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 말에게 인간은 친구일까

[409호 구선우의 동물기]

2024-11-30     구선우
Ⓒ이예은

인간과 교감하는 동물

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을까? 나는 조교를 맡고 있는 대학교 사회봉사 과목 ‘치유와회복-재활승마’를 통해 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인간과 동물의 우정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수업은 한국마사회 재활승마 프로그램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학점을 이수하는 과목이다. 대학생 봉사자들은 직접 말을 타지 않지만, 장애 아동 등 프로그램 참여자가 승마 강습을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학기 초 오리엔테이션에서 학생들로부터 신청 동기와 다짐을 들었다. 공통점은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 동물과 교감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지원 동기를 들은 재활승마 코치님은, 학생들에게 잘 찾아왔다며 환영해주셨다. 좋아하는 동물과 시간을 보내며 봉사도 하고, 학점도 얻을 수 있다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동물과 교감한다는 말이 단순히 상호작용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적 상호작용이 불가능해도, 언어를 초월하여 공감을 나누고 유대감을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치님은 말과 함께하는 모든 활동이 재활승마 영역이며, 이를 통해 신체 및 정신 회복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동물과 나누는 교감이 어떻게 이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말[馬]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가축으로 길들여지고 이용당해온 동물이다. 가축은 반려동물과 지위가 다른 것 같다. 말은 사람의 가족이 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인간과 말이 반려동물 이상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오면서 인간과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기에 가축 중에서도 특별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인간보다 몸집이 커 도시화된 현대사회에서 애완동물로 기를 수는 없지만, 따듯한 기운으로 인간에게 특별한 위안을 주기도 한다.

위대한, 매우 위대한

말은 기원전 4000년경부터 인간과 함께한 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동물이다. 특별히 탄생을 다룬 이야기도 존재한다. 그리스신화에서 포세이돈은 아테네 수호신 자리를 놓고 아테나와 경쟁을 벌인다. 그때 인간에게 선물한 생물이 말이었다.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땅을 쳐서 말을 창조했다. 결국 올리브 나무를 선물한 아테나가 승리했지만, 포세이돈은 말에 관한 여러 일화 때문인지 말의 신으로도 불린다. 그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말을 만들어 선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대 인도로부터 내려오는 말 탄생 설화는 ‘우차이슈라바스’(Uchchāihshravās)라는 이름을 전한다. 대서사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에 등장하는 최초의 말이자, 말들의 왕이다.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백마이며 하늘을 난다. 우유 바다에서 솟아나 탄생했으며, 신들의 왕 인드라가 타고 다닌다.

이렇듯 인간 곁에 존재해온 말은 때로 신성한 존재처럼 그려지고 위대한 동물로 인식된다. 날개 달린 천마(天馬) 페가수스, 반인반마(半人半馬) 괴수 켄타우로스, 말과 같은 몸통에 뿔 달린 이마가 특징인 유니콘까지, 다양한 신화에서 말은 전설의 생물로 묘사된다. 중세 이후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경주마 초상화 〈휘슬재킷〉을 그려 유명해진 동물 전문 화가 조지 스텁스를 비롯한 많은 화가가 말을 소재로 전쟁, 왕실, 종교를 상징하는 그림을 남겼다. 이를테면, 나폴레옹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애마 ‘마렝고’를 타고 있는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알프스를 건너는 나폴레옹〉으로 알려진 이 그림은 궁정의 수석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렸다. 정치적 선전을 위해 예술이 사용된 가장 유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왼쪽은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주세페 카스틸리오네가 그린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건륭대열도〉, 1758). 동양에서도 말은 힘과 권력을 상징했다. 오른쪽 그림은 〈휘슬재킷〉(1762).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각종 이야기를 보면, 말을 통해 인간의 삶을 묘사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인간의 영혼을 두 마리 말과 그들을 이끄는 마부에 비유한다. 조너선 스위프트가 1726년 출간한 《걸리버 여행기》에서 주인공 레뮤엘 걸리버가 마지막으로 여행한 곳은 후이늠(Houyhnhnm)국, 즉 말들의 나라였다. 이 나라에서 지성을 가진 말은 인간의 어두운 면이 없는 완벽한 존재로 그려진다.

