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년?
[406호 동교동 삼거리에서]
사무실 옆자리에 계신 (복상 실무진 중 유일)한 중년분께 물었습니다. “중년의 위기를 느끼시나요?” “압박감이 있죠. 위로는 부모님이 있고, 아래로는 아이들이 있는 샌드위치구조의 압박. 몸이 더 좋아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서 오는 불안.” 하하하,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끝마쳤지만, ‘웃프고’ ‘서늘한’ 현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커버스토리만 놓고 보면, 위 중년분께서 이번 주제를 기획했겠거니 오해하실 수도 있겠는데요. 기획안을 내놓은 사람은 접니다. 중년까지 5년 정도 남은 ‘늙은 청년’이지요. 연달아 읽은 두 개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는 UN이 2015년 발표한 연령기준에 따르면 중년이 66-79세로 분류된다는 소개 글(메이저 언론과 각종 출판물에서 이를 인용했지만, 〈뉴스톱〉에서 출처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인터넷 루머라고 팩트체크했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100세 시대엔 40·50대를 ‘확장된 청년기’로 인식해야 한다는 전문가 인터뷰였죠. 중년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중년기가 교회에서 가장 활동적인 시기인데도 실증적 연구 주제로는 소외되어 왔다는 한 논문의 분석(〈오늘의 기독교 중년 교육의 과제 연구〉) 앞에 멈춰 섰습니다.
돌아보면, ‘중년’이라 했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는 1965년에 한 정신분석학자가 내놓은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라는 관념으로 표상되는 추상화된 인간상이 아닐까 해요. 최근엔 ‘생산성·성숙도가 최절정기에 도달하는 시기’로서 중년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는 연구도 속속 발표되는 모양인데요. 여러모로 ‘중년 이해’를 넓힐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구체적으론 ‘이차적 장애’ ‘조기노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중년 장애인의 삶이라든지, 사회적 편견과 생활고의 위협을 맞닥뜨리고 있는 교회 내 비정규직 비혼 중년 여성의 삶(〈비정규직 비혼 중년 여성의 불안정한 현실과 교회의 역할에 관한 질적사례연구〉)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보는 거죠.
이번 커버스토리는 네 사람(정신실·김종필·최은·전수희)의 ‘중년살이’에 관한 글을 담았습니다. 다른 글들도 같은 키워드로 읽어볼 수 있겠는데요. 이를테면, 중년기에 질병의 계절을 지나 보낸 ‘산 자’의 이야기(내 인생의 한 구절), 중년기에 삶을 깎아 가치 있는 선택을 한 헌신자에 대한 이야기(사람과 상황, 봄봄, 평화교회 한 걸음)가 그렇겠지요. 올해는 ‘중년’을 생각하면서 가을을 맞이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강동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