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딴이 이야기
[409호 커버스토리]
지난 5월호(제402호)에 임신 경험을 토대로 쓴 ‘몸을 대가로 치러야 얻을 수 있는 것’(이슬아)의 다음 이야기이다.
2024년 5월의 어느 날, 딴딴이가 힘찬 울음을 터트리며 우리 곁으로 왔다. 전날 밤 아내는 양수가 터져 급하게 입원했고, 새벽부터 시작된 진통에 한숨도 못 잤다. 나 또한 정신이 오락가락했지만 딴딴이가 첫울음을 터트린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출산 예행연습을 했을 때와 다르게 아내는 아기에게 “딴딴아 고생했어” “딴딴아 반가워” 등의 말을 잘 건넸지만, 나는 딴딴이 이름을 한 번 부르고는 계속 오열했다. 30년 조금 넘은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생소하고 낯설었지만 정말 벅차오르고 감격스러워서 눈물만 하염없이 흘렀다. 생명의 탄생이란 참 경이로웠다.
그로부터 7시간 뒤, 밤샘 진통으로 지쳐 잠들어 있던 우리에게 의사 선생님이 다급히 오셔서 말씀하셨다. 아기의 산소 포화도가 떨어져서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아빠인 내게 아기랑 같이 갈 준비를 하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고 의사 선생님 말씀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심각한 현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구급차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나가자 딴딴이는 이동식 인큐베이터 안에 있었다. 울고 있는 아내를 두고 근처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로 이동했다. 딴딴이는 태어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이곳에 딴딴이를 두고 가야 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천국을 잠시 맛보았다가 순식간에 지옥 밑바닥까지 추락한 하루였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다음 날 새벽 5시,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병원 신생아중환자실이었다. 아기 상태가 좋지 않다고, 인공호흡기를 하고 있는데도 산소 포화도가 계속 떨어진다고 했다. 우리가 가봐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인지 물었더니, 더 위중해지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통화가 끝나고 무릎을 꿇은 뒤 목 놓아 하나님을 찾았다. 우리 아기를 제발 살려달라고. 부모님과 담임목사님께도 연락해 기도 부탁을 드렸다.
날이 밝도록 병원에서 연락이 오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지만,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1분 1초가 피가 마르는 듯했다. 신생아중환자실에 면회하러 가는 길,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우심실에서 폐로 넘어가는 폐동맥 판막이 닫혀있어서 폐로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 상황이에요. 아기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는 대동맥에서 폐로 넘어가는 동맥관이라는 곳이 열려있는데요. 동맥관은 아기가 태어나면 서서히 닫히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막 태어날 때는 괜찮았지만 동맥관이 닫히면서 산소 포화도가 떨어진 것 같아요. 지금은 약을 써서 임시로 동맥관을 열어놓았어요.”
아내와 나는 열심히 들었다. 명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중요한 건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의사가 말을 이어갔다.
“이 질환은 우리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서 심장전문병원에 연락을 해봤어요. 다행히 거기 자리가 있어서 아기를 받아줄 수 있다고 하네요. 곧 구급차가 올 거고 그쪽 병원으로 전원할 테니 준비하고 계세요.”
처음에는 하나님이 딴딴이를 데려가시려나 싶었다. 기도를 해도 상황은 점점 악화되는 것 같았다. 10개월간 기다린 만남은 너무 짧았고 생명이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만이 이어졌다. 하나님이 너무 무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전원한 뒤에 생각의 전환이 일어났다.
“다행히 아기 폐동맥 판막은 잘 형성되어 있어요. 그래서 시술로 판막을 열어주면 돼요. 판막 자체가 형성되지 않고 태어나는 아기들도 있거든요. 3.66킬로그램으로 몸무게가 좀 나가는 편이라 시술을 잘 견딜 것 같아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시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한 것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아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산부인과에서 빠르게 발견한 덕분에 대학병원으로 가서 적절한 검사와 조치를 받은 점, 죽음의 문턱까지 갔지만 원인을 찾고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점, 출산 전에는 걱정거리였던 무거운 몸무게가 시술을 앞두고는 도움이 되는 점 등 그제야 하나님의 손길이 보였다.
