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 돼지를 구할 수 있을까

[408호 구선우의 동물기]

2024-10-31     구선우
Ⓒ이예은

인간과 가장 가까운 동물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들은 땅콩 등 견과류 알레르기가 있다.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께서 꼼꼼하게 확인해주셔서 걱정 없이 지냈다. 초등학교에 가니까 음식을 잘못 먹어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다행히도 급식 식단표에는 알레르기 유발 식품이 표시되어 있었다. 음식명 뒤에 적혀있는 숫자로 식재료를 확인했다. 땅콩은 4번, 호두는 14번. 그래서 매월 급식 식단표가 나올 때마다 4번과 14번이 있는지 아들과 함께 확인하게 되었다.

한 번은 3-5월 석 달 치 분량을 전수조사한 적이 있다. 석 달 동안 땅콩은 딱 한 번 나왔고, 호두는 급식에 나온 적이 없었다. 자주 나오지 않는 견과류와는 달리, 난류(卵類, 1번)나 우유(2번)에 반응하는 아이들은 매일매일 식단을 보며 얼마나 큰 불편을 겪고 있을까. 가공식품과 화학물질 소비가 증가하면서 각종 음식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늘고 있다.1) 어른들 잘못 때문에 아이들이 벌 받는 것 같아 속상하다. 식단표를 보던 중, 19가지 알레르기 유발 식품 목록에서 돼지고기(10번)·닭고기(15번)·쇠고기(16번)가 눈에 띄었다. 고기 알레르기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식단에 고기가 얼마나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아들과 함께 돼지고기·닭고기·쇠고기가 몇 번 나오는지 세어보았다. 석 달 치 식단, 총 61일 동안 돼지고기는 32회, 쇠고기는 31회 등장했다. 닭고기는 14회로, 비교적 적게 나왔다. 61일 동안 76가지 고기를 먹는 셈이다. (소시지나 햄버그스테이크 같은 ‘가공식품’에는 두세 가지 고기가 섞여 들어간다.) 생선구이 등 주 반찬으로 육류가 나오지 않는 날에도, 고기는 국과 반찬 어딘가에 숨어있었다. 그렇다면 10·15·16번이 없는 날은 없었을까? 석 달 중에 딱 3일이었다. 3월 25일, 4월 17일, 4월 22일. 오리고기가 나오는 날이었다.

“인간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00명 중 99명은 ‘개’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나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아니 인간의 몸속을 가장 많이 거쳐 간 동물은 ‘돼지’가 아닐까. 적어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 몸 안에서는 돼지고기가 큰 역할을 한다.2) 앞서 초등학교 식단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돼지로 동물기를 시작하는 이유다.

하찮은, 너무나 하찮은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돼지’라는 이름은, 이 동물이 내는 울음소리에서 기원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현대 한국인들은 돼지가 “꿀꿀”거린다고 표현하지만, 고대에는 “도도”라고 들렸나 보다. 도도거리는 이 동물은 조선 시대까지 돝·돋·돗 등으로 불렸고, 여기에 동물의 새끼(강아지·망아지 등)를 이를 때도 쓰이는 축소 접미사 ‘아지’가 더해져 도아지·도야지·돼지가 되었다. 윷놀이할 때 사용하는 끝수 단위인 도·개·걸·윷·모(刀介乞兪毛) 중 ‘도’가 돼지[豚]를 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금방 이해된다. 돼지라는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정말 돼지에게 미안하지만, 이름부터 뭔가 돼지스럽다고 해야 할까? 정말 대단한 것 하나 없고, 볼품없는 하등동물로 여겨진다.

가장 많이 먹는 고기라는 슬픈 현실에, 하찮은 동물이라는 이미지까지 프레임화되어 있다. “돼지”는 친구를 놀릴 때 많이 사용된다. 실제로 돼지는 먹성과 번식성이 좋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이 먹는 사람을 돼지라고 놀린다. 심지어 ‘호색한’에게도 돼지라는 멸칭이 따라붙는다. 욕심이 많은 동물이라고 하면, 다들 돼지를 떠올린다. 요즘 신조어 중에는 ‘돼지런하다’는 말이 있다. 먹을 때만 부지런하다는 뜻이다. ‘대체 불가 뚱뚱하다’와 동의어로 쓰인다는 사실은 어린아이들도 다 알 것이다. 돼지는, 말 그대로 돼지다.

