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월세 300만 원짜리 집에서 살았다고 생각하세요”

현수¹⁾ 씨가 한국 사회에서 성인이 되고 가장 오래 산 집은 고시원이다. 서울 신림동. 집 기억이 시작되는 공간은 서울 포이동²⁾, 아버지 사업이 잘되면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 중계동 아파트로 이사했고, ‘학세권’으로 유명한 중계동 ‘은행사거리’ 학원을 다니며 그룹 과외도 받았었다. 1990년대 초중반, 부족함 없던 어린이였다. 풍족한 날이 지속되지 못한 건 “IMF가 집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버지 사업장은 외환 위기가 터진 이후 치솟는 금리를 버티지 못했다. 외가·친가랄 것 없이 가족 빚까지 쌓인 아버지는 결국 1년 뒤 도산했다. 부모님이 목숨을 끊은 어느 날 밤 이후로 현수 씨에겐 집이 없어졌다. 가시방석 같은 친척 집을 전전하다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고시원 독립을 감행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고시원 생활은 군 시절을 제외하고 30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밤낮없는 생활과 매일 10시간 이상의 아르바이트 노동으로 삶을 지탱했다.

“젊으니까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냐고 흔히들 말하는데요. 10년 동안 모았던 돈을 잃고, 다시 그렇게 모을 자신이 없어요. 지금의 저는 죽을 용기도 없고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사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돈을 모았던 10년은 군 제대 이후 다시 입주한 고시원에서의 시간이다. 제대 후 최저시급은 3,770-4,000원. 첫 전셋집을 구할 때까지 현수 씨는 1억을 모았다. 이 돈을 종잣돈 삼아 신용대출 2천만 원을 더해 “노을 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던” 첫 전셋집 보증금을 마련했다. 부모님과 단절된 이후 처음 마련한 자신만의 독립된 집에서 비로소, 겨울 이불을 샀다. 창문 너머의 시간을 맛봤고,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들 수 있는 직업을 구했다. 취미 활동을 만들며 새로운 관계로 들어갔다.

“한창 모든 게 정상이던” 시간을 멈추게 한 건 전세사기, 현수 씨는 ‘신탁 전세사기’를 당했다. 신탁 건물은 소유자에게 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 근저당권을 설정하지 않고 담보 재산 소유권을 신탁회사에 맡긴 건물이다. 건물 소유자에게 임대차계약의 권리가 없다. 공인중개사도 집주인도 이에 대해 일언반구 없었다. 등기부등본 갑구에 표시된 신탁등기 의미를 묻는 현수 씨 질문엔 일반 대출인 것처럼 설명하고, 전세 계약 후 없어질 거라는 거짓말을 했다. “실질적 집주인”이라며 계약을 진행한 대리인, 바지사장이던 집주인, 공인중개사가 협잡해서 이룬 허위 임대차계약 사기였다.

현수 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행복주택 입주를 앞두고 이 사실을 인지했다. 잠수 탄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에서 신탁사에서 보낸 퇴거 명령 내용증명을 받고, 명도 소송을 당했다. 그렇게 첫 전셋집에서 3년을 채 못 살고 겨울에 쫓겨났다. ‘전세사기 특별법’(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가까스로 ‘전세사기피해자등’으로 인정되어 긴급주거지원을 받았다. 전 재산과 대출로 마련한 전세보증금을 1원 한 푼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대출을 받으려면 기존 대출을 무조건 상환해야 했다. 특별법이나 국가 시스템이 아닌 오롯이 친구들 도움으로 개인 신용대출을 상환하고서야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혈혈단신 이룬 10년 노력은 한국 부동산 거래 시스템 속에서 고스란히 빚으로 전환됐다.

행복주택에 입주하고부터는 다시 평일에 11시간씩 일하고, 주말에도 단기 알바를 뛴다. 친구들 돈은 다 갚았어도, 얼마 전까진 종잣돈이었다가 모조리 빚으로 ‘돌변한’ 보증금 대출금이 버티고 있다. 죽을 용기가 없어 산다고 말하던 그는 몇 시간 긴 대화 끝에, “어쩌면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도 한쪽에는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수 씨에겐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집에 대한 꿈이 있다.

