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한반도, 구멍 난 손, 온전함의 창으로
[410호 로잔 1974-2024] 로잔대회에 앞서 평화 컨설테이션이 열리기까지
2024년 9월 20일부터 21일까지 ‘한반도 평화와 화해: 로잔대회에 앞서 열리는 컨설테이션’(Peace and Reconciliation in the Korean Peninsula: A Pre-Congress Consultation)이 파주 비무장지대(DMZ) 인근과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에서 열렸다. 4차 로잔대회 참가를 위해 한국에 온 세계 각국 기독교 지도자들을 비롯한 참석자를 대상으로 한반도 문제를 알리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화해와 평화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선교적 사명임을 확인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데 목적을 두었다. 양일간 국내외 참가자 140여 명이 참가하였고, 필자는 스태프로 함께했다.
2023년 12월, 이 컨설테이션 행사에 스태프로 함께해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당혹감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1) 로잔대회는 대학 시절 선교단체에서 현대 기독 운동사를 접할 때나 〈복음과상황〉 같은 기독교 잡지에서 만나는 단어 아니던가? 더군다나 나는 목회자나 선교사도 아니고, 기독교 운동 진영에서 깊숙이 활동하는 사람도 아닌지라, 로잔대회는 내게 그저 ‘멀고 먼 무언가’였다. 당시 대형교회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국 로잔대회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었다는 소식을 접했고, 아무리 번외 프로그램이라 하더라도 이런 국제 행사는 체계적인 조직과 계획에 따라 기획하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이렇게 허술하게 몇몇 스태프들로 행사를 준비하자는 것이 내심 미덥지 않았다.
그러나 4차 로잔대회를 이 한반도에서 개최함에도 불구하고, 개최지가 처한 분단의 암담한 현실을 두고 논의하는 세션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대회 사전 행사라도 열어 이 문제를 알리고자 애쓰고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동했다.2) 원래 로잔 정신 자체가 어떠한 위계적 체계나 구심점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연대와 협력, 상호 도전에서 시작되었다는 조샘 선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이런 시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평소 존경하는 분들이 섞여있다는 팬심에, 그리고 개인적으로 북한을 연구하는 사람이자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연구 단체 한반도평화연구원(KPI)에서 일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에 결국 수락하게 되었다.
자금, 조직, 인력 등 그 어느 것도 든든하지 않은 상황에서 2024년 1월, 열 명이 채 안 되는 인원이 모였다. 행사 목적을 분명히 하고, 1박 2일 진행 얼개를 잡고, 역할을 나누고 순서별 준비 책임자를 세웠다. 첫날은 DMZ 방문과 저녁 집회, 다음 날은 컨설테이션을 진행하기로 했다. 각자 생업이 있는 데다 이미 다른 일도 많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이 행사 준비를 병행했다. 스태프를 추가로 섭외해 이 모임의 필요성과 비전을 나누며 동료로 함께해주길 부탁하였다. 그리고 매달 기획팀 모임, 각 팀 준비 모임, 팀별 준비 및 전체 상황을 공유하는 리더 모임을 했다. 존경하고 믿고 신뢰할 만큼 귀한 분들과 동역해 감사했지만, 본업에 더하여 모두 자원봉사로 이 행사를 준비하는 것인지라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늘 따라왔다.
DMZ 순례, 예배, 컨설테이션
더군다나 모든 순서가 과감한 시도였다. 먼저, 이틀짜리 행사 중 절반을 DMZ 방문에 쏟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다. 방문지를 적절하게 구성하지 못하고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과 현재 상황을 잘 설명하지 못하면 DMZ 방문은 참가자들에게 그저 한나절 분쟁 지역 근처를 힐끗 보는 관광에 머물 위험이 있었다. 외국인을 포함하여 수백 명이 동시에 민간인 통제구역에 진입하는 민간 행사를 계획하는 것도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참가자 한 명, 한 명이 이 현장을 제대로 경험하고 함께 순례의 길을 걷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마음을 모았다. 분단의 현장을 목도하며 함께 탄식하는 가운데 분명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있을 거라 기대하였다. 이에 이 여정을 ‘DMZ 순례’로 정하고 그에 맞는 방문지를 계획하며 참가자들을 위해 버스 이동 중에 이해를 돕는 영상까지 제작하기로 했다.
