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나스와 토라를 동시대적으로 전유하는 유대교 철학자 ― 카트린 샬리에 파리 낭테르대 철학과 명예교수
[409호 우리 시대 종교 사상가들과의 만남 시즌2]
카트린 샬리에(Catherine Chalier, 1947-)는 파리 낭테르대에서 공부했고, 루르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녀가 파리 낭테르대에서 공부하던 시기, 이 학교에는 폴 리쾨르와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재직하고 있어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샬리에는 특히 레비나스의 가장 친근한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원래는 가톨릭 신자였으나 유대교로 개종했으며, 히브리어에도 정통하여 철학과 유대교의 관계를 해명하는 많은 작업을 남겼다. 페미니즘과 레비나스의 관계, 유토피아, 종교적 영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책을 썼으며,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술로는 레비나스가 서문을 쓴 《여족장들: 사라, 리브가, 라헬, 레아》, 《유대교와 타자성》·《여성적인 것의 형태: 에마뉘엘 레비나스 읽기》·《스피노자의 마이모니데스 읽기》·《회심의 욕망》·《토라 읽기: 근본주의와 과학적 접근을 넘어》, 《에마뉘엘 레비나스에 관한 페미니스트 해석》(공저) 등이 있으며, 이 중 《토라 읽기》 영어 번역판은 2016년 미국 프랑스대사관에서 수여하는 ‘프랑스의 목소리’(The French Voices Award)에 선정되었다. 여러 유대교 관련 문헌을 프랑스어로 옮긴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이 인터뷰에서는 그녀의 공부 여정, 레비나스에 관한 기억, 그와 페미니즘, 팔레스타인의 관계 문제 및 종교적 영성, 회심, 토라에 대한 현대적 접근에 대한 중요한 통찰 등을 담았다. 인터뷰는 3월 18일 파리 자택에서 영어로 진행되었다. 파리 소르본 누벨 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장수민 선생이 보충 질문과 프랑스어 통역 등으로 도움을 주었다.
-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선생님은 낭테르 대학에서 레비나스로부터 철학을 배우시기도 했는데요. 그를 어떤 사람으로 기억하시며, 그에게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프랑스에서는 대학교에 가기 전, 17살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에 매우 진지하게 철학을 배웁니다. 저는 아직도 살아계신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는데요. 그분은 엘리자베스 드 퐁트네(Elisabeth de Fontenay)입니다. 그녀는 꽤 유명하고, 특히 동물에 관한 문제에 대해 많은 글을 썼어요. 약 40명이 철학 수업을 들었는데, 모두 여학생이었죠. 남녀공학 수업이 없었거든요. 우리는 그녀가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는 방식을 마음에 들어했어요. 진정한 철학을 배우기에 매우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데카르트·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읽었죠. 그 후, 대학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는 중에 저는 또한 레비나스·리쾨르와 같은 훌륭한 선생님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 후, 프랑스에서는 단순한 시험보다 더한 것, ‘콩쿠르’라는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중학교 등에서 가르치려면 이 경쟁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저는 중등 교사가 되어 가르치면서 유대교와 타자성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이것은 레비나스의 철학과도 연결되어 있었죠.
제가 낭테르대에 있을 때는 1960년대였어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혼란스러운 시기였습니다. 1968년에는 대학교에 온갖 종류의 격변이 일어났고, 학생들은 그들이 혁명적 운동이라고 부르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일부는 중국의 문화혁명에 열광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죠. 저는 관심은 있었지만 그다지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후, 교사가 되었을 때 제 관심사 중 하나인 레비나스를 이미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고요. 다만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시 레비나스가 프랑스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죠. 벨기에·이탈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프랑스에서는 연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이유 때문이었지만, 특히 그가 전쟁 중에 포로로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다행히도 그는 프랑스 유대인 ‘군인’으로서 포로가 되었죠. 이것이 절멸 수용소로 보내지는 일을 막아 주었습니다. 그는 항상 “군복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보호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약 5년 동안 독일의 수용소에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유대인 포로들과 함께였지만, 모두 군대의 장교들이었죠. 그는 그때도 글 몇 편을 썼습니다. 〈포로기 수첩〉과 다른 텍스트들인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출판되었어요. 포로 생활 때문에 그는 교사가 되기 위한 시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자리를 얻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1961년에 《전체성과 무한》을 썼는걸요.
