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밥상은 양 같은 봄이길

[412호 책방에서] 우미노 치카, 《3월의 라이온》(학산문화사)

2025-02-26     이수진·김희송
3월의 라이온 1~17(미완결) | 우미노 치카 지음 | 서현아 옮김 | 학산문화사 펴냄 | 각 권 8,000원

3월은 봄을 기다리는 이를 들뜨게 하지요. 시골 서점도 분주해집니다. 긴 겨울 동안 묵었던 것들을 걷어내고 새순, 새싹들을 맞이해야 하거든요. 힘은 들지만 콧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부지런히 봄맞이 채비를 하러 나가려는데, 3월의 책이 뒷덜미를 잡아채네요. 일단 제목에 ‘3월’이 들어가고요. ‘3월’과 ‘라이온’이 너무 찰떡이라 입속에서 버무려져 굴러다닙니다. 심지어 만화책이잖아요!

제목부터 볼게요. 영국 속담 “March comes in like a lion, and goes out like a lamb”에서 따온 거라는데요, 3월은 사자같이 추운 날씨로 시작해 양처럼 따듯한 날씨로 끝난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죠. 제목을 ‘3월의 라이온’이라 지은 건 봄이 왔지만 여전히 스산한 계절을 보내는, 포근한 시간을 기다리는 이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라는 생각이 들어요.

만화는 숫자 ‘0’을 뜻하는 주인공 ‘레이’의 이름을 비아냥거리는 대사로 시작합니다. “‘제로’라니? 너 이름 너무 웃긴다. 그치만 딱 맞는 거 같아, 너한테는. 생각해보면 그렇잖아? 집도 없지, 가족도 없지, 학교도 안 다니지, 친구도 없지, 이것 봐. 네가 있을 장소 같은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잖아?” 키라야마 레이는 안타까운 사고로 가족을 잃고 텅 빈 상태입니다. 그런 레이에게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세 자매가 손을 내밉니다.

맏이인 아카리는 토실토실한 걸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데요. 둘째 히나는 그런 언니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언니는 있지. 뭐든지 주워 와. 참새나 고양이라거나. 옛날부터 그래. 빼빼 마른 애들을 보면, 지나칠 수 없나 봐. 그래서 토실토실하게 만드는 걸 좋아해. 하지만 사람까지 주워 왔을 때는 나도 놀랐어. 그래도 괜찮아. 이제 곧 우리 언니가 토실토실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아, 말만 들어도 배 속이 든든해지는 기분입니다.

상실은 채울 수 없는 허기이기에 상실을 겪은 사람은 빼빼 말라가지요. 뭐라도 먹으라지만, 그리움만으로도 힘에 부칩니다. 누가 상실 속에서 헤매는 이를 살찌울 수 있을까요. 사실 세 자매는 엄마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슬픔의 침묵을 애써 견디는 중이었어요. 아담한 목조주택 거실에서 상실을 떠안고 사는 사람끼리 함께 밥을 먹고, 서로 밥을 먹이는 장면은 추웠던 겨울을 잊게 만드는 따뜻한 봄 같습니다. 양 같은 봄.

겨울 동안 큰 상실을 겪은 이들을 헤아려봅니다. 몸과 마음이 빼빼 말랐을 그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생명의 떡이라 하신 예수께서 준비하신 밥상의 마음을 품어봅니다. 평소보다 조금 더 넉넉하게, 소박하지만 따듯한 밥을 지어야겠습니다. 그렇게 밥 한 공기 더 떠서 빈자리에 놓아두면 봄꽃이 환하게 올라올 것 같습니다.

이수진·김희송
경기도 연천 조용한 마을에서 작은 빵집이자 동네책방, 그리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인 ‘오늘과내일’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