‘하나님이 딴딴이를 살리기 원하시는구나. 하나님이 살리기로 하셨으면 깨끗하게 치료되겠지.’ 믿음이 생겼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렘 29:11)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을지, 얼마나 중환자실에 있게 될지 몰랐지만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기대했다.
“최근에 같은 진단을 받고 시술을 받은 아기는 시술 후 2주 뒤에 퇴원했어요. 우리 아기는 그 아기와 다르게 우심실이 작다는 문제도 있어서 2주 뒤에 퇴원은 어려울 수 있어요. 1차 시술로 폐동맥 판막을 열어주고, 폐로 넘어가는 혈액량이 적으면 동맥관이 계속 열려있도록 스텐트를 삽입하는 2차 시술을 할 수 있어요.”
나는 의사에게 설명을 들을 때마다 아기 상태와 치료 계획을 열심히 공부했고, 기도제목으로 적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함께 기도해달라는 간절한 요청이었다. 하나님은 성도들 기도를 들으시기에, 또 중보기도의 힘을 믿었기에 그렇게 했다.
그러나 믿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예상과 다르게 딴딴이의 상태는 기도하지 않은 방향으로만 흘러갔다. 2차 시술 없이 1차 시술로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시술을 집도한 의사는 시술실에서 나오자마자 2차 시술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1차 시술이 끝난 뒤 예후가 좋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아기는 괴사성 장염에 걸려 0.5 미만이어야 할 염증 수치가 18까지 올라갔다. 혈소판 수치도 심각하게 감소했다. 중환자실에 면회하러 갈 때마다 딴딴이는 인공호흡기를 하고 수많은 투약 라인을 치렁치렁 달며 의식 없이 숨만 쉬고 있었다. 심부전 증상도 나타났고, 2차 시술 예정일 이틀 전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서 응급 시술을 해야 했다. 답답했다. 성경에는 그렇게 많은 기적이 일어나는데 왜 딴딴이에게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듣고 계시긴 한 걸까?
치료하는 과정은 시험의 연속이었다. 병원에서 안 좋은 소식이 들려오면 온몸에 힘이 빠지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하나님이 딴딴이를 살리실 것이란 믿음은 온데간데없고 절망적인 생각만 가득했다. 그럼에도 의지할 데는 하나님밖에 없었다. 허탈하여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가도 다시 정신 차리고 기도했다. 처음에는 기도가 되지 않았지만, 마음을 부여잡고 기도하니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이 느껴졌다.
아람 군대가 둘러싸고 있을 때 엘리사의 사환은 아람 군대만 보았지만 엘리사는 아람 군대를 둘러싼 하나님의 군대를 믿음의 눈으로 본 것처럼, 나에게도 다시 믿음이 부어지길 기도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갔다.
길고 긴 여정
우여곡절 끝에 2차 심장 시술까지 마쳤지만 그 후에도 사건은 계속됐다. “아기가 분유를 잘 먹지 못하고 분수토를 했어요. 심장은 괜찮은 것 같은데 잘 먹지 못하고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어요.”
며칠 뒤 중환자실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아기가 1차 시술 후 괴사성 장염을 앓으면서 합병증이 생긴 것 같아요. 조영술을 해봐야 할 것 같은데, 아버님도 아시다시피 저희는 심장전문병원이라 신생아의 장 조영술까지 능숙하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기를 저희에게 보내준 대학병원에 다시 보내려는데 동의하시나요?”
이미 한 달 넘게 아기를 중환자실에 맡긴 시점이었다. 긴 여정이었다. 하루하루가 피 마르는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견디면 끝이 보인다고 믿었다. 그런데 다시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대학병원으로 돌아와 조영술 검사를 했다. 장폐색.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심장 1-2차 시술 과정도 험난한 고비의 연속이었는데, 이제는 개복 수술까지 받아야 한다니. 그 말을 듣고는 어떤 정신으로 시간을 보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도제목을 돌릴 힘조차 없었다.