그는 후에 리쾨르가 낭테르대에 오라고 요청해서 직위를 얻었죠. 당시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학생 중에는 아마도 저만이, 또는 극소수만이 그가 위대한 철학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도 자신의 철학에 대해 말하지 않고 매우 조용한 태도를 취했지만, 저는 그가 쓴 글과 그의 유대교 저술 일부도 읽었습니다. 저는 박사학위를 위해 논문을 썼고 제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저 역시 대학교에서 자리를 얻기가 어려웠습니다. 프랑스 대학교에 일하는 사람들은 제 작업이 레비나스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이게 철학인가?’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제 작업을 신학으로 간주했는데, 프랑스 대학교에 횡행했던 매우 나쁜 태도였습니다. 그들에게 신학은 그냥 몹시 나쁜 것으로 여겨졌어요.
레비나스가 철학자로 인정받고 제가 자리를 얻는 데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쓰는 것이 정말 철학인가요?” 의문을 가졌거든요. 레비나스나 제 작업이 유대교 사상 전통과 연관되어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제가 쓴 몇몇 구절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사고의 영감의 원천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지요. 지금도 많은 철학자가 레비나스 철학을 잘 알고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의 사유에서 유대교적 대목과는 아무 관련도 맺고 싶어 하지 않아요. 제 친구 중 한 명인 알랭 바디우는 레비나스의 유대교적 부분과 연관된 것은 “비철학”, 즉 하위 철학이지 진정한 철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서서히 이것을 철학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15년 전인지 10년 전쯤인지 《전체성과 무한》이 제가 아까 언급한 시험을 보기 위해 읽어야 할 책으로 선정되었어요. 저는 그 책에 대한 강의를 해야 했죠. 이전의 모든 어려운 시간을 겪은 후에 이룬 꽤 큰 성과였죠. 장-뤽 마리옹 같은 사람들에게는 더 쉬운 선택이었을 겁니다. 그의 작업 일부도 그리스도교 전통, 더 정확히는 가톨릭 전통과 연관되어있죠. 유대교 사상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 많은 사람이 레비나스를 연구할 때 현상학적 접근을 취하지만, 선생님은 어떤 동기로 그의 철학의 유대교적 특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더 나아가, 토라와 다른 유대인 철학자들, 유대교와 철학에도 함께 관심을 두고 연구하시는 동기와 접근 방식은 무엇인가요?
우선 제 모델이 레비나스와 로젠츠바이크라는 사실이 흥미로운 점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중세 시대 마이모니데스와는 다르죠. 그는 당시 잘 알려진 그리스 철학자들,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유래한 것들과 조화를 이루고자 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저술은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번역된 덕분에 당시 잘 알려졌고, 마이모니데스는 아랍어를 읽을 수 있었죠. 그는 철학에서 비롯한 것들과 화해하고자 했습니다. 그가 남긴 주요 저서인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는 철학을 공부하고 유대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갑자기 크게 혼란스러워하고 어떤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될 때를 위한 책입니다. 철학과 유대교 사이의 화해가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지요.
