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오듯, 그렇게
[411호 그 사람의 설교 노트]
2024년 12월 3일 계엄령 선포와 이후 탄핵 정국의 정치적 긴장 상황에서 맞이한 성탄 주일에 전했던 설교입니다(본문: 눅 2:1-21, 마 2:1-12).
지난 12월 둘째 주일, 계엄 직후 드렸던 주일예배의 공동체 기도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12월 3일 그날 밤 느꼈던 처참한 기분을 잊지 못합니다. 대통령은 자기 뜻이 계속 좌절되자 막무가내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습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통해 1980년 광주를 전 세계에 알린 해와 그 아픈 역사를 겪고도 다시 계엄령을 선포한 해가 동일하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분노와 절망, 공포를 느낍니다. 그는 상식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앞으로 또 어떤 행동을 할지 예측되지 않습니다. 주님,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알려주십시오. 움직이겠습니다. 정점에 달한 악은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을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앞서 행동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지혜를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이 기도를 드리면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어쩌면 12·3 계엄령 선포에 대한 주님의 예비하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년이 온다》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를 일깨워주었고, 그렇게 우리에게 조금 더 먼저 찾아온 ‘소년’ 덕분에 우리는 이 혼란한 시기에 저항의 연대와 행동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2024년 성탄절에 우리가 묵상해야 할 ‘주님의 오심’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연결해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예수의 오심을 《소년이 온다》가 우리 시대에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해해보는 일은 우리의 시대적 상황에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학살에 대한 기억을 다룬 작품입니다. 여섯 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장마다 서로 다른, 하지만 연결된 희생자들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나이에 학살을 목격하고 결국 그 학살에 희생되는 ‘동호’ 이야기, 계엄군의 무자비한 시신 처리 현장에 있었던 이미 주검이 된 상태의 ‘정대’ 이야기는 희생자들의 목소리입니다. 그리고 당시 문화계 검열 상황을 알려주는 출판사 직원 이야기, ‘시민군’이라는 이름으로 시설에 수감되었던 이들 이야기는 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대우를 경험했는지, 새로운 시대가 열린 이후에도 그 일상이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되어 회복되기 어려운 것이었는지를 말해줍니다. 마지막 장은 ‘동호’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동호 어머니를 통해서 5·18 희생자 가족들이 얼마나 끔찍한 후회와 자책을 안고 살아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44년 전, 광주라는 공간에서 열흘 동안 벌어진 학살이 남긴 흔적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어 기억하는 작업이 바로 이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입니다.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에서 ‘소년’은 참혹한 현실 한가운데서 희생된 순수한 인간을 상징할 것입니다. 그리고 ‘온다’라는 말은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부터 다가와 우리의 집단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소년이 온다》는 우리 사회가 훼손하거나 왜곡하지 말아야 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주욱 펼쳐놓고, 이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가 겪는 이 사회적 혼란은 우리가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기억해야 하는지를 정리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버려서 겪게 된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의식 없이 왜곡된 현실에 사는 이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 국민이 얼마나 위험한 일들을 겪게 되는지를, 2024년 12월에 우리는 너무나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의 오심’을 어떻게 기억하고 정리하는가에 따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행동을 아주 다르게 만들 수 있다고 알려줍니다.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이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되새기게 하면서 우리를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공동체로 이끌듯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예수의 오심’이 우리의 집단적 기억을 되새기도록 하여서, 그 기억이 우리를 참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의 오심’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단지 아주 오래전 과거 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이라고, 교리적 해석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으신가요? 혹시 여러분에게 ‘예수의 오심’이 시대적인 배경이 지워진 채로 기억되고 있다면, 예수와 처음 마주했던 사람들 이야기가 지워진 채로 기억되고 있다면, ‘예수의 오심’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예수는 고통스러운 이 세상의 역사적 현장 한가운데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 속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시던 그때는 로마제국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피지배 민족을 억압하던 시기였습니다.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고, 군사적 폭력과 정치적 억압을 통해 반란의 기미를 철저히 차단하던 시기였습니다. 유대의 헤롯 역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국 편에 서서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통치하였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예수의 오심’은 로마제국과 헤롯의 폭정 가운데 억압받는 사람들 곁에 무능한 아기로 태어나신 구원자의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2:1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만삭의 몸으로 명령에 따라야 했던 마리아 이야기로 이어갑니다. 마리아가 긴 여행으로 지쳐있을 때,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여러 곳으로부터 거절당했을 때, 가장 낮은 곳으로 밀려났을 때, 바로 그때 마리아에게서 아기 예수가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 예수는 마구간 안에, 동물들의 밥통인 구유 안에 누이셨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가장 먼저 듣고 찾아온 이들은 들에서 밤을 지새우며 양 떼를 돌보던 목자들과 구원자가 오실 것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동방박사들이었습니다.
‘예수의 오심’은 이렇듯, 쫓겨나고 거부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고,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는 이들의 이야기, 사람들보다 동물들에게 더 가까웠던 삶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기쁜 소식, 오랫동안 구원자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신앙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을 때 일어났던 일들과 이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 이야기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입니다.
5·18의 기억을 잊고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권력을 독점하고자 다시 과거의 비극을 되풀이하려고 시도하듯이, 반드시 공유해야 하는 집단적 기억을 잃어버리면 공동체는 방향을 상실하고 맙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끄는 것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집단적 기억입니다. 예수가 우리에게 오실 때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기억하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참된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나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입니다.
《소년이 온다》 3장은 모든 문학이 사전 검열을 받아야 했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검열 때문에 실리지 못한 한 줄이 나옵니다. 저는 검열 때문에 삭제되어야 했던 이 한 줄이 이 책에서 꼭 말하고 싶었던 한 줄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국,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결정합니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아닙니다.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거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폭정의 시대에 희생된 순수한 존재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윤리를 상기합니다. 소년이 오듯, 그렇게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오십니다.
여러분, 인간은 무엇인가요? 참하나님이면서 참인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의 인간성은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의 오심’을 생생히 기억하며, 그 기억 속에서 우리 인간성과 신앙의 본질을 되새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그래서 이 위기의 순간을 잘 극복해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은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신비로운 일이 아니라, 교리적으로 정리가 끝난 해석이 아니라, 오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혼란의 시대에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에 대한 소식입니다. 소년이 오듯, 그렇게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지금 맞아들입시다.
함께 기도합니다.
모든 시공간을 뚫고 오늘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
주님에 대한 기억이 우리를 올바로 이끌기를 원합니다. ‘예수의 오심’이 이 시간 우리 안에 생생히 살아나도록 하여주십시오.
혹독했던 시절, 낮고 낮은 곳, 냄새나는 곳, 연약한 이들 곁에 오신 주님께서, 오늘 이곳에 우리에게도 임하여 주십시오. 우리 곁에 지금 빛으로 다가와 주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이 사회의 빛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공급하여 주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기쁜 소식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수연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공부한 후, 이화여대에서 구약학을 전공하며 석사와 박사 학위를 마쳤다. 첫 사역지 새맘교회에서 교육전도사로 있다가 담임목사로 청빙되었다. 오늘도 교우들과 우정을 나누며 함께 자라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