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고 싸우고 극복해가는 이야기의 소중함 ―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목회 중인 김백희 독자

[412호 해외 독자 통신]

2025-03-01     김백희
이하 사진: 인터뷰이 제공

- 복상과의 인연과 함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미국 인디애나주의 피셔스(Fishers)라는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베델 크리스천교회(Bethel Christian Church) 담임목사로 있어요. 복상은 2년 전에 한국에서 온 손님을 통해 알게 되어 정기구독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첫 책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신학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이야기를 하는 잡지 정도로 추측하고 있었는데요. 책을 받고는 그 안의 한국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와 고민이 많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았죠. 다양한 콘텐츠가 실려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 보내주신 가족사진이 멋집니다.

지난 12월에 찍은 가족사진을 첨부합니다. 이곳에서는 성탄절 시즌이 되면 가족의 모습이 담긴 사진으로 성탄 카드를 만들어 성탄과 새해 인사를 하거든요. 세계 여러 곳에 계신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가족 인사라고 생각해주세요.

- 복상 해외 독자 중 50% 이상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땅이 워낙 넓어서 모두 ‘미국’이라는 한 나라로 수렴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말씀하신 대로 ‘미국’이라는 단어로 이 나라가 가지고 있는 다양성을 아우르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원 진학을 위해 유학생 신분으로 이곳에 왔어요. 한국에서도 신학을 했는데, 당시 히브리어를 비롯한 성서 언어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유학 중에 탈식민주의(Postcolonial) 신학과 제국 비평(Empire Critical) 성서 해석으로 관심을 옮겨 공부했어요. 이 부분이 질문의 ‘한 나라로 수렴될 수 있는지’라는 지점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 관심 분야가 바뀐 계기가 있을까요?

석사 공부를 한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버클리 지역은 대체로 아시안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에 이해도가 높았는데요. 박사과정을 위해 텍사스로 옮기면서,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학교와 교회를 경험했습니다. 그때 아시안이라는 마이너리티로서 할 수 있는 사회적・학문적 기여, 교회를 위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죠. 탈식민주의 신학을 깊게 공부하며 교회 내 진보적인 신앙의 필요성과 문화 전통 간의 이해와 화해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때 생각했던 내용들이 제 목회 비전이 되었어요.

- 지금 계신 지역은 분위기가 어떤가요?

인디애나주에 8년째 거주하고 있는데요. 솔직히 이 지역 특징이 무엇인지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사회적으로는 보수적인 색채가 강하지만, 남부에 비해 조금은 온건한 것 같아요. 사회 분위기는 차치하고, 어린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아주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소소하고 다양한 것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아, 그리고 사계절이 있어서 좋습니다. 전에 살던 지역과 비교를 하자면, 캘리포니아 버클리 지역은 뜨거운 여름과 추운 겨울이 없는 느낌이었고요. 텍사스는 1년 내내 여름이라고 느꼈습니다. 여기에 와서 뚜렷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맛볼 수 있어 좋습니다. 물론 겨울이 길게 느껴지긴 해요. 올해도 눈이 굉장히 많이 왔어요.

한글을 배운 학생들이 연합예배 시간에 한국어로 성서를 읽기도 한다.

- 어떤 사역을 하고 계신가요?

제가 일하고 있는 베델 크리스천교회는 한국어 회중 이민 교회입니다.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이민교회와 비슷한 모습이 많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다만 저희 교회는 First Christian Church of Noblesville(이하 FCC)이라는 영어 회중과, 교회 공간 및 여러 사역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공유한 지는 3년 정도 되었는데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 공유를 넘어서 인종, 언어, 문화, 종교, 전통의 공유와 화해를 이루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만난 성도들은 서로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이렇게 작은 이야기들부터 쌓아갈 때 비로소 환대와 연대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고 믿어요.

소속 교단인 제자회(Disciples of Christ)의 아시안 교회들과 커뮤니티를 위한 사역을 담당하는 NAPAD(North American Pacific/Asian Disciples)의 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데요. NAPAD는 교단 내 여러 아시안 교회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아시안 교회’라고 말하지만, 사용하는 언어만 18개 이상일 정도로 다양한 그룹이 있어요. 이 아시안 그룹을 아우르며,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와 태평양 섬나라 민족들의 고유한 은사와 유산을 증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제 역할은 NAPAD와 교단 내 소통, 행사 기획 및 진행 등이고요.

두 달에 한 번 정도 한국 음식을 나눈다. 사진은 지난 성령강림주일, FCC 성도와 지역 이웃을 초청해 한국 불고기를 함께 나누었을 때.