첫째 날 저녁 예배 또한 부담이 있었다. 말씀 선포 중심의 한국적 예배 형식에 갇히지 않기로 한 건 잘한 결정이었지만 ‘어떻게 새로운 예배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참가자들이 모인 상황에서 어떤 예배 형식과 진행이 적절할지, 화해와 평화에 대한 그리스도의 마음을 어떻게 의례에 담아낼지 예배팀은 계속 고민하였다.
둘째 날에 컨설테이션을 운영하는 것도 난관이 가득해 보였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를 배치하여 좋은 강의를 듣는 정도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일방적인 가르침으로 채우는 집회는 로잔 정신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모든 참가자가 10명 내외의 소그룹 일원이 되어 직접 의견을 나누고 모으는 컨설테이션 형식을 취하는 것이 처음부터 일관된 목표였다. 성경 강해와 짧은 강의도 배치하지만 이는 결국 나눔과 적용, 토론으로 가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 두었다. 참가자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고, 외국인 참가자의 배경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국적 참가자 간 언어 소통 제약을 넘어 소그룹 토론을 운영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과연 의견을 모을 수 있을까 걱정도 컸다.
어떤 사람들이 이 행사를 신청할지, 사람들이 어떤 기대를 하고 모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기획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정말 낯선 경험이었다. 연구 단체에서 일하며 개인적으로 수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해 보았지만 이번 행사는 그동안 걸어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이었다.
Hole in Whole
2024년 4월, 행사 전체를 관통하는 콘셉트를 구체화하면서 준비에 불이 붙었다. Hole in whole. 온전함(whole)에는 구멍들(hole)이 존재한다. 부활하신 주님의 손에 여전히 남아있는 구멍은 우리의 죄악과 그의 찔림을 보여주는 상흔이자 생명의 숨과 빛이 들어오는 창이기도 하다. 그 구멍 난 손으로 내밀어주시는 용서와 화해의 온전한 복음으로 분단된 땅 한반도를 바라보자는 기조를 세웠다. 콘셉트가 완성되자 우리가 어디에 초점을 두고 가야 할지가 명확해졌다. 각 팀은 개별 순서를 이 콘셉트에 맞추어 일관되게 흐름을 잡아가고자 애썼다.
여름에 접어들며 예배팀을 중심으로 시작된 기도회는 다른 팀 스태프까지 하나둘 참여하면서 전체 준비 그룹을 묶어주었다. 전쟁의 상처, 적대와 증오로 점철된 남과 북, 켜켜이 쌓인 분단을 넘어서는 것은 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임을 우리 스스로 깊이 새기고 묵상하였다. 특히 대북 전단 살포와 북한의 오물 풍선 맞대응, 양측의 확성기 방송 재개로 DMZ는 계속 방문이 제한되는 상황이었기에 9월이 다가올수록 과연 이 행사를 잘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시시각각 악화하는 DMZ 상황은 지금 우리가 딛고 있는 분단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었다. 어쩌면 계획대로 행사가 진행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염두에 두면서 한편으로는 기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플랜 B, C까지 마련하며 준비하였다.
“이게 바로 우리가 처한 분단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D-day가 다가왔다. 국내외에서 200여 명이 사전 등록했지만, 입국 일정, 항공편 문제 등 다양한 사정으로 실제 행사에는 140여 명이 모였다.