IMF 이후 혼자 된 삶, 친척 집 전전하던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 담장 위의 송충이들이 기억나요. 줄로 엮은 것마냥 한 방향으로 엄청나게 열심히 기어가고 있었거든요. 하굣길이었나?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막 뛰었죠.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중간엔가 아파트로 이사했거든요. 1996년일 거예요. 중계동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포이동에서 살았는데 그땐 단독주택 느낌이었던 거 같아요. 우리 식구만 살았으니까.

이사한 첫날, 자다 깨서 새벽에 어머니랑 산책했던 장면이 머릿속에 있어요. 전학 처리하고 새 학기 준비하는 이야기를 했고요. 근처에 큰 공원이 있었거든요. 그땐 돈 귀한 줄 몰랐어요. 엄청나게 잘사는 건 아니어도 넓은 아파트로 갔고, 중계동 은행사거리 학원들 다니면서 유명한 선생님 스터디반 같은 것도 했죠. 해외여행까진 아니어도 휴가 때면 세 식구가 제주도로 놀러 가고. 남들 속초 갈 때 우린 비행기 탄 거죠. IMF 터지기 전엔 모자람이 없던 거 같아요. 1990년대엔 요즘처럼 치킨이나 피자를 자주 시켜 먹는 문화가 아니었잖아요. 가족끼리 가끔 먹는 거지. 그런데 집에 친구들 데려오면 어머니가 치킨이나 피자 같은 거 시켜주셨어요. ‘피자헛’ 가라고 따로 돈을 주기도 하셨고. 친구 데려오는 걸 좋아하셨어요. 가정주부셨는데 여장부 같으셔서 집에서는 어머니가 정한 규칙대로 움직였고요. 그래서 우리 집은 절대 야식을 못 먹었어요.

어느 날 집에 빨간딱지가 다 붙었어요. 아버지 사업이 많이 안 좋게 돼버려서…. 이사하고 1-2년 있다가 많이 안 좋아졌어요. IMF 다음 연도일 거예요. 중2 때 같은데, 아버지가 대출도 뭐도 하던 상황이 희미하게 기억나요. 뭔가 잘못된 거죠. 버티려고 여기저기 돈 빌린단 얘기를 들었던 기억도 얼핏 나요. 친가와 외가에도 빌린 돈이 많으셨어요.

부모님이 저랑 같이 ‘안 좋은 선택’을 하려고 하셨어요. 그날 새벽 두세 시였을 거예요. 그런 느낌 있잖아요? 뭔가 싸한. 너무 무서워서 집을 나왔어요. 그날 부모님이 ‘먼저 가셨어요.’ 부모님 장례 치르고 제가 애물단지가 됐고요. 처음엔 외할머니 집으로 갔는데 1년밖에 못 살았어요. 막냇삼촌한테도 아버지 빚이 있었거든요. 눈치가 보여서 제가 이모네도 갔다가, 이모네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 옮기고, 또 옮기고. 짐이 없으니 이사랄 건 없고, 같은 구에서 이동하거나 걸어서 한 시간 이내면 다 걸어 다녔어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친가·외가 집들을 전전했어요. 그래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거고요. 원래는 직업학교 갈까 고민했는데, 직업학교는 전공을 정해야 하잖아요. 고2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이모네 살다가 작은아빠랑 살다가 고모네 살다가. 집을 너무 자주 옮겨 학교를 멀리까지 다녔거든요. 마지막엔 다시 외할머니 집으로 갔어요. 7호선 라인으로 이사하고 전입신고했었는데, 도봉산 쪽이었나 그보다 조금 아래쪽이었나.

