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보트처럼 유연하게” ― 기독교 대안학교 ‘별무리학교’ 이상찬 교장·이승은 졸업생
[407호 커버스토리]
별무리학교는 충청남도 금산에 있는 기독교 대안학교다. 기독교 대안학교는 보통 교회를 법인으로 두고 목사·장로가 주도하여 설립하지만, 별무리학교는 공립학교에 근무하는 기독교사들로 구성된 교사선교회(TEM) 소속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2012년에 설립되었다. 2022년 6월에는 충남교육청 산하 대안교육기관으로 등록되었다.
별무리학교는 12학년제에 따라 초등학교 6학년부터 입학생을 받는다. 현재까지 305명이 입학해서 운영되고 있다. 학교 주변에는 별무리 전원마을이 조성되었는데, 주민 대부분이 별무리학교 교직원이나 교사선교회 회원, 인근 공립학교 교사들이다.
대안 교육 영역에서 기독교 가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별무리학교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9월 7일 학생들이 귀가한 토요일 오전, 학교의 카페 공간에서 이상찬 교장 선생님을 만났다. 그의 딸이자 별무리학교 1기 졸업생인 이승은 씨도 인터뷰에 함께했다. 이승은 씨는 본지 398호 ‘내 인생의 한 구절’에 기고한 바 있는 교육 콘텐츠 개발자다. 그는 인터뷰 일정에 동행하며 도움을 주었고, 인터뷰이 발언이 정확한지 확인하는 감시자 역할까지 도맡았다.
이승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상찬: 안녕하세요. 저는 별무리학교 교장 이상찬입니다. 별무리학교에 오기 전에는 공립학교에서 19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공립학교 교사로서 한계를 느껴 동료들과 함께 기독대안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심하고, 이곳에 와서 13년째 별무리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민호: 그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상찬: 학교 설립을 논의하던 2001년은 교육의 공공성이 강조되던 시기였어요. 공립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큰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속한 교사선교회에서는 학급 제자 훈련을 통해 소수 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쳤는데,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죠.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그리스도의 제자를 키우기 위해 2002년부터 10년을 준비해 2012년에 별무리학교를 개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10년간 영재교육을 담당하며 마주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영재교육이 단순히 좋은 대학에 보내는 수단이 돼버린 극단적 현실을 봤죠.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게 됐고, 대학원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배우며 교육이 회복되려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죠. 보통 교직 생활 20년이 되면 평생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그런 것에도 연연하지 않기로 한 거죠.
민호: 1년만 더 근무했으면,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도 있었다고요. 고민은 안 하셨나요?
상찬: 별무리학교의 큰 장점 중 하나는 공립학교 교사들이 설립한 학교라는 점입니다. 첫 건물을 건축할 때 교사선교회가 비용을 모아서 지원해줬어요. 기부자 명단에는 350여 명이 포함되어있죠. 퇴직금 일부를 기부한 교사들도 있어요. 이 건물을 건축할 때도 교사선교회에서 수억 원을 모아 주었습니다.
학교를 함께 시작한 동료 중에는 공립학교를 그만둔 분들이 일곱 명 더 있습니다. 그분들도 20년 교사 생활까지 몇 년 안 남았지만, 그걸 포기하고 왔어요. 그렇기에 첫해부터 함께하지 않는 건 후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솥을 깨뜨리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파부침주(破釜沈舟)의 마음이었어요. 돌아갈 길이나 방법을 없애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가끔 후회하기도 해요.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차이가 너무 크거든요.(웃음) 농담입니다. 당시 별무리학교 교장 선생님도 제게 1년을 채우고 오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후배들이 모든 준비를 해놓고 제가 나중에 오는 건 말이 안 되죠.
민호: 가족 중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상찬: 처음 가족회의에서 아내와 승은이는 반대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승은이는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반대했죠. 이사해야 했으니까요. 셋째는 그때 너무 어려서 기어 다닐 때라 의견을 구할 수 없었고, 저희 어머니는 아들이 간다니까 무조건 찬성이셨어요. 그리고 중3이었던 첫째 아들의 발언이 아주 중요했죠.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꿈을 꾸라고 해놓고, 엄마는 왜 아빠가 꿈꾸는 길을 막으려고 해?” 사실 아내는 첫째 때문에 망설였던 거거든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갑자기 금산에 가면 학업이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한 거죠. 첫째는 “괜찮아, 엄마. 나 적응 잘할 수 있어”라고 했어요.