돼지에게 가해진 가혹한 대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리스신화에서 돼지는 다른 동물에 비해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소개하자면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가 각각 괴수 돼지를 처치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테세우스는 티폰과 에키드나 사이에 태어난 딸로서 크로미온 근방을 황폐하게 만든 암퇘지를 죽였으며, 헤라클레스는 열두 가지 과업 중 하나로 에리만토스산 인근 농경지를 파괴하던 멧돼지와 싸워서 승리한다. 플라톤이 쓴 《국가》 제2권을 보면, 이상 국가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돼지들의 국가”를 언급한다. 책 내용은 이렇다. 먼저 스승 소크라테스가 소금·올리브·치즈·채소·과일·포도주 등으로 익숙한 음식을 추구하며 건강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들로 이루어진 일반 국가를 소개한다. 플라톤 작은 형 글라우콘이 묻는다. “소크라테스 선생님, 돼지들의 국가를 세우고 계신 겁니까?”3) ‘돼지들의 국가’는 기본 욕구만 충족시키며 사는 나라이다. 이들은 ‘인간다운’ 고상한 국가는 무엇일지에 관해 대화를 이어간다.

구약성경 잠언도 돼지를 하찮은 동물로 취급한다. “아름다운 여인이 삼가지 아니하는 것은 마치 돼지 코에 금 고리 같으니라.”(잠 11:22) 분별력·판단력(discretion) 없는 여성에 대한 비유다. 여성을 돼지에 빗대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난 모욕이었던 것 같다. 심지어 돼지는 여러 문화권에서 먹는 것조차 금지된 동물이다. 레위기에는 낙타·사반(새번역 “오소리”)·토끼와 함께, 먹지 못하는 부정한 동물로 등장한다(레위기 11장).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레 11:3)만 먹을 수 있다. 돼지는 굽이 갈라졌지만, 새김질을 못 하므로 부정한 동물로 분류되었다(레 11:7; 신 14:8). 천주교와 개신교는 이 전통을 따르지 않지만, 여전히 유대교 코셔 푸드는 돼지고기를 금한다. 이슬람 할랄 푸드도 마찬가지다. 먹느니 만도 못한 동물이다. 어쩌면 돼지로서는 차라리 부정한 음식으로 여겨지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모든 나라와 문화권에서 육류 중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지는 않는다. 달리 생각해보면, 한국은 돼지에게 정말 지옥과 같은 곳이다. 돼지가 쓰고 있는 가시면류관의 무게를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돼지 때문에 전쟁까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세기 북미에서 돼지 한 마리의 죽음이 전쟁으로 이어진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돼지 전쟁’(Pig War)이다. 이 전쟁은 1859년 6월 15일 영토 분쟁이 한창이던 미국과 캐나다(당시 영국령 밴쿠버 아일랜드) 사이 영유권 분쟁 지역인 샌환섬(San Juan Islands)4)에서 발발하게 된다. 미국인 농부 라이먼 커틀러는, 영국 허드슨 베이 컴퍼니 농장이 소유한 돼지가 자신의 감자밭에 들어와 농작물을 파괴하자, 화가 나서 돼지를 총살하고 말았다. 이들은 배상액을 두고 갈등을 벌였고, 이는 국가 간 충돌로 이어진다. 미국은 대포 14문에 약 500명의 병력을 섬에 집결시키며 요새를 만들었다. 영국은 5개 군함을 출격하여 대포 70문에 2,000여 명의 병력으로 맞대응했다. 돼지 한 마리 때문에 군사적 충돌 직전까지 가게 된 셈이다.

양국은 고작 돼지 한 마리 때문에 피를 흘리면서 싸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협상을 통해 일부 영국군도 섬에 주둔하게 되어, 양측은 합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공동 군사 점유를 이어갔다. 12년간 대치한 끝에 독일 황제 빌헬름 1세가 중재인으로 참여한 중재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 돼지 전쟁은 1872년 10월 21일 샌환섬이 미국 영토로 귀속되고, 한 달 후 11월 25일에 영국군이 철수하며 다소 싱겁게 끝이 난다. ‘고작 돼지 한 마리 때문에’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명 피해 0명. 아무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샌환섬국립역사공원에서 ‘평화로웠던’ 돼지 전쟁을 기념하고 있다. ‘고작 돼지 한 마리 때문에 사람들이 피 흘리며 싸워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이 합리적·평화적 갈등 해결로 나아가는 모델이 되었다. 돼지 한 마리를 희생한 것치고는 값진 결과일까?

