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기를
[411호 내 인생의 한 구절]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간 나의 삶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해온 명제다. 이 명제가 내 마음을 주도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은 초등학교 때 기억이다. 국어 교과서에 학습 문제가 있었는데, 답변을 쓸 공간이 각각 한두 줄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쓸 자리가 모자라면 공책을 잘라 붙여서라도 길게 쓰라고 하셨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쓰고 싶은 말이 더 있으면 주어진 한계에 제약받지 말라는 취지였을 수 있겠다. 그러나 길게 쓴 아이일수록 칭찬받는 모습을 보며, 적당히 하는 건 불성실한 거구나, 최선을 다해야지, 하는 생각이 각인되었던 것 같다.
자라면서 나는 더는 더할 여지가 없을 정도까지 노력을 쏟는 게 언제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서 성취든 헌신이든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뭘 하든 대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더 할 수 있는데 그만하거나 적당히 할 때는 죄책감과 불안감을 느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가 다가왔을 때 겪은 일이다. 다른 친구들은 초등학교 시절이나 방학 때부터 학원에 다녔는데, 나는 너무 한가롭게 지냈고 노력이 부족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부랴부랴 공부에 매진한 나는 그 학기에 전교 1등을 했다. 단순히 공부를 잘한다는 평가를 넘어, 그렇게 1등이라는 지표로 인정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이후 그 지표를 놓치고 싶지 않아 매 시험에 최선을 다해 임했고, 성취할 수 있었다. 공부뿐 아니라 다른 활동에도 최선을 다해 방송반, 중창반도 하고 학생회장도 했다. 저 친구는 공부도 잘하고 인간관계도 좋아, 못하는 게 없어. 어른들이나 친구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내심 뿌듯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새로 생긴 공립 특목고였다. 이전까지 나는 성적, 예체능, 교우 관계 등 모든 방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학생이었는데, 특목고에 모인 학생들은 너무나 우수해 보여 나의 존재감이 미미하게 느껴졌다. 위축된 나는 다시 공부에 매진했고, 어찌저찌 1등에 이르렀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존재를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끊임없이 인정 욕구와 불안감에 시달렸다. 성적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인성이 좋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매 순간 실력이든 인성이든 증명하려 노력했고, 스스로를 몰아치며 버텨내며 살았다. 체력적으로 힘들어도 한 자 더 보고 자려 했고, 친절한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뭘 하든 대충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더 할 수 있는데 그만하거나 적당히 할 때는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어 선생님이 혹 성경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매주 성경공부를 해줄 테니 신청하라 하셨고, 나는 불현듯 손을 들었다. 요한복음, 창세기, 로마서 등을 차례로 배워나갔다. 이전까지 나는 모태신앙이었으나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할 기억은 없었는데, 요한복음을 깊이 배우며 처음으로 말씀이 살아있으며 사람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때의 감동이 기억난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3-14)
전교 1등, 학생회장 등 타이틀을 획득하는 순간의 뿌듯함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불안은 닥쳐왔고,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때 그 느낌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사람들의 사랑은 탄산음료에 불과해서, 마실 때는 잠깐 목마름이 사라지는 것 같지만 오히려 더 목말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생수로,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소해준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말씀을 통해 목마름이 해소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또 다른 강박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사회정의에 관심이 많았다. 인권변호사로서 노동자·여성·수재민 등 약자를 위해 헌신한 조영래 변호사나, 의사로서 제3세계 의료 정의를 위해 헌신한 폴 파머 박사 같은 이들을 닮고 싶었다. ‘실력 있는 전문가’로서 그 실력을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 성경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려면 전문적 지식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그러려면 공부든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강박은 단순히 세상적 성취, 즉 부·권력·명예를 획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명제,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명제보다 훨씬 더 교묘하게 나를 옥죄었다. 나를 위해서뿐 아니라, 남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 하므로 하루하루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명제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죄책감으로까지 나를 몰아갔다.
