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와 함께 걸어갑니다

[414호 내 인생의 한 구절]

2025-04-30     정태형

물음표를 만나다

15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날도 다른 날처럼 새벽 2시에 독서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의식하지 않고 걷다 보면 어느새 집에 도착한다. 그래서 그런가, 수도 없이 걸었지만 새벽 2시 그 길의 풍경이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집으로 가다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차도 사람도 없이 쭉 뻗어있는 적막한 길 위에 내 키보다 커다란 물음표가 있었다. 처음이었다. 마침표나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를 마주한 적은.

왜 새벽 2시까지 독서실에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매일매일 가는 게 당연했으니 늘 마침표였다. 어쩌다 흔들린 적도 없었다. 매주 학원 문 앞에 붙어있는 성적표를 보면서 투지를 불태우며 느낌표를 마음에 새겼다. 답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매일 걷던 거리 위에서 물음표를 만난 것이다. 새벽 2시에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그 순간이 생생하다. 갓난아이가 처음 바다를 봤을 때 느끼는 아득함이랄까? 나의 세계를 압도하는 더 큰 세계를 접한 느낌.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이 내 인생의 얍복강이었다. 야곱이 하나님과 만나 씨름을 하고 나서 걸을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듯이, 그날 이후로 학교와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는 삶에 불편함을 느꼈다. 아무 의문도 불만도 없었는데 이상한 거부감이 생겼다. 멍하니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밤에 공부하면서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깨어있는 당신을 위하여”라는 멘트가 나오는 걸 듣고 문득 정신을 차려 잠자리에 드는 일도 많았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대학에 가야 한다는 당위성의 이불로 물음표를 꽁꽁 싸매서 보이지 않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 숨겨두었다. 한결 괜찮아져서 평범한 수험생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나타난 물음표

수험을 무사히 마치고 대학 생활의 즐거움을 누리던 3월, 물음표가 다시 나타났다. 친구들과 밤새 술을 마시고 하룻밤 신세를 지러 누군가의 자취방으로 달려가는 길이었다. 아무도 없는 캠퍼스의 운동장을 가로지르는데 한복판에 물음표가 있었다.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나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어서 가서 놀아야 했고, 흥을 깨기 싫었다. 피해야겠다 싶어서 “내가 행복하면 됐지” 혼잣말하며 외면하고 걸음을 빨리 뗐다. 그런데 등 뒤에서 ‘너만 행복하면 되는 거야?’라는 질문이 들려왔다. 정확히는 마음속에서 올라온 질문이겠지만. 누가 뒤에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으로 더 갈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내 행복이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고 항변하고 싶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대학 합격을 기뻐하는 건 누군가의 불합격 때문이었다. 소름이 끼쳤다. 누군가의 불행을 전제로 한 행복이라니. 다르게 살아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다시 삶이 불편해졌다. 대학의 봄을 즐기면서,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헤어질 때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면 알 수 없는 고독감이 찾아왔다.

이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답답해하던 차에 “모던 타임즈 시사회”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그 자리에 가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다른 친구들을 멀리하고 이 선배들하고 친하게 지냈다. 마음속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어 도서관에 가거나, 잔디밭에 앉아 웃고 떠드는 학우들을 볼 때마다 선배들과 입을 모아 비판했다. 우리는 깨어있는 사람들이고 저들은 이기적이고 불의한 사람인 양 서로를 치켜올리는 일이 그렇게 즐거웠다.

불편함이 사라졌던 것도 잠시. 물음표가 다시 나타났다. 총학생회 선거를 준비하던 때였다. 당시에는 운동권이 주로 총학생회장을 배출했는데, 서로 다른 두 개의 운동권 진영이 경합을 벌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학생들 사이에 운동권에 대한 비토가 형성되었고, 처음으로 비운동권 총학생회장이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선배들은 운동권 진영 간에 선거 연대를 하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그 이유를 열심히 설명해 주었지만, 설득력이 없었다. 진짜 이유를 이야기하기가 차마 부끄러웠던지 변죽만 울렸다. 그렇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저쪽을 지지하는 단과대와 우리를 지지하는 단과대를 합치면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진짜 이유였다. 입이 닳도록 함께 비판했던 기성 정치인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만 의로운 양 즐거워하며 남을 깎아내렸던 시간이 떠올랐다. 사실 다 똑같은 사람이었는데 정의로워 보이는 외양에 취해 무언가 다른 존재인 양 굴었던 모습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나 허탈했다. 새벽 2시까지 공부하던 삶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즐겁게 보낸 시간도, 사회정의를 위한다고 뛰어다녔던 삶도 답이 아니라고 느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는 괜찮았다. 길을 찾으면 되니까. 하지만 애초에 가야 할 곳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견딜 수가 없었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주인공이 텅 빈 우주 공간에서 혼자가 되었을 때의 그 느낌, 아득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물음표 너머로

그때, 왜인지는 모르지만 1학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기독교 선교단체 활동을 한다고 늘 열심이었던 친구다. 기독교에 비판적이었던 나는 그 친구만 보면 시비를 걸었다. 신실한 기독교인인 걸 뻔히 알면서도, 만날 때마다 교회의 부조리나 교리의 불합리한 점을 이야기했다. 친구는 내 말을 비난이나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매 순간 나를 대화의 상대로 여겨줬다. 그 친구를 만나서 뭔가 털어놓고 싶었다. 입대한 곳에 편지라도 보내고 싶어서 수소문하다가 친구가 활동했던 선교단체의 수련회가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선교단체 수련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주 미아가 된 것처럼 괴로웠던 상황이 어떻게든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석했다.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기독교에 대해서도 몰랐다. 찬양 시간은 어색했고, 기도회 시간은 기이했다. 5일을 지내야 한다니 잘못 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렇게 혼돈하고 공허한 마음속에도,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참 놀랍다.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로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음을 온 존재로 경험했다. 내 마음에 들어온 말씀은 창세기 1:1이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1)

내 앞을 늘 가로막았던 물음표에 대한 대답이 여기에 있었다. 이 말씀은 계시와도 같았다. “네 삶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창조주가 친히 응답해주시는 것 같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그 이유를 알고 계신다는 확신만으로 충분했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이유의 내용이 아닌,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유의 존재를 확증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만났을 때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20년이 흘렀다. 여전히 내 앞에는 종종 물음표가 나타난다. 나에게 왜냐고 묻는다. 여전히 나는 그 이유를 잘 모른다. 왜, 나는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데리고 교회를 개척할까? 모른다. 그냥 마음이 갔을 뿐이다. 왜, 나는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의 자리를 힘들어하면서도 목사로 살려고 하는가? 모른다. 그냥 마음이 갔을 뿐이다. 왜,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타협하지 않으려고 할까? 모른다. 그냥 마음이 갔을 뿐이다.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그 이유 또한 주님께서 아시리라 믿는다.

이제 나는 물음표를 만나도 멈춰 서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왜 이런 삶을 선택했는지 몰라도 괜찮다. 붙들 수 있는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 네 삶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씀해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오늘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붙들고, 지금도 여전히 내 앞에 나타나는 물음표와 함께 계속 걸어가고 싶다.

정태형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과 교회를 이루어가는 여린교회를 섬기고 있다. 교회의 사각지대를 보려고 노력한다. 《부모가 먼저 행복한 회복탄력성 수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