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모임은 진화한다?
[411호 독자 통신]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뉴스를 볼 게 아니라, 공동체가 더 좋은 뉴스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공동체를 강화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 제프리 빌브로의 《리딩 더 타임스》 중에서
2025년 1월 현재, 복상 지역별 독자모임은 마흔 곳이 넘습니다. 물론 모든 모임이 활발하게 운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매달 10곳 넘는 모임에서 활동 사진과 소식을 전해옵니다. 이번 호에는 독자 공동체로부터 도달한 이색적이고 특별한 소식을 함께 나눕니다.
김포·제주·미주 독자모임의 특별한 소식
지난해 12월 5일 김포 독자모임은 ‘윤석열 탄핵 촉구 시국 기도회’에 ‘복음과상황 김포 독자모임’으로 연서명 및 참여를 해도 되는지 문의를 해왔습니다. 지역별 독자모임은 복상의 협력/지원 아래 자생하여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모임이지만 ‘복음과상황’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만큼 사무실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내부 논의 후, 자유롭게 서명하고 참여하셔도 좋다고 말씀을 드렸고, 독자모임 담당자가 모여있는 카톡방에도 공지했습니다.
김포 독자모임에 참여 중인 김영준 독자는 “기독인들이 모여 기도하고 행진하는 자리에 김포 독자모임도 참여했습니다. 여의도를 걸을 땐 기독교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에 부끄러움이 길었습니다. 오래 부끄러워하며 끊어지지 않는 행진으로, 계속 걸으려 합니다”라고 당시의 소감을 전해왔습니다.
제주 독자모임은 운영하기 어렵기로 소문(?)이 난 곳입니다. 지역별로 거리 차이가 있어 제주 시내가 아니면 쉽게 모이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지난해 다시 독자모임이 생겨, 제발 계속 잘 모이기를 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는데요. 지난 독자모임에서는 불법 계엄 사태를 규탄하는 집회에 함께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위해 치러진 총선거를 거부한 유일한 지역입니다. 공권력에 대한 억압과 피해를 당해본 제주도는 이번 불법 계엄 사태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하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기독교의 교세가 강하지는 않지만, 저희 복상 독자모임 멤버들은 하나님 나라 복음이 교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이라고 믿기에 이번 집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이용주 복상지기)
지난해 말에는 미주 지역에도 독자모임이 생겼습니다. 같은 미주라고는 하지만, 아시다시피 지역마다 시차가 존재하는 넓은 땅이기에 줌(Zoom)을 통해 독자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 모임이니만큼 소감을 한마디씩 들어 보았습니다.
“나와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니, 처음이지만 반갑고도 따뜻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창의적인 모습으로 고민을 풀어가고 실천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배웠습니다.”(J. Oh & J. Park)
“참가자들의 진지한 모습에 감동하였습니다.”(M. Park)
“같은 〈복음과상황〉 안에서도 다양성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같은 지향성을 가지고 서로의 삶을 통해 배워갔으면 좋겠습니다.”(J. Hyun)
“인연이 있으면 천 리 밖에서도 서로 만난다고 하지요. 박제화된 교리와 제도와 관습에서 벗어나, 참된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는 기쁨의 여정에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J. Han & S. Kim)
“교회 안에서는 자칫 놓칠 수 있는 우리가 속한 사회의 관심사를 나누어 좋았습니다.”(H. Shin & Y. Kim)
이 모임을 이끄는 김영진 복상지기는 내란 사태로 어지러운 한국 상황에 대한 안부도 잊지 않고 보내왔습니다. 멀리 있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뉴스를 보게 된다고요. 미국 LA 지역의 화재가 하루빨리 진압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범진 기자
약자들의 연대를 위하여
서울 도봉·용산·서초 연합 독자모임 북토크
《룻기, 환대와 연대의 이야기》(라이트앤라이프) 북토크가 서울 도봉·용산·서초 독자모임 주관으로 열렸습니다. 저자인 이종철 목사(빛과생명교회),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연구위원), 박진영 공동대표(녹색정치연구소)가 패널로 참여했고, 도봉 독자모임 복상지기인 이덕주 사서교사(송곡관광고)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이 책과 관련해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해 스무 명의 독자가 참석했습니다. 복상 독자들이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모인 환대와 연대의 자리였습니다. 