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찾아왔다, ‘산 자’로 살기로 했다
[406호 내 인생의 한 구절]
건강 하나만은 자신하고 살았다. 아니, 자신했다기보단, 걱정하지 않고 살았다. 추위를 몰랐고, 감기 걸리는 일이 좀체 없었고, 아파서 병원에 간 적도 드물었다. 자잘하게 불편한 데는 있었지만 이렇다 할 사고 없이, 병원 신세 지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다. 키도 컸고, 남들 보기에도 튼튼했다. 아버지가 예순이 못 되어 돌아가시긴 했지만, 원체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고 제때 치료를 못 받은 것 때문이라 여겼다.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 봄에 눈에 띄게 부은 내 발을 발견한 것은 아내였다. 며칠 지나면 나아지겠지, 가벼이 여기는 내게 당장 병원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가까운 종합병원에서 여러 과를 다니며 검사를 했지만 붓기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마지막에는 혈액 수치에 이상이 있다며 골수 검사를 해보자 했다. 이런 수치라면, 백혈병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백혈병이라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평생 한 번도 고려해보지 않은 일이 삶을 가로막은 듯했다. 하지만, 아닐 거라며 마음을 추슬렀다. 난생처음 골수를 뽑았다. 한 주 후 조직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의사를 만나러 가면서도 속으로 되뇌었다. 그럴 리 없어, 아닐 거야.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내 또래의 의사는 건조한 어조로 ‘백혈병’이란 진단을 내렸다. 쿵, 마음이 가라앉았다. 비현실적인 현실이 머리를 강타했다. 정체 모를 설움이 깊은 데서 솟구쳤다.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 차올랐다. 백혈병, 혈액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때였다. 건강하기에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죽음이 코앞에 와있었다. 세 아이와 아내가 떠올랐다. 대학 입시를 앞둔 첫째와 그 아래로 철없는 두 아이, 그리고 젊은 아내가 생각났다. 아직은 아니다. 이제 겨우 쉰 살을 앞둔 중년인데, 여기서 삶이 멈출 수는 없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중년에 나를 데려가지 마옵소서.”(시편 102:24)
다행히 치료제가 있었다. 예후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의사 후배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렸더니, 당장 자기한테 오라고 했다. 자기가 혈액암 전문의는 아니지만, 가까이 있으면 궁금한 것 설명해주고 힘이 되지 않겠느냐 했다. 그 말이 고마웠다. 전원을 했고, 다시 검사를 받았고,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간 입원하며 항암제를 투여받았다. 항암제를 맞은 몸은 더 이상 전과 같은 몸이 아닐 터였다.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가족과 교회와 친구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이들로부터의 격려에 힘입어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치료는 잘 끝났다. 머리카락 빠지는 일도 없이 한 달 후 퇴원했다. 아주 힘들고 어려운 암도 있지만, 털세포백혈병은 비교적 쉽고 간단한 암이었다. 퇴원하자 몸은 차츰 회복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산에도 올랐고, 달리기를 재개했다. 3개월 주기로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마다, 입원했을 때 답답한 병실을 나와 발길을 향하던 기도실과 마음을 환하게 열어주던 병동 내 테라스 정원에 꼭 들렀다. 병상에서 보낸 시간을 떠올렸고, 죽음에서 건짐 받은 은혜에 감사했고, 다시 주어진 인생을 위해 기도했다.
치료를 받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배가 아팠다. 평생 처음 겪는 유형의 통증이었다. 며칠에 걸쳐 몇 번 반복되자 불안한 마음에 예정보다 이르게 주치의를 찾아갔다. 긴급하게 검사를 받았다. 장천공이라 절제를 해야 하며, 장 파열 원인이 앞선 백혈병 때문인지는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안다고 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입원실을 구하기 어려웠고, 겨우겨우 입원하여 소장 일부를 절제했다. 수술 후 나온 검사 결과는 새로운 암, 혈액암(NK/T 림프종)이었다. 이전 암의 재발이나 전이가 아닌, 그것과 무관한 새로운 암이라 했다.
혈액암은 종류가 다양한데 두 번째 찾아온 림프종은 치료제가 하나뿐인 데다 치료율이 높지 않고 예후도 좋지 않은 편이라 했다. 두 번째 암인데, 치료 가능성이 낮다. 어째서 이런 일이? 어찌한단 말인가. 세컨드 오피니언을 받아보라는 지인의 권고를 들었고, 다른 병원을 찾았고, 같은 소견을 들었으나, 의사는 환자가 젊고 건강하니 해볼 만하다며 해보자고 했다. 나이 많은 의사에게 나는 젊고 건강한 환자였다. 새 의사의 긍정적인 권고에 마음이 열렸다.
