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시민으로 출현하는가
[412호 특집]
비상계엄 선포
작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공포와 분노의 감정이 마치 온몸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듯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이후 검거를 피해 도망 다니며 공포감에 떨던 기억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돌발적으로 터진 비상시국은 숨 막히는 긴장 가운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지금도 상상을 넘어서는 초현실적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이 사건이 어떤 형태로든 곧 정리되겠지만, 이제 한국 정치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987년 이후 보수와 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며 국가 운영의 권력을 바꿔 갖는 과정에서 심한 경쟁과 대립이 존재했지만, 그러면서 오히려 민주적 질서가 정착되어왔고, 대한민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높은 수준에 이르러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그런 마당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이라니! 이런 자폭 행위가 웬일인가?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에 이어 대통령 탄핵 절차와 구속 기소에 이르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광화문과 한남동에서 찬성과 반대로 나뉜 대중 집회의 열기와 아슬아슬한 대치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은 하나의 정치 공동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태로운 분열 상태에 처해있다.
또다시 해방 직후 상황처럼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는 내전 상태로 흘러가는 건 아닐까. 불안감이 몰려온다. 어떻게 하면 극한의 혼란을 극복해서 국가는 정상적인 운영 시스템을 가동하고 시민들은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일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기본 질서를 규정하는 헌법에 근거하여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일이다. 국가 시스템이 밑동부터 흔들리는 지금, 가장 강제력 있는 공적 기준은 1948년 처음 제정된 이후 숱한 시련과 굴곡을 거쳐 오늘에 이른 대한민국 헌법이다.
대한민국 우파
정치학자 박찬표에 따르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은 현재의 남한 정치 질서의 원형이 형성되는 과정이었고, 그 유산은 지금까지도 한국 정치체제를 규정하는 근본 요인으로 작용해오고 있다.1)
1948년 국가 형성 과정은 특히 ‘반공 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수립하는 과정이었는데, 당시 각축하던 다양한 이념과 정치 세력을 국가 내의 경쟁 제도로 포섭·통합하지 못하고 물리적 폭력을 통해 철저히 배제하여 근본적 한계를 안고 시작했다고 한다. 정치 경쟁의 공간은 매우 폐쇄적인 형태가 되었고, 극도로 협소한 이념적 스펙트럼이 고착되었다는 지적이다. 이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기보다는 반공 체제에 방점이 찍힌 ‘한국적 민주주의’로 한동안 작동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우파 정권은 처음부터 다른 경쟁 세력을 물리적 폭력으로 억압·배제함으로써 오랜 기간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했다. 이것이 우파 정권의 태생적 한계이자 성향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 역시 잠복되어있던 한국 우파 정권의 속성이 드러난 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우파의 주된 가치는 ‘반공’과 ‘경제성장’에 있었다. 강력한 공산주의 세력에 대항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워 피로써 이를 지켜냈다는 것, 강력한 리더십 아래 짧은 기간 안에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것, 여기에 우파의 든든한 자부심이 자리 잡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이러저러한 문제는 불가피한 희생이었을 뿐,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남북 간 체제 경쟁에서도 승리한 성공 신화가 독재와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한다.
그동안 성공적으로 국가를 운영해왔다고 자부하는 우파 입장에서는 국가권력을 잃고 사회 주류의 위상을 상실하는 것은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이 이룩한 성과라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비판받고 무시되는 상황을 보며, 자존감을 박탈당하는 상처를 입고 참을 수 없는 굴욕을 느꼈을 수 있다. 더구나 한때 북한의 주체사상을 공부하고 미군 철수와 재벌 해체를 주장하며 ‘폭력 시위’를 일삼던 이들이 정권의 요직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피로 세운 대한민국이 종북 좌파들에게 장악되어 망하게 생겼다!
태극기 부대로 불리는 대중 집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깊은 울분과 비분강개의 정서가 느껴진다. 현실의 냉전 체제는 해체되었어도 이들에게 냉전적 사고 구조는 국가와 사회를 바라보는 원초적 틀로 남아있다. 또한 북한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전혀 대한민국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북한에 대한 원한과 공포는 여전히 사고의 심층에 자리하고 있다.
