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고래와 함께 살 수 있을까
[413호 구선우의 동물기]
요즘 세계 여러 신화와 미스터리 이야기에 푹 빠져있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물에 사는 괴물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들은 세이렌을 비롯해 인어, 오디세우스와 싸운 바다 괴물 카리브디스, 북유럽의 문어 괴물 크라켄, 일본의 요괴 갓파(河童), 스코틀랜드 네스호의 미스터리 괴물 네시, 〈파워레인저〉에 등장하는 바다의 기사룡 모사렉스, 심지어 우리나라의 물귀신까지, 물에 사는 수많은 괴물 이야기를 해주었다.
미지의 대상이 주는 공포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괴물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1934년 네스호에서 촬영되었다는 네시 사진은 조작으로 밝혀졌음에도 오늘날까지 언급되고 있으며, 배와 비행기 실종이 잦은 버뮤다 삼각지대를 둘러싼 전설 역시 이어지고 있다. 험악한 날씨에 육안으로는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 새벽의 불확실한 환경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 공포심을 증폭한다. 인간에게는 미지에 대한 근본적인 두려움이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이 창조 이전에 물 위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창조 둘째 날에는 궁창을 기준으로 물이 위아래로 나뉘고, 셋째 날에는 마른 땅이 드러나고 물이 모이면서 바다가 만들어진다. 그리스신화는 세 형제 신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가 각각 하늘, 바다, 저승을 지배하는 권리를 나누어 가졌다고 전한다. 바다는 육지와 구별되는 배타적 세계로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물속에 오래 머무를 수 없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도 없는 인간은 물과 하늘을 미지의 공간, 두려움의 장소로 인식했다.
물속에도 분명 생명은 존재한다. 바다·호수·강,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깃들어있다. 물에 사는 생물로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동물인 대왕고래(흰긴수염고래)를 포함하는 해양 포유류 고래는 고대사회에서 괴물로 종종 오해받기도 했다. 인간의 미지로 인한 오해였다. 고래는 비인간 동물일 뿐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바다 괴물’
고래는 고대부터 신비로운 생물로 여겨졌다.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괴물 케토(Κητώ)는 고래 형상으로 등장하여 바다 괴물들의 어머니로 묘사된다. 신화를 보면 바다뱀·문어·인어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괴물로 나타나 상상 속 바다를 채웠지만, 고래는 어떤 괴수보다 거대한 몸집을 갖고 나와 상상력을 자극했다.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을 섬긴 해군 제독 네아르코스는 명령을 받아 인도로 향하던 중 길이가 4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과 조우한다. 선원들은 크기에 압도당해 공포에 질리기도 했으나 결연한 의지로 맞서 싸워 결국 승리했다. 네아르코스가 마주한 괴물은 우리가 아는 고래였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지닌 굳센 용기만큼이나 생생하게 바다가 품고 있는 미지의 위협을 보여준다.