성경에서 말은 주로 힘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이집트 마병이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했으며(출 14:9), 다윗은 “어떤 이는 전차를 자랑하고, 어떤 이는 기마를 자랑하지만, 우리는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만을 자랑합니다”(시 20:7, 새번역)라고 고백했다. 요한계시록은 백마를 타고 하늘에 있는 군대와 함께 오는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다(계 19:11-14). 이렇게 강렬한 이미지가 정착한 배경에는 말이 인류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 자리 잡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운송·농업·전쟁·스포츠 각 분야에서 활약했다. 앞서 언급한 마렝고뿐 아니라 삼국지 관우가 타고 다녔다는 적토마, 알렉산더 대왕이 아꼈던 부케팔로스 등 명마는 세상에 이름을 떨치고 영웅이 되기도 했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밑에서 동문수학한 고대 그리스 역사가 크세노폰은 《승마술에 대하여》(On Horsemanship)라는 책을 기록했다. 가장 오래된 승마술 교범이다. 말을 고르는 법부터 말을 길들이는 법까지, 인간과 말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크세노폰은 말을 대할 때 화내지 말고 부드러운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 “말과 사람 모두에게 과도한 것은 즐겁지 않다”1)라며, 배려와 존중까지 요청한다. 2천 4백 년 전 교과서인데도 말을 향한 애정과 존중이 느껴진다. 오래도록 힘을 상징했던 말은, 오늘날에도 부와 명예를 드러내며 매우 위대한 동물로 인식된다. 산업혁명 이후 활약은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말은 인간과 가장 오래된 파트너로서 고결한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말의 관점에선 어떨까?

19세기 말 미국 뉴멕시코주에 살았던 전설적인 야생마 이야기는 자유를 향한 동물의 열망을 보여준다. 뛰어난 속도와 지구력을 갖춘 이 말은 야생마 무리의 리더였다. 검은빛 털이 매력적인 이 말은 목장에 사는 암말들을 유혹해 자신의 무리로 데려가곤 했다. 당시에 이런 야생마들은 골칫덩어리였다. 워낙 사나워서 잡기도 어렵고, 길들이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사살하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힘을 갖춰서 너무나 매혹적인 이 말을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떤 말보다도 빠른 말을 길들여 타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길들이기에 실패하면 종마로라도 사용하겠다는 마음에 5천 달러 현상금까지 걸었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암말들을 되찾는 데만 성공할 뿐 검은 야생마 잡는 일에는 실패한다. 조 칼론을 비롯한 카우보이 다섯 명이 스무 마리 말과 함께 쫓았지만, 30킬로미어를 달린 대규모 작전도 실패하고 만다. 이 과정에서 말 여덟 마리가 탈진해 죽었다. 결국 한 영감이 함정을 파놓고 암말로 유혹하여 포획하는 데 성공한다. 이 영감은 야생마 몸에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칠면조 발자국 모양 낙인을 찍는다. 검은 야생마는 칠면조 발자국 영감에게 이끌려 목장으로 가는 길에 탈출을 시도하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만다. 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 Seton)이 남긴 《내가 아는 야생 동물》에 수록된 이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그렇게 60미터를 떨어지더니 바위에 부딪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2)

사람들은 오랫동안 말을 멋진 존재로 여겨왔지만,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그런 셈이지 인간이 아닌 타자일 뿐이다. 자유를 찾아 죽음을 택한 전설적인 검정 야생마 이야기를 보면, 인간이 동물을 이용해도 되는지 묻게 된다. 역사 속 인간이 운송·농업·전쟁 등에 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노동, 학대를 비롯한 문제가 발생했을 수 있다. 또한 말을 이용하는 분야가 스포츠 위주로 남은 현대사회에서도 경마·승마 등의 산업에서 동물 복지 문제가 제기되지만, 관심은 미미한 실정이다. 인간과 함께하는 말은 행복할까? 

