전과 매우 불가분한 관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 아가페나 사랑과 달리, 그리스도교에는 항상 스캔들이라 할 만한 악의 문제도 존재합니다. 전통적으로 악을 설명하기 위해 변신론에 의존해왔지만, 아우슈비츠 같은 대재앙 앞에서, 최근 팬데믹 기간 중 상실의 경험 앞에서는 무력해 보입니다. 선생님은 악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시나요?
전통적 구분들이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자연적 악의 개념이 있습니다. 또 최근에 코로나19 문제도 있었지요. 제 생각에는 우리 인간이 만든 것 같기도 한데요. 이 경우 우리의 개입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지요. 하지만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는 분명 인간 의지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끔찍한 사고들, 전염병, 재앙 등은 매우 어렵고 깊은 혼란을 주지요. 믿음을 산산조각 내죠.
저는 이에 대해 수년간 글을 써왔습니다. 구약성서 이미지를 사용했는데, 그에 따르자면 에덴동산에서 타락하기 이전에 우리는 자연과 하나였고, 우리와 자연, 우리와 신 사이에는 기본적인 신뢰가 있었습니다. 타락 후에는, 홍수 이야기에서 보듯 자연이 더 이상 관대하게 제공되지 않고 파괴의 원천이 되지요. 물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고요. 구약성서의 창조에 ‘토후 바-보후’(Tohu va-Vohu)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초적 혼돈 같은데, 다시 돌아오는 거죠. 신이 혼돈을 형상화하셨지만, 이것이 인간 존재에게 어떤 일로 돌아오는지 볼 수 있습니다. 신에 대한 원래의 소박한 확신이 자연의 폭력에 의해 훼손될 수 있죠. 우리가 더 이상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요? 자연을 믿을 수 있을까요? 아닐 겁니다. 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 때로 어렵죠.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로 돌아서는 경향이 생깁니다. 더 이상 외부의 타자, 자연의 외부성이나 신의 우월한 타자성에 의존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이 인간 삶의 전개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봅니다. 존재의 선물에 대한 초기 불신 때문에 자신에게로 돌아서는 경향도 있지요. 신뢰의 상실이 장기적으로는 삶을 더 나쁘게 만듭니다.
전통주의자들은 자연적 악, 도덕적 악을 이야기하고, 우리 자신의 의지와 관련하여 도덕을 구별하지요. 저는 그 구별의 요점을 이해합니다. 우리에게 귀속될 수 있는 해악들이 있다고 봐요. 순수하게 자연적 관점에서 보면, 단순히 조상들의 죄에 대한 신의 보복으로 귀속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지르는 악은 우리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제가 잘못된 일을 하면, 그 영향은 내 공동체, 가족 등에 연쇄 효과를 가집니다. 악은 결코 단순하게 사유화될 수 없으며, 더 깊이 생각해볼 영역입니다.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초도덕적 악’(transmoral evil)입니다. 선과 악을 넘어서는, 도덕적 선악을 넘어서는 악의 개념으로, 신학적 용어로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가 실제로 신에게 ‘아니오’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그저 실수나 의심스러운 의지 행위를 하는 게 아니며, 명시적으로 도덕법과 그 법의 근원인 신에 반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잠재적으로 악마적인 악의 한 종류가 됩니다.
이상한 점은, 우리 시대 서구에서 죄가 폐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는 많은 지식인에게 존재하지 않는 신학적 범주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때보다 악의 이미지가 포화된 상태에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보면 살인자들과 근친상간, 온갖 것들의 끊임없는 악이 넘쳐나지요. 하지만 저는 인간에게 있는 존재의 선물, 존재의 선함을 거부하는 능력에 관심을 둡니다. 여러 텍스트로 다룬 문제지만, 지금 쓰는 책을 마친 후 오랫동안 계획했던 악에 관한 책을 쓰려 해요. ‘신성모독’이라 불리는 것을 다루려 하죠. 단순한 자연재해나 도덕적 위반이 아니라 ‘아니오’라 말하는 것, 자유 자체의 내밀함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입니다.
우리는 선물을 받았고, 그것이 힘을 줍니다. 신이 우리에게 힘을 주지만, 힘을 주고 자유롭게 하는 바로 그 힘을 우리는 선물의 근원에 대항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 대해, 또한 신에 대해서도 깊이 신비로운 것입니다. 신이 우리에게 선의 근원 자체에 대항하는 위반의 방식으로, ‘아니오’ 할 자유를 허용하셨다는 게 말이지요.
어떤 이들은 이것을 그저 신학적 과장이라 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깊은 차원에 놓인 종교적 악행들이 있다고 봅니다. 신성모독이 종교적 행위라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제가 무언가를 모독한다면, 거기에 신성의 흔적이 있기에 모독하는 셈이고, 신성을 훼손함으로써 어떤 면에서 신성을 붙잡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에요.