학교에서는 잤어요. 밤에 못 잤거든요. 어디서 지내도 너무 눈치가 보여서 집에 잘 안 있었어요. 봄에서 가을까지는 거의 새벽 내내 싸돌아다니다가 학교 갈 시간 가까워지면 제일 일찍 등교해서 종일 잤어요. 겨울엔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었지만. 이야기하다 보니 신기하네요. 그렇게 밖에만 있었는데 소위 일진이랑 안 어울렸다는 게. 마지막으로 전학 간 고등학교에서 중학교 때 친구 몇을 다시 만나 지금까지 친구로 지내요. 계속 전학했어도 허물없이 대해줬거든요. 중학교 때부터 친해서 우리 집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놀리고 그런 게 없었어요. 고등학교 때 기억이 비교적 많은데,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전학하고 이런 게 대부분이에요. 교복은 졸업한 선배들이 두고 간 교복 중에 큰 걸 골라 입었어요.

고시원에서 고시원으로, 돈을 모았다

겨울방학 때였어요. 고등학교 졸업 앞두고 해 바뀌자마자 외할머니 집을 나온 게. 고시원 들어갈 수 있는 나이만 기다렸거든요. 전단 같은 거 보면서 싼 방만 찾고, 학교나 친구 집 컴퓨터로 혼자 살 수 있는 방법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고시원을 알았어요. 졸업 전부터 피시방 아르바이트해서 갖고 있던 돈이 70만 원 정도. 무작정 고시원에 갔어요. 중랑구, 7호선 먹골역 근처. 일하는 피시방에서 가까웠거든요. 저 때문에 트러블 생기는 상황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게 너무 싫어서 도망치듯 나온 게 마지막이에요, 친척들이랑은. 연락이 온 적도, 제가 한 적도 없고요.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말없이 나간 적 많으니까 또 다른 곳으로 갔나 하셨을 거예요.

되게 허름한 고시원이었어요. 너무 추운 날이었던 건 확실히 기억해요. 완전 1월. 옷만 두세 벌 챙겨 몸만 갔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전에 살던 사람 이불이라도 괜찮으면 덮으라고 주셨어요. 방에 침대는 있는데 이불이 없었거든요. 그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많이 울다 잠들었어요.

월 19만 원이었나? 조리 공간 없고 세탁실과 화장실만 있어서 가격이 쌌어요. 방이 진짜 작았는데, 한 2평 정도? 딱 침대랑 진짜 작은 옷장만 있었어요. 옷 여덟아홉 벌 걸면 끝나는. 복도엔 가끔 바퀴벌레가 나왔는데 희한하게 방에서는 안 나왔어요. 못 본 걸 수도 있고요. 그때 천 원이었던 김밥 사 먹거나 편의점에서 라면 먹었어요. 스무 살이라 뭘 먹어도 많이 먹기만 하면 됐거든요. 8개월 정도 살다가 일 때문에 가을에 다른 고시원으로 옮겼어요. 피시방 사장이 바뀌면서 아르바이트생을 새로 구한다고 통보해서 다른 데 일을 구했거든요. 계절 바뀌고 여름옷 몇 벌 산 거 말고는 짐이 없었어요.

두 번째 고시원은 책상이 있었어요. 22만 원. 이때부턴 피시방과 편의점 알바를 같이하면서 식비 빼고는 돈을 모았어요. 언젠가 군대 갈 텐데 그전에 최대한 돈을 모아야 제대하고 어디든 바로 들어가 살 수 있잖아요. 언제 영장 나올지 모르니까 직장을 구하기도 그렇고. 야간에 피시방 일하고 바로 아침 7시에 편의점 출근하면 12시에 끝. 그렇게 1년 반 정도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다 추석 전 9월에 육군으로 입대했어요.

전역 후에도 고시원에 들어갔어요. 밥하고 김치가 무료거든요. 첫 고시원 빼고는 다 그랬어요. 전역 후 바로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군대 가기 전이랑 군대에서 모은 돈이 전부니까. 신림역과 신대방역 사이에 있는 곳이었는데 사장님 부부가 운영했어요. 4평까진 아니고 한 3.5평? 이제는 책상에 책장까지 있고, 따로 수납공간도 생겼으니 전보다 나아진 거죠. 35만 원에 창문 없고. 있으면 40만 원인데, 당시엔 5만 원이면 거의 한 달 교통비거든요. 창문 없는 방이라 잠을 오후에 자도 별로 지장이 없더라고요. 빛이 안 들어오니까. 사람들 출근 시간에 자고 잘 시간쯤 출근하면 한곳에서 오래 살아도 사람 마주치기 힘들어요. 여기서 9년을 살았어요 전세사기를 당한 집 들어가기 전까지. 군대에서랑 회사 다닐 때 빼면 밥은 거의 혼자 먹었죠.

