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성서, 그리고 메시아
[412호 특집]
성서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 누구일까? 예수? 아니다. 예수쟁이들은 예수를 신이라 믿으니 논외로 해야 한다. 나는 다윗과 바울을 들고 싶다. 일반인들에게 묻는다면 아마 다윗을 말할 것이다. 데이비드(David), 이름도 친숙하고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의 계보를 연 사람이다. 시편의 저자이며, 성전의 터를 놓은 사람이며, 전쟁에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으며 일생에 단 한 번의 기적도 없었지만 나라를 일구었다. 그런데 이 위대한 사람에겐 그 위대함만큼이나 거대한 그림자가 있다. 그는 광야 떠돌이의 삶에서도 생사를 함께했던 충신 우리야의 아내를 겁탈한 것도 모자라, 자신이 임신시킨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의 배가 불러오자 계략으로 우리야를 죽인 간웅이다. 다윗은 이후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빌었고, 다윗 왕가는 그의 죄로 말미암아 속에서 썩기 시작했다. 다윗의 아들 중 두 명은 형제들에게 칼에 맞아 죽었고,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키다 다윗의 부하에게 죽게 된다. 그럼에도 다윗은 건재했다. 그는 왕으로 죽었고 그의 자손들은 대를 이어 왕의 자리에 올랐다.
다윗이 특별한 존재인 이유
다윗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내린 가장 중요한 법인 십계명의 여섯째 계명부터 마지막 계명까지 모두 어겼다. 우리야를 죽였고(살인), 간음했으며, 우리야의 소유를 도둑질했고(당시 아내는 남편의 소유였다), 우리야를 죽이기 위해 거짓말을 했으며, 우리야의 소유를 탐했다. 이 중 처음 세 개의 법에 대한 위반은 죽음에 이르는 죄가 된다(출 21:12-14; 레 20:10; 출 22:1-4). 왜 다윗은 죽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왕이기 때문이다. 원래 십계명은 광야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린 법이다. 광야에서 모든 백성은 기능 면에서 맡겨진 임무가 있었지만 서로에게 평등한 존재였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대국가에서 왕은 법의 질서를 대리하는 존재가 된다. 왕은 법에 종속되지 않는다.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사법 조직 자체가 왕의 통치하에 존재했다. 다윗이 벌을 받지 않은 이유는 그가 눈물로 회개했기 때문도, 하나님께 용서받았기 때문도 아니다. 단지 그가 왕이었으며, 죽을 때도 왕의 자리를 지켰고, 자기 아들을 왕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어긴 십계명은 광야에서 모세와 백성들이 하나님께 받은 율법 중 하나이다. 십계명에 기록된 사형에 이르는 형벌은 하나님이 내린 명령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이기에 자신이 내린 법에 구속되지 않는다. 오직 법을 내리고 심판할 뿐이다. 한편, 십계명과 율법을 받은 모세와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율법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바란 광야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그 유명한 가나안 정탐꾼 이야기가 나온다. 결과는 좋지 않았는데, 정탐꾼들에게 보고를 받고 겁을 먹은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않고 애굽(이집트)으로 돌아가기 위해 새로운 지도자를 찾기 시작한다(민 14:1-10). 울며 겨자 먹기로 광야에서 40년 방황을 시작할 때, 백성들 중, 고라라 하는 레위 지파 사람이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250명의 지도자급 사람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고라와 그의 무리는 땅속으로 삼켜졌고, 250명의 지도자가 불에 타 죽는 비극이 일어난다(민수기 16장). 이 사건은 처음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내린 직접적인 폭력으로, 신이 직접 죽음을 내리는 사건이다. 이는 신이 내린 지도자, 또는 신의 대리자를 백성들이 교체할 수 없으며, 위반하면 신의 심판으로 다스린다는 전례를 남기게 된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일 뿐, 왕은 아니었다. 광야에서 백성들은 신이 행하는 기적과 형벌 속에서 담금질되었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원했지만 신은 허락하지 않았다(신 3:26-27). 게다가 여호수아에게 자리를 넘기고 조용히 물러나라고 말한다. 모세는 신의 허락을 받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이후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다윗은 사사 시대를 끝내고 왕권 시대를 열었다. 지금까지 언급된 성서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법은 외부에 그 법을 지탱할 권위 또는 폭력(힘)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다. 모세 시대에는 신(하나님)이 힘의 근원이었고, 다윗 시대에는 왕권이 힘이 된다. 둘째, 힘과 폭력(형벌)의 근원은 법에 대해 예외적 권한을 가진다. 신(하나님)이 예외이듯, 왕도 예외이다. 왕에게 내릴 형벌은 신에게 맡겨지지만 신은 더 이상 왕권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 바야흐로 열왕기상부터 성서의 독자는 왕과 국가가 펼치는 사건들을 보게 된다. 신은 관조하며 평가를 내릴 뿐이다(왕은 여호와 보기에 심히 악하였더라…).