이와 달리, 로젠츠바이크와 레비나스는 화해를 강조하려 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의 사고, 책, 성구 등에서 비롯하는 새로운 물음들을 던지고, 이 물음들로 철학을 갱신하고자 합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즉, 그들은 또한 유대교 텍스트, 성구들에 대해 철학적 물음을 던지고자 합니다. 양자는 같지 않습니다. 이는 화해가 아니라 의미의 쇄신, 철학과 성구에 대한 유대교적 물음들 모두에서 의미의 쇄신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이모니데스에 큰 관심을 두지만, 레비나스가 한 작업이 적어도 저에게는 훨씬 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린 알랭 바디우 같은 사람들, 유대 전통에서 오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대조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는 레비나스나 저처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성과 무한》이나 《존재와 달리》가 철학적 저작이라 하더라도, 그가 성구를 인용하지 않거나 아주 조금만 인용한다 하더라도, 유대 전통은 그가 질문을 던지는 방식과 철학을 새로운 사유 방식으로 여는 데서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유대 전통을 향해 철학적 물음을 던지는 방식, 특히 그의 탈무드 해석에서 그가 탈무드 전통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방식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에서 역방향으로 이루어지는 사유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탈무드 해석에 쓰인 것과 레비나스의 철학 저술에 쓰인 것이 두 명의 레비나스가 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두 명의 레비나스를 원하지만, 단 하나만 있을 뿐입니다. 저 자신에 관해서 말하자면, 항상 저만의 작업을 하려고 노력해왔고, 제가 쓴 몇몇 책은 레비나스에 관한 것이지만, 다른 책들은 그와 함께하면서도 그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성서와 성서 주해를 읽으면서 철학자가 되고, 철학을 쓰면서 유대인 철학자가 되는 그런 사유 방식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는 때때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그들은 당신이 둘 중 하나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유대 전통에서 저는 여러 텍스트를 번역했습니다. 매우 풍부한 내용이 많지만,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 특히 학생들은 그리스도교 전통이나 유대교 전통에 대해 전혀, 아무것도 모르죠. 제가 ‘모세’라고 말하면, 그들이 정말 모세를 아는지 확신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프랑스는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방식에 있어 어리석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국가이니까요. 그건 좋은데요. 저는 대학교에서 가르치기 전에 중학교에서 꽤 오랫동안 가르쳤습니다. 그리스신화, 비극 등을 가르칠 수는 있었지만, 성서 텍스트를 언급하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죠. 성서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 이는 어쩌면 비극적 이야기일 수 있는데, 가르치려 하면 ‘안 됩니다’라는 말을 들을 거예요. 사람들은 그리스 신들, 로마 신들에 대해 잘 알지만,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의 신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20세기 전반기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통이 가정에서 이어졌으니까요. 이제 가정에서 그런 전통은 멈췄어요. 그리스도인들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그게 정말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부는 매우 신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소수에 불과합니다. 또 “나는 내 아이들에게 어떤 종교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나중에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해야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선택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이 혼자 남겨져요. 매우 이상한 일인데, 사람들은 이제야 우리가 매우 강고한 무슬림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무슬림 아이들이 공동체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거리에 작은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금요일에는 400미터 정도 기도하고자 하는 남성들만이 줄을 서지요.
이제야 일부 사람들이 학교에서 종교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종교적 관점이 아닌 지식으로서 말입니다. 사람들은 성서가 무엇인지, 그리스도교·유대교·이슬람의 특징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다만 교사들이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교사들도 그런 종교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2001년에, 제 학생 중 한 명인 석사과정생 다비드가 여름에 이스라엘을 처음 방문했다가 대학교에서 테러로 사망했습니다. 가을에 저는 낭테르대에서 그의 추모일을 마련했는데, 무슬림 학생들이 반대해서 매우 어려운 지경에 놓였어요. 그래도 그 일을 해냈지요. 우리가 한 일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았고 철학적이었습니다. 그는 성서의 바벨탑, 바벨의 정치학에 대해 석사논문을 쓰고 싶어 했어요.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 했지요. 그를 추모하기 위해 네 명이 모였어요. 대학교 교수들과 랍비, 다른 한 사람이 바벨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설명했습니다. 제 친구들이 “이렇게 흥미로운 줄 몰랐다”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들은 성서 본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어요. 그들은 텍스트를 해석하고 살아있게 만드는 방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 레비나스는 현상학자로, 현상학적 전통 안에서 철학을 하지만, 탈무드 해설가이며 유대교 사상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시디즘과 같은 유대교 신비주의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선생님은 레비나스가 유대교 신비주의를 오해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올바른 접근 방식은 무엇일까요?