자격증 공부라도 하려면 수입이 끊기니까, 계속 아르바이트만

제대하고 1년 정도는 입대 전처럼 투잡했어요. 오전에 편의점 일하고 오후에 자고 야간에 피시방 일하면서. 그러다 2010년에 직업을 처음 얻었어요. 현금 수송하는 일. 맡은 지역에 현금을 수송하는 거예요. ATM기에 현금 넣는 거 있잖아요. 아침 8시 반 출근인데, 말이 그렇지 8시 10분까지 갔어요. 20분 정도는 그날그날 기계 돈 상황을 듣거든요. 동선 짜고 돈 받아서 9시 출발하면 급한 곳부터 시작해 은행은 오후 4시 전까지, 나머지 기계는 최대한 오후 6시까지 넣어서 일 끝내고 퇴근하는 거예요.

2년 못 다니고 그만뒀어요. 사무실 관리직이랑 현장직 관리하는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괜찮던 일이 너무 힘들어졌어요. 근본적으로는 관리 시스템 변경의 문제였는데, 일하는 사람끼리 편 갈리고 기 싸움도 생겨버렸어요. 꼬였죠 뭐. 그 영향으로 현장직 코스 관리가 엉망진창이 되고 퇴근은 한없이 늦어졌어요. 일도 이상하게 힘들어지고. 3개월 정도 계속 그러니까 많이들 나갔죠. 당시 현장 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다른 팀장들이 앞에서 동시에 주르륵 그만두면서 저도 그만뒀어요. 일하면서 기계 문제로 골때렸던 적도 있는데, 그런 건 기계만 해결하면 괜찮아져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상하게 싸우면서 일을 어렵게 만들면 견디기 너무 힘들죠. 이해도 안 되고. 회사 생활은 성격에 안 맞는구나 싶어 그만뒀어요. 추가 수당 주는 휴일 근무를 도맡아 해서 아르바이트 뛸 때보다 급여도 올랐었는데.

전처럼 일을 여러 개 했어요. 20대 중후반, 평일엔 편의점이랑 피시방, 주말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제일 만만하죠. 이즈음 프랜차이즈 피시방이 막 나왔어요. 제가 일하는 피시방도 서울에 매장이 20여 개였어요. 그날그날 지원이 필요한 지점으로 일하러 갔어요. 아르바이트생 관리도 하고 직원처럼 일하던 형이 권했거든요. 몸은 더 힘들어도 돈 더 받는다고. 그 형 눈에 제가 열심히 돈만 버는 게 보였던 거 같아요.

돈 버는 걸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계속 아르바이트한 거예요. 뭔가 자격증 공부라도 하려고 학원 같은 데 가면 당장 수입이 끊기니까. 명절 기간에도 일부러 상하차 알바했어요. 남들 쉰다고 저도 쉴 수는 없거든요. 택배 특수라 돈을 더 주기도 하고. 현금 수송 회사 다닐 때 빼고는 4대 보험료 내기도 아까워서 소득세 3.3%랑 건강보험료만 냈어요.

처음으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 골랐던 집…

전셋집 알아보던 게 2018년 말이에요. 사장님 부부가 고시원 정리하신다고 해서. 또 고시원으로 갈까 월셋집을 알아볼까 고민했어요. 월세를 가자니 돈 모으기 힘들겠고, 고시원은 10년 넘게 살아보니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하더라고요. 그동안 모은 1억으로 전셋집을 구하기로 했어요. 원금은 보장되니까.