고래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일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지》에서 고래가 보통의 어류와 달리 육상동물과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예리하게 지적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사후 300년이 지난 시기에 활동한 로마 박물학자 플리니우스는 《박물지》에서 고래를 어류로 분류했고, 서양에서는 이 견해가 널리 퍼졌다. 18세기에 이르러, 생물분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웨덴 박물학자 칼 폰 린네가 포유류로 재분류하면서 고래는 비로소 어류와 다르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고래는 짝수 발굽을 가진 우제목이다. 해양 생물 가운데 함께 언급되는 상어보다, 똑같은 우제목에 속하는 소나 양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래를 신화 속 바다 괴물의 자리에서 끌고 나온 것은 과학혁명이었다. 과학기술 발전은 대규모 고래잡이로 이어졌다. 이전에는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스페인 북부 바스크 등, 특정 지역에서만 고래잡이가 이루어졌다. 그마저도 대부분 고래가 해안가로 밀려왔을 때를 이용했다. 고래잡이는 16세기 대항해시대 이후 인간이 직접 바다에서 고래를 사냥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화되었다. 네덜란드와 영국은 17세기 말부터 북극해와 북대서양에서 무자비한 포경을 시작했다. 고래 고기나 뼈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무엇보다 조명과 난방에 사용되는 고래기름을 노렸다. 제국은 뛰어난 항해술과 사냥술을 통해 상업 포경의 포문을 열었던 바스크족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느리고 덩치가 큰 북극고래(긴수염고랫과)는 손쉬운 사냥 대상이 되어 멸종위기에 놓이게 된다. 한때 50만 마리에 달했던 북극고래는 19세기 중반에 3천 마리 이하로 급감하고 말았다.1)
영국이 북쪽에서 수염고래 위주로 사냥했다면, 미국 포경선은 남쪽에서 향유고래(향고래)를 주요 표적으로 삼았다. 1840년대에 무분별한 남획으로 고래 개체수가 급감하자, 미국 포경선은 북태평양에 진출했고 심지어 동해에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조선과 미국의 최초 조우도 포경선을 통해서였다. 특히 서양에서 독도를 발견한 최초 기록은 1848년 4월 17일에 작성된 미국 포경선 체로키(Cherokee)호 항해 일지에 남아있다. 울릉도 근처에서 두 개의 작은 섬을 보았다고 기록한다(독도관리사무소 누리집, 〈미국포경선의 항해일지〉).
당시 미국의 포경 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한 대표 작품은 허먼 멜빌이 쓴 《모비딕》이다. 소설은 매사추세츠주 코드 곶의 항구도시, 뉴베드퍼드와 낸터킷 풍경을 실감 나게 그린다. 거리에는 작살잡이 용병으로 고용된 식인종 부족 출신 선원들이 활보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교회보다 술집에 많이 머물렀다. 썰렁한 예배당 안에 자리한 설교단 양쪽 벽에 있는 대리석 명판의 추모비들은 차갑게 느껴질 뿐이다. 주인공 이슈미얼은 피쿼드호에 승선하기 전 고래잡이에 나서는 이유를 묻는 펠레그 선장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글쎄요, 저는 고래잡이가 어떤 건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세상을 구경해보고 싶어요.2)
이 대사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고자 했던 당시 사람들의 심오한 열망을 반영한다. 이슈미얼은 실제로 고래잡이를 통해 다양한 문화와 사람을 만나고, 광활한 바다를 누비며 모험과 도전을 감행한다. 고래잡이는 단순한 직업을 넘어, 세상을 경험하고 자아를 탐색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동시에, 소설은 신비로운 고래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경제적 자원이었다는 사실을 씁쓸하게 보여준다.
고래잡이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20세기 초까지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디젤 포경선, 폭약 작살, 공장식 해체 작업(flenching) 등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까지 포획 효율을 올려놓았다. 《모비딕》에 등장한 원주민 용병이 사용하는 소형 보트와 작살은 사라졌다. 거대한 공장식 포경선이 바다를 누비게 되었다. 하지만 포경 산업은 큰 타격을 입는다. 세계대전이 연이어 일어났고, 고래기름을 대체할 에너지 자원으로 석유가 등장했으며, 환경보호 운동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제포경위원회(IWC)는 1982년 상업적 포경 전면 금지를 결정한다. 고래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제기된 우려가 이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혹등고래를 비롯한 일부 종은 개체수 회복을 보였지만, 긴수염고래와 향유고래는 멸종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래, 인간의 이웃 되다
오늘날 고래는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을까. 이쯤에서 고래에 관한 기초 지식을 짚고 넘어가자. 고래는 포유강 우제목 고래하목에 속하는 동물을 일컫는다. 90종 가까이 현존한다고 추정된다. 바다사자·바다코끼리·물범 등이 속하는 해양 포유류의 대표 동물이다. 문화적 전통에 따라, 우리말로는 고래와 돌고래를 나누어서 부르는데, 영어 표현을 보면 whale(고래), dolphin(돌고래), porpoise(쇠돌고래) 세 가지로 구분한다.
