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을 형성하는 공동체적 읽기

[414호 책방에서]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쓰다)

2025-04-25     박용희
원미동 사람들 | 양귀자 지음 | 쓰다 | 13,000원

책방에서 하루 종일 하는 일은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 성인 비율이 50%가 넘는 나라에서 책 파는 일을 한다는 건 무모한 도전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는 괜히 가만있는 서가의 책들을 다시 정리하고 바닥을 닦고 몸을 써서 생각을 잠재우곤 합니다.

그래도 주말에는 손님이 있는 편입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요. 얼마 전, 토요일치고는 손님이 뜸하다 싶었는데,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심상치 않더니 10여 명의 손님이 용서점에 들이닥쳤습니다. 세미나실에서 작업을 하며 바깥쪽 동향을 슬쩍 살펴보았는데, 20대 청년이 무리 지어 책방 곳곳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가끔 이렇게 여럿이 와서 즐겁게 구경‘만’ 하고 가는 경우도 있어서, 일단 경계를 풀지는 않았습니다. 서가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소리가 들리고, 즐거운 발견의 외침이 들리고 나서야 ‘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슬쩍 나가서 어디서 오셨느냐고 말을 건넸습니다. 서울 성수동에서 온 ‘산더미’라는 독서모임 멤버들이었습니다. 매달 독서모임을 하는데, 이번 달 선정 도서가 《원미동 사람들》이었고, 읽은 김에 “그럼 한번 원미동에 가보자” 해서 함께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용서점은? 예정에 없었고, ‘원미동 사람들 거리’에 왔더니 서점 간판이 보여 반가운 마음에 우연히 들어왔답니다.

이들을 보며 몇 달째 붙들고 있는 ‘습관’이라는 키워드를 다시 떠올려 봤습니다. 그중에도 ‘공동체적 실천’에 관한 좋은 사례로 보였습니다. 혼자였다면 굳이 《원미동 사람들》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더군다나 원미동이라는 낯선 동네에 올 이유는 더더욱 없었겠지요. 그리고 이 책을 매개로 어린 시절 나를 키워낸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을 겁니다. 책을 읽는다는 건 혼자 하는 활동이지만, 그 활동이 내 삶의 일부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활동이 큰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합니다.

《습관이 영성이다》 6장에서 제임스 스미스도 ‘공동체적 실천’에 대해 언급합니다(252쪽). “함께 식사하라, 기도하라, 노래하라”, 그리고 “함께 생각하고 독서하라”라고요. 이게 바로 ‘구체적인 실천’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형성하는 것이겠지요.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원미동에 찾아온 청년들처럼 말이죠.

문득 함께 읽고, 함께 실천해보는 모임, 어딘가로 가보는 모임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관한 책을 읽고, 광장이나 투쟁 현장에 나가는 모임도 가능하겠지요. 그런 모임들의 기획과 모집을 돕는 역할을 책방에서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박용희
부천시 원미동에서 동네책방 ‘용서점’을 아지트 삼아, 이웃들과 책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시도해볼 예정이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