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로부터 시작하다

[407호 평화교회 한 걸음] 국제 구호(1)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

2024-10-01     김홍석

역사적 평화교회인 아나뱁티스트 교회와 퀘이커 교회는 마치 평행 이론처럼 비슷한 시기에 따로 또 같이 구호 활동을 시작하였다. 교단 내부의 형제·자매들을 돕고자 시작한 활동이 바깥 세계의 도움 요청에 응답하면서 점차 발전하게 된다.

아나뱁티스트 그룹의 구호 기관 창설 배경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인한 내전의 여파였다. 러시아 내 메노나이트 교회의 많은 이들이 살인과 기근의 위기에 휩싸여 있다는 소식이 바다 넘어 북미 메노나이트 교회에까지 들려왔다. 

러시아 메노나이트는 18세기 예카테리나 대제 시절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방으로 초대를 받아 병역을 면제받는 대신, 그 지역의 척박한 땅을 개간하게 되었다. 후에 우크라이나가 세계적인 곡창지대가 되는 데에는 이들의 공헌이 매우 컸다. 이들은 교육 등 자치권을 인정받아 러시아 지역 내에 손꼽히는 풍요로운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풍요 때문에 극심한 빈곤에 시달려 혁명을 일으킨 세력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다.

러시아 메노나이트 그룹으로부터 구호 요청을 받은 북미의 메노나이트 교회를 비롯한 아나뱁티스트 그룹은 빠르게 기금을 모아 러시아 지역에 구호물자를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이 움직임은 얼마 후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MCC, Mennonite Central Committee) 설립으로 이어졌고, 이 기관은 오늘날까지도 구호 및 국제 개발, 평화 활동을 총괄하고 있다.1)

MCC는 물자 지원뿐 아니라 이후 러시아에서 탈출한 메노나이트, 독일에서 탈출한 브루더호프 공동체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많은 러시아 메노나이트가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이주하여 그전에 자리를 잡고 있던 아나뱁티스트 그룹의 도움을 받아 정착하였는데, 이들 중에는 필자의 처가 쪽 할아버지인 제이콥 월크(Jacob Woelk)도 포함되어있다. 그는 여덟 살 때 형제들과 함께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 캐나다로 이주하였다. 제이콥 할아버지는 평생 동안 MCC에 많은 기부를 하셨는데, 그때마다 가족에게 “MCC에서 보내준 식량으로 하루에 한 끼를 먹으며 살았던 날들도 많았단다. MCC가 아니었으면 내가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또한, MCC는 2차 대전 이후에 많은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벌였고, 전 세계 분쟁 지역에 봉사단을 보냈다. 그중에 한국의 대구, 경산 지역도  있었다. 이곳에서 특히 고아와 극빈 계층을 위한 직업훈련 학교인 메노나이트 직업학교(Mennonite Vocational School)를 세워 중·고등학교 과정을 교육하였다. MCC는 한국에서 1953년부터 1971년까지 활동하다가 한국의 교회 성장과 경제개발 속도가 빠르게 증가하자 더 필요가 있는 지역에 집중하기 위해 철수하였다. 2014년에 다시 MCC 동북아시아 지부가 춘천에 자리하게 되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메노나이트 화해 서비스 MCS 홈페이지(restorativechurch.org) 갈무리

MCC의 발자취를 따라

MCC는 100여 년 역사에서 작은 규모이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필자가 정리해본 주요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청년 국제 교류 프로그램이다. MCC는 북미 메노나이트와 다른 대륙 기독교 청년들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고자 다양한 청년 교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른 대륙 청년들이 북미에서 1년간 자원봉사를 하는 IVEP(International Volunteer Exchange Program), 북미 청년들이 다른 대륙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SALT(Service and Learning Together), 전 세계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청년들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인 YAMEN(Young Anabaptist Mennonite Exchange Network) 등이다.

필자는 청년 시절 IVEP에 참가하였는데, 이로 인해 인생의 방향이 바뀌는 강렬한 경험을 했다. 전 세계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청년 교류 프로그램은 각 나라의 교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청년 리더들이 더 다양한 교회와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교회의 차세대 리더로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번 여름에 만난 일본 메노나이트 교회 리더들에 따르면, 일본 메노나이트 역시 청년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대다수 청년이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2)

