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10.27!

[409호 무브먼트 투게더]

2024-11-30     전남식

2024년 10월 27일은 한국 복음주의 교회가 배제·차별·혐오 집단임을 만천하에 선포한 날이었다.

오정현·손현보 목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목사들이 ‘10.27 한국교회 2백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참석을 독려했고, 일부 목사는 눈물을 보이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했다. 이들은 ‘100대 기도제목’을 발표하며, 광화문 일대에서 200만 명 집회를 목표로 개교회, 노회 및 지방회, 각종 매체를 통해 선동했다. 손현보 목사는 연합예배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마귀·사탄·바퀴벌레·이완용”이라고 맹비난하면서 집회 참석을 압박했다. 정말 많은 개신교인이 집회에 참석했고, 헌금을 200억 원 정도 모금했다고 전해진다. 참석 인원은 주최 측 추산 110만 명, 경찰 측 추산 20만 명 안팎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주최 측이 ‘정직’을 앞세우는 보수 교회 목사들이니 그들의 말을 믿어주기로 하자(현재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는 20%에 못 미친다). 개신교 집회 규모 면에서 엄청난 인파가 모였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집회에 울려 퍼진 메시지다. 따라서 이번 집회의 ‘100대 기도제목’을 톺아볼 필요가 있겠다.

‘100대 기도제목’은 서론(1-15번), 동성애 차별금지법 및 젠더 성 혁명에 관한 기도제목(16-30번), 젠더 갈등과 비혼주의, 저출산에 관한 기도제목(31-45번), 프로라이프 생명윤리와 낙태에 관한 기도제목(46-60번), 청소년, 청년 마약중독에 관한 기도제목(61-75번), 북한과 자유 통일을 위한 기도제목(76-90번), 한국교회와 다음세대를 위한 기도제목(91-100번)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차별금지법과 동성애, 페미니즘, 마약 및 성 문화, 그리고 북한 정권이 나라와 교회 및 가정을 무너뜨리는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차별금지법, 정말 그럴까

이 주장들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자. 차별금지법을 시행하는 나라와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을 비롯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포괄적 평등법 혹은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비회원국까지 포함해서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이란·파키스탄·이집트·튀르키예 등 이슬람 국가 대부분이며, 러시아·중국·북한과 같은 공산권 국가도 마찬가지다. 태국·스리랑카·미얀마 등 불교 국가도 시행하고 있지 않다. 가톨릭 국가 중에서는 필리핀·폴란드·슬로바키아·크로아티아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가에서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 불교 국가, 공산권 국가를 제외한 대다수 나라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시행하는 셈이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이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말은 억지 주장이다.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를 살펴보자. OECD 회원국 중 25개국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고, 이탈리아·그리스 등은 합법화하지 않았지만, 동성 커플의 법적 권리를 일부 인정하고 있다. 보수 교회들은 동성애나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면 나라와 교회가 망한다고 주장하는데, 대다수 OECD 회원국이 동성애 수용은 물론이고 동성 결혼까지 합법화하고 있으니, 이 국가들은 곧 망해야 마땅하다. 아직 그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동성 결혼을 허용한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독일·스웨덴·미국·호주 등과 동성 결혼 또는 동성애 자체를 혐오하는 이슬람 국가, 공산권 국가 중 어느 나라가 먼저 망할까? 이런 질문 자체가 웃기지만 말이다.

100대 기도문 중 17개 기도문이 동성애 및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내용이다. 차별금지법과 ‘동성애확대법’(이런 법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을 악습·악법(8번)이고, 양심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이라고 단언한다(16번). 성소수자 및 그들을 응원하는 목사를 징계하는 자신들이 오히려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차별하면서 온갖 입에 담을 수 없는 혐오 발언을 일삼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모양새다. ‘혐오’는 곧 ‘증오’이며, ‘폭력’인데도, 10.27 집회에 참여한다고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나름 개혁적 성향(?)인 목사의 말을 들으며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다.

낙태도 OECD 회원국 중 폴란드·멕시코·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다수 나라가 허용한다. 물론 여기에는 임신 기간 등의 일정 조건이 따른다.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은 대한민국을 포함해 수년 내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망해야 할 텐데….

페미니즘이 과연 나라를 망하게 할까

다음 질문. 남녀평등을 강조하는 페미니즘이 나라를 망하게 할까?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적은 나라는 북유럽 국가들이고, 가장 큰 나라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이스라엘·일본·라트비아 등이며, 그중 대한민국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남녀 임금 격차가 압도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는 대한민국에서는, 여성이 임금 격차 및 직장 내 차별 등을 이유로 결혼을 미루고 있다. 결혼하더라도 경력 단절 등의 이유로 남녀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고, 경력 단절 여성의 재취업이 어려워 자녀 출산을 주저한다. 소득 수준에 따른 결혼 비율에서 소득이 높을수록 결혼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진다는 통계 보고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여성에게 물으면 직장 내 성차별, 가사 노동의 불평등, 사회적 압력과 성적 대상화, 젠더 폭력과 안전 문제, 주거 및 육아 등 사회적 안전망 부족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특별히 주거 및 육아 부담은 남성도 비슷하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결혼과 출산을 높이려면 답은 뻔하다. 청년층의 취업률은 물론이고 소득률도 높이는 정책이 필수적이다.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를 최소화하며, 가사 및 육아를 전담하는 여성에게도 일정 부분 경제적 지원을 보장해줘야 한다.

한국교회 내에도 남녀 차별이 여전하다. 과거 한국교회의 성장에는 여성의 역할이 지대했다. 그들의 헌신으로 교회가 이 정도 규모가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목사·장로가 될 수 없는 교단이 지금도 존재하다니!