지금은 법의 시대
법이 유지되려면 외부에 그 법을 지탱할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대부분은 형벌이 두려워서 법을 지킨다. 여기에 우리 삶의 딜레마가 생겨난다. 폭력과 형벌이 없으면 유지되지 못하는 법을 삶의 기반으로 삼는 게 이른바 법치국가의 현실이다.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로 삼는 것들, 자유·평등·평화 등은 모두 법의 작동 아래에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매우 제한적인 가치들이다. 생각해보자. 국가가 없는 사람에게 자유가 의미 있을까? 한 나라의 국민이 아닌데 평등이 가치가 있을까? 없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터미널〉에서 보듯이, 어떤 나라에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갔는데, 비행시간 동안 나의 국가 정부가 전복되고 나라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해보자(정부가 사라지면 나라도 없어진다). 내가 가진 여권과 주민등록증은 휴지 조각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타국에 입국할 권리가 사라진다. 자유·평등·평화가 의미가 있을까? 원래 이런 가치들은 신에 의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과거 왕들은 신들의 대리자들로서 마땅히 자신의 영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신민으로 여기고 그들의 삶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근대국가는 그러한 신들과 신화, 왕들이 사라진 시대이다. 이제 국가기관은 입법·사법·행정으로 나뉘어 서로 견제하며 국가를 경영한다. 견제와 경영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법이 신이 되고, 왕이 된 시대가 현대인 것이다. 자유란 합법적으로 내가 획득한 사유재산을 지키고 사용할 자유이다. 평등이란 경쟁의 평등이고, 평화란 법을 지키는 한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다시 다윗에게로 돌아가보자.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죄를 고백하고 뉘우쳤지만 왕이었기에 법의 형벌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생각해보자. 비록 5년의 임기 동안이지만 대통령은 법의 처벌을 받지 않는 것이 법적으로 결정되어있다. 즉, 원래 다윗에겐 하나님이라는 외부의 권위로 존재했던 것이 법 안으로 들어와있는 셈이다. 근대에 이르러, 외부에 있었던 신의 권위와 왕의 권위가 사라지지 않고 법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신과 왕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근대는 그것들이 법 안으로 들어온 상태이다. 이것을 가장 먼저 간파한 사람이 독일의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Carl Schmitt)이다. 슈미트는 그의 저서 《정치신학》을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1) 대부분의 사람은 주권을 국민 권리의 총합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민주적 주권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 근대국가의 헌법이라면, 슈미트는 이를 깡그리 무시한다. 슈미트에 의하면, 주권은 국민에게 있지 않다. 적어도 근대의 법 아래에서는 말이다. 주권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에게 있다. 법에 의해 재판을 받지도 경찰에 의해 수사를 받지도 않는 존재, 한국을 예로 들면 대통령에게 주권이 있다(물론 내란죄는 예외이다).
결국 주권이란 법을 법이 되게 만드는 힘이다. 예외상태의 가장 쉬운 예가 바로 계엄령이다. 법이 법을 중지시키는 것, 법안에 법을 무력하게 만드는 힘이 존재한다. 작년 12월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해보자. 실제로 벌어진 계엄령을 국회에서 무산시켰지만, 수많은 전문가가 말하듯, 만약에 국회 자체를 봉쇄하고 마비시켰다면 그 순간 모든 법체계는 정지되고 헌법 자체도 힘을 잃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바로 예외상태가 된다. 예외상태를 결정하고 그 예외상태에서 결정 권한을 가지는 자, 그가 바로 주권자가 된다. 결국 민주주의 법치국가라 할지라도 카리스마적 권력을 가진 주권자가 계엄을 통해 만드는 예외상태를 방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카를 슈미트의 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할 것이다. 근대의 법은 그 자체로 매우 불안한 예외적 폭력에 기반하여 세워져있으며, 그 법 속에 신이 아닌 인간이 법의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셈이다(한국의 역사는 이를 계속 경험하고 있다).