혼자 집 구하면서 인터넷으로 알아보니까 여러 부동산을 다녔을 때 공통으로 괜찮다고 추천하는 집을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서로 거리가 좀 있는 부동산을 세 군데 돌았는데 세 곳이 한 집을 추천했어요. ‘괜찮은 매물인가보다’ 생각했죠. 제가 봐도 다른 매물들은 교통이 너무 안 좋았거든요. 추천받은 집은 지하철에서 좀 멀어도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괜찮았고요. 지은 지 2년, 1.5층, 분리형 원룸이었어요. 1.5룸에 8평 정도.

해 질 녘에 이 집을 보러 갔어요. 마침 창문으로 노을 지는 풍경을 봤는데, 얼마나 예쁘던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때까지 죽는 게 무서워서 살고 있었거든요,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렸을 때 그 일 당하고부터는요. 창문 때문에 고른 게 컸어요. 창이 되게 컸거든요.

10년 만에 고시원을 나오고 행복하더라고요. 전보다 여유도 생겼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쭉 먹고사는 데 급급했는데, 월세를 안 내니까 훨씬 살 것 같았어요. 처음으로 산 물건이요? 두꺼운 겨울 이불이요. 그동안 겨울 이불이 없었거든요. 한 고시원에서 9년을 살았어도 늘 ‘언제 나갈지 모른다’ 생각하면 짐을 최소화하게 돼요. 겨울에도 여름 이불 두세 장 겹쳐 덮었죠. 가게 폐업하는 곳에서 막 이불 같은 거, 만 원에 팔 때 산 거. 침대는 아니지만 매트리스도 사서 놓고 맘 놓고 겨울 이불 덮고 잤어요. 점차 필요한 물건들도 사고요. 핸드폰으로만 보는 게 답답해서 TV 사고, 또 돈 모아서 컴퓨터도 장만하고. 그리고 처음으로 가구를 샀어요. 장롱 두 짝. 처음엔 행거를 샀는데 너무 없어 보이길래. 냉장고랑 전자레인지도 새 걸로 샀어요. 기본 가전은 다 있었는데 너무 작고, 전 세입자가 쓰던 거라 왠지 맘에 안 들었거든요. 밥 먹을 접이식 상도 하나 놓고, 집에서 빨래가 너무 안 마르길래 작은 건조기도 나중에 하나 주문했어요. 놓을 자리 미리 재보고 다 맞춰서 하나씩 하나씩 살림을 장만한 거예요, 2019년도엔. 2020년도엔 옷도 좀 사고, 배달 음식 시켜 먹는 사치도 부려보고…. 신림역 ‘가이즈앤걸즈’라는 옷 가게에서 주로 쇼핑했어요. 평균 가격대가 1만 원-1만 5천 원이거든요. 전셋집 살면서 마음에 여유가 좀 생겼던 거 같아요. 보증금이긴 해도 나한테 1억이라는 돈이 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쉬었어요. 서너 달 정도 버티려고 따로 모은 돈을 쓰면서 바리스타랑 라테 아트 자격증을 땄고요. 노동부에서 비용 지원해 주잖아요. 그담에 카페에 취직해서 점장으로 일한 지 벌써 5년 넘었네요. 오피스 상권이라 거의 평일만 출근해요. 생활이 바뀌고 취미 생활이라는 것도 처음 가졌었어요. 어릴 때 IMF가 집에 들어오기 전에 게임을 좋아했거든요. 가까운 친구들이랑 보드게임 하는 거. 인터넷에서 보드게임 모임을 찾아 나가고, 친해지고 같이 노는 사람들도 생겼어요. 사기당한 걸 알고 나서 못 나가게 됐지만요.