최소한의 룰
단순하게 표현한다면, 나는 국가 체제를 둘러싼 한국 현대 정치사는 시민들이 군사적 폭력과 배제에 기반한 국가권력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개혁하여 최소한의 민주주의 질서를 구축해온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존재하고 대표되지 못한 소수자들 목소리가 제도 밖을 겉돌고 있어 갈 길이 멀지만, 변화가 원천 봉쇄되어 비합법적 투쟁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그런 시대는 이제 아니다. ‘법 밖의 정의’에 대한 고민도 법치주의를 전제로 한 문제의식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정치 세력도 존재하고, 극소수지만 여전히 민족 자주의 길을 추구하며 반미 투쟁을 촉구하는 이념 조직도 존재한다. 한편, 무속이나 유사종교 집단과 연합하여 가짜뉴스와 유언비어를 정쟁 수단으로 삼는 극우 집단이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하며 지분을 주장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갈수록 극단의 분열과 대립으로 치닫는 양상이 심히 우려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정치 경쟁의 장이 넓어졌고 자유로운 사회가 되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쟁과 대립 가운데서도 어떻게 공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민주주의를 더욱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이다.
그런 점에서 1월 19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는 그동안의 지난한 노력을 일거에 무너뜨리고 민주적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는 퇴행적 반동이다. 결코 가벼이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유민주주의 기본 질서를 파괴하는 자해 행위이다. 정책과 이념이 다르다고 무력을 동원하여 경쟁 상대를 제압하려는 것, 최소한의 전제인 헌법적 원칙에 따라 질서를 회복하려는 기본 절차를 폭력으로 무력화하려는 행위는 모두 어떤 논리로도 해명될 수 없는 심대한 범죄이다.
나는 이번 비상계엄(내란) 사태는 좌파와 우파 간 싸움도 아니고, 보수냐 진보냐 선택하는 문제도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정치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게임 룰이 무너지는가 유지되는가의 문제다. 정치의 장에서 신념이 다르다고 총(폭력)을 들고나오면 절대 안 된다는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그런 사람(집단)과, 그런 방식을 옹호 지지하는 사람(집단)이 있다면 좌든 우든 그를 정치의 장에서 완전히 퇴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끊임없는 폭력의 악순환으로 처참히 망가질 것이다. 국가권력을 둘러싼 정치 경쟁이 생사를 건 적대의 장이 되고, 상대방은 같은 국민으로서 공존할 대상이 아니라 절멸할 대상이 되는 그런 사회로 다시는 돌아가면 안 된다.
나에게 ‘헌법’이라 하면 대통령이 국회해산권과 거의 무제한적인 긴급조치권을 가졌던 괴물 같은 ‘유신헌법’이 먼저 떠오른다. 법치주의와 국가의 공권력은 다른 정치 세력을 억압하고, 약자의 인권을 탄압하며, 오로지 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고 독재 정권을 유지하는 일에 봉사하는 지배 권력의 통치 수단일 뿐이라는 관념이 강하다.
지금의 헌법과 법질서에 완전히 동의할 수 있는 이념 집단이나 정치 세력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지만, 이 질서가 무너지면 국가는 해체되고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폭력만이 남을 것이다. 한 헌법학자 말처럼 “헌법이 구타당하는 시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자 하는 국민 다수의 의지가 중요한 시국이다.
이번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이 이 시대를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공동의 경험이 되어, 서로 신념과 정치 성향이 다르더라도 경쟁하며 공존할 수 있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역사적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한국 개신교의 극우화
일부 극렬 집단이 서부지법 건물에 침입하여 기물을 파손하고 난동을 부림으로써 사법부를 위협하고 침탈하려 한 ‘서부지법 폭동 사건’은 이번 비상계엄 시국에서 민주주의 기본 질서의 위기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이는 역사에 기록될 안타까운 사건이다.
한국 정치 무대에 극우 세력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모습도 당혹스럽지만, 더욱 개탄스러운 일은 배후에 개신교 조직이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며 거친 언동을 일삼는 극우 대중 집회가 개신교 신자들의 네트워크에서 나오는 동원력과 자금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문제는 이런 집회가 갈수록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행태로 진화하더니, 급기야 국가의 헌법 질서를 파괴하는 지점에까지 도달한 것이다.
그간 극우 정치 집회를 주도해온 집단은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고, 이들이 주도하는 집회와 운동에 다수 개신교 지도자와 신자들이 동조하고 참여한다는 점에서 극우 정치 세력과 우파 개신교 집단은 거의 분리되지 않는다. 한국의 극우 정치 세력은 사실상 보수 우파 개신교 토양에서 자라난 변종으로, 보수 개신교인 중 상당수의 지지와 응원까지 받는다. 그만큼 오늘날 보수 개신교는 점점 극우화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신자들은 대한민국 정치에서 폭력적인 극우 정치 세력으로 출현하고 있다.