저는 무엇이 옳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레비나스와 그의 가족은 현재의 리투아니아 지역에서 태어났고, 그곳에는 매우 중요한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전쟁 중에 그의 가족, 부모님, 친구들을 포함해 거의 완전히 말살되었습니다. 이 리투아니아 유대인 공동체는 ‘미트나그딤’이었죠. 유대인이 되는 하나의 방식인데, 하시디즘에 매우 반대했습니다. 저에게 익숙하고 또 제가 오래전에 발견한 하시디즘 전통에서 보기에, 사람들이 거의 다 과도하게 지적인 방식으로 학습했으며,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시디즘 전통은 18세기에 시작되어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고양될 수 있는지, 보통의 단순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등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그 전통이 단순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동기로 시작되었을 뿐이지요. 그 후 많은 중요한 하시디즘 작가들과 하시디즘 텍스트가 나왔고, 레비나스는 이것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들에 편견을 두고 있었습니다. 제가 이를 깊이 연구한 것은 나중의 일인데, 그가 사망한 후였고, 생애 말년에도 이 주제에 대해 그와 논의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시디즘은 단지 지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수성, 감정적 삶을 도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고려하려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하시디즘 텍스트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것을 읽으면 그런 아름다움을 접할 것입니다. 텍스트 대부분이 히브리어로 쓰였지만, 저는 일부를 프랑스어로 번역했습니다. 그들의 토라 해석의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토라에서 아말렉은 항상 모든 유대인을 죽이려는 아주 나쁜 사람들로 묘사됩니다. 하시디즘의 해석은 단순히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것 또한 여러분의 일부라는 말이죠. 여러분 안의 아말렉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안의 어떤 부분이 아브라함에 해당할까요? 이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야기를 그저 전달하지 않고, 성서를 읽으면서 여러분 영혼 속에 무엇이 있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영혼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즉, 당신이 성서를 읽을 때, 성서도 당신을 읽고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성서를 읽으면서 거울에 비친 나를 봅니다.
- 선생님은 또한 레비나스와 페미니즘의 관계를 다루셨습니다. 한국에서 레비나스를 읽을 때, 많은 사람이 그의 여성 또는 여성적인 것에 관한 견해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전체성과 무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여성을 마치 가정부나 남성의 에로스를 위한 대상인 것처럼 묘사합니다. 선생님은 “그의 작품에서 여성적인 것은 본질, 개념, 현존에 저항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전체성을 교란시키고 존재의 패권적 제국주의를 변위시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레비나스와 여성적인 것에 관한 책을 냈을 때, 레비나스는 그것이 자신을 반대하는 책이라고 말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그것도 사실이지, 사실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여성을 칭송한 철학자들이 누가 있을까요? 스피노자의 《정치론》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보셨나요? 여성에 대한 끔찍한 진술로 가득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고요. 데카르트가 그나마 가장 나을 겁니다. 그는 엘리자베스 공주와 크리스티나 여왕에게 아름다운 편지를 썼죠.
그래서 그 책에서, 저는 그가 한 일을 그대로 강조하고, 그가 남성으로서 말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는 분명 그런 식으로 말하는데, 저는 괜찮다고 봅니다. 보통 철학자들이 ‘나’라고 말할 때, 그들은 그것이 보편적인 ‘나’라고 가정하기 때문입니다. 레비나스가 조금 더 겸손한 이유는 그가 솔직하게 남성으로서 ‘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레비나스는 ‘나’라고 말하고, 그가 “나는 타인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할 때, 결코 “타인도 나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타인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것을 강조합니다. 그가 책에서 진술할 때, 그는 남성으로 말합니다. 저는 그가 여성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 동의하지 않지만, 《전체성과 무한》의 레비나스가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자기 말을 보편적 관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 책에서 여성에 대한 생각은 편견에 입각한 것이었어요. 다만 《전체성과 무한》 이후에는 그런 생각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에서조차 대학에는 여성 교수 숫자가 많지 않습니다. 지금은 20% 정도 될 텐데, 레비나스가 가르칠 때는, 아주 오랫동안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편견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대교에도 여성에 대해 편견이 있지요. 철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성서 주해들이 남성에 의해 쓰였다는 말도 사실입니다. 가톨릭 전통도 여성에 대해 편견이 있지요. 유대교 회당은 남성과 여성에게 평등하게 열려있지만, 전통적인 곳들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전통적인 정통파 유대교나 전통 회당은 여전히 평등하지 않습니다. 남성은 남성의 자리에 있고 여성은 위층에, 때로는 벽 뒤에 있지요. 이런 불평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한국에서는, 레비나스가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고, 1980년대에 박해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적극 옹호하기보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들으니 매우 슬픕니다. 