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408호 공간 & 공감]

2024-10-31     박진영
내가 일했던 단체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 중에 4층에 있는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하 사진: 필자 제공)

기독교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6년 8개월의 시간 동안 추위는 견딜 만했다. 우리 단체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건물 중에 4층에 있는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지상 주차장과 철근으로 만든 아슬아슬한 외부 계단이 있었던 사무실 건물은 밝은 회색빛 페인트로 새롭게 단장했지만, 세월의 흔적은 지우지 못했다. 건물주의 배려로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유지했던 단체 사무실은, 입사했을 당시 사무국장 대행 1명과 회계 담당 간사 1명 등 총 2명이 채우기에는 매우 넓은 공간이었다.

내 자리는 좌측 창가 자리였는데, 사무실 문을 열면 내 모니터가 바로 보이는, 그야말로 딴짓이라고는 할 수 없는 (하더라도 눈치껏 해야 하는) 자리였다. 햇빛과 환기 때문에 선택한 자리였는데 알루미늄 새시(창호)에 단창 유리는 외부 날씨를 그대로 전해주었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창문 틈으로 끊임없이 새어 들어와 문풍지와 뽁뽁이를 붙여도 소용없었다. 한기는 기어코 비집고 들어와 발을 동동 구르게 했다. 당시 활동가들에게는 발밑에 놓는 난로가 1인 1개씩 지급되었는데, 그것만으로 추위를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의 직사광선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어서 비타민D 걱정은 없었다. 그러나 오래된 시멘트 때문인지 서늘한 기운이 한여름에도 계속되었다. 뜨거운데 서늘한,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끝까지 적응할 수 없었던 건 화장실⋯ 역시나 화장실이 문제였다(2022년 9월호 ‘나는 화장실이 무섭다’ 편 참조). 근무하는 기간 내내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한 적이 없다. 홀수 층은 여성, 짝수 층은 남성으로 구분해서 관리되던 화장실은 출입문이 나무로 되어있어 손잡이에 달린 똑딱 잠금장치만으로 ‘안전’이 보장될 수 있을지 늘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쪼그려 앉는 형태의 화변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비교적 규칙적인 바이오리듬과 장내 미생물 균형을 유지해왔지만, 어쩌다 한 번 그 균형이 깨지는 날이면 근처에 큰 건물로 다급하게 뛰어가곤 했다. 또 월경하는 날이면 정말 불편하다 못해 힘들었는데, 쪼그려 앉은 자세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 모든 불편은 시민단체를 선택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강남, 여의도, 광화문에 휘황찬란한 건물에서 일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는 거의 없을 테니 근사함과 편리함은 애초에 내 것이 아니라 여겼다. 일하는 당시에는 일하는 공간의 불편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기 전에는 활동가들의 ‘헌신’을 미처 몰랐다. 내가 시민단체에 들어가기 전부터 수많은 활동가는 이미 사회를 바꾸기 위한 열정의 대가를 일하는 공간에서 일상적으로 치르고 있었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창문 틈으로 끊임없이 새어 들어와 문풍지와 뽁뽁이를 붙여도 소용없었다.

직업 활동가에서 공인중개사로 전직한 지 6년이 되어간다. 일하는 자리가 바뀐 만큼 내 생활도 많이 달라졌다. 엘리베이터 없는 오래된 건물에 화변기 화장실 딸린 40평 사무실에서, 1층에 있는 4평짜리 개인 오피스로 바뀌었다. 시민단체에서는 문서를 인쇄할 때 재생 종이만 사용했는데, 요즘엔 계약서의 엄중성과 전문성을 조금이라도 어필하기 위해 돈을 더 주고 무게 있는 종이를 주문해서 사용한다. 이전에는 버티다 버티다 눈치 게임을 하듯 송구한 마음으로 에어컨 버튼을 눌렀는데, 지금은 언제 방문할지 모르는 고객들을 위해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즉각 에어컨을 틀어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려 애쓴다. 단체 사무실에서는 활동가든 방문객이든 텀블러와 머그컵 사용이 기본값이었지만, 부동산에서는 종이컵과 커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늘 준비해둔다.

일하는 자리가 바뀌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동료들이 사라졌다. 부동산 중개업은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영업자다. 결국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지고, 수고해서 결실을 거두는 일이기 때문에 ‘동료’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인근의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들은 ‘동료’라기보다는 잠재적 경쟁자에 가깝다. 거래할 수 있는 부동산은 정해져있고, 부동산 중개업은 계약의 성사 여부로 매출이 결정되기 때문에 내가 계약을 성사시켜서 매출을 올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제로가 되는 제로섬게임 같다.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고충을 헤아릴 수는 있지만 서로의 짐을 함께 져줄 수는 없는 관계, 즉 각자의 짐을 오롯이 지고 남들보다 빠르게 걸어야 살아남는다.

일하는 공간의 아름다움은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만든다.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함께 걷던 동료들이자 ‘아직’의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고자 애쓰는 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은 뙤약볕 아래서 교회를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고, 교회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자산’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온몸으로 부르짖으며 온갖 욕설과 비아냥, 비웃음과 무기력을 받아내며 버티던 사람들이었다. 시민들의 주거권을 지키고자 애쓰고, 지하·옥탑·고시원 넘어서 안전한 주거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던 이들이었다. 심해지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태산을 옮기는 믿음으로, 추운 겨울 시린 손으로 행사용 컵을 하나하나 씻던 활동가들이었다. 마지막 잎새처럼 여전히 교회에 남아있는 청년들에게 함께 문제를 고민하며 나눌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던 사람들. 그리고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또렷한 활자로 널리 실어 나르며 크게 확산시켜주는 이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박봉으로 가정을 지탱하고, 여가는 절제하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데 누군가에게 도움받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매월 소득의 일부를 떼어내 정기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 이따금 수박 한 통 사와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분들이 있었다. 우리를 격전지에서 고생하는 동지로, 당신 자신을 빚진 사람으로 여기시는 분들이었다.

미움·다툼·갈등도 있었지만, 과거는 미화되기 때문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곳에는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시민단체 활동가 시절의 어려움을 견디게 해준 것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었고, 혼자 일하며 애쓰는 지금을 견딜 힘도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들로부터 온다. 편리한 시설이 갖춰진 멋진 오피스이든 오래된 건물의 불편한 화장실이든 일하는 공간의 아름다움은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만든다.

얼마 전, 과거에 일했던 건물이 허물어지고 비계구조물(아시바)이 설치된 것을 보았다. 기분이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래된 의자에 앉아, 주무시는 것인지 생각하고 계신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에 옅은 미소를 가진 관리자 할머니가 여전히 계실 것 같은데⋯.

오래된 건물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서늘함과 3층부터 차오르던 가쁜 숨과 날 두려움에 떨게 했던 화장실이 사라졌구나. 그 자리에서 나눴던 대화들, 늦은 밤까지 밝혔던 열정들은 사라지고 이제 으리으리하고 유난스럽게 깨끗한 화장실이 있는 화려한 건물이 세워지겠구나.

 

과거에 일했던 자리는 이제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나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한 명은 파리에 살고, 한 명은 나와 한집에 사는, 동료들과 함께 만든 자리다. 아직 사무실은 없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일구는 마음으로 우리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자리가 곧 아름다운 곳임을 안다. 일부 왜곡되고 잠시 오해받겠지만, 아름다운 공간은 언제나 사람이다.

박진영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책 읽기와 걷기, 여행을 좋아하고 “one life, live it”의 줄임말 ‘올리’로 활동하는 자기(self)연구자. 녹색정치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