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413호 내향인의 마음 탐구 생활]

2025-03-31     이승은·정민호

가족(家族 - 집 겨레 )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 (표준국어대사전)

유의어
식구, 가정, 일가, 가구, 집안, 집, 처자식

민호

사회 교과서에서 배운 기억이 난다, ‘가족’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 공동체라고(시험에 나올까 봐 외웠다). 조부모까지 함께 거주하는 형태를 전통적인 대가족으로, 부모와 자녀만 한집에 사는 형태를 핵가족으로 규정했다. 딱히 트집 잡을 게 없는 설명이었지만 다소 기계적인 정의처럼 느껴져서, 어디 가서 그렇게만 표현하고 싶진 않았다. 가족이라는 말은 여전히 그렇다. 공기처럼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말로 규정하자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막막한 그런 것.

난 오랫동안 우리 가족이 부끄러웠다. 천천히 하는 일 빼고 뭐든 잘하는 엄마는 내 눈엔 어디를 가나 극성맞아 보였다. 마음씨 좋고 우직한 아빠는 사람들이 다 본인처럼 선하다고 믿고 산다. 나는 괜스레 아빠 앞에 서면 자꾸 합리적인 것만 찾고 인색해져서 아직도 아빠가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반박할 준비를 한다. 정이나 애교만큼 화도 많은 내 동생은 여려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긴장을 놓치면, 무심한 나쁜 오빠, 선생질하는 ‘꼰대’가 되어버리고 만다. 이쯤 되면, 내가 문제다. 다들 이 정도 트러블은 안고 사는가.

친척들을 생각하면 더 엄두가 안 나는 일이 많아 보인다. 독수리 오형제라 자부했던 아빠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달리, 고모들과 큰아버지, 작은아버지까지 오남매는 세월이 갈수록 얼굴 보기가 힘들어졌다. 조금 안 맞더라도 차라리 붙어 사는 게 나은가.

본가로부터 독립해서 살면 편하겠다고 생각하던 무렵, 가족 상담을 받았다. 나와 아빠의 관계를 지켜보던 엄마가 설득해서 하게 된 것이다. 상담비도 엄마가 지불했다. 초반에 상담사는 곤란해했다.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고, 특별히 해법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계속된 상담 끝에 발견한 것은, 갈등이 생기면 대화하거나 풀지 못하고 회피하는 나와 아빠의 모습이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가족들과 함께 있지 않더라도 가족들을 어떻게 여기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다.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아빠에게 적극 다가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엄마는 가족들 사이 소통이나 문제 해결을 대신 하려는 마음을 참아보라고 제안받았다. 서툴고 더디더라도, 당사자끼리 직접 대화하고 조율할 수 있도록 기다려보라고.

상담 후 극적인 변화는 없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들은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하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변해왔던 것 같다. 한 달 전에 동생과 크게 다투긴 했지만. 일주일 전에는 엄마와 서운함 토로 대회를 열기도 했지만.

문제는 이런 거다. 서로 바라는 가족의 모습이 다르다. “민호 너는 가족들 생각은 안 하잖아. 그게 사실이야.” “난 서운한 거 있다고 쉽게 화내고 모진 말 하는 것보다 차라리 서로 기대를 낮추고 예의를 차리면서 지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 서로 기대하는 바가 다름을 이해하고, 의견 차이를 좁히기가 참 어렵다.

가족들 사이에서는 끊임없이 ‘역할’이 생긴다. 뭔가 해야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주어진 역할이다. 그 역할은 대개 가족 역학 속에서 생기거나, 서로 합의하면서 만들어진다. 서로의 일상을 돌보고, 공존하며 살기 위해 계속해서 책임이 부여된다.

나는 운 좋게 성실하고 사랑 많은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라는 와중에 부모님과 나의 닮은 부분을 보며 투쟁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하는 법을 배워왔다. 서툴게 ‘개인’을 강조하다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이제 새로운 가족을 이룰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결혼이 쉬운 일은 아니라지만, 둘이서 더 행복해지는 삶을 꿈꾼다. 많은 것이 막연한 가운데 우리의 모든 역할과 책임을 긴밀하게 논의하고 만들어갈 의지를 다지면서.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 공동체인 가족. 유전 정보나 생활 방식, 수많은 시간과 재산을 공유하고서, 서로가 각자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믿어주고 돕는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대를 조율하는 대화와 이해가 아닐까. 부단히 민주적으로 이 일들을 잘 해나가고 싶은데… 모든 것을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함께 해나가면서 지내고 싶은데…. 

우리는 어떤 가족이 될 것인가.

승은

나는 2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렸을 땐 제법 막내티가 난다고들 했는데, 조금 자라고 나선 첫째냐는 오해를 사곤 했다. 오빠와 있을 때 누나냐는 말을 들었던 다수의 썰을 보유하게 된 것으로 보아, 의도치 않게 노안임을 입증할 때가 많았다. (내 나이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자꾸 아니라고 부정해주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나 관련 썰이 축적될 때마다, 아무래도 맞노라고 짐작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박장대소하던 엄마는 “그냥 네가 누나라고 생각하고 살라”며 출산 순서 뒤엎기를 감행했다.