2024년 파리올림픽 이후로 진행되는 올림픽에서는, 수영·펜싱·승마·육상·사격으로 구성된 근대5종 경기에서 승마를 장애물 레이스로 대체하기로 했다. 경기 시작 20분 전에 무작위로 말을 배정하는 규칙에 따라 실력보다 운이 작용한다는 이유가 크다. 2021년 도쿄올림픽 도중 수영과 펜싱에서 중간 합계 1위를 달리던 독일의 아니카 슐로이 선수가 명령을 듣지 않는 말 때문에 꼴찌로 밀려나고 말았다. 이 경기 중 말 위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슐로이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근대5종에서 승마 종목이 빠지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미디어는 선수의 과도한 채찍질과 화가 난 감독의 주먹질이 아니라, 불공정한 경기 규칙과 선수들이 받는 스트레스 문제를 앞다투어 다뤘다. 사람들은 말 세인트 보이를 기억하지 않고 운동선수 아니카 슐로이를 기억한다. 낯선 사람과 갑작스럽게 호흡을 맞춰야 하는 말의 입장은 쉽게 고려되지 않는다.3) 고대 그리스 승마술이 가르치는 기본도 지키지 못하는 셈이다. 근대5종에서 승마를 퇴출하기로 한 결정은 말에게도 환영받을 일이지만, 갈 길이 멀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작가로서, 말에 깊은 애정을 품었던 레프 톨스토이는 말을 주인공으로 다룬 중편소설 〈홀스토메르〉를 집필했다. 혈통이 나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평생 고통을 받은 얼룩빼기 거세마 홀스토메르 이야기다. 매우 빠른 발을 가졌지만,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여러 주인을 거치며 늙어간다. 톨스토이는 사색하는 말 홀스토메르를 조명해 인간이 가진 소유와 관계의 허영을 고발한다.

살아 있는 나를 두고 나의 말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땅, 나의 공기, 나의 물이라고 부르는 것만큼이나 이상하게 여겨졌다. … 특이한 것은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짓수가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고들 여긴다는 점이다.4)

톨스토이가 상상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말의 생각이 실제 말들을 대변하지는 않을 테다. 목장 안에서 주인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축 말도 많다. 그러나 장애물을 넘고 싶지 않았던 세인트 보이 같은 말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인간도 중요하지만, 말도 중요하다.

어쩌면 말은 오랜 기간 함께해온 인간과 같이 있기를 원할지도 모른다. 현존하는 야생마들은 모두 ‘에쿠스’(Equus)로 분류되는 가축 말의 혈통이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활동한 황야의 야생마는 영국군이 사용하던 군마들의 후손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에는 이미 야생마가 없었다. 몽골 야생마도 1969년 멸종되었다가, 동물원에 포획되어 기르던 개체들을 통해 복원한 종이다.5)

말은 가축화되었기 때문에 멸종되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인간 입장에서도 말에게 할 말은 있는 셈이다. 멸종 원인을 면밀히 살펴봐야겠지만 말이다. (인류세와 동물 멸종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루도록 하자.)

교감한다는 것, 함께 호흡한다는 것

지난봄 재활승마를 참관하기 위해 서울경마공원 내 승마힐링센터를 찾았다. 말과 장애 아동이 함께 산책하며 교감을 나눈다. 그 과정에서 마음과 육체의 치유가 이루어진다. 많은 사람이 이 프로그램에 함께하고 있었다. 전체를 지휘하는 재활승마 코치, 앞에서 말을 끌며 안전을 책임지는 리더, 옆에서 말과 함께 걷는 사이드 워커인 대학생 봉사자. 한 명을 위해 너무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 것은 단순히 재활승마에 참여하는 아동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직접 내 눈으로 본 장면에 따르면, 모두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재활승마에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회복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사람에게만 즐거운 프로그램도 아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말, 두크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 같았다. 말과 가까운 곳에서 보고, 읽고, 들으면서 느낀 점은 말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코치님은 기승자를 향해 말에게 끌려가지 말고 말과 계속 소통하라고 조언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다가 대화를 나눴다.

“말 위에 그냥 앉아있으면 되는 게 아니네요.”
“정확한 신호를 줘야 알아들어요. 헷갈리게 하면 몸을 흔들거나 몸으로 반응합니다.”

기승자가 불안해하면 말도 불안해한다. 단순한 승마 체험이 아니다. 마방(馬房)에서 데려왔다가 마지막 빗장을 풀 때까지 집중하고, 자세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 말은 굉장히 예민한 동물이라,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란다. 몸이 큰 말과 함께하기 위해 안전 교육은 필수다. 말의 눈은 양 측면에 있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300도 이상을 볼 수 있다. 말이 못 보는 위치, 뒷부분에 서있는 행동은 말을 불안하게 하기에 무척 위험하다. 말은 주로 귀의 움직임으로 감정 상태를 알려준다. 인간은 예민하게 말의 기분을 살펴야 한다. 말은 인간을 좋아하며, 자신을 아껴주는 행동을 느낄 수 있다. 직접 보고 나니, 이렇게나 예민한 말을 전쟁에 사용했다는 사실이 참 이상하게 여겨졌다.