페미니즘 운동은 차별적 현실 가운데 여성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해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 집회에 참여한 개신교는 페미니즘 운동이 남자·남편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가정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회 밖 사람들이 교회를 시대착오적이고 시대를 역행하는 집단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100대 기도제목’은 페미니즘을 ‘악한 사상’(41번)이며, 비혼주의와 저출산 문제를 위한 복지 정책을 ‘선심성 복지’(34번)로 단정한다. 나아가 젠더 갈등을 사회구조 문제가 아니라 개인 이기심으로 몰아가고(31번), 남자의 머리 됨과 여자의 돕는 배필 역할을 강조하는데, 전통적 남녀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32번). 또한 저출산을 걱정하면서도 시험관 시술을 비판(50번)하는 모순도 나타내고 있다.

학생 인권조례를 두고 부리는 억지

학생 인권조례에 대해서도 한마디해야겠다. 청소년 인권조례는 청소년을 성폭력, 학교 폭력, 아동 학대 등으로부터 보호하고, 청소년을 공부하는 기계가 아닌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임을 인정하자는 법안이다. 그러나 학생 인권조례를 통과시키면 교사와 학부모 권위가 무너지고, 마약 및 게임, 동성애에 노출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청소년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법안이 어떻게 마약, 게임, 성 중독 등을 조장하며, 자녀들을 소아성애자, 성폭력범으로 만드는 법안이라 주장할 수 있는지. 억지도 이런 억지가 다 있는가. 수구 세력은 언제나 청소년·청년들이 권리 의식, 민주 의식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일 뿐이다.

‘100대 기도제목’은 학생 인권조례를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조례라고 주장하면서(25번), 나아가 얼마 전 임명된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존중하는” 자라고 주장한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면서 이 법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창조과학을 진화론과 똑같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존중하는 자라고 하는 주장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까. 나아가 그는 편법 증여 의혹이 제기되어 도덕성 논란의 중심에 있던 사람인데 말이다.

북한을 향한 기도제목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한 기도제목을 살펴보자. 이 부분에서 주로 북한 인권 및 북한 주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북한에 대한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 정권이 몰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녀 임금 격차가 오히려 비혼·저출산을 촉진하는 것처럼, 남북의 경제적 격차가 통일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은 하지 못한다. 경제 압박으로 북한 체제가 붕괴하는 일이 가능할까? 서방세계가 아무리 경제 제재를 한다고 해도 중국·러시아 등이 경제 제재에 참여할 리 만무하다. 적어도 두 나라는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도 북한 체제의 안정을 원한다. 또한 경제 제재의 장기화는 마약, 위조화폐, 불법 무기 거래 등 불법 경제활동을 조장하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남북한의 자유 통일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오히려 북한의 경제 발전을 돕고, 남북한의 경제 교류를 활성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10월 27일은 이런 모습이어야 했는데…

2024년 10월 27일은 정말 의미 있는 날이었다. 종교개혁 507주년의 날이었고, 대다수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는 동시에, 개혁이 지금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설교를 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당면한 개혁 과제는 무엇보다 세습, 대형화, 문어발식 지교회 설립, 담임목사의 교회 재산 사유화, 목사의 윤리 의식 등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먼저 교회다워져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대다수 교회의 궁극적 목표는 교회 성장이고, 따라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사회복지 사업도 바로 포기한다. 인간이 이기적 유전자에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교회는 이타적 예수, 타인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공동체다. 그렇다면 교회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 만일 예수 피(유전자)를 물려받은 교회가 자신을 희생했더라면 오히려 성장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 역시 이기적인 발상이지만. 적어도 이 정도 전략을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2024년 10월 27일은 또한 이태원 참사 2주기 추모 행사가 있던 날이었다. 2024년은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이한 해다. 159명,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길거리, 바다 한가운데서 목숨을 잃었고, 유가족들은 2년, 10년 동안 진상 규명을 외쳐왔다. 적어도 예수 유전자를 가진 교회라면 10.27 연합예배에 유가족을 초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 기도해야 했다.

또한 2024년 10월 27일은 고 신해철의 추모 10주기의 날이었다. 한 방송사에서 제작한 고 신해철 추모 영상에는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팬들의 진심 어린 고백들이 담겼다. 그들은 그를 한결같이 동성동본 커플과 노동자를 위해 노래한 사람, 세월호 아이들을 추모하며 노래한 사람, 자본주의와 나아가 신에게도 저항했던 반항하는 인간, 그러나 누구보다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영상에 출연한 사람들은 모두 신해철 덕분에 인생이 변화된 사람들이었다. 10.27 집회는 적어도 그 정도 감동을 줘야 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간증과 목사들의 눈물이 아니라, 대형 참사 유족들, 성소수자들이 눈시울을 닦으며 이구동성으로 칭찬하고 고백하는 모습이었어야 했다.

하지만 10.27은 교회가 차별과 배제, 혐오의 아이콘으로 각인되는 집회였고, 돈과 세력을 과시한 퍼포먼스일 뿐이었다. 또한 집회의 최대 수혜자는 오정현 목사였다. 로잔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고 했을 때 대회장을 맡고 싶어했지만 목사 안수 문제, 논문 표절 문제, 서초동 교회 불법 건축 문제 등으로 코너에 몰린 그가 이번 집회를 통해 보수 교계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지율 10퍼센트로 추락한 윤석열 대통령을 감싸기 위한 정치 집회에 불과했다.

아, 10.27!

전남식
제자도, 공동체, 평화를 모토로 대전에서 목회하는 꿈이있는교회 목사이자 성서대전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