계약 전에 확인하라는 건 다 했어요. 등기부등본 갑구에 집주인 명의랑 신탁회사가 나와있어서 알아봤고요. 당시엔 인터넷에 관련 정보가 없었더라고요. 신탁으로 전세사기 터지기 시작한 게 2020년도 중반부터거든요. 사기당하고 다시 검색했을 때 2020년 6-7월쯤 기사가 신탁 관련 사기 중에 가장 오래된 기사였어요. 계약 때 부동산 쪽에서 먼저 신탁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어서 제가 물어봤어요. 집 지을 때 은행 대신 돈 빌려주는 회사라고, 전세금 들어오면 등기부에서는 다 없어질 예정이라 했고요. 부동산에서 문제없다고 하면 그런 거겠지 싶으면서도 왠지 찜찜해서 다른 집 찾고 싶다고도 했어요. 그랬더니 집주인 대리인이라는 사람이 나서서 비용은 자기네가 부담하고 변호사 공증을 해주겠다고 했고요. 보증금 반환일에 대한 공증을 해준다고. 변호사 이야기까지 나오니까 법적으로 인정해주는 것처럼 들렸죠. 공증을 받으면 무슨 문제 생겨도 괜찮은 줄 알았고요. 그렇게 집주인 대리인이랑 계약했어요. 실질적 집주인은 자기라고 했거든요. 집을 많이 갖고 있어서 세금 문제 때문에 명의만 조카 앞으로 해놓은 거라면서. 도장도 다 들고 다닌다고 보여주고.

2019년 1월 첫 토요일에 가계약하고 월말에 잔금 치르고 이사했어요. 쫓겨날 때까지 3년 좀 안 되게 살았네요. 계약 기간 다 채워갈 때쯤 저도 공공임대라는 걸 알게 되고, 한창 청년행복주택을 신청하고 있었어요. 건물 관리인한테서 계약 연장할 거냐고 연락이 왔고요. 공공임대가 되면 중간에 나가야 한다고 했더니, 다음 세입자 구해지고 복비만 내면 괜찮다고 해서 연장했어요. 3개월 정도 지나 행복주택에 당첨되고, 바로 집주인한테 연락했는데 안 받더라고요. 관리인도.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연락을 안 받으니까 뭔가 싸했어요. 전년도부터 전세사기가 터지기 시작했거든요. 연초에 있었던 사건도 떠오르고…. 설 지나고 갑자기 인터넷 끊기고, 수도세 독촉장이 날아왔거든요. 수도, 인터넷 포함 관리비 6만 원을 밀린 적 없이 열심히 냈고요. 실질적 건물주의 여동생으로 관리인이 바뀐 다음에 벌어진 일이고, 바로 처리됐어요. 그게 집주인 쪽과의 마지막 연락이었죠.

집에서 가까운 부동산에 좀 물어보러 갔어요. 그 있잖아요 동네마다 있는 엄청 오래된, 최소 10년은 있었을 것 같은. 사장님한테 제 상황을 좀 설명해드리고 주소 알려드리니까 바로 표정이 안 좋아지시고, 사기 터진 건물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싶은데, 이미 그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신탁회사 쪽에서 이미 팔려고 내놓은 것 같다고 하시고. 그렇게 처음 알았어요. 집으로 돌아가서 바로 우리 건물에 있는 다른 집들을 방문해서 알렸고요. 다가구 빌라라 집주인이 같은데, 다들 집주인이랑 연락이 안 됐어요. 내가 사기당한 게 맞구나, 점점 더 확실해졌어요. 막막했죠.

행복하게 살고 싶어졌다고 했었잖아요? 사기당한 사실을 알고 나니까 그런 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 취미 활동까지 생기고 한창 모든 게 정상이었을 땐 좋아서 절로 모임에 나갔는데, 더 이상 나가고 싶지 않았어요. 모든 게 다 시간 낭비가 돼버린 거예요. 깨어있으면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빨리 돈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그 생각밖에 안 드니까.

쫓겨나고 다시 빚을 내고, 투잡 쓰리잡

“얼추 3년 사셨네요. 그냥 월세 300만 원짜리 집에서 살았다고 생각하세요.” 법률구조공단 변호사님이 그러더라고요. 제 서류 다 보더니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예약도 쉽지 않고, 서류란 서류는 전부 챙겨 갔어요. 그때 되게 많이 좀 그랬어요…. 무료 상담이라고는 해도 ‘변호사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가망이 없나 보다’ 그 생각만 들었거든요.