민호: 승은 씨가 중학교 1학년이 될 때 별무리학교 1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상찬: 저는 이 학교가 정말 승은이에게 맞는 세팅이었다고 생각해요. 승은이는 친구를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친구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도 자기 길을 가는 모습이 딱 승은이 성격이죠. 1기로 들어온 48명의 학생은 저마다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학교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성장했죠. 지금도 자기들끼리 교류하는 모습을 보면 참 보기 좋아요.
아마 별무리학교 학생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을 겁니다. 학교에서는 제자도, 공동체, 소명, 샬롬이라는 네 가지 가치를 매일 얘기합니다. 제자도는 자발적 이타성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하죠. 공동체는 그 이타성을 혼자가 아니라 팀으로 함께 이루어야 한다는 겁니다. 소명은 개인과 공동체에 주어진 일이 언젠가 우리에게 올 거라는 믿음이고, 샬롬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런 가치들을 계속 고민하고 배우며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대학 진학 혹은 취업 후에도 세상에서 그 가치를 구체화하기를 바랐죠.
민호: 별무리학교의 교육 철학과 이상은 높은데, 학생들은 평범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때잖아요. 이런 가치들이 억압적이거나 경직된 규율로 느껴지진 않았을지 궁금합니다.
상찬: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이고, 저런 가치에 관심이 없는 학생도 많아요. 신앙이 입학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의 철학과 수업에 참여하겠다는 것만 동의하면 입학할 수 있지요.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생도 있어요. 가치가 규범화되면 경직될 가능성이 높죠.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그런 사례는 처음에 비하면 많이 줄었어요.
별무리학교는 평일에 전자 기기와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주말에 집으로 가기 전까지 핸드폰을 보관합니다. 물리적으로 휴대폰과 단절되면 학생들은 오히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어요. 다만 몇몇 학생은 금단현상을 겪기도 하지요.
민호: 이성교제는 금지인가요?
상찬: 네, 이성교제가 지나치면 퇴학입니다.
민호: 그런 사례가 있었나요?
상찬: 네, 있습니다.
승은: 이성교제를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상찬: 학기마다 학생들이 직접 회의해서 규율을 만드는데요. 이성교제를 허락하는 데 찬성하지 않아요. 이 규율이 언제 깨질지 모르겠지만,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민호: 졸업생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승은 씨, 이런 교칙이 있어도 다들 이성교제를 하지요?
승은: ….
민호: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상찬: 알고 있죠. 하지만 고백하면 안 됩니다. 눈빛 교환은 가능하지만, 고백은 안 되죠. 누군가 고백하면 “헛소리하지 마. 졸업하고 한번 생각해볼게” 하면 그 친구는 문제가 없고, 고백한 친구는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승은: 사실 학교 다닐 때 좋은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으면서,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라고 하는 게 학생들에게는 불만일 수도 있어요.
상찬: 그래서 가치 수업에서 실존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나누는 시간이 생기기도 했어요. 질문이 정말 심오하죠.
승은: 무슨 질문을 하나요?
상찬: 《소유냐 존재냐》를 분석해보면, 내가 소유하는 만큼 내 존재가 소외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1천억 원을 벌면 그만큼 내 본질이 왜곡된다는 얘기입니다. 이성교제도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품을수록 나의 본질이 왜곡될 수 있다는 거죠. 진정한 사랑은 존재론적 사랑이고, 소유할 때 내 존재가 왜곡되지 않는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거죠. 무언가와 관계 맺는 것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성교제와 연결 지어 무턱대고 고백하고 사귀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얘기하죠.
승은: 우리 땐 그냥 참으라고 했지. “안 된다. 공동체를 깰 수 있다”고. 저도 이런 식으로 고민을 해봤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상찬: 그래서 에리히 프롬, 헤겔, 칸트, 니체 같은 철학자들 책을 많이 읽게 합니다. “읽어 봐, 정리해 봐”라고 하죠. 학생들은 지금 사고가 막 용솟음치는데, 그걸 기독교적 생각으로만 정리하라고 하면 완전히 꼰대가 되어버려요. 철학자들 글을 읽다 보면 정말 다른 사람과도 소통할 수 있는 기독교인이 될 수 있어요. “너는 믿음이 부족해서 그래”라고 대화를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 하니까요.
민호: 공립학교도 계속 변하고 있잖아요. 별무리학교는 다른 학교들의 변화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나요?
상찬: 현재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들은 교육과정을 전면 개편하고 있어요. 저희는 2016년에 고교학점제를 시작했고, 현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공립학교도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고 해서, 일반화에 대한 위기의식도 있었는데요. 모든 곳이 별무리학교처럼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고교학점제를 하면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선택받지 않았을 때 발생할 문제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이죠. 많은 경우 학생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저는 이기적인 생각이라고 봐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주체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적용하는 거죠.