극우 기독교인은 개신교 안에서 소수이지만, 극우 정치 세력 안에서는 강력한 인적·물적 자원을 제공하는 핵심 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개신교를 과잉 대표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하는 한, 앞으로 그런 상황과 인식은 더욱 고착될 것이다. 한때 근대 문명 전달자로서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독립운동 선봉에 서고,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고난을 자처하던 개신교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하게 되었을까?
정교분리?
교회가 정치에 개입해도 되는가 안 되는가는 별로 문젯거리가 되지 않는 시대에 왔다. 기독교인 개인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선거에 참여하는 걸 문제 삼는 교회나 교단은 없을뿐더러, 이제 더 이상 정치 참여는 우파나 좌파 어느 한쪽만의 레퍼토리가 아니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하든 안 하든 중요한 것은 이유와 성격이다. 특히 참여해도 된다, 또는 참여해야 한다는 태도에 대해서는 이제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가가 중요한 쟁점이 된다.
강인철은 정교분리 논란과 관련하여, ‘법률적 규범’으로서 정교분리와 ‘종교적 규범’으로서 정교분리를 뒤섞어 쓰거나, ‘종교적 규범’으로서 정교분리를 ‘법률적 규범’으로서 정교분리로 확대해석하는 것이 혼란의 원인이 된다며 이를 구별할 것을 주문한다.2)
법적 규범으로서 정교분리란, 근대국가들이 경찰과 상비군 등을 통해 폭력을 독점하고 동시에 전 국토에 걸친 중앙집권적 지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더욱 강력해진 상황에서 갑(국가)의 횡포와 간섭으로부터 을(종교)을 보호하는 데 근본 취지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정교분리를 통해 국가는 종교의 족쇄로부터, 종교는 국가의 족쇄로부터 해방되었으며, 국가로부터 해방된 종교는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 참여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교분리에 의해 종교인들에게 ‘역사상 처음으로’ 체제 비판적 정치 참여의 구조적 가능성이 활짝 열린 셈이다. 종교의 정치 참여 문제는 종교 쪽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있게 되었다.
나는 교회·교단 등 공식적 종교 기관이 정치 쟁점에 대한 발언이나 행동을 너무 자주 하는 건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목사·신부 등 성직자들도 단체를 이루어 정치 문제에 참여하는 일에 신중해야 하고, 심각한 인권침해나 전 사회적 위기 같은 경우로 일정한 제한을 둘 필요가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봉쇄되지 않고 자리를 잡아가는 시대에는 종교의 정치 참여 빈도가 잦을수록 영향과 효과가 감소하는 음(-)의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모든 짐을 질 수는 없다. 현재 종교는, 종교가 삶의 대부분 영역을 관장하는 근대 이전 사회와 달리, 철저히 분업화한 체계에서 종교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기관 역할을 해주기를 사회의 구조 기능적 측면에서 요청받는다. 종교는 이 요청에 충실히 응하는 기능적 전문성 수준만큼 사회의 신뢰와 인정을 획득할 수 있다.
예수는 우리를 종교로 부르지 않고 삶으로 부른다(본회퍼). 그런 점에서 신앙은 삶의 모든 것이며, 신자들의 공동체가 정치와 사회까지 모두 포괄하는 더 큰 세계를 드러낸다고 고백하는 신자들이 보기에, 교회를 이런 분업 체계에 욱여넣는 일은 수긍할 수 없는 교회 본질의 왜곡이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구조 내 종교 기관 정체성이 기본이 되어야 비로소 그다음의 사회적 공신력을 얻을 수 있다는 현실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일부 부서가 사회적·정치적 활동을 담당할 수는 있겠지만) 교회는 복지센터가 아니며, 정치 행동을 위한 아지트는 더더욱 아니다. 교회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는 것은 일차적으로 종교 기관으로서 공적 신뢰를 획득할 때이며, 이런 공적 신뢰를 획득한 교회라야 정작 중요한 위기의 시기에 힘 있는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다.
물론 특수선교를 위한 교회가 필요할 수 있고, 정치 문제 역시 특수선교의 한 영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상시적인 정치 문제에 참여하는 일은 이익과 신념 간의 첨예한 갈등을 다루는 현실 정치 특성상 종교 형태보다는 시민단체 형태가 더 적절할 것이다. 목사나 신부가 주도하기보다는 일반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하여 활동할 때 더 큰 공신력을 갖는다. 가장 적절한 예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아닐까 싶다.