힘겨웠지만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인 이상 한가하게 울적한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었다. 수술 날짜가 잡혔고 집도의에게 수술 설명을 들으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아기가 수술장으로 들어가기까지 함께하기 위해 신생아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렸다. 딴딴이는 이동식 인큐베이터 안에서 눈을 말똥말똥 뜨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딴딴아~ 지금까지 너무 잘해주었어, 조금만 더 힘내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수술장으로 내려가려는데, 갑자기 수술이 취소됐다.
“죄송해요. 오늘 수술하려고 했는데, 아기가 심장병 이력이 있어서 마취과에서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아요.” 심장병이 있는 아기가 전신마취를 하게 되면 심장 기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거였다. 방법을 찾아보겠다며 들어간 의사가 다시 나와서 말했다. “소아외과 교수님과 소아마취 교수님이 계신 병원을 알아봤는데 전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괜찮으실까요?”
어렵게 다시 전원을 했지만,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예정된 수술일 전날, 죄송하다고, 마취과에서 아기 심장병 이력 때문에 부담을 느껴 수술이 어렵다고, 다른 병원을 알아봐 주겠다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조급해졌다. 이미 일주일째 금식 중인 아기가 수술일까지 잘 버텨줄 수 있을지, 아니,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있을지 걱정이 컸다.
그렇게 다시 아기와 함께 구급차에 올랐다. 다섯 번째 전원이었다. 새로운 병원에서는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 병동에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병원 원칙상 병동의 상주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아내는 산후에 몸이 많이 약해져서 내가 상주 보호자를 자처했다. 딴딴이가 태어난 지 50일이 넘어서 드디어 육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하는 육아를 혼자서, 그것도 집이 아닌 병원에서 시작해야 했는데도 걱정이나 염려는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이제라도 딴딴이와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기쁨이어서 부푼 마음으로 병동 생활을 시작했다.
딴딴이와 함께 병원에서 처음 맞이하는 주일, 온라인 예배를 유튜브로 틀어놓고 딴딴이와 예배를 드렸다. “주님의 성령 지금 이곳에 임하소서 임하소서~” 찬양 소리가 들리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난 며칠간 잊고 있던 하나님이 다시 생각났다. 지금 이 병동에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 같았다. 앞으로 어떤 치료의 과정을 겪을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했고,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찬양했다. 그동안 무기력과 근심, 걱정으로 미뤄왔던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다시 이어지는 검사와 진단, 그리고 수술과 회복 사이에 일어난 일들로 병동 생활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심장 치료 때와 마찬가지로 장 치료도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환자실에 홀로 아기를 맡겨놓을 때와, 아기와 함께 그 시간을 견디는 일은 전혀 차원이 달랐다. 아기가 투병 중에도 기어코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보고, 점점 치료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무엇보다 아기 배에 손을 얹고 기도할 수 있어서, 아기에게 찬양을 불러줄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돌이켜보니 딴딴이와 함께한 병동 생활은 지난한 치료 과정에서 지칠 대로 지친 우리가 다시 힘을 내도록 북돋는 하나님의 응원 같았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은 딴딴이의 치료 과정을 결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지 않으셨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고 아기 상태는 악화되기 일쑤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간순간 견딜 힘을 주시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시며 길고 긴 고난의 여정 가운데 함께하셨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또한 정말 많은 사람이 우리 아기를 위해 기도해주셨고, 우리가 너무 힘들어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도 여전히 딴딴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이 또한 우리가 버티는 힘이었다.
하나님의 뜻을 무어라 단언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 과정에서 나는 낙담을 돌파하는 믿음을 가지는 법과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우게 됐다. 그리고 딴딴이의 생명, 딴딴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인생, 딴딴이의 죽음 이후 영원한 삶까지 하나님께 계속 맡기는 기도를 하게 됐다.
딴딴이는 태어난 지 107일 만에 퇴원하여 집으로 왔다.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 매달 추적 관찰을 하고 있고 앞으로 1년 이내에 추가 심장 수술 또는 시술을 받을 예정이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 딴딴이를 양육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예견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딴딴이의 생명과 삶을 지금까지 주관하셨고, 부모인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주셨기 때문에 앞으로도 우리 가정을 이끌어가실 것을 믿는다.
최용규
육아가 즐거운 아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