저희는 최근 고교학점제에 대한 12학년 교육과정을 개편해 ‘스쿨인스쿨’이라는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다양한 수업을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진로와 관심사에 맞춘 네 개의 미니스쿨(창업학교, 인문학교, 작품학교, 여행학교)을 만들기 위해 상당한 예산을 투자했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고교학점제를 다시 새롭게 설정했죠.
제도권 학교에 도움이 되는 샘플이 되고자 여러 시도를 해왔던 것 같아요. 비유하자면 제도권 학교는 항공모함입니다. 방향을 바꾸려면 앞서 나간 수많은 배들이 안전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죠. 큰 궤적을 그리며 방향을 바꾸겠지만, 저희는 바로바로 방향을 바꾸는 모터보트처럼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민호: 제일 앞에 가는 보트라고 할 수 있을까요?
상찬: 그렇죠. 고교학점제 도입 초기에는 위기가 있었어요. 대학 입시 교육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대신 학점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를 전후로 20명이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민호: 입시는 거대한 현실이기도 하잖아요. 학생들, 학부모님들 반대도 만만찮았을 것 같은데요.
상찬: 그건 각오했어요. 누가 나갈 것인지 리스트업도 했죠. 거의 적중했어요. 1-2등급인 학생들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입시에 유리한 수업을 가르치지는 않을 계획이었으니까요.
망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야심 차게 시작한 별무리학교가 입시 교육을 반대하다가 폐교해 역사에 남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그 과정을 재현할 때는 시작할 때부터 좀 더 입시와 다른 방향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민호: 지금 재학 중인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은 입시와 관계없이 학교의 교육과정을 따르겠다는 건가요?
상찬: 그런 측면도 있지만, 오히려 입시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충남대의 경우, 별무리학교 1기 때는 검정고시 일곱 과목에서 95점 이상 받으면 2.5등급으로 환산되었어요. 수능 최저 등급을 맞추고, 검정고시 만점을 받으면 충남대 모든 과에 갈 수 있었죠.
충남대, 경북대, 전북대 등 지역 거점 대학들이 그렇게 운영했어요. 사실 충남대는 대전의 일반 고등학교에서는 반에서 4등 안에 들어야 입학할 수 있죠. 우리 학생들은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길이 있었던 거예요. 이 친구들은 대학에 가면 좋은 성과를 내죠. 대학도 반기고요. 졸업생들이 대학에 가서 성과를 내니까 대전과 세종에서는 부모님들 사이에 소문이 났습니다. ‘미친 듯이 학원 다니고 내신 잡으면서 힘들게 공부하지 말고, 행복하게 공부하며 충남대나 충북대에 가면 되지 않나.’ 그래서 입시를 바라는 분들이 지원하시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
승은: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입시를 치렀던 것 같아요.
상찬: 맞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한동대나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이 많았죠. 그 전형을 뚫고 갈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대학도 많았어요. 어느 대학에 갔든, 어떤 일을 하든 다들 정말 잘 살고 있습니다.
민호: 입시는 많이 준비하든, 안 하든 스트레스가 되는 영역인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승은: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했거든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있으니까 그 자유가 너무 행복하게 느껴졌어요.
민호: 이건 부작용 아닌가요?
상찬: 오히려 바라던 결과죠.
승은: 그래서 아빠한테 “나는 이제 대학 안 가겠다. 자유롭게 살겠다. 카메라 하나 사줘라”라고 했어요. 그 후 여기서 사진도 찍고, 맞춤형 교육과정에서 제가 원하는 대로 시간표를 짜서 수업을 많이 듣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난 대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라고 했더니, 부모님께서는 고민해보라고 하셨죠. 그때 엄마는 “너 지금 나가서 돈 벌어먹고살 수 있을 것 같냐”며, 제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하셨어요.
하나님 나라의 책임 있는 제자가 되라고 배웠지만, 고등학생 신분인 제가 사회에서 제자로서 살기 위한 능력이 아직 부족하고 어떤 도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여러 고민 끝에 대학 가서 그런 능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입시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서 대학교에 간 거예요.
민호: 듣다 보니 별무리학교를 안 다닌 제가 질문이 많아지는 것 같네요. 보편성이라고 할까요? 학교가 다양한 학생들을 받아줄 수 있는지에 대한 스펙트럼도 많이 고려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 입학해서 적응이 어려운 친구들이 있진 않을지 궁금합니다.
상찬: 초반에는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학생들도 꽤 있었고요. 요즘 그런 학생들은 서류나 캠프 선발에서 제외되는 추세입니다. 그런 점이 안타깝고, 그래서 오히려 착하고 반듯한 학생들이 많이 옵니다.