행사는 1월 6일 저녁,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강의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룻기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저자는 이 책을 소개하며, 모압 사람이던 룻의 이방인 정체성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룻기를 좀 더 세속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며, 룻과 나오미의 관계는 신앙의 전통적 가치인 효성과 순종이 아닌 연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실이 엄혹한 상황일수록, 의지할 곳 없는 상황일수록 ‘연대’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진영 공동대표는 “좋은 책은 질문을 많이 남기는 책”이라며,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질문이 떠올랐고, 특히 “룻의 시선은 무엇이었을까?”라는 물음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룻이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혈통을 잇는 족보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몰랐을 텐데, 그것이 룻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도 질문으로 남겼습니다. 또한, 진정한 환대는 자기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할 수 있는 것인데, 자신이 정말 환대를 해본 적이 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김근주 교수는 룻과 보아스 사이를 사랑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보아스가 구원자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무리한 해석이라고 이야기하며, 룻기를 사람들과 함께 읽으며 공동체 안에서 룻을 어떻게 번역하고 평가할 수 있을지 논의해보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책이 남긴 질문들
이어서 참석자들의 질문과 의견을 듣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송인하 독자는 환대와 연대의 사례, 환경적 메시지에 대해 질문했는데요. 이에 박진영 공동대표는 여성주의 미술가 김인순의 〈일어서는 삶〉 전시에서 여성 동지들이 머리띠를 하고 한쪽 구석에서 밥을 해 먹는 걸개그림을 언급했습니다. 연대의 성과는 단순히 결과가 아니라 함께 모여 먹는 식사에 있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약자들의 연대가 필요한 현실이지만 강자들의 연대가 더 끈끈하기에 약자들의 연대는 함께 모여 앉은 자리, 그리고 울음의 현장에 같이 있는 것 그 자체가 성공 사례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김근주 교수는 성경이 쓰였을 당시를 고려하면, 환경문제에 대한 고찰이나 메시지를 성경에서 찾기는 힘들 거라고 했습니다. 고대사회에서는 환경과 기후 문제가 시대정신이나 신앙적 가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양한 관점에서 다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날 모임에서는 환대와 연대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20-30대 여성에 대한 논의도 많이 나왔습니다. 룻의 입장과 나오미의 전략, 룻과 나오미, 보아스 사이의 환대와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며, 현재 연대가 필요한 곳과 환대가 필요한 사람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습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룻은 누구일까요?
연대가 절실히 필요한 때
참석자 중에는 룻과 나오미가 주체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나오미가 룻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봤던 건 룻을 한 주체로 대우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오늘 나눈 모든 이야기가 개인들의 주체성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많은 상황에서 주체성을 존중받지 못하기 때문에 여러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도, 대통령이 국민들을 주체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다가 국민의 주체성을 존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연대는 자신의 주체성을 자각한 분들의 주체적 행위이기 때문에 이럴 때 연대가 잘 이루어질 수 있다고요.
이날 오신 분들은 성경 속 연대의 가치를 발견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고자, 느슨한 연대 속에서 위로를 얻고자 이 자리를 찾으셨던 것 같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연대는 연약한 자들, 희망이 없는 자들에게 더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위기라고 느낄 때, 우리의 주체성이 간과되거나 제대로 존립하지 못할 때 우리는 연대하며 다시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뜻을 모읍니다. 현실에서도 룻과 나오미, 룻과 보아스처럼 서로를 구원하는 일이 계속 일어나 서로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물론 이날 북토크의 발언처럼, 연대는 성과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함께 있는 시간, 연대하는 행위 그 자체도 소중하고 귀한 것이겠지요.
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