존 스튜어트 밀은 “만족한 돼지보다 불만족한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정말일까? 돼지 코에 금고리를 씌우고 놀리는 자들은 돼지가 아니라 인간이다. ‘고결한 인간’이 감히 온전하게 돼지 편에 서줄 수는 없겠지만, 돼지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어본 적조차 없다면 애석한 일이다. 이렇듯, 돼지는 타자화의 무차별적 폭력을 당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아칸소 대학교(University of Arkansas) 야구부는 미국 대학 리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문 팀이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에게 주는 사이영상을 수상한 클리프 리, 댈러스 카이클을 비롯해 현재까지 메이저리거 267명을 배출해냈다.5) 최근에는 조재우 선수가 입학해서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아칸소 대학 스포츠팀 아칸소 레이저백스(Arkansas Razorbacks)에는 특별한 점이 하나 있다. 바로 팀 상징이 돼지라는 사실이다. ‘레이저백’은 야생 돼지를 뜻한다. 빨간색 강인한 맷돼지 빅레드(Big Red)가 마스코트이고, 팀을 부르는 애칭은 돼지를 가리키는 ‘The Hog’다. 아칸소 운동부는 말 그대로 ‘돼지 팀’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앞서 나열한 부정적 인식만을 생각한다면 다소 엉뚱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돼지를 팀의 상징으로 사용하다니? 돼지를 스포츠팀 마스코트로 사용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돼지는, 인간과 함께해온 오랜 시간 동안 부정적인 인식 속에만 갇혀있지는 않았다.

중국과 한국에서 돼지는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기도 한다. 재물을 가져다준다고 여겨져 많은 사람이 꿈에서 돼지를 만나고 싶어 한다. 금색으로 칠한 돼지는 부의 상징이다. 어린이에게는 귀여운 동물 중 하나이다. 생김새를 보면 납작한 코와 꼬불꼬불 말린 꼬리라는 특징 덕분에 쉽게 그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림에 소질이 없는 나도 쉽게 그려줄 수 있어서 육아할 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돼지에게 감사한 일이 제법 많다. 젤리 성분을 보면 “돼지고기”를 함유하고 있다. 젤라틴이 돼지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캡슐 약 껍데기 부분도 젤라틴으로 만든다. 화장품·접착제 등에 들어가는 재료를 돼지 몸에서 추출하기도 한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돼지를 이종 장기이식 연구를 위한 공여 동물로 이용해왔다. 돼지 장기가 인간 장기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돼지에게 참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간다.

돼지는 지능과 사회성이 뛰어나다. 미국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은 돼지가 보여주는 놀라운 사회성을 소개한다. 템플 그랜딘은 동물 관점에서 동물을 이해하려고 시도한 동물학자이다. 템플 그랜딘에 따르면, 젊은 수퇘지들이 모이면 새로운 지배 서열이 정해질 때까지 싸운다고 한다. 이 싸움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은 무엇일까? 바로 ‘어른’이다. 젊은 돼지들은 나이 든 수퇘지가 있으면 싸움을 멈춘다고 한다.6)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가 우리 인간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템플 그랜딘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동물학자다. 동물학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로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로 활동했으며, 그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영화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 2010)이 개봉하기도 했다. 2022년 인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제작할 때 모티프가 된 인물이다. 그는 일반인보다 비언어적 지능이 높다. 언어가 아닌 영상을 통한 인지능력이 강해서 일반인이 보지 못하는 동물의 세계를 볼 수 있다. 그의 눈은 각 동물이 지닌 고유한 특별성을 보았다. 그는 “동물들은 자폐 영재들과 비슷하다. … 동물들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동물과 공존하면서도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동물을 그저 쳐다보기만 하기 때문이며, 평범한 사람들은 동물의 비범함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7) 다름은 틀린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것이다. 동물들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같은 지구 안에서도 인간이 알지 못하는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 세계를 존중하며 살고 싶다.

인간으로부터 돼지 구하기

오늘도 인간은 하찮은 돼지를 요리하며 살아간다. 아이들과 함께 캠핑장에 가서 바비큐 파티를 하고, 다음 날 돌아오는 길에 방문한 동물원에서 동물들을 구경하며 먹이 주기 체험을 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은 돼지를 구할 수 있을까? 육식을 포기하고 돼지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을까?