그런데 민통선 내로 들어가기 위한 통일대교 검문소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사전에 관계 기관과 소통하여 명단과 정보를 담은 출입 신청서를 제출했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통과 명령이 해당 검문소에 전달되지 않아 우리는 모두 진입을 제지당했다. 해당 서류 기록을 찾아 제시하며 겨우 들어가나 싶었는데, 증빙 신분증에 문제가 생기며 버스 4대에 탄 우리는 꼼짝없이 한 시간 반을 검문소에 묶여 있어야 했다. 그런데 후에 보니 이것이 전화위복이 된 듯하다. 참가자들은 이 시간 버스에서 더 깊은 대화를 나누며 검문소에서부터 분단의 현실을 체감했다고 고백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처한 분단입니다” 인솔자의 설명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DMZ 순례의 핵심은 남북출입사무소 방문이었다. 북한 땅이 멀리 보이는 도라전망대, 안보 견학의 대표 장소인 제3땅굴에 가지 않고 우리는 남북출입사무소를 견학했다. 개성공단만 하더라도 남측 인원 약 1,000명이 북측에 상주하고, 매일 800여 명이 출입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난 80년 동안 갈라져 오직 적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고 왕래하였음을 기억하고자 했다. 외국인 참가자들뿐 아니라 국내 참가자들도 교류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고백했다. DMZ 순례는 임진각, 오두산 통일전망대 방문으로 이어졌다. 특히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앞에서 설명이 끝난 후, 한 외국인 참가자가 “END THE KOREAN WAR”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꺼내 들었다. 분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증기기관차 앞에서 주최 측이 아닌 외국인 참가자가 준비한 플래카드를 두고 함께 단체 사진을 찍으면서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이 깊이 감동하였다.
저녁 예배는 부흥한국, 수상한 거리팀의 인도로 깊은 찬양의 시간과 함께 7개국에서 온 기도자가 각자의 언어로 기도하고 참가자 모두가 성찬에 참여하였다. 남북 출신 목회자 두 명이 ‘구멍 난 손’을 상징하는 대형 걸개그림 안에서 성찬을 집전하고, 모든 참가자가 이 걸개를 통과하며 성찬에 참여하는 의례는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었다.3)
둘째 날 컨설테이션은 전날의 순례와 예배에서 얻은 마음을 정리하고 나누며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였다. 개인 묵상을 위한 김회권 교수의 성경 주해, 소그룹 컨설테이션을 돕기 위한 6명의 북한 사역자, 전문가의 영상은 각각 10분 내외의 짧은 나눔이었음에도 이들이 수십 년 동안 경험한 고민과 해석, 묵상이 응축되어 나타난 시간이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자료집을 다운로드하고 영상을 시청하길 추천한다.)4) 소그룹 컨설테이션은 참가자를 언어권(영어, 한국어, 스페인어) 선호에 맞추어 24개 조로 나누어 진행하되, 소그룹 안에서 각 주제에 대해 나눈 내용을 업로드하여 AI를 통해 분석하고, 이를 맨 마지막에 전체 모임에서 정리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모든 참가자가 자기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이를 종합하여 아래로부터 위로 의견을 모으고 각자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돋보였다.
예상을 뛰어넘는 경험
모든 행사를 마치고 개인적으로, 함께 돌아보면서 발견한 것들이 있다. 먼저, 북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놀랐다. 외국인 참가자 중 상당수가 북한을 두고 오래도록 기도해온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북한을 방문한 경험도 없고, 직접 연결할 만한 어떤 기회도 없었음에도 언론이나 선교단체 소식, 간헐적인 강의를 통해 북한에 대해 관심 가진 이후 오래도록 북한을 품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로잔대회 어떤 프로그램보다 꼭 이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다는 고백은 많은 사람을 뭉클하게 했다. 특히 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가 해결의 기반이라는 사실을 깊이 공유한 것이 더 반가웠다.