그 후로 5개월에 걸쳐 항암 치료를 받으며 온갖 일을 겪었다. 음식 맛을 못 느끼고 먹지 못하는 날이 왔고, 온몸의 털이 사라졌고, 혼수상태에서 며칠을 보냈고, 섬망에서 돌아오는 데 여러 날이 걸렸고, 병동 실내를 한 바퀴 도는 게 힘들 만큼 몸이 축났다. 암 환자가 겪게 마련인 전형적인 일들이 내게도 벌어졌던 셈이다. 그리고 회복된 이들이 그러하듯, 최악의 지점을 통과한 몸은 더디지만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살아있으면 몸은 회복된다.
다섯 달에 걸친 항암을 마치고 최종 결과를 확인하는 검사에서 ‘전이’로 확인됐다. 하나뿐인 항암제가 실패했고 이제 남은 치료제는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어찌해야 하는가. 탄식하고 원망하고 분노했다. 반년간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갔고, 죽음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다. 바로 그때, 전해 시작하여 이미 마감되었던 면역 항암제(신약) 임상 실험의 티오가 추가로 열렸다. 막다른 골목에 새 길이 트였다. 2년에 걸쳐 면역 항암 치료를 받았다.
감사하고 놀라운 사연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결과만 말하자면, 올해 초 2년간의 치료를 마치고 건강을 회복하며 살아가고 있다. 암은 5년이 지나야 완치라고 하니 아직 3년은 더 지나야겠지만,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환자인지 모를 만큼 환자 티를 벗었다. 그래도 몸은 전과 같지 않고, 이따금 작은 이상 징후라도 보이면 또 재발인가 하는 두려움이 인다. 그래도 감사하게 살아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은혜요 기적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 고난 속에 던지셨다는 암시였다.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가 있을 거라든지, 이 일을 허락하신 뜻이 있을 거라든지 하는 말에는, 순종하지 못한 내게 원인이 있을 거라는 암시가 배어있었다. 잘 생각해보라, 기도해보라, 주께서 쓰시기 위함일 거라는 말들은 마음을 어렵게 했다. 결국 그분이 나를 폭풍 한가운데에 던져 넣으셨고, 그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의미였으니 말이다. 왜? 왜 나를? 그분이 왜? 나의 ‘왜’에는 답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변화시킨 것은 두 가지였다. 우선, 사람들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 사람들의 우정과 응원, 기도와 사랑이 깊은 수렁에서 나를 건져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이 폭풍 가운데 나를 던지신 분이 아니라 폭풍 속에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내가 그 폭풍을 이기고 날아오르길 원하시는 분임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평생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고통 속에 나를 던져 넣은 분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마주한 사망의 길에서 그분은 나와 함께 걷고 계셨다.
항암 실패 후 받게 된 임상 실험, 그것은 내가 희망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었다. 하지만 첫 투약을 한 지 한 달 후에 검사하여 효과가 없으면 곧바로 종료되는 게 임상의 룰이었다. 첫 투약을 하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 마음은 생애 가장 평안했다. 한 달 후 검사 결과가 실패로 나오면 더 이상 의학적인 방법이 없는 터라 두려울 만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내 평생에 그때처럼 평안한 시간이 없었다. 잘 잤고, 아침마다 눈뜨는 게 감사했고, 하루를 사는 게 기적 같다고 아내와 매일 고백했다. 그날 이후로 그게 일상이 되었다. 기쁨과 평화, 감사와 찬양이 하루의 루틴이 되었다. 오늘이란 시간을 주심이 감사하고, 입을 열어 감사하고 노래하고, 그러고 나면 기쁨이 찾아들고 새 힘이 찾아온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마가복음 12:27) 어느 날 복음서를 읽다가 마주한 구절이다. ‘산 자’는 수명이 끊기지 않은 생존한 자이기도 하겠지만, 살아있는 삶을 사는 자가 아닐까. 살아있어도 죽은 자처럼 살 수 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이 두 번째 삶을 ‘산 자’로 살겠다. 오늘 하루를 기뻐하고, 감사하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살겠다.
내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른다. 병상에서 드린 기도대로 주께서 허락하셔서 25년을 더 살지(주께서 곤곤한 날에 드린 내 기도를 들으셨다고 믿으니), 혹 100수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고집하지 않는다. 얼마를 더 살든 나는 ‘산 자’로 살다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것이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그분의 영광을, 그분의 하신 일을, 그분의 은총과 사랑을 말하고 노래할 것이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시편 118:17)
박명준
한 여인의 남편, 세 아이의 아빠, 바람이불어오는곳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