이 시대 교회의 기도제목
나는 교회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사회선교 차원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세속 사회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을 위한 시민정신 교육이라 생각한다.
교인들은 대부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교회 모임에 참석한다. 나머지 대부분 시간은 세속 사회에서 세속적 규칙에 따라 생활한다. 그 시간에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표현하며 어떤 시민으로 드러나는지가 실제 그 사람의 신앙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의 설교·기도·찬양·예전 등은 모두 필수 영성 훈련이며, 동시에 시민으로 살아가는 일상을 위한 훈련이자 동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교회다움을 통해서 항상적으로 세속 사회의 현실에 관심을 두고, 세속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
교회는 한때 ‘에클레시아’(민회, 시민총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국가 안의 새로운 국가이고, 사회 안의 새로운 사회이다.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적 경험은 신자들이 교회 밖의 삶을 살아갈 때 상상력이 되고,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구시대적 잔재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조직이 교회이다. 성서의 언어는 왕이 통치하고 신분제도와 남성중심주의 관습이 지배하며 남녀노소와 짐승 등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진멸’(헤렘)하는 야만적인 전쟁 방식이 존재하던 당시의 고대적 세계관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사무엘상 15:3). 개신교 교회는 전통적으로 카리스마적인 영향력을 가진 목회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왔고, 권위주의에 대한 자발적 순응과 복종의 문화가 깔려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항상 강조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 구조에서는 설교와 목양 활동으로 성서 해석 권위(권력)를 거의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담임목사가 하나님 주권의 대리자로 행세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과 수평적 토론 문화를 경험하기란 매우 어렵다. 구성원들 간에 신앙 성숙도나 교회에 대한 헌신도의 차이도 존재한다. 성원권의 한계를 분명하게 설정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단한 삶에서 받은 압박과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고 싶은 심리적 의존 상태를 지니고 있어,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시민정신과는 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다는 점도 작지 않은 고민이다.
목회자는 대부분 공동체에 대해서 남모르게 홀로 전적인 책임을 느끼며 혼자만의 고민을 견뎌야 할 때가 많고, 교인들에게 늘 확신과 감동을 전해야 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어서 함께 토론하고 합의하는 절차에 매우 미숙한 듯 보인다. 이것은 성품이나 지식의 문제가 아니고 교회 구조의 문제이고, 훈련을 통해 단련되어야 할 역량의 문제다. 중요한 것은 교회 내 민주적 의사 결정 구조와 이를 진행할 구성원들의 역량이다. 이를 위해 수직적 은혜의 경험뿐 아니라, 일정한 범위 안에서의 수평적 토론 문화가 필요하다.
말씀을 듣는 데서 오는 은혜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교회 조직에서 각자의 의견과 주장을 드러내어 때로는 심한 논쟁으로 감정적 충돌에 이르기도 하는, 그런 토론 문화를 갖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공동체의 분열과 해체 요인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여기에 특히 평신도 지도력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공동의 지향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이질성을 품을 수 있는 만큼 그 공동체는 힘과 확장력을 가진다.
말씀으로부터 삶의 용기와 동력을 얻고 거룩한 성례전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하는 곳이면서, 동시에 세상 다른 곳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따뜻한 대화와 토론(논쟁)이 가능한 그런 교회는 불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런 대화와 토론 문화야말로 이 시대 교회의 기도제목이고, 성령께서 주시는 열매라고 믿는다.
교회 밖의 시각과 언어 배우기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독교인들이 교회의 창을 통해서만 세상(정치사회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 세속 사회의 눈으로도 교회와 신앙을 돌아볼 줄 아는 시각과 사고의 훈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앙의 열정이 클수록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객관화인데, 바로 이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건강한 시민에게 필요한 기본 교양이자 지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이 교회 안에서는 신앙의 언어로, 교회 밖에서는 세속의 논리로 이중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팎에서 모두 신앙과 지성의 이중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교양을 배우기를 권하고 싶다.