두 번째, 북미 최초의 공정무역 운동 ‘만 개의 마을’(Ten Thousand Village)3)이다. 1946년 에드나 바일러(Edna Ruth Byler)는 푸에르토리코 여인들의 삶을 돕기 위해서 수공예품을 가져와 팔기 시작하였다. 이 작은 활동은 곧 북미 최초의 공정무역 가게인 ‘만 개의 마을’ 설립으로 이어졌는데, 공정무역 개념이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제3세계의 노동자 협동조합이 생산한 수공예품, 아동 착취가 없는 양탄자 등의 제품을 판매하였다.4) 북미의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때 다른 선물 대신 ‘만 개의 마을’ 판매를 주최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세 번째, 메노나이트 재난 구호 서비스(MDS, Mennonite Diaster Service)5)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재해 현장에 자원봉사 캠프를 차리고 장기간 복구 활동을 벌이는 프로그램이다. 많은 재해 복구 프로그램이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반면, MDS의 경우 길게는 수년에 걸쳐 자원봉사 캠프를 운영하면서 재난 지역 주민들과 호흡하며 필요에 맞는 지원을 한다. 여름이면 많은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청년, 대학생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MDS를 위해 1-2주일씩 휴가를 내서 자원봉사에 참여한다. 이러한 재난 지역 봉사를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캐나다 메노나이트 대학은 전공학과를 개설하기도 하였다.

네 번째, 메노나이트 화해 서비스 MCS(Mennonite Conciliation Service)6)이다.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는 1880년대 국내외 다양한 분쟁에 조정자로 개입해 평화적으로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았다. 이러한 분쟁에 대한 전문적인 조정을 위해 ‘화해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약 10년 동안 갈등 해결을 위한 교재 출판과 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초기 책임자는 저명한 갈등 조정가인 론 크레이블(Ron Kraybill)이었고, 다음 책임자는 갈등전환학을 발전시킨 존 폴 레더락(John Paul Lederach) 교수였다. 이 프로젝트는 종료되었으나 필자가 졸업한 이스턴 메노나이트 대학의 정의와평화대학원을 통해 발전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7)

비전보다 관계에 초점을

MCC는 필자를 비롯한 많은 한국의 메노나이트 교회의 리더들에게 메노나이트 신앙인으로서 봉사 실천을 할 수 있는 장이 되어준 고마운 곳이다. 특히 2010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애크런에서 1960년대 한국의 MCC 봉사단으로 활동하였던 봉사자들의 모임에 참가했던 적이 있는데, 한국전쟁 후 참으로 빈곤했던 한국에서의 섬김 경험을 인생에 가장 보람이 있었던 사역으로 생각하고 계셨다. 이분들을 뵙는 것만으로도 큰 감격이 있었다.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의 사역을 직·간접으로 경험하면서 우리 한국교회가 구호와 국제 개발, 평화에 관한 일을 할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함께해보면 좋겠다.

첫째, 한국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MCC도 처음에는 핍박받는 러시아 메노나이트 교회를 위해 설립되었지만, 세계 곳곳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활동을 키워나갔다. 우리는 아직 교회 내의 필요나 같은 기독교인의 필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는 우리 교회, 우리 단체의 명성을 포기하고 이름 없이 섬기고 있는가? 아나뱁티스트 교회들은 MCC라는 우산 아래 모여 작은 개교회와 중소 교단의 역량으로 감당하지 못할 구호와 개발 사역을 함께해왔다. 이들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개교회 중심인 한국 개신교에서 교단을 넘어 함께하는 구호 프로젝트를 경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제사회의 분쟁이 다각화되고 심화되면서 수많은 난민이 한국의 문을 두드리는 현실이다. 한국교회가 초교파적으로 응답할 수 있는 연합 조직을 만들 수는 없을까?

셋째, 거대한 비전과 담론 중심의 국제 구호와 개발이 아닌 사람과 사람, 커뮤니티와 커뮤니티를 연결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 MCC 사역을 들여다보면 처음 시작은 언제나 관계였다. 나의 형제들이 어려움을 호소할 때, 내 이웃이 허리케인의 영향으로 집을 잃었을 때, 분쟁 지역의 리더가 긴급한 도움을 요청할 때, 이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열매가 맺혔다. 청년 시절 필자가 들었던 대다수의 선교와 구호단체의 구호는 관계가 아닌 거대한 비전 중심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큰 비전 아래에 안주하는 데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 주

1) mcc.org/about/history
2) 현재 일본에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3) gameo.org/index.php?title=Ten_Thousand_Villages
4) 브리태니커 웹 자료에는 이 활동을 최초의 페어 트레이드 자료로 기록하고 있다. ― britannica.com/ money/fair-trade#ref1253667
5) mds.org/our-history
6) restorativechurch.org
7) emu.edu/cjp


김홍석
평화교육을 비롯해 건강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조율컬렉티브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