말 조교사 진저 개프니는 2013년 뉴멕시코주 대안 교도소 목장에서 겪은 일을 《하프 브로크》라는 책에 담았다. 개프니는 사나운 말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아 대안 교도소 목장을 방문한다. 가서 보니, 말들이 사나운 이유는 각종 범죄와 약물중독에 찌든 재소자들이 거칠게 말을 돌보기 때문이었다. 학대받고, 버려지고, 굶주린 말들은 공격성이 강해진다. 어쩌면, 전쟁에 말이 사용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말이 주인을 닮는다는 데 있지 않을까. 기마병이 흥분하여 적을 향해 돌진할 때, 말들도 같이 흥분했을 것이다. 감정은 전염된다. 다행히도 말들은 재소자들과 함께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성장한다. 좋은 쪽으로 전염된 셈이다. 한 재소자가 남긴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말들이 저를 구했어요.”6)

말은 기계가 아니다. 호흡이 있는 생명체다. 인간과 말은 함께 호흡한다. 말 위에 올라타면 말의 크기와 힘이 느껴진다. 근육의 움직임과 리듬이 기승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승마는 말과 연결된 경험을 선사한다. 사람과 말은 소통하고 감정을 공유한다. 말도, 인간도 서로 닮아가는 셈이다. 이렇게 교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아간다. 말에게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와 관계없이 인간과 말은 ‘영혼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인 동물들과 우정을 쌓는 것은 인간에게도 분명 좋은 일이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하는 즐거움을 목격한 후 승마힐링센터를 나왔다. 자연경관을 만끽하며 경마공원을 걸었다. 경주로 안에는 가족 공원 포니랜드가 있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말 먹이 주기 체험과 어린이 승마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동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어린이들 얼굴에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워, 경마장에 들어가봤다. 20-40세대 전용 공간인 놀라운지(NOL LOUNGE)에서 초보 경마 교실이 진행되고 있었다. 초보 경마 교실에서 베팅하는 법을 배워 실제로 베팅에 참여해보기도 했다. 말은 경마장에서 힘차게 레이스를 펼쳤다. 1,200미터 트랙 한 바퀴, 90초 만에 끝난 짧은 경기에서 짜릿함과 아쉬움을 경험하고 경마장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에 살펴보니,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던 놀라운지와 달리 바깥쪽에는 중년·노년 남성이 많았다. 경마 전문지를 손에 들고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예시장(paddock)에서 몸을 풀고 있는 말들을 조용히 확인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마 경기는 30분 단위로 아침부터 오후 내내 이어진다. 입장료 2천 원만 내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주말에 가족들이 나들이를 나오는 동안, 사회적 연결망이 줄어들어 가족과의 관계가 달라진 이들이 경마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했다.

동물과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보았다. 

■ 주

1) Xenophon, translated by Morris H. Morgan, 《The art of horsemanship》(Dover Publications, 2006, c.1893), 59쪽.
2) 어니스트 톰슨 시튼, 장석봉 옮김, 《커럼포의 왕, 로보 - 내가 만난 야생 동물들》(궁리, 2016), 236쪽. 흔히 ‘동물기’ 하면 떠오르는 책은 미국의 박물학자이자 작가인 시튼(1860-1946)이 남긴 작품으로, 동물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대표 단행본은 《내가 아는 야생 동물》(Wild Animals I Have Known, 1898)로, 서문에서 시튼은 직접 관찰하고 경험한 바를 소재로 삼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자보다는 작가적 요소가 많이 드러난다.
3) 국내에서 해당 사건의 동물 학대 논란을 다룬 기사는 최민우, ‘눈물, 채찍질, 동물학대?…근대5종 승마 후폭풍’, 〈국민일보〉(2021.8.9.) 참고.
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강명수 옮김, 《홀스토메르 / 무엇 때문에?》(지식을만드는지식, 2013), 66-67쪽.
5) 최병국, ‘지구상에 진짜 야생마는 없다…수백년 전 이미 멸종한 듯’, 〈YTN〉(2018.2.24.), 조홍섭, ‘‘마지막 야생마’ 프르제발스키말…가축의 후손이었다’, 〈한겨레〉(2018.2.23.) 참고.
6) 진저 개프니, 허형은 옮김, 《하프 브로크》(복복서가, 2021), 343쪽。


구선우
좋은 답을 찾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 관계의 얽힘에 관심이 있다.  《배트맨 크리스천》 《다음세대입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