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서부터 실천하는 평등과 평화
[408호 평화교회 한 걸음] 국제 구호(2) 퀘이커 국제 구호단체 AFSC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적 평화교회로서 메노나이트 교회로 대표되는 아나뱁티스트 교회와 퀘이커 교회의 북미 활동을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마치 이란성쌍둥이처럼, 따로 또 같이 지구촌의 평화와 정의를 위해 활동해온 퀘이커 단체인 미국친우봉사회(AFSC, American Friendship Service Committee)에 대해서 알아보자.
미국친우봉사회(AFSC)의 역사
AFSC는 1917년 1차 세계대전의 징집 대상자가 된 퀘이커 청년들의 ‘양심적 병역 거부’ 활동을 도우려고 설립되었다. 이후 연이어 발생한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만 명의 난민을 돕기 위해 활동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7년, AFSC와 영국친우협회는 함께 ‘이름 없는 이들을 위한 이름 없는 봉사와 구호’에 대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퀘이커 교회가 얼마만큼 열성적으로 전쟁 난민 구호에 임했는지를 알려주는 하나의 징표이다.
또한, AFSC는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위해 담대한 애드보카시(advocacy) 활동을 해왔다. 이를테면,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첩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강제로 수용 시설에 보내졌는데, 미국 단체로는 드물게 AFSC가 이들의 거주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들은 한국전쟁 이후에 전문 봉사단을 한국에 파견하여 의료와 구제 활동을 이어갔다.
1950-1960년대에 AFSC는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을 돕는 조용한 협력자로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위해 다양하게 지원했다. 특히 1959년 비폭력 저항운동의 두 상징인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마하트마 간디의 만남을 지원하였고, 마틴 루터 킹의 《버밍햄 감옥으로부터의 편지》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여, 흑인 민권운동 확산을 도왔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자신의 저서에서 마하트마와의 만남이 비폭력 저항이라는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길이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AFSC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베트남전쟁 반대, 아메리카 선주민을 위한 운동, 성소수자와 이민자의 권익을 위한 운동을 초기부터 전개하여 교회와 사회가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도록 앞장서서 평화와 인권, 정의의 문제에 관해 목소리를 내오고 있다.
AFSC의 힘은 조직 문화에서 온다
필자는 평화교회의 네트워크 안에서 몇 차례 AFSC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고, 현재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아래는 그동안 AFSC의 조직 문화를 보며 느낀 점들이다.
첫째, 운동의 정신이 살아 숨 쉬도록 진행자도 학습자도 자원한다. AFSC의 평화교육 프로그램은 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와 HIP(Help Increase the Peace)가 있다.1) AVP 프로그램은 뉴욕주의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의 폭력성이 점점 더 심해지자, 퀘이커 그룹이 분쟁 해결 프로그램을 맡아 운영한 것이 최초의 시작이다. 이후 입소문을 타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이 프로그램이 퍼졌고, 자원봉사를 바탕으로 운영되는 구조 덕분에 더 빠르게 확장되었다. 이후 1990년대에는 AFSC에서 청소년들의 폭력과 총기 사용 증가 등에 대한 대안으로 AVP의 청소년 버전인 HIP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운영하였다.
필자는 2005년 메노나이트 자원봉사 프로그램 참여 중, 워싱턴의 퀘이커 미팅 하우스에서 HIP 진행자 훈련을 경험하였는데 늘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듣고 암기하는 것이 버릇이던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모두가 참여하여 모두가 배움과 나눔을 나누는 식의 교육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참여적 교육의 첫 경험이었고 그 이후 참여적 평화교육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이 두 가지 프로그램 모두 퀘이커 그룹과 AFSC가 주도해 생겼지만, 이들은 소유권이나 주도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프로그램 초기의 정착과 도입만을 돕고, 이후에는 공동체가 스스로 이끌도록 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 한국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2) 이렇게 프로그램을 모두가 소유하게 하는 것이 앞으로의 평화운동과 사회운동의 방향성이 될 것이다. 21세기의 모든 운동은 권위자가 존재하지 않는, 자발적 공동체에서 이루어내야 하는 게 아닐까?
둘째, 효율보다는 관계와 지속 가능성을 중심에 둔다. 1980년대부터 AFSC는 북한의 농업 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는데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협동 농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방북과 봉사 활동을 해온 것이다. 필자가 처음 평화교회를 알아갈 때, 북한의 농장을 도와주고 온 퀘이커 농부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북한의 트랙터를 미국으로 가져와서 수리해 다시 북한으로 보내주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언뜻 생각하면 미국이나 한국의 성능 좋은 제품을 보내주면 좋으련만, 운송비와 통관 등의 복잡한 절차를 왜 감수하려는지 의아해 그 이유를 물었다. 그의 답은 매우 단순했다. 최신 트랙터를 보냈어도 다시 고장이 나면, 수리할 부품이나 장비가 부족할 테고, 지금 쓰는 트랙터를 미국의 농부들이 고쳐서 보낸다면 그만큼 북한의 농업에 관해 관심 두는 농부들이 늘어나는 일이니 더 좋은 방법이라는 답이었다. 이후 필자는 국제 개발 조직에서 일하면서 그 퀘이커 농부의 말이 옳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셋째, 안으로부터 실천하는 평등과 평화이다. 필자는 전업으로 조직개발과 협력을 위한 코칭과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기에, AFSC의 가장 인상 깊은 지점은 100년에 가까운 역사에도 여전히 가슴 뛰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AFSC는 늘 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와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흔히 100년을 넘은 역사를 가진 비영리 조직은 세상이 필요로 하는 중요한 무언가를 이루어낸 위대한 조직들이다. 유서 깊은 단체는 오래된 역사만큼 무게감이 있어 섣불리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않는다. 오래 관행처럼 굳어온 고유한 문화를 바꾸기도 어렵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AFSC 활동가들은 여전히 활력 있고 도전적인 비전을 갖고 있었다. 마음에 품은 뜻을 펼치기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그 일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여실히 보였다.
이들의 ‘향후 10년간의 비전과 전략 문서’3)에는 “불의한 시스템에 저항하며 항구적인 평화 만들기”라는 도전적인 비전과 세 가지 전략이 수립되어있다. 첫 번째로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 건설, 두 번째로 공의로운 경제 만들기, 세 번째로 난민과 강제 이주민을 위한 정의로운 대응이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러한 전략을 잘 실천하기 위한 조직개발 목표를 구체적으로 수립한 점이다. 많은 비영리 조직이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하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한 조직적 역량과 인재 개발을 하지 못하고 활동가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참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직개발 목표 중에는 포용과 다양성 협력을 조직 내부에서부터 실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AFSC 리더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조직 내부적으로 지난 20여 년간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인종적·문화적 정의가 조직 안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니면 구호로만 그치고 있는지 뼈를 깎는 각성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지금은 국제 활동을 하는 스태프 중 약 80%가 문화적·인종적 다양성을 지닌 사람들이라고 한다.
미국과 세계를 향해 인권과 평등, 다양성의 존중을 외치는 단체가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조직 내부에서 그러한 가치가 실현되고 있는지 살피는 일이다. 다행히 AFSC는 이러한 내부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홍석
평화교육을 비롯해 건강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조율컬렉티브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