완전한 거짓이며, 저는 이 거짓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디스 버틀러에게서 나온 주장인데, 사실이 아닙니다. 버틀러는 레비나스가 팔레스타인인은 얼굴이 없다고 했다고 주장했는데, 레비나스는 그런 말을 어디에도 쓴 적이 없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그가 어디서 그렇게 말했나요?”라고 물었을 때, 사과해야 했습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지요. 저는 버틀러를 알고 있습니다. 버틀러는 《젠더 트러블》에서 레비나스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보는데, 이는 끔찍하고 터무니없는 완전히 거짓된 말입니다. 더 끔찍한 것은 몇몇 사람들이 그녀를 우상처럼 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입장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레바논 전쟁 당시 인터뷰에서 레비나스는 자기 철학에 있는 말을 했을 뿐입니다. 레비나스는 내가 타인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철학의 주요 노선입니다. 타인을 마주하는 것, 곧 타인의 ‘얼굴’ 마주하는 가운데 나는 책임을 가집니다. 그는 또한 당연히 많은 얼굴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을 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한 사람밖에 없다면, 나는 그 또는 그녀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고, 이것만으로 사태는 끝날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있고, 그때부터 그가 정치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이 시작됩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전체성과 무한》에도 나와있지만, 나는 이 첫 번째로 오는 사람과 주변 모든 사람들의 얼굴 사이의 연결점이 무엇인지 자문해야 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정의롭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해야 합니다. 만약 한 얼굴이 다른 얼굴을 죽이려 한다면, 나는 또한 죽임을 당할 사람을 방어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특정한 누군가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이웃을 죽이려는 사람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이러한 해석은 완전히 열려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이냐 유대인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말합니다. 이는 그가 말한 제삼자가 타인과 관련해서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만약 제삼자가 타인을 죽이려 한다면, 나는 그 타인을 보호해야 하며,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타인을 죽이려는 자를 죽여야 합니다.
다만 이것은 환대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영토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이지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스라엘이 이 영토들을 점령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레비나스는 이 문제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그는 “나는 이스라엘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말하기 어렵다”고 말하곤 했죠. 그가 너무 소심했을지도 모릅니다만,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이 그의 생각입니다.
- 선생님은 《회심의 욕망》(Le Désir de conversion)에서 20세기 다양한 지식인들의 회심 경로를 추적했습니다. 프란츠 로젠츠바이크, 시몬 베유, 토마스 머튼, 에티 힐레숨, 앙리 베르그송 등에 대해 쓰셨지요. 그리고 “철학이 항상 영성과 무관했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영성이란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의미한다”고도 하셨습니다.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미셸 푸코는 후기 저작에서 매우 명확하고 간단하게 말합니다. 그는 과거에는 ―이것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사실이라고 가정해봅시다―, 곧 그리스 시대에는 철학 또한 영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철학이 당신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의미로 전개되었다는 말이지요. 당신이 철학 학교에 갔다고 할 때, 이는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당신의 영혼이 더 나아지고 치유되기 위해서 갔다는 뜻이지요. 의학적 은유가 자주 사용되는데, 스토아 전통에서는 영혼이 치유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 푸코는,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 고전적 이성주의 철학에서는 진리 추구가 더 이상 내가 달라진 사람이 되는 방식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제가 동료들에게서 보는 바이기도 합니다. 저의 동료들 대부분은 철학자를 가르칠 때, 그들은 스스로 매우 유능하기도 유능하지 않기도 합니다. 철학을 매우 잘 알고 있지만, 그들 자신, 그들의 삶, 그들이 사는 방식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영성을 다시 도입한다는 말은 이 세상을 떠나 무엇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 놓이는 것 같은 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철학이 당신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당신의 공부가 당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하시디즘 전통에서 그들이 텍스트를 읽는 방식에 매우 큰 관심을 두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그들이 무엇인가를 읽을 때, 이는 단순히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만 읽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자신에 대해 더 명확해지고 더 잘 이해하고, 가능하다면 진보하기 위해서 읽습니다.