과학적으로는 크게 수염고래와 이빨고래로 나뉜다. 수염고래는 이빨 대신 존재하는 촘촘한 수염판을 통해 물속에 떠다니는 먹이를 거른다. 대개 얕은 바다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몸집이 크고 오래 살며, 이빨고래에 비해 적은 무리로 생활한다. 이빨고래는 이빨이 있고, 대체로 몸집이 작은 편이다. 돌고래가 이빨고래에 속한다. 수염고래가 초식동물이라면, 이빨고래는 육식동물에 가깝다.3) 미국 포경선은 이빨고래 중 가장 큰 향유고래를, 영국 포경선은 북극고래·긴수염고래 등 수염고래를 주로 사냥했다. 요나서에서 선지자 요나를 삼킨 ‘큰 물고기’가 고래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마태복음에 예수께서 그 물고기를 지칭할 때 고래를 뜻하는 그리스어 ‘케투스’(κήτου)라는 표현을 쓴다. 사람을 삼켰다면, 향유고래였을 가능성이 크다.
보호종이 되었지만 고래는 여전히 ‘자원’이라는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돌고래쇼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여전히 돌고래 체험시설이 성행한다. 돌고래는 아쿠아리움 마스코트 역할을 맡은 대표적 동물이었다. 상업적 포경이 금지된 이후, 고래는 전시 동물로 쓰이고 있다. 남종영 기자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제주에서 불법 포획되어 서울대공원에서 상업적인 돌고래쇼에 동원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기획을 통해 세간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12년 3월 3일, 그는 제돌이의 자연 방사를 촉구하는 기사를 〈한겨레〉 토요판 1면에 배치하는 등 공론화를 위한 노력을 이어갔다. 결국 제돌이를 고향 바다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다. 이 사건은 고래를 단순히 전시하여 이익을 얻는 행태를 비판하고, 고래의 생태적 권리와 동물 복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4)
이제 고래는 인간의 이웃이 되었다. 고래가 겪은 고통은 인간의 고난과 연결되기도 한다. 미국 흑인 페미니스트 활동가 알렉시스 폴린 검스는 《떠오르는 숨》에서 고래들이 군사화된 환경과 상업적 억압 및 착취 상황에서 겪는 삶의 문제가 흑인·퀴어·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모두 숨을 쉬는 존재이다. 검스는 해양 포유류와 인간이 “비슷한 방식으로 공기를 처리”하는 점을 강조하며, 생존을 위한 호흡이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가 된다고 말한다. 고래와 연대하는 일은 오염된 지구에서 함께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며, 미래 세대에 물려줄 소중한 유산이다.5)
물고기에서 ‘물살이’로
해양 생물을 만나기 위해 서울 근교 아쿠아리움을 찾았다. 그곳에 돌고래는 없었다. 대신, 또 다른 해양 포유류인 바다코끼리가 마스코트 자리를 차지하여 이목을 끌었다. 포유류가 인간을 더 닮았기 때문일까?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해양 생물 중에서도 포유류에게 관심을 더 기울인다. 동물쇼 대신 생태설명회가 진행되었지만, 박수나 휘파람 노래 등 동물의 간단한 장기자랑은 빠지지 않았다. 아쿠아리움 메인 수조에는 다양한 물고기가 살았는데, 급여되는 먹이 때문인지 상어조차도 야생성을 잃고 아주 평화로운 날을 보내고 있었다.