나는 그동안 ‘솜니움(기독교정치사회연구소)’에서 여러 공부 모임을 진행하면서 기독교인들이 모여 정치사회 문제를 이야기할 때 주로 교회의 창을 통해서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을 종종 느꼈다. 그래서 대화는 항상 교회가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론에서 맴돌다가 결국은 교회 비판, 목사 비판으로 귀결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사회 현실에 대해 말할 때 교리적 개념이 아닌 다른 언어를 별로 갖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우리 공부 모임은 점점 더 신학보다는 사회학·정치학을 공부하는 커리큘럼을 많이 포함하게 되었다. 우선 사회학·정치학에서 우리 사회와 정치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배우고, 그다음에 신학으로 돌아와서 고민해보자는 의도였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기독교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거의 결정적인 작용을 하는 요소는 교회에서 듣는 설교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건강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사회 인식을 배우는 데 일차적으로 필요한 것은 교회를 전제로 하지 않고 사회를 그 자체의 현실성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훈련이다.
사회과학에서 볼 때, 교회나 신앙 행태는 사회현상의 하나일 뿐이다. 기독교인들이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다양한 신앙적 행위나 표현이 사회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인지, 또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사회과학은 연구할 수 있다. 즉 순수한 신앙적 동기에 의한 행위나 표현이 사실은 기존 사회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고, 또 사회에 특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종교 집단은 적극적으로 정치 활동에 참여하든 하지 않든 그 자체로서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존재한다. 종교적 언어로 표현된 교리도 쉽게 특정한 정치 이데올로기 형태로 번역되고 활용될 수 있는 셈이다.
사회를 공부하는 것은 어떤 종교적 해석 틀에 의지해서 사회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인식 이전부터 객관적 실체로 존재하며 어떤 절대적 힘으로서 우리 삶을 규정하는 사회(또는 사회적인 것)의 현실성을 대면하고 포착할 수 있는 사유의 힘을 배우는 데 있다. 교회의 신학(교리)을 세속의 언어로 번역한 것이나, 신학(교리)의 틀로 세속 사회를 바라보는 것을 진정한 의미의 기독교 세계관이라 할 수 있을까? ‘신 없는 자율적 세계’로서의 세속 사회(본회퍼) 그 자체를 객관적 실체로 충실히 이해하는 과정 없이는 어떤 세계관도 현실적 힘을 획득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나라 시민이면서 동시에 세속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기도 하다. 나는 이제 기존의 ‘제자훈련’보다도, 영성과 책임적 시민윤리를 포함한 형태의 ‘시민 훈련’이 교회 안에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신학·정치신학과 같은 식의 신학적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세속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채로운 사람들의 다양한 신념과 취향을 이해하고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이중 언어 구사 능력이 필요하다. 공론장에서 비기독교인들과 대화·토론할 수 있는 이중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출 때 기독교인들은 비로소 말이 통하는 좋은 시민으로 인정받고 신뢰받을 것이다.
신뢰받는 시민의 출현을 소망하며
카스 무데는 극우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한 가지 방법은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민주주의 강화에 중점을 두는 일이라고 말한다(《혐오와 차별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위즈덤하우스).
조선왕조가 붕괴되고 새로운 근대국가 수립이 요청되는 전환의 시대에, 많은 진취적 청년이 교회 활동에서 새로운 문화와 정신을 배우고 민주주의를 연습했다. 오늘날에도 우리 시대에 필요한 민주적 역량을 배울 수 있는 곳이 교회가 되길 소망한다.
성소수자가 자기 정체성으로 상처받는 일이 없는 공동체, 장애인이 이동하는 데 불편하지 않은 교회, 노인과 청년이 1/n의 발언권으로 대화하는 문화를 가진 교회, 최대한의 이질성과 다양성을 품을 수 있는 역량을 훈련하는 공동체가 가능할 때 교회는 진정 새로운 국가가 되고, 새로운 사회를 형성하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교회의 신자들은 세속 사회에서 신뢰받는 시민으로 출현하게 될 것이다.
1) 박찬표, 《한국의 48년 체제》(후마니타스)
2) 강인철, 〈정교분리 이후의 종교와 정치: 의미와 동학〉,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Vol. 26》(2014)
김민수
본지 이사. 1970-1980년대 기독학생운동(KSCF), 기독청년운동(YMCA)에 전념했고, 구로공단에서 활동하면서 ‘산돌노동문화원’ 간사로 일하던 중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 활동가의 삶을 청산하고 생업에 매진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짧게 했고, 느지막이 신학책이 읽고 싶어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서 공부하고, ‘기독교정치사회연구소(솜니움)’ 대표를 역임했다. 번역서로 아프리카 흑인해방신학자 알랜 뵈삭(Allan A. Boesak)의 《우리는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한국신학연구소, 1987)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