말씀하신 그 책에서, 저는 특히 베르그송에 관해서 매우 분명하게 말한 바 있습니다. 베르그송은 자신의 철학과 관련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자기 삶을 완성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생애 말년에 그는 가톨릭 신자가 되려 했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본래 유대인이었고 1941년에 “나는 내 민족의 배신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될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의 경우, 친구들과 사촌들이 개신교 신자가 되려 했어요. 로젠츠바이크는 좋은 유대교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갑자기 욤 키푸르 대축일 때 회당에 갔고 큰 감명을 받아 개종하지 않기로 결정했지요. 그가 쓴 모든 것은 그의 영혼이 그에게 어떻게 드러나는지, 그가 어떻게 이 길을 계속 갈 수 있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 책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영성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영성은 구체적인 삶에 관심이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당신은 물론 매우 구체적인 삶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은 진리에 대한 탐구와 자신에 대한 탐구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심리학적 탐구가 아니라 영적인 탐구입니다. 일부 영성에서는 영성이 일상적인 삶과 완전히 분리되어 일상에 관한 중요성은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영성은 세상의 비극, 특히 우리가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던 전쟁의 비극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실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지만, 영성은 당신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 《토라 읽기》에서, 선생님은 근본주의·원리주의를 기반으로 삼는 토라 해석을 극복하려고 하십니다. 증오의 짐을 덜어줄 수 있는 토라 해석의 방식을 열어가려 합니다. 이를 구체적인 방식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근본주의란 무엇일까요? 내가 읽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유대교에서는 그렇게 읽지 않습니다. 기록된 것이 있지만, 그 후에는 그것을 해석해야 합니다. 해석에는 네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신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셨다’에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있지요. 그다음에는 우리가 ‘레메즈’라는 차원이 있는데, ‘암시’입니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또 다른 두 차원에서 해석은 점점 더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해석하기 위해서는 질문해야 합니다. 질문하지 않으면 해석이 없을 것이고, “세상은 6일 만에 창조되었다”는 말만 반복하게 되며, 이것으로 해석이 끝납니다. 그러나 해석은 남자와 여자가 모두 이 성서의 계시에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계시는 결코 닫혀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해석과 함께 계속됩니다. 하나의 해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해석이 있습니다. 쓰여진 말씀에서, 쓰여진 구절에서 시작하지만, 쓰여진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한에서, 다른 해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레비나스는 이를 매우 명확하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는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있지만, 우리는 저자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텍스트가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있는 힘을 내포한 것이 있습니다. 저자가 누구였든 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이는 문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서 참이지요.
유대교에는 기록된 텍스트가 있습니다. 이를 ‘토라 셰비흐타브’(Torah Shebichtav)라고 부릅니다. 기록된 가르침을 의미하는데, 이 가르침에는 읽는 것과 더불어 해석이 있지요. 하나를 다른 하나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전 토라라 부르는 것, 즉 주해, 해석, 구절에 관한 토론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기록된 내용과 연결되며, 분리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근본주의자들은 보통 변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근본주의는 과거에 대한 꿈이기도, 악몽이기도 하지요.
- 선생님은 레비나스의 메시아적 희망에 관한 글을 썼습니다. 쇼아(홀로코스트) 이후 전쟁의 비극 이후 메시아와 희망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오늘날에도 전쟁의 비극, 기후 위기, 전염병의 위협 등에 직면해있지요. 레비나스와 함께 우리는 어떤 종류의 메시아와 희망, 회복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우리가 희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희망할 이유가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이 인간의 위대함이지만, 제게 희망한다는 것은 희망할 이유가 있고 역사의 놀라운 끝을 기대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착한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에 불과하죠. 희망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레비나스는 항상 세상의 비극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럽의 유대인 멸절, 즉 쇼아가 자신의 기억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트라우마이며, 그는 이 트라우마를 안고서 글을 씁니다. 그럼에도 그의 철학에서 위대한 점은 그가 절망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마시아흐(메시아)는 누군가가 와서 모든 것이 좋아지고 더 나아질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저도 동의하는바, 메시아는 이런 의미입니다. 한 글에서 그는 탈무드 텍스트를 인용합니다. 이 텍스트에서 랍비들은 마시아흐의 이름이 무엇인지 토론합니다. 토론이 있은 다음, 누군가 말합니다, “메시아는 바로 나입니다.” 어떻게 메시아가 나라고 말할 수 있나요? 그들은 말합니다. “그래요, 그래요, 메시아는 나예요. 내가 타인에 대해 책임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레비나스에게도, 저에게도 그것은 심리적이거나 영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인간 정신에서 일어나는 영적 사건입니다. 당신 자신의 고통, 당신 자신의 비극에도, 당신이 당신 이웃에게 “내가 여기 있습니다” 말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메시아적인 순간이죠. 그런 때는 일어나고, 일어나고, 또 일어납니다. 그것은 그저 위대한 날인 것이 아닙니다.
김동규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현상학, 해석학, 종교철학 등을 주로 연구한다. (신학적 전제를 괄호 치고) 철학적 상상력을 통해 신과 신앙을 다시 사유하는 일이 (비)신자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으며 여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