돌고래는 더 이상 서울대공원 무대에 오르지 않지만, 여전히 바다는 신음하고 있다. 고래는 신음하는 바다를 되살리고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열쇠로 주목받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상업적 포경 이전 수준까지 고래 개체수가 늘어나면 탄소의 건강한 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고래는 커다란 몸집 덕분에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래가 주목받는 만큼, 우리는 해양 생태계의 파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동태평양 열대 지역에는 돌고래와 다랑어가 함께 헤엄을 치며 살아간다. 다랑어를 잡을 때 부수 어획으로 돌고래가 많이 죽자, 돌고래를 죽이는 일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참치 캔’에 들어가는 가다랑어를 잡기 위해 집어 장치(해양 생물을 유인하는 부유물)를 이용하는 포획 방식이 돌고래 등 멸종위기에 처한 물고기를 죽여왔기 때문이다. 혼획은 멈췄지만 돌고래 개체수는 늘어나지 않았다.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랑어 어획이 계속되는 이상, 쉽게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환경단체가 특히나 고래의 생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물고기 개체수와 해양 생물의 균형을 유지하여 바다를 건강하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보여주는 놀라운 신비다. 고래와 바다는 연결되어있다.
‘물고기’라는 시선을 넘어 ‘물살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고래는 야생동물이고, 물고기들은 어족 자원인가? 동물권 운동가들은 물고기라는 말이 전제하는 폭력성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이들을 물살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인간의 식량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민한 감수성이 필요한 때이다. 통제하고 조절할 수는 있겠지만 어획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어장이자, 지켜야 할 자연인 바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중요하다. 앎은 바다를 살리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이미 대안으로 제시되는 ‘지속가능한 어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건강한 먹거리 실천에 동참하자(해양관리협의회가 인증하는 MSC 에코 라벨을 확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오염되고 있는 바다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찾는 것은 인간에게도, 비인간 동물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고래와 다른 물살이를 비롯해 모든 생물의 다양성 회복이 기후위기를 막는 길이다. 고래에서 물살이로, 인간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 우리 시야를 넓혀, 함께 살아가는 바다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또 다른 날, 아들과 어린이 해양환경체험관을 찾았다. 멸종위기종이 소개되고, 인간에 의해 배출되는 탄소와 쓰레기가 바다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양한 체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들이 쓰레기를 줄여야겠다는 소감만 남겨서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했지만, 미래 세대를 위한 지속적인 관심과 책임감을 심어주는 해양 생태계 교육은 계속돼야 한다. 바다를 더 이상 배타적 세계에 두어서는 안 된다. 고래를 통해 우리는 미지의 바다를 더 가까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공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문학동네)에는 멕시코 만류에 조각배를 띄우고 홀로 고기를 잡는 노인이 등장한다. 84일 만에 잡은 대어를 친구이자, 죽여야 할 운명으로 여긴다. “저 물고기 녀석도 내 친구지. 저놈은 내 평생 듣도 보도 못한 굉장한 물고기야. 하지만 난 놈을 죽여야 해.”(78쪽) 그를 괴롭혔던 죄책감의 무게가 느껴진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이처럼 복잡하다.
1) 남종영, 《다정한 거인》(곰출판, 2024), 168-173쪽 참조.
2) 허먼 멜빌, 황유원 옮김, 《모비딕 1》(문학동네, 2019), 137쪽.
3) 마크 카워다인, 마틴 캠 그림, 엄성수 옮김, 《이 세상의 모든 고래 이야기》(알에이치코리아, 2025), 13-17쪽. 각 고래종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다. 고래를 다루는 알려진 책으로 국립오듀본협회의 가이드(National Audubon Society Guide to Marine Mammals of the World)와 스미스소니언 핸드북 시리즈 고래(Whales, Dolphins and Porpoises)가 있다. 이 중 후자가 최근 번역되었다.
4) 제돌이를 둘러싼 여정의 자세한 내막과 여전히 남아있는 이슈는 《잘 있어, 생선은 고마웠어》(남종영, 한겨레출판, 2017)에 담겨있다.
5) 알렉시스 폴린 검스, 김보영 옮김, 《떠오르는 숨》(접촉면, 2024), 25쪽; 40쪽.
구선우
좋은 답을 찾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 관계의 얽힘에 관심이 있다. 《배트맨 크리스천》 《다음세대입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