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다가, 다시 기독교
[413호 에디터가 고른 책] 《내 친구 예수는 아나키스트》 외 4권
돌고 돌다가, 다시 기독교
극우 기독교 광풍에 질려 기독교책도 읽기 싫어졌다. 이런 때는 문학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데, 염상섭의 《삼대》를 읽었다. 12·3 내란 때 국회로 난입한 이진우 전 사령관의 변호인이 한 말 때문이었다. “3대가 군인인데 내란죄를 저질렀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응? 4대째 군대 가는 가문도 허다한 분단국가에서 3대가 군인인 게 뭐 그리 대수라고. ‘3대 신앙 명문가’ 같은 수사인가? 엉뚱하게도 그렇게 《삼대》를 찾게 된 거다. 기독교책을 피해, 오래된 문학작품을 골랐건만 크리스천 지식인의 인류애가 어떻게 그루밍 성범죄로 변해가는지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교계에 흐르는 저주 같은 걸까? 약 100년 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재판국이 김의식 전 총회장의 불륜 의혹 건 재항고를 기각했다(2025.2.11.). 〈뉴스앤조이〉가 입수한 기각 결정문에 따르면 “제출된 증거를 살펴보면 무인텔 주차장에서 나오는 장면인 정황 증거만 있지, 결정적·직접적 증거가 없다”며 불륜 의혹에 대해 죄과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죄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접하고 싶어 ‘정원의 길, 교회의 길’(이성희) 연재 때 언급되어 사둔 《모든 것의 이름으로》를 펼쳤다. 한 식물학자의 파란만장한 여정을 그린 이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20여 년간 고증했다고 한다. 3대가 식물 관계자인 이 이야기에는 ‘평화교회 한 걸음’(김홍석) 연재 때 짚은 필라델피아 퀘이커 교도가 나와서 반가웠고, 네덜란드 칼뱅주의자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리오넬 메시와 요한 크루이프를 비교하는 스포츠인류학 서적 《바르사》에서 후자를 두고 “네덜란드 칼뱅주의자의 신념을 가졌던 것”이라 평한 게 떠올라 재밌었다. 네덜란드 칼뱅주의자들에게 흐르는….
돌고 돌아, 다시 기독교책으로 왔다. 무신론자인 저자가 예수를 아나키스트로 풀어낸 책과, 20세기 미국 인권에 큰 영향을 끼친 설교자 하워드 서먼의 책이다.
제목에서부터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책들인지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나처럼 이제 기독교책 좀 다시 읽어볼까, 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선명하고 깊은 성찰을 줄 것이다.
이범진 기자
하나님이 창조한 이 세계가 걱정될 때
12·3 내란 이후로 설마 했던 일들이,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났다. 이를 생각하면 한 치 앞도 모르겠다는 걱정과 불안이 엄습한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사명을 붙잡고 살아가야 할지 더욱 아득해진다. 현실감을 지우는 상황이 때때로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지만, 변치 않는 게 있다. 이럴 때일수록 낙심하지 않고 희망을 바라보면서 주신 사명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것이다. 곳곳에서 절망이 보이는 시대에 대담하게 창조세계를 품고, 기독교 신앙을 붙드는 책들을 골랐다.
“‘자연’하면 떠오르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우리는 대부분 집 밖에 나서기만 하면 바로 자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연환경을 11개 카테고리로 나눠서 살펴본다. 깨끗한 물, 멸종위기종, 산과 광물, 공기와 하늘, 숲, 토양, 곤충, 습지, 산호초, 바다, 극지방과 지구의 기후. 각 생태계의 기능과 직면한 문제를 신학적·과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소개하고, 관련 성경 말씀과 신학적 교훈을 설명한다.
단순히 환경과 인간, 이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뭉뚱그려서 이야기하지 않고, 각 생태계가 담당하는 역할과 이를 보존하고 위기로부터 구하기 위한 방법을 자세히 다룬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그리고 각 장에 들어간 생태계 그림이 전부 정갈하고 예쁘다. 각 장 뒷부분에 실린 ‘모두를 위한 지혜’에는 당장 지구 돌봄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매뉴얼과 해당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들을 소개한다.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에게 유용한 구성의 안내서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경주를 소수의 적자만이 살아남는 절망적인 미궁이나 울트라마라톤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참여한 경주, 자신이 완주한 경주가 특권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경주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책 표지에는 미로가 그려져있고, 그 가운데에는 십자가가 있다. 하지만 어떤 통로를 연결해봐도 십자가로 갈 수는 없다. 모든 길이 막혀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으로서 성경의 명령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비유한 그림이다.
세상의 구조와 체제에 내재하는 문제들을 알게 될수록, 그것과 우리가 연결되어있고 무관하지 않음을 인지할수록, 마땅한 실천을 하며 살아가는 일이 너무 어려운 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그럼에도 낙담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끊임없이 짓눌려있고 늘 죄책감을 안고 살기를 원하시지 않으며, 기독교가 불가능한 것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예수를 따른다고 해서 세상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만 실천을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영적 실패자임을 인정하고 항상 비참해져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짚는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깨고, 지금 여기서 시작하고 나아가도록 돕는 메시지다.
“창조 세계 돌봄을 언급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성경에서 그 일을 행하도록 명령하기 때문이다. 콜린 건튼(Colin Gunton)이 바르게 지적했듯이,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은 어떤 환경적인 위기가 없더라도 그 정당성이 충분히 입증될 수 있다.”
창조세계와 이 지구를 돌보는 일에 모두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후위기를 증명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사실은 차고 넘친다. 오히려 그런 사실들 속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서 문제다.
이 책은 부정적 전망으로 독자들을 다그치지 않고, 오히려 소망에 찬 이야기를 전한다. 성경이 말하는 창조세계와 인간의 관계는 어떠한지, 우리가 창조세계를 왜 돌봐야 하는지를 성경신학 관점에서 설명한다.
“이 창조 세계의 미래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세계를 돌보아야 할 더 많은 이유가 생겨나게 된다.”
“현재 우리를 둘러싼 이 세계는 전례 없는 도전과 쇠퇴, 손실을 직면하고 있지만, 그 세계는 또한 견고한 회복력을 지니고 있다. 이 세계는 여전히 아름답고 선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도록 지금도 우리를 초대한다.”
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