평일에 처음 휴가 낸 날이었어요, 카페 점장으로 일하면서. 상담 끝나고 공단 근처 작은 공원 벤치에서 그냥 멍하니 한 서너 시간을 있었어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이사하고 천천히 필요한 살림 사느라 다시 돈 모은 지 5-6개월 정도 됐을까? 몇 개월 뒤면 행복주택 입주인데 수중엔 5백만 원이 전부고, 갑자기 돈을 도대체 어떻게 구하겠어요. 2천만 원 대출받은 이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싶고. 그때까지도 4대 보험 가입을 안 해서 대출이자를 4% 내고 있었거든요. HUG 전세피해지원센터³⁾도 없을 때고, 특별법도 다음 해 6월 처음 나왔고요.

신탁회사에서 보낸 내용증명 등기가 6월에 날아왔어요. 불법점유자한테 대응하겠다고. 잠수 중인 집주인을 형사 고소하고 7월 초 피해자 조사를 받고 나니까 8월엔 바로 명도 소송이 들어왔어요. 법원에서 뭐가 날아왔는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던 친구 통해서 뭐가 뭔지 알았어요. 그 친구 부모님이 법원 사무직이란 소릴 들은 적 있어서…. 당장 나가라는 거라고, 이대로 11월 말에 판결 나면 바로 쫓겨나는 거라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9월 말에 전세피해지원센터 생기자마자 찾아갔어요. 6개월 단위로 2년까지 살 수 있는 긴급주거지원 대상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행복주택 입주 보증금이 여전히 문제였어요. 보증금을 당장 한 푼도 못 받는 상황에서 보증금을 마련하려면 또 대출받아야 하니까. 상황이 정말 급박하게 돌아갔어요. 중소기업청년 대상으로 100% 대출해주는 상품에 가입할 수 있는 나이가 4개월밖에 안 남은 상태고, 기존 대출 2천만 원을 무조건 상환부터 해야 하고. 2천만 원은 너무 큰돈이잖아요. 어쩔 수 없이 전세사기를 당한 사실을 친구들한테 털어놓고 도와달라고 말했어요. 다섯 명이 나눠서 빌려준 2천만 원으로 기존 대출을 갚고, 행복주택 계약금도 내고, 새로 보증금 대출을 또 받았어요. 4대 보험 가입자여야 이자율이 낮다고 해서 그때부터 가입했고요.

11월 말에 첫 전셋집에서 쫓겨났어요. 긴급주거지원 받은 집에서 3개월 살았고요. 그렇게 큰 집은 처음이었죠. 17평 정도, 염창역 투룸 빌라. HUG에서 피해자들한테 보증금 대신 변제해준 후에 압류한 곳들이라고 그러더라고요. 대부분 깡통전세였던 매물이라고. 경매로 되팔기 전에 비어있는 집인데, 웬만하면 공공임대주택 매물로 남긴다고 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HUG가 올해만 대위변제한 금액이 어마어마하잖아요. 앞으로도 나오면 더 나왔지 줄진 않을 거예요. 그다음에 행복주택에 가까스로 입주했다가, 특별법 생긴 후에 ‘전세사기피해자등’으로 인정받고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어요. 행복주택 입주 이후로는 다시 일주일 내내 쓰리잡 뛰어요. 평일은 비나 눈 오는 날 빼고는 카페 퇴근하자마자 걸어서 하는 배달을 해요. 다음 날 출근이라 밤새는 못 하고. 주말은 택배 상하차. 6개월 뛰면서 친구들 돈 갚았어요. 30대 중반 꺾이니까 정말 힘드네요. 계속 휴일 없이 일주일 내내 투잡 쓰리잡 뛰는 게.

죽지 못해 사는 삶이지만

저한테 한 집을 추천해줬던 부동산 세 곳이 한통속이었어요. 다 전세사기에 연루됐더라고요. 하필, 운도 없죠. 알고 보니 집주인은 실질적 집주인의 조카가 아니고 바지사장, 건물 관리인은 바람잡이였어요. 관리인도 나중엔 실질적 집주인의 여동생으로 바뀌었고. 저한테 사기 친 부동산들은 중개사법 위반으로, 바지사장인 집주인과 그 대리인은 사기죄로 각각 재판받는 중이에요. 그 일당에 피해 본 사람만 70명이 넘고, 피해액은 80억 이상이고요. 사기 가담한 부동산이랑 바지사장만 각각 4-5명에 집주인 대리인 아들까지 합세했어요.