이러한 강박은 성적이 구체적 진로 결정과 연결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더욱 심화되었다. 그러다 학교 기도 모임에서 기도하던 중 다음과 같은 시편 말씀을 접하게 되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시 131:1-3)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는’ 자가 바로 나였다. 그것은 교만이고 오만이었다. ‘내’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 ‘내’가 조영래와 폴 파머처럼 누군가를 크게 구하겠다. 이러한 목표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 생각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시편 말씀은 그런 나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그렇게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힘쓰기보다,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나님 품에 머물러보라고. 이후 나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엄습할 때마다 이 말씀을 떠올리며 고요와 평온을 찾고자 했다.
이 말씀을 다시 새기게 된 시점은 공익변호사가 된 후였다. 공익변호사가 되고자 했을 때 나는 큰 포부를 갖고 있었다. 약자 곁에 서서 부당한 일에 목소리 높여 외치겠다, 변화가 필요한 판례가 있다면 바꾸어내겠다 등, 변호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멋지게 해내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었다.
일례로 홈리스, 북한이탈주민, 이주민 등을 만나 상담하는 현장 법률상담이 있었다. 처음 현장에 나갈 때는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의 문제를 내가 공부한 법적 지식으로 다 해결해 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상담하다 보면 현행법상으로는 어렵거나 증거가 없어 어려울 것이라는 말씀을 드려야 할 때가 많았다. “무슨 법이 이래요?” “변호사라면서 이런 것도 못 도와줘요?” 같은 말을 듣기도 했다. ‘변호사라면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는 내담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스스로 매우 괴로웠다.
공익소송에서 패소했을 때도 그랬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조금만 더 밤을 새우고 조금만 더 정성을 기울였다면, 조금만 더 참신한 논리를 펼쳤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돌아보았다. 매 사건을 대할 때 지식적 측면이든 대인적 측면이든 가능한 한 여력을 다해 임했으면서도 ‘이게 최선이야?’ ‘정말? 최선을 다한 것 맞아?’ 끊임없이 되물었다. 변호사로서 무언가 더 큰 실질적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하였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문득 내가 다시 시편 131:1이 말하는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고 있구나 깨달았다. 큰 일과 놀라운 일을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이후 홈리스 야학 교사로 글쓰기교실, 영어교실 등에서 활동하며, 꼭 변호사로서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이웃으로서 누군가에게 깊이 가닿는 일을 할 수도 있음을 느꼈다.
공익변호사 5년 차인 지금, 변호사로서 행한 소송·자문·상담 등에서 도움이 절실한 당사자들을 실질적으로 돕게 되는 크고 작은 성과가 있었다. 사건에 임하면 욕심을 내려놓고 본질에 집중하며 자유롭고 평안해졌다가도, 때때로 잘해야 한다는 마음, 드러내고 싶은 마음, 그러지 못할 때 무거워지는 마음 등이 어느새 슬며시 고개를 든다. 그럴 때는 다시 시편 131편, 특히 2-3절 말씀을 떠올린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고요와 평온을 누리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을 되새긴다.
다음은 조영래 변호사가 아들에게 쓴 편지 내용이다. 시편 131편이 이야기하고자 한 것과 맞닿아있다.
앞의 사진은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다. 아빠가 어렸을 때는 이 건물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 아빠는 네가 이 건물처럼 높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세상에서 제일 돈 많은 사람이 되거나 제일 유명한 사람, 높은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작으면서도 아름답고,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건물이 얼마든지 있듯이, 인생도 그런 것이다. 건강하게, 성실하게, 즐겁게, 하루하루 기쁨을 느끼고 또 남에게도 기쁨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실은 그것이야말로 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처럼 높은 소망인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적 성취든 사회적 헌신이든, 우리가 의무감에 눌리고 죄책감에 옥죄어져 질식하기를 바라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되새긴다. 강박에 눌리는 삶이 아닌 자유를 누리는 삶, 하나님의 품 안에서 고요와 평온 속에 거하는 삶, 그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다.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한 사람의 이웃으로서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