때로 끔찍한 살인자들을 왜곡된 종교적 존재라 생각합니다. 신과의 정상적 평화가 증오로 변했지만, 이 증오는 파멸을 통해 신과 함께합니다. 제가 무고한 아이를 파멸시킨다면, 매우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저는 신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미친 소리처럼 들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이해하실 겁니다. 제 말은, 제가 무고한 이들을 죽인다면, 이것이 제가 말한 과장된 특성을 갖는 것은 어떤 면에서 신성이 그 안에 섞여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지요.
- 한국인들은 분단으로 아픔을 겪었기에 작금의 전쟁 상황을 예사롭지 않게 봅니다. 분단에서 비롯하는 위기가 오늘날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이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에 대해 많은 한국인이 걱정하고 있는데요. 이런 시기에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평화가 적어도 지난 60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사실, 그것은 좋은 징조입니다. 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분단 현실에서 살아가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자라난 아일랜드에도 경계가 있었지만, 한국만큼 심각하진 않았죠. 하지만 본래 한민족이었던 사람들이 서로 더 멀어지게 됩니다. 남북한은 형제 관계이고, 어떤 면에서는 가족이잖아요.
저는 평화의 안정성은 언제나 불안정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침략당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고립된 사람들과 나머지 다른 세계 사이에 더 많은 소통 가능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남한에 있는 친인척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는 것이죠. 물질적 의미에서 더 나은 생활 수준을 갖도록 돕는 일도 필요합니다.
저는 남한에 현명한 정치인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정말로 핵의 위협과 이웃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냥 잊고 삽니다. 핵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실제로 벨기에에도 많은 핵무기가 있습니다. 작은 나라지만 나토가 많은 핵무기를 설치했거든요. 하지만 누구도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베스트말레 트리펠 같은 맥주를 마시는 데 관심이 있으니까요. 벨기에의 핵무기에 신경 쓰는 이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게 삶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삶의 좋은 점입니다. 우리가 잊는다는 것 말이지요. 삶은 삶을 긍정하는 선함을 향한 것이지, 항상 악의 위험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것이 아가페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잊는 일이 허용됩니다. 존재의 선함이 우리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잊게 해주지요. 때로는 우리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전쟁이 그런 거죠. 제가 느끼기에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일은 재앙이고 불필요했습니다. 초기에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와 대화하고 있을 때는 평화의 가능성이 있었다고 봐요. 젤렌스키가 얼마 전에 3만 1천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죽었다고 말했다는데요. 다른 추정치는 40만 명 이상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만큼 나쁜 상황은 아니지만 젊은이들이, 전체 세대가 파괴되고 있지요.
-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을 위해 해주실 말씀이 있을까요?
한국의 도가 철학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 기억납니다. 그들은 “우리는 존재의 철학자가 아니라 생성의 철학자”라고 말했죠. 도(道)의 개념처럼 말입니다. 저는 인도와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이’의 개념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 유동적인 상대성 또는 관계 속의 존재라는 개념이 이 사이론적 철학의 중심에 있습니다. A와 B가 있고 그사이에 공간이 있어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이론은 훨씬 더 유동적이에요. 저는 이제 ‘사이’를 일종의 동사로, 실체적 공간으로서 ‘사이’(between)가 아닌 ‘사이짓기’(betweening)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지는 않지만, 저는 한국인들에게 이에 대한 직관적 감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3) 한국 음악을 들을 때 유동성과 형식이 일종의 결합을 이루는 것을 발견해요. 단순히 순수한 유동성도 아니고 고정된 형식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느 정도 그대로 두어야 하겠지만, 또 동시에 상호작용해야 하는 형태를 취하는 사물들의 유동적인 전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렇게 다소간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고, 더 적합한 방향으로 형성 과정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사이’는 유동적인 상호 관계만큼이나 거리에 대한 존중을 요구합니다. 젊은이와 노인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했을 때, 그 관계는 일종의 거리감에서 비롯하지만 동시에 우리 선조들과의 친밀한 관계에서도 비롯합니다. 서구에서 차이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이러한 친밀함과 차이의 관계를 의례화하는 삶의 형태를 언제나 가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발전시킨 ‘사이’ 개념은 바로 그 방향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한국의 사이론적 학자들에게 미래가 있습니다.
1) 《Desire, Dialectic and Otherness: An Essay on Origins》(Yale University Press, 1987; 2nd edition, Wipf and Stock, 2013).
2) 《The Voiding of Being: The Doing and Undoing of Metaphysics in Modernity》(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2020).
3) 데스몬드 교수는 2003년 5월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한국기독교철학회 주관 학술 세미나에서 ‘헤겔의 신’을 주제로 발표했고, 국내 여러 학자들과 교류했다. 인터뷰에 담을 수는 없지만, 식사 중 나눈 대화에서 그가 한국과 한국 사람들과 나눈 여러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김동규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현상학, 해석학, 종교철학 등을 주로 연구한다. (신학적 전제를 괄호 치고) 철학적 상상력을 통해 신과 신앙을 다시 사유하는 일이 (비)신자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으며 여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