인간은 돼지를 잡아먹는다. 죽이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따로 있어서, 귀여운 돼지가 우리 식탁 위에 돼지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알면서도 애써 잊어버리는 것일까? 유독 바비큐, 삼겹살 전문 음식점은 돼지를 캐릭터로 형상화한 그림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듯하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으로 돼지들이 땅에 묻히는 영상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지만, 나는 오늘도 아이들과 고기를 먹는다. 돼지·닭·소를 비롯한 동물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죽은 생명 덕분에 우리 가족의 생명이 산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만 느낄 뿐이다. 죽음과 희생만이 문제가 아니다. 돼지가 살아있을 때 인간이 가하는 폭력이 더 심각하다. ‘1인 미디어’ 시대로 오면서 누구든지 다양한 정보를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돼지 사육장’이라고만 검색해도, 돼지들이 겪을 불쌍한 삶을 볼 수 있다. 디지털 편식이 심해진 탓일까. 사람들은 애써 확인하지 않는다. 보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돼지의 자연 수명은 15-20년이다. 농가에서 사육하는 돼지는 2년 8개월 정도 살다가 죽는다고 한다. 그나마 엄마 돼지에게 주어진 삶이 이렇다. 엄마 돼지는 좁은 스톨(Stall, 철제 감금 틀)에서 평생을 살며 인공 교미를 통해 새끼를 20여 마리 낳은 후 세상을 떠난다. 아기 돼지는 태어나자마자 트레이드마크인 꼬리를 마취 없이 잘리게 된다. 발치하는 경우도 있다. 그저 장난을 치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태어난 지 3-4주 만에 젖을 떼고 6개월 만에 죽음을 맞이하여 식탁에 올라오는 돈육, 아니 아기 돼지의 삶을 짓밟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얼마나 숭고한 삶인가? 소나 닭이 처한 상황도 다르지는 않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이 문제를 농가가 해결할 길은 없다. 동물 복지를 실현하면, 가격 경쟁력을 잃고 만다. 외국 돼지가 그 자리를 대체할 뿐이다.8)

해외 돼지라고 행복할까? 값싼 고기를 얻기 위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어떤가? 집단 사육으로 병든 동물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원헬스’(One Health)라는 개념도 있다. 인간-동물-환경의 건강이 서로 연결돼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육체적 질병이나 감염병만의 문제가 아니다. 불행한 돼지를 먹으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면, 인간에게 있는 경이로운 망각의 덕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있는가?

애니메이션 영화 〈인투 더 월드〉(2023)에는 동물 복지가 으뜸인 농가에 사는 오리들이 등장한다. 오리들은 초호화 리조트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주인의 말에 속아 인간의 먹이가 된다. 이 장면을 보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행복하게 살다 죽은 돼지는 먹어도 되는가? 덜 미안해질 뿐이지 않겠는가? 어차피 먹는다면 행복한 돼지를 먹자는 제안이 좋은 것일까? 돼지를 비윤리적 공장식 축산으로부터 구원하는 일이 우선이지만, 고민해볼 문제이다.

그리스도인으로부터 돼지 구하기

채식하는 그리스도인이 등장하는 인터넷 영상에 “불교로 가라”는 댓글을 남긴 사람을 보았다. 그리스도인에게 비건의 삶은 어울리지 않나 보다. 기독교 신앙에서 영혼 구원과 육식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인다. 비건은 환경운동을 하거나 동물권을 외치는 사람들만의 구호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보주의자’를 가늠하는 바로미터처럼 사용되는 현실이 아쉽다. 건강을 이유로 채식하는 사람은 종종 보이지만, 기독교 신앙을 이유로 채식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돼지를 구할 이유가 없을까?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뿐 아니라 동물들을 만드셨다. 모두가 지구별 여행자로 살고 있다. 동물들도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는 피조물이다. 인간은 이 지구의 주인공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인간은 피조물들의 세계를 돌봐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돌봄의 사명은 인간이 힘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동물을 어느 정도 보살피지만, 먹기도 해야 한다. 인간인 이상, 인간이 아닌 비인간 동물의 입장에 서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동물들이 같은 지구 안에서 인간이 알지 못하는 세계를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만드신 드라마에 출연하는 모두가 소중하다. 인간 중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돌봄만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함께 살아가는 동료 피조물로서 돌봄 이상의 사명과 비전을 찾아야 한다.

많은 설교가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찾아 창조질서를 회복해야 한다고 강권한다. 인간이 아무 목적 없이 세상에 왔다면, 그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인생이라는 말이다. 분명한 신의 목적 아래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돼지는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 창조되었을까? 인간은 타락 이전에도 육식을 했을까?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서도 육식을 하게 될까?

