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평화교회의 커뮤니케이션

[409호 평화교회 한 걸음] 서클 프로세스

2024-11-30     김홍석

지금까지 우리는 퀘이커와 메노나이트 교회로 대표되는 역사적 평화교회의 시작과 평화에 대한 공헌, 국제 구호 활동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살폈다. 교회 외부를 향한 평화의 헌신을 보여준 역사적 평화교회는 과연 교회 내부에서는 어떻게 소통하며 갈등을 해결하고 있을까?

조직 변화를 도모하는 코칭과 컨설팅을 업으로 하는 필자에게는 그동안 조직과 신앙 공동체를 상담하면서 가지게 된 한 가지 철학이 있다. 바로 조직 내부의 소통과 협력은 장기적으로 조직 외부를 향한 성과와 공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를 변혁하려는 조직들에게는 자신들이 만들려는 변화를 조직 내부에서부터 실현해가고 있는지를 늘 질문한다. 이를테면, 인권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조직들은 내부 구성원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해 지속적인 성찰이 있어야만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동체 회중교회를 지향해온 메노나이트 교회나,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하나님의 “내면의 빛”이 있다고 가르쳐온 퀘이커 교회가 교회 내부에서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역사적 평화교회 안에 실로 다양한 형태의 의사소통과 의사 결정 방식이 있지만 역사적 평화교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바로 ‘참여’와 ‘공동체적 지혜’라고 할 수 있다. 교회 안의 커뮤니케이션에서는 톱-다운 형태나 지나치게 구조화된 형태보다는 ‘서클’로 대표되는, 평등하게 둘러앉아 모두에게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는 형태로 진행되는 대화가 예배에서 자주 보인다.

의사 결정에서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제공하여 더불어 공동체로서 숙고하고 이를 의사 결정에 반영할 수 있는 몇 가지 프로세스, 특히 다수결보다 더 포용적인 기법들이 발전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하여 퀘이커 교회의 회의 안에서, 메노나이트 교회로부터 시작된 ‘회복적 정의’ 운동에서 활용하는 서클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서클 대화법이란

서클 대화는 원 형태로 둘러앉아 진행자(서클 키퍼) 안내에 따라 이야기 도구(토킹 피스)를 한 방향으로 돌리면서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를 듣는 대화법이다. 공동체 안에 주요 주제나 비전, 갈등에 대해 공동체 모두의 깊은 이해가 필요할 때 사용된다.

많은 전통적 공동체에서 원으로 둘러앉아 공동체에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은 존재해왔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된 현대사회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의사 결정을 내리는 방법으로 서클 프로세스가 다시 도입된 것이다. 이 방식은 모든 참여자의 의견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결정을 함께 내리는 능력을 강조한다. 서클 프로세스를 통해 팀은 점진적으로 더 참여적이고 협력적인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토킹 피스를 돌리며 대화하는 서클의 경우, 북미 선주민 대화법에서 차용되었는데, 토킹 피스를 가진 사람은 “공동체가 나의 목소리를 충분히 들었다고 느껴질 때까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클의 방법론

① 서클 키퍼 정하기

먼저 공동체에서는 서클 키퍼를 정한다. 서클 키퍼는 서클 안의 대화 주제를 안내하고 서클의 목적과 안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전문 진행자라기보다는 계속 불이 타오르도록 캠프파이어를 담당하는 사람에 가깝다. 이야기 흐름이 계속 흘러갈 수 있도록 진행을 돕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공동체의 대화 주제에 따라 서클 키퍼는 아래의 사항을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한다.

② 센터 피스와 토킹 피스

센터 피스는 서클로 둘러앉은 원 안에 대화의 주제나 공동체의 목적을 상기시킬 수 있게 배치되는 물건들이고 토킹 피스는 자신이 말할 차례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상징물이다. 토킹 피스는 부드럽거나 단단하여 건네받은 사람이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물건을 주로 사용한다. 서클 키퍼는 우리 공동체의 부르심과 대화 주제에 맞게 센터 피스와 토킹 피스를 준비해보자.

③ 체크인 질문, 주제 질문, 체크아웃 질문

처음 시작할 때의 질문을 ‘체크인’이라고 한다. 간단하면서도 구성원 각자의 다양성을 나타내는 질문, 또는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질문을 준비한다. 예를 들면 ‘오늘 내가 가져온 물건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것?’ ‘오늘의 기분을 1~10까지 점수를 매긴다면 몇 점인가요?’ ‘지난 한 주 동안 즐거웠던 일 하나는?’ 등의 질문이다.

다음, 주제 질문의 경우 대화 목적에 맞게 열린 질문 형태로 준비한다. 질문은 점진적으로 깊어지는 것이 좋다. 특히 공동체 내에 민감한 문제나 갈등을 다루려면 충분한 훈련을 거친 후 진행해야 한다.