- 환대와 연대를 추구하는 사역 중이신데요. 트럼프의 재등장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체감되는 게 있나요?

글쎄요. 제가 느끼는 것들이 일반 시민들과 같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와 제 주변 사람들(미국 이웃과 한국 이웃 모두)에게 트럼프의 등장은 분명 큰 충격이 있습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이민자들이 느끼는 불안감과 서류 미비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실제적 위협이 있고요. 이민 수속 중인 이웃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나 제약들로 인해 염려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의 기저에는 혐오와 두려움을 이용하는 정책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에요.

-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목회하고 있는 입장에서 더 안타까울 것 같아요.

이전보다 더 ‘나와 다른 이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를 두려워하고 누구를 미워해야 할까?’라는 물음이 사회 저변에 점점 강하게 나타나게 된 것 같아요. 물론 여기에 있는 시민 중 많은 사람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성향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지지하는 정책을 선택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극우나 꼴통 보수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그들의 선택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고, 개별 정책과 관련해서는 득과 실, 장점과 단점에 대해 토론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정책 이면에 그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용되는, 또는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분열과 미움, 두려움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저에게는 큰 위기감을 줍니다.

- 한국 사회의 갈등도 지난 12·3 내란 이후로 더욱 증폭되고 있습니다. 먼 곳에서 보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보이는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12·3 내란은 너무 명확하게 잘못이 가려지는 일이라 제 생각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내란 사태뿐 아니라 여러 사회 갈등의 주요 원인이 편향된 정보 또는 허위 정보의 공유와 섭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와 국민의 대응, 대통령의 구속 기소와 재판 등의 과정을 접한 미국인 친구들이 해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트럼프의 승리와 지난 몇 주간 진행되는 트럼프 정부의 정책들을 경험하는 그 친구들은 오히려 한국의 정치 현장에서 서민들의 목소리(Voices)가 들리고, 정치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더라고요. 대중의 목소리가 실제 정치에 반영되는 한국의 정치 현장이 부럽다고요. 물론 한국 내부의 세세한 상황을 모르는 친구들이지만, 우리 정치 현장이 가지고 있는 장점, 우리 국민의 성숙한 정치 참여에 대해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매년 FCC와 함께 해비타트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역의 이웃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지어주고, 건강한 자산 운용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는 사역이다.

- 극우화되는 사회와 교회, 어찌해야 할까요? 한국과 미국, 세계 여러 나라가 처한 현실인데요.

너무 어려운 문제라 제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솔직한 말씀으로는 “Let it go” 해야 할 것은, 그렇게 두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화해와 대화의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입니다. 대신 사회적 약자 보호나 정의와 평화, 화해 등 기독교적 가치를 지지하는 공동체들이 묵묵하게 교회와 신앙인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원론적인 대답이었나요?(웃음)

해비타트 프로젝트에 함께한 동역자들.

-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독자님의 찬양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유튜브 〈Stella & BK〉라는 채널에 아주 가끔 찬양 영상을 올립니다. 처음부터 유튜브 활동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어요. 저와 아내가 함께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 학기 말이 되면 방학 기념으로 좋아하는 찬양을 녹음하고,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곤 했습니다. 유튜브는 단순히 결과물을 남겨놓는 플랫폼이었어요. 일종의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 놀이였죠. 그런데 많은 분께서 아내가 첫째 아이를 안고 찬양했던 영상을 좋아해 주셨어요. 당시 구독자도 단번에 2천 명이 넘었고요.(웃음) 지금도 1년에 두세 번 소소한 찬양 영상을 올리곤 해요.

- 복상에서 가장 즐겨 보는 꼭지나, 기억에 남는 콘텐츠가 있을까요? 복상에서 더 담았으면 하는 내용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현장과 사람’ ‘사람과 상황’ 같은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즐겨 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며 자주 느끼는 것은 신학적 또는 종교적 ‘당위성’이나 제언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가 일반 성도들에게는 더 큰 변화의 힘을 준다는 점이었어요. 누군가가 살아가고 싸우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적이며 신앙적인 가치들이 더 소중하고 힘 있게 다가오고, 그들의 삶을 통해 영감을 얻습니다.

그리고 ‘에디터가 고른 책’이나 새 책 소개 콘텐츠들이 좋습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는 책방에 가서 이 책 저 책 둘러볼 수 없으니 아쉬운데요. 소개해주시는 내용을 보며 구입해서 읽을 책을 선택하기도 하고, 세상 돌아가는 모습도 엿볼 수 있어 좋습니다.

진행 이범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