불완전한 법, 대안은 없는가
오랫동안 바울서신은 신약성서에 포함되어 기독교 경전의 역할을 담당했다. 경전의 역할을 했다는 말은 기독교 교리와 신학의 증거 텍스트로 사용되었다는 의미이다. 교회에 온 교인들에게 구원이 무엇이고 천국이 무엇이고 예배가 무엇인지를 교육하는 데 필요한 교과서 역할을 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기독교는 여타의 종교·문화·민족·국가를 넘어서 ‘오직 예수로만’이라는 공격적 선교주의를 통해 세계의 종교가 되었다.
한편, 기독교적 바울 읽기에서 벗어나 근대의 법 만능주의적 사유에 문제의식을 가진 소수의 현자들은 바울서신에 있는 (율)법에 대한 바울의 문제의식을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었다. 그는 〈폭력비판을 위하여〉에서 폭력에 대한 가장 중요한 주제는 바로 법에 대한 것이라는 엄청난 통찰을 이뤄냈다. 결국 법이 폭력을 억누르고 질서와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법 자체가 폭력(violence)을 기반으로 존치되어 있으며, 폭력에 대한 연구는 바로 법에 대한 연구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2) 발터 벤야민은 폭력 비판에 대한 글의 마지막에서 순환적인 법적 폭력이 아니라 신적 폭력에 대한 가능성을 말하는데, 많은 독자가 이 신적 폭력이 어떤 방식으로든 벤야민이 쓴 〈역사철학테제〉에서 말한 메시아니즘(Messianism)과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법의 목적인 정의와 평화가 법의 폭력에 기반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으로 나타날 것인가를 벤야민이 고민했고, 이 고민에 대해 인류가 내놓은 결과가 성서에 기록되어있는 메시아니즘이다. 결국 바울이 말한 법이 아닌 믿음(정의를 위한 신실함)을 통한 길이 필요하다고 벤야민이 생각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의 온 인류를 위한 복음(기쁜 소식)을 설명할 때 (율)법의 한계를 소개하면서 시작하는 것에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다. 다윗의 왕국과 같은 고대국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법은 모든 사회와 공동체의 기초가 되어왔다. 아울러 끊임없는 전쟁과 폭력 또한 함께 지속되어왔다.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더욱 큰 폭력을 존치해야 한다는 법의 근본 해법은 성공하기 어려워 보인다. 바울은 법의 폭력(유대의 율법과 로마의 형법)에 의해 죽은 예수 메시아가 이제 신의 보좌 우편에 앉음을 목격했다. 그리고 바울은 법의 폭력에서 답을 찾지 않고, 그런 메시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려 했다. 당시 로마제국의 주요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교회(에클레시아)는 폭력이 아닌 사랑(아가페)으로 자신의 삶을 일구어가는 신의 자녀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법의 폭력이 점차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지금 바울의 교회는 어디에 있을까? 적어도 폭력을 정당화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력을 탐하는 집단을 교회라 부르긴 어려울 것이다. 예수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이나 영으로는 부활한 메시아라 고백된다(롬 1:3-4). 신의 영(성령)을 얻은 사람들은 법에 대해 예외적 특권을 누리는 다윗과 같은 자들이 아니라, 법의 목적인 정의를 이루기 위해 오늘도 사랑으로 엄혹한 현실을 극복하며 힘든 한 걸음을 내딛는 메시아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1) 칼 슈미트, 김항 옮김, 《정치신학》(그린비, 2010), 16쪽.
2) 발터 벤야민, 최성만 옮김, 《발터 벤야민 선집 5》(길, 2008), 79-80쪽.
한수현
청수교회 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 대학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Th.M.), 시카고 게렛 신학교에서 목회학(M.Div.)을 공부한 뒤, 시카고 신학교에서 바울신학으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와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신약성서와 바울신학을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