주제 질문이 다 끝났을 때 공동체에 마무리 ‘체크아웃’ 질문을 하게 된다. 집중을 요하는 이 시간에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서로 나누는 시간이다. 긴장을 풀어주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질문을 준비한다.

모든 질문에 답할 때, 참가자들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거나 대답하고 싶지 않을 때는 “통과(pass)”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서클 키퍼는 이들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해서 토킹 피스를 한 번 더 돌릴 수 있다. 이야기하지 않는 자유를 공동체 안에 주는 것이고, 이것 또한 이야기의 한 형태이다.

조율컬렉티브에서 진행한 서클 대화. 국내의 평화교육 단체(한국평화교육훈련원, 에듀피스, 비폭력평화물결 등)에서도 서클 대화를 교육하고 있다. 방법론의 차이는 다소 있지만, 평등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적인 공동체를 추구하는 목적은 같다. (사진: 필자 제공)

④ 서클에서 공동의 약속

서클이 안정감을 주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함께 지켜야 할 공동의 약속이 있다. 아래는 필자가 서클을 진행하면서 공동으로 약속하는 사항들이다.

● 비밀 유지: 서클 대화가 지속되면 구성원들은 서클에서보다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비밀과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여 더 안전한 공간이 되도록 약속한다.

● 경청: 구성원들이 서클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매우 귀중하다. 모두의 의견을 귀중히 여기는 자세로 서로의 이야기에 깊이 집중할 것을 약속한다.

● 공동의 책임: 서클에서 나누는 이야기, 그리고 이 공간의 안전과 목적의 달성을 위해 서클 키퍼뿐 아니라 참가자 모두가 함께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한다.

● 공동체의 지혜에 대한 신뢰: 개개인의 지식과 지혜보다 공동체의 지혜를 신뢰하는 약속이다. 종종 참여자들은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지혜와 경험에 놀라울 정도로 감동한다.

⑤ 대화의 원칙1)

서클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이 그동안 익숙했던 토론(Debate) 방법이 아닌 말 그대로 대화(Decalogue)의 방법에 익숙해져야 한다. 특히 이야기 중심 대화에서는 아래 사항을 참여자들에게 상기시켜 주고 서클 대화를 시작해보자.

첫째, 마음으로 말하세요. 토킹 피스가 있을 때만 말하세요. 생각뿐만 아니라 감정으로도 표현하실 수 있습니다. 진실하게 말하고자 한다면 그것이 바로 마음으로부터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다른 사람이 토킹 피스를 가지고 있을 때 깊이 들어보십시오. 상대방의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판단하지 않고 마음으로 경청해보세요. 이성적으로만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도 들을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셋째, 즉흥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 춤을 추세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결정하기 전에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자기 순서가 아닐 때 무슨 말을 할지 미리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 말하는 사람의 말을 완전히 듣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넷째, 단순하고 간결하게 표현하세요. 단순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십시오. 이는 군더더기 없는 대화를 말합니다. 서클 대화에서 말할 때 많은 사람이 말할 기회를 원하며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하십시오. 요점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꼭 필요한 단어들로만 표현해보세요.

⑥ 이야기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서클 프로세스2)

서클 프로세스는 일반 회의나 대화보다 긴 시간을 요한다. 참여자 모두에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고, 모두가 전적으로 참여하는 공간을 열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안에서 참여자들은 엄청난 시너지를 느끼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때로 대립하는 생각과 감정의 충돌이 있을 수 있지만, 공동체의 지혜는 이러한 대립과 충돌을 화해의 장으로 만든다. 서클이 주는 안정감으로 구성원들은 자신의 진실한 이야기를 쏟아놓는데, 서클에서 형성된 공동체 정신은 판단하거나 충고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다. 많은 사람이 서클 대화로 슬픔을 나누고 기쁨을 초대하며 대립이 화해로 바뀌는 경험을 한다.

현재 서클 대화는 전 세계의 회복적 정의 운동, 평화교육 현장 등, 공동체 정신을 일으키고 갈등을 해결하려는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만약 여러분의 신앙 공동체가 의견 대립이 있거나 더 깊은 연대가 필요한 시기라면 논쟁적인 주제는 잠시 뒤로하고 함께 모여 서클 대화를 시도해보면 어떨까? 필자는 “나만 아는 아재 개그는?”이라는 질문으로 여는 대화를 시작한다.

■ 주

1) 케이 프라니스, 강영실 옮김, 《서클 프로세스》(대장간, 2018)
2) 크리스티나 볼드윈·앤 리니아, 봉현철 옮김, 《서클의 힘》(초록비책공방, 2017)


김홍석
평화교육을 비롯해 건강한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조율컬렉티브의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