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기다리는 돌봄
[411호 책방에서] 문미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나무옆의자)
겨울은 특히 주머니가 가벼워지는 계절이지 싶습니다. 난방비가 제일 부담이죠. 리모델링했지만 40년 가까이 된 새마을 주택은 단열이 부족해요. 두꺼운 내복과 누빔바지, 경량패딩은 겨울 필수 아이템이랍니다. 옷을 껴입고, 주머니에 핫팩을 넣고, 잘 때는 보온물팩을 끌어안고! 절약을 위해 궁리를 해봐도, 겨울 난방비는 각오해야 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그러려니 하세요. “겨울은 쌀독 채워놓고, 연탄 쟁여놓고, 김장해놨으면 된 거야.” 한 수 배웁니다. 겨울은 아끼며 겸손하게 보내야 한다는 걸요.
겨울에 주머니가 가벼운 건 설날과도 상관이 있지요. 받는 세뱃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은 설날로 바뀐 건 꽤 오래전. 아, 그리운 옛날이여. 오랜만에 얼굴 보는 가족들을 세뱃돈만 들고 만날 수는 없어 이것저것 추가 지출이 예상되는 설 명절은 겨울철 지갑을 더 얼어붙게 만듭니다. 건너뛸 수도 없고,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21세기에도 가족과 거리를 유지하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가족을 돌봐야 할 순간이 온다는 걸,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걸 알고 대부분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을 텐데요. 돌봄 비용은 가뿐히 각오를 넘어서고, 돌보는 이를 위태롭게 만들죠. 아픈 가족 병원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늘리면서 학점은 포기했다거나, 학업을 내려놓고 취직했다는 이야기. 주중에 일하고 주말까지 돌봄 노동을 하는 바람에 결국 병이 났다는 이야기…. 너무 흔하게 듣는 주변 이야기라서 나의 이야기인 이야기.
문명순 작가의 소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가족 돌봄 비용이 역전됩니다. 경제활동이 힘든 딸은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인 엄마 연금으로 삶을 꾸려가지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빠를 돌보느라 대리운전하는 아들은 아빠 연금으로 자격증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요. 짐이 돼버린 돌봄 대상이 도리어 나를 살리는 이야기. 안타깝게도 여기에는 불법이 작동합니다.
누가 이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 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주인공 명주의 대사는 돌보는 자리에서 나온 덤덤한 자기변호입니다.
돌봄이 돌아와 나를 돌볼 수 있을까요. 소설은 고단한 인물들이 서로 손을 잡아주며 끝이 납니다. 분명한 건 함께 겨울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겨울을 보내고 계신가요? 주머니가 두둑해질 일은 없겠지만, 손은 한 번 더 잡아줄 수 있겠지요. 돌보느라 수고한 나의 손이 돌봄에 지친 당신의 손을 맞잡으며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2월입니다. 남은 겨울 건강하게 지나가시길.
이수진·김희송
경기도 연천 조용한 마을에서 작은 빵집이자 동네책방, 그리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인 ‘오늘과내일’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