1심 공판 때 판사님이 방청석에 피해자가 있는지 물은 적이 었어요. 그날은 저만 있었는데,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경우가 잘 없는데. 생각나는 대로 말했어요. 피해자 회복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사람이 피해자한테 먼저 연락하지도 않고 피해자 연락을 받지도 않고 무슨 피해 회복을 논하느냐고. 피고가 그날 피해자들 회복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었다고 주장했거든요.

판결은 징역 4년. ‘이게 맞는 판결인가…’ 어안이 벙벙했죠. 전세사기 잘만 치면 연봉 10억 될 수 있단 말 나오는 게 이상하지도 않아요. 꽤 많이 알려진 세 모녀 전세사기⁴⁾는 1년에 걸친 재판 끝에 1심 법원이 중형이라고 10년형을 줬거든요. 세 명이 85명을 상대로 183억 원⁵⁾을 가로챘는데…. 판사님은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이니까 뭐 그럴 수 있다고 쳐요. 그런데 이 나라 법 시스템이 대체 이게 맞게 굴러가는 건가요? 돈 없다는 피고가 아주 비싼 로펌 변호사를 고용했던데, 형량이 너무 많다고 항소하더라고요.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보증금을 얼마나 찾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항소심 판결 땐 어떻게든 시간 내서 가보려고요.

재판을 경험하면서 참 웃기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피해자인데, 재판에서 말할 권한이 없다는 것부터. 판사가 특별히 허락 안 하면 피해자는 재판에 가봐야 할 게 없거든요. 발언할 수 없으니까. 이 와중에 전세사기 당한 피해자들을 주식이나 코인 투자한 사람이랑 똑같은 사기 피해자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있었어요. 숨이 막혀서, 그래서 국회 앞으로, 보신각 피해자 추모식으로 나선 것도 있어요. 세상은 제가 잘못했다고, 네가 선택한 거라고 해요. 거래도 공인중개사 통해서 했는데. 뉴스 보니까 판사도 변호사도 전세사기 당하고, 우리나라에서 전세사기는 누구나 다 당하는 거더라고요? 이 정도면 제도가 잘못된 거잖아요.

1심 판결 나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 생각으로부터 도망치려고 그렇게 밖으로 말하러 나간 거 같아요. 부모님 먼저 가신 날도 죽는 게 무서워서 도망친 것처럼. 죽을 용기가 없어 산다고 하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제 꿈은 50대 후반에서 60대쯤에 경기도 쪽에 조그마하게 집 짓고 사는 거였어요. 돈을 악착같이 모은 것도 그래서였는데, 부모님하고 같이 살았던 시절에는 집이라는 게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 집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더 꿈꾼 것도 있죠. 이번 집에 들어오면서는…, 당근마켓에서 이동식 행거 하나를 5천 원에 거래했어요. 쫓겨난 집에서 장만한 물건들을 다 챙겨왔고요. 이삿짐센터를 처음 써봤는데 2.5톤 차량이 오고 80만 원이나 들었어요. 이사를 해보니까 돈이 엄청나게 드는 게 참 문제더라고요. 전셋집 처음 들어갈 땐 갖고 있던 옷 두 개에 여름 이불 몇 장이 전부였는데…. 제 속 어디 한쪽에는 그런 게 있나봐요. 죽지 못해 산다고 해도, 행복했던, 행복하게 살고 싶었던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그래서 이 짐을 들고 다니는 건가, 말하면서 그런 생각이 드네요. 지금도 꿈은 그대로예요. 좀 작아지긴 했죠. 원래는 행복한 가정도 가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행복한 가정은 이제 꿀 수 없는 꿈이 됐어요.

진행 오지은 객원기자
본지 객원기자. 삼프레스 발행인.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둘 사이를 연결하는 콘텐츠 노동자. 언제나 재미있는 일거리를 기대하고, 빵은 만들어 먹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