민호: 지원자가 많아져서 그런 거죠?
상찬: 그렇죠. 선생님들은 약간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어요. 모범생들을 좋아하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모범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승은: 맞아요. 그래서 튀는 친구들이 아빠를 좋아했어요.
상찬: 별무리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제게 오면, 저는 그들이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느낌이 듭니다. 예전에 공립학교 생활부장으로 근무할 때는 학교폭력 가해자 부모님을 만나지 못해 며칠 고생했던 경험도 있었어요. 교무실에 와서 아이들을 때리는 부모님들도 있었고요. 그런 경험을 생각하면, 별무리학교의 부모님들은 정말 거룩한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죠.
민호: 아무래도 공립학교보다는 등록금 부담이 큽니다. 다양한 학생들이 진학하기엔 어려운 요소 아닐까요?
상찬: 맞아요. 제 후배가 최근 페이스북에 “돈 많은 독지가가 후원하고, 간섭하지 않는 좋은 학교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어요. 경제적 상황에 상관없이 의지만 있으면 교육받을 수 있는 학교를 찾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이런 학교가 생기지 않을까”라고 댓글을 달았죠. 별무리학교는 매달 100만 원 이상 등록금을 내야 하니까,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죠. 지금도 20명 이상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안학교로,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았지만, 교육부와 지역 교육청은 우리를 뜨거운 감자로 생각하고 있어요. 국가가 선생님들 월급을 지원하면 등록금을 줄일 수 있겠지만, 간섭도 동반되겠죠. 어떤 교육 개혁가가 강력한 의지를 품고 저희를 지원한다면, 더 다양한 학생들이 와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겠죠.
민호: 대안학교라도 국가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보시는군요.
상찬: 네. 뜻있는 정치인 중에서 별무리학교를 돕는 분들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하지만 우리는 숙명적으로 대안이라는 위치에 있습니다. 주류 교육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전체 수천만 명 중에 몇만 명 정도만 관심이 있는 영역이니까요. 그런데 기독교적으로 보면 세상은 몇 퍼센트도 안 되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잖아요? 소망이 없지 않습니다.
민호: 대안 교육은 늘 소수라도 이상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계획들을 하고 있나요?
상찬: 대안 교육이 다른 나라처럼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우리는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올해부터는 교사들 역량 강화와 교육 철학 공유에 중점을 두고 재정과 행정을 투자할 계획입니다. 선생님들이 1세대 마인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내부적으로 철학이 변치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기독대안학교들이 파편화된 현실도 개선하고 싶습니다. 교회 간의 반목이 기독대안교육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동역자가 아닌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죠. 우리 학교는 다른 대안학교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기독성을 어떻게 품을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싶습니다.
민호: 학교 웹사이트를 보다가 졸업식 축사를 봤는데, 별무리학교의 이상이 ‘이거였구나’ 하고 느꼈어요. 기독교 철학에 대한 가르침과 그 한계를 언급하시면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너희들이 이걸 써먹을 날이 올 것이고, 언젠가는 별무리학교로 돌아와달라”는 요청이었죠.
상찬: 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서 가장 소중하게 다루는 컷이 1기 졸업생들 사진이에요. 이 아이들이 졸업하는 날을 못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르쳤죠. 학생들이 학교에 계속 남아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요. 지금까지 정말 소중한 258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는데,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한 인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에는 이미 충분하다.’
제가 대학생 때 선배로부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교사가 되라”는 말을 들었어요. 무슨 소리냐고 반문했더니, “교사는 교사지만, 그 교사를 통해 수많은 캐릭터와 인간들이 길러지고, 네가 미칠 수 없는 수많은 위치와 사회적 영역에서 역할들을 해낼 것이다. 모든 캐릭터가 되고 싶으면 좋은 교사가 되라”고 말씀하셨죠. 그런 꿈들이 아이들을 통해 보입니다.
민호: 복상을 오랫동안 읽어오셨는데,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상찬: 교사가 되었을 때 복상을 처음 접했는데,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그때 제가 굉장히 비판적이었거든요. 현 상황에 복음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복음이 경직되어 세상의 상황이나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이 잡지를 발견했고, 그 안에 있는 여러 글과 사람들의 삶이 상황에 맞는 복음을 해석해내고 있다는 걸 보면서 좋은 인상을 받았죠.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독자들이 모두 복음의 조각이라고 믿어요. 그 조각들이 가장 적절하게 반영되는 여러 무지갯빛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빛이 하나님의 빛을 투영해 이 세상에 드러날 때, 그 빛은 하나님의 빛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힘내시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당신들의 삶은 너무 소중하다고 응원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리 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