초등학교 사회 수업 때였던가, 가족 형태에 관해 공부하며 몇 인 가구인지 손을 드는 시간이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4인 가족’에 가장 많이 손을 들었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나는 ‘5인 이상 대가족’에 손을 들었다. 나를 포함해 두 명 정도 손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순간 낯선 기분을 느꼈다. 가족의 의미와 감각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본 첫 경험이었다.

성격이나 현재의 직업을 통해 유추해내기 힘들지만 전공 공부로는 적성에 맞았던 사회복지학을 배우며, 성인이 되어서도 가족의 의미와 역할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사회복지학 자체도 인간이 지닌 환경 자원을 중요하게 여길뿐더러, 수업 몇 개 더 들으면 건강가정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는 말에 참여했던 아동학과 전공과목은 가족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한층 깊이 파고들 수 있게 해줬다.

학업을 통해서나, 나와 주변인의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가족’이란 인간이 처음 경험하는 사회이고, 가족 경험에서 누렸거나 억압된 것이 평생의 삶에서 기반이 된다는 사실은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한 사람에게 가족이 미치는 영향력은 이토록 커서, 최대 강점 자원이 되기도,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니. 만성적으로 작용하는 가족의 무게에 대한 생각에 빠지면, ‘가장 불공평한 우연은 가족이 아닐까’ 싶어질 때도 많았다.

내 글이 누군가에겐 불평처럼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하기엔 자격 없게도 나는 좋은 부모님과 가족을 만났다. 그럼에도 가까운 사이는 서로의 단점을 속속들이 알게 되기에, 좋은 사람이 모여도 구성원으로서 호흡을 맞춘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작게는 그날 먹고 싶은 음식부터, 여행 스타일, 정치관, 심지어는 신앙의 영역까지. 어쩌면 평생을 다른 집에서 살아온 타인보다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한 직장 동료는 우리 가족을 보며 “각기 다른 사람도 함께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너희 가족을 통해 보게 된다”는 말을 했다. 무수한 부딪힘과 애씀 사이, 서로가 존중받기에 마땅한 존재임을 무시하지 않는다면 서로 다른 우리가 ‘잘’ 살 가능성은 모색할 수 있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가족이 이해되지 않아 내면의 생각을 굴리던 어느 날, ‘사회에서 만났으면 절대 안 친해졌을 것 같은 사람을 가족으로 묶어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래도 불편한 사람을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신이 인간을 평생에 걸쳐 훈련하고자 가족으로 묶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나의 부족함과 상대의 부족함을 근거리에서 보고 한번 견뎌보라는 신의 철저한 계획일 거라는 생각. 우리가 가족으로 만난 게 나나 다른 가족 구성원의 선택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면, 신에게 그 책임을 넘기고 이 상황을 받아들여 보기로 한 것이다.

물건이 없어져 행방을 물으면 “내가 안 치웠슈”라고 충청도 사투리로 일관되게 대답하지만 늘 범인인 데다가 맛있는 건 방에 숨겨두고 몰래 먹는 할머니와, 딸인 나는 그저 귀여울 뿐 예뻤던 것(과거형)은 본인이라며 호탕하게 웃어버리는 워커홀릭 엄마, 60세가 제법 가까워졌음에도 여전히 꿈을 꾸고 자연을 사랑해서 딸의 꽃 선물에도 감동할 줄 아는 아빠, 고등학교 기숙사 101호에 살겠다는 집념 하나로 어느 날 전교 1등이 되어 서울대학교에 간 오빠도 있고, 한때는 게임, 한때는 리코더, 요즘은 축구에 흠뻑 빠져있는 자기 관리 끝판왕인 중학교 3학년 동생이 있다.

경험해보니 이렇게나 개성 강한 사람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모여 산다는 것은, 때로는 속 시끄러우면서도 덕분에 웃을 일이 많은 삶이다.

다채로운 가족 구성원을 깊이 들여다보고 이해하다 보면, 우연히 만난 타인에게 조금 더 관대한 마음을 품게 된다. 물론 관계라는 것이 수학처럼 딱 떨어지는 공식이 있지는 않아서 어려운 날도 많지만, ‘공생의 배움터’인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축적해온 노하우가 있어, 혼자였어도 괜찮을 법한 생이 더욱 넓고 깊어진다. 선택권 없이 탄생하여 원가족에 몸담다가, 가족을 꾸릴 수 있는 선택권을 두고 고민해가는 삶. 권한 없음에서 ‘권한의 책임자’가 되는 길은 여전히 무겁게 느껴지지만, 생애주기 과업처럼 어느덧 ‘나의 가족’에 대해 고민할 나이가 내게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독자님은 ‘가족’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가요? 독자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상단어집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내향인들의 속마음 토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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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호
본지 기자. 신비로운 일들은 가까운 곳,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진다고 믿는다. 개신교 월간지를 만들며 조심스레 세상을 알아가는 중이다.

이승은
본지 독자위원. 엄마에 의하면 자아가 건강한, 아빠에 의하면 생각을 잘 묘사하는 사람이다.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니며 길러진 사회성 덕에 E(외향형)냐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최측근은 모두 내향인이란 사실을 긍정한다. 사람을 사랑하기 어려워서 관찰하기를 습관처럼 하다 보니 자주 글을 쓰게 됐고, 쓰다 보니 주어진 삶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매일 반복되는 자기 검열과 자기 긍정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인 4년 차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