둘째, 참가자들이 감동하거나 도전받은 지점이 제각각이었다는 점도 큰 배움이었다. 보통 이런 중대형 콘퍼런스를 기획하다 보면 핵심 주제에 맞추어 중심과 주변을 나누고, 기승전결 구조를 설계하기 쉽다. 참가자 전체를 일정한 흐름으로 이끌고 싶은 의도도 자연스럽게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행사의 경우 참가자들 배경이 다양하고 파악하기 어려웠을뿐더러 스태프들이 각자 맡은 순서를 겨우겨우 감당하면서 모자이크처럼 행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조율의 부족함이 곳곳에 드러났지만, 오히려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 참가자마다 울림 포인트가 달랐던 점은 개인적으로 귀한 깨달음을 주었다.
셋째, 한반도의 특수한 갈등 경험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 참가자들을 보며 새로운 도전을 얻었다. 개인적으로 북한 연구자로서 남북문제는 한국인들의 문제이자 지역 문제로 본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한 참가자로부터 “오랜 분단 역사와 갈등 경험을 가진 한반도의 사례를 보며 내가 사는 나라의 적대와 분쟁에 대한 시사점을 얻고 싶어 여기 오게 되었다”라는 고백을 들으며 한반도의 문제가 지역(local)에 머물지 않음을 다시금 상기하였다. 한반도 문제를 로컬의 문제로 국한하지 말고 글로벌한 차원으로 추상화할 이유가 여기 있다.
넷째, 모든 참가자의 참여를 통해 다양한 관점과 의견이 주는 풍성함이다. 이번 행사는 소그룹 컨설테이션을 통해 모든 참가자가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나누며 이를 수합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여러 문화권에서 온 참가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읽으며 평소에 보지 못한 접근과 해석을 접하고, 새로운 가치와 우선순위를 발견하였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애써오신 많은 분을 재발견했다. 북한-통일 영역에서 일해오다 보니 패널과 강사, 스태프 중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던 분들이었고, 참가자 중에도 지인이 많았다. 이번 행사를 함께 준비하며 몇몇 분들을 더 깊이 알고 교제하며 이분들의 마음과 삶을 깊이 마주한 것은 참으로 귀한 경험이었다.
다시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여전히 이 땅은 엄중하다. 한반도는 지정학의 소용돌이에 더 빠져들고 있고, 열강의 이익까지 보태져 실타래를 더 꼬아놓는다. 오랜 적대와 오해가 관계의 진전을 막고, 사람과 사람이 여전히 만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남북문제에 있어 상당 부분 이념화, 진영화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 지 오래다. 이 현실을 넘어설 힘을 우리는 어디서 얻을까? 이번 행사 기간을 거치며 그리스도의 마음과 자신의 삶으로 한반도를 마주했던 여러 사람을 만나며 실마리를 발견했다. 결국 그리스도의 화해와 평화가 한반도에 드리운 어둠을 몰아내고 꽁꽁 언 바위를 녹일 것이다.
1) 필자가 중도 합류한 시점이 2023년 12월이며, 최초 기획 및 준비는 2023년 9월부터였다.
2) 당시 2023년 하반기 상황에서 제4차 로잔대회 내에 북한/한반도 문제 관련 세션은 계획되지 않았다. 여러 문제 제기를 통해 (선택적) 관심그룹으로 ‘North Korea Interest Group’이 추후 추가되었으나 화요일-목요일(13:30-14:30) 짧은 시간 배정되었다.
3) 심정아 작가는 ‘구멍 난 손’ 콘셉트를 담은 예배에 대해 들으시고 여름 내내 시간을 내어 실제 대형 천에 인두로 구멍을 뚫어 예수님의 ‘구멍 난 손’을 형상화한 대형 작품을 제작해주셨다.
4) 이번 행사 자료집 및 공개 영상은 아래 링크를 통해 다운로드 또는 시청할 수 있다.
- 행사 안내 및 자료집 다운로드 sites.google.com/view/prelausanne2024-kr/home
- 유튜브 채널 (동영상) youtube.com/@PeaceandReconciliation/videos
이창현
북한 연구자.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북한학으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북한의 공식문헌을 통해 정치사회화, 사회체제, 권력 동학을 연구한다. 기독교 싱크탱크 한반도평화연구원 사무국장, 비영리교육지원단체 이음과배움 대표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