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해석학을 창출해낸 철학적 해석학의 새로운 기수 ― 클로드 로마노 파리 소르본 대학교 교수

[415호 우리 시대 종교 사상가들과의 만남 시즌3]

2025-05-31     김동규
사진: 인터뷰어 제공

클로드 로마노(Claude Romano, 1967-)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공부했으며, 투르 대학교에서 디디에 프랑크의 지도 아래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로마노는 가다머와 리쾨르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해석학 계보의 새로운 기수로서, 그가 펼친 사건의 해석학은 하이데거와 가다머를 넘어 사건 개념을 조금 더 일상적인 차원에서 반성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기념비적 작업이다. 현상학적 전통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사유를 펼치고 있지만, 분석철학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경계를 넘나드는 철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신학계에서도 그의 성과를 주목하고 있으며, 소르본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호주 가톨릭 대학교 종교&신학 협동교수로