하나님은 노아의 방주 이후 언약을 세우시면서, 동물이 인간에게 먹거리가 되겠지만 피가 있는 채로 먹지는 말라고 말씀하셨다(창 9:3-4). 환경윤리를 연구하는 신학자 마이클 노스콧(Michael Northcott)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육식을 허락하신 이유를 하나님의 양보(concession)라고 말한다. 그는 피터 싱어를 비롯해 공리주의로 출발한 동물철학자들이 동물의 고통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동물을 도구화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비인간 동물과 함께하는 세상의 모델로 ‘노아의 방주’를 제시한다.9) 노아의 방주에서는 육식동물도 초식동물도 다 함께 지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방주 안에서 지낸 수많은 육식동물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락하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간다.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보자. 하나님 나라는 폭력과 살생의 나라가 아니다. 평화의 나라다. 그렇다면, 본디 창조질서에는 육식이 존재했을까? 이사야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은 이리와 양이, 표범과 염소가 함께 눕고 놀며 살아가는 세상이다(사 11:6).

 

돼지를 인간으로부터 ‘정말로’ 구원하는 길은 무엇일까? 평화의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더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너무도 작다. 강력한 한 방은 없을까? 모두에게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생긴다면? 차라리 ‘성경대로’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겨서 섭취를 금지할 수는 없을까? 안타까운 현실 가운데 대체육을 기다리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다. 대체육이 개발되고 보급되는 것 외에는 완벽한 길은 없을까? 그때에도 생명이 아니라, 돈이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대체육이 완벽하게 ‘진짜’ 고기를 대체한들, 인간이 동물을 먹는 일을 정말 포기할 수 있을까?
J. M. 쿳시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에서 채식주의자인 노년의 작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자신이 채식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채식의 이유는 도덕적 우월감도, 권력의 행사도 아니다.

“그건 제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와요.”10)

채식한다고 해서, 채식하지 않는 이들을 비판하며 도덕적 우월감을 드러낼 필요도 없다. 소설에서처럼, 사회적 지위를 내세워 타인에게 채식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돼지를 구하는 일은 그저 인간을 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면 된다.

동물 복지 인증 제품을 찾아 구매하고, 동물 보호 단체를 후원하는 등 비윤리적 공장식 축산으로부터 돼지와 같은 동물을 구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 나는 아들과 함께 ‘음식 남기지 않기’부터 실천하고 있다. 불필요한 낭비와 도축을 줄일 뿐만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사실에 아들도 선뜻 동참했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은 질문과 대화였다. 모든 생명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 주

1) 유희성, ‘음식 알레르기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하이닥뉴스〉(2021.1.15.)
2)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국민 1인당 3대 육류 소비량(추정치)은 60.6kg인데, 돼지고기(30.1㎏)가 가장 많고, 그다음이 닭고기(15.7㎏), 소고기(14.8㎏) 순이다. 신선미, ‘작년 1인당 육류소비량 60㎏로 쌀 넘어…‘최애’는 돼지고기’, 〈연합뉴스〉(2024.3.2.) 참고.
3) 플라톤, 박문재 옮김, 《플라톤 국가》(현대지성, 2023), 94쪽.
4) 범고래와 소년의 우정을 다룬 아름다운 영화 〈프리 윌리〉(Free Willy, 1993) 배경으로 나오는 섬이기도 하다.
5) arkansasrazorbacks.com/all-time-draft-history/
6) 템플 그랜딘·캐서린 존슨, 권도승 옮김, 《동물과의 대화》(언제나북스, 2021), 238쪽.
7) 앞의 책, 21쪽.
8) 유튜브에서 “공장식 축산”을 검색해보라(KBS 〈환경스페셜〉 22화 ‘우린 왜 행복하면 안 되지’, 2021.9.9. 참고). 추천하고 싶은 책은 《고기로 태어나서》(한승태, 시대의창, 2018). 신앙의 관점도 엿보고 싶다면 《돼지다운 돼지》(조엘 샐러틴, CR번역연구소 옮김, 홍성사, 2020).
9) Celia Deane-Drummond & David Clough edited, 《Creaturely theology: on God, humans and other animals》 (SCM Press, 2009). 235-237쪽.
10) J. M. 쿳시, 김성호 옮김,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창비, 2022), 121쪽.


구선우
좋은 답을 찾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 관계의 얽힘에 관심이 있다.  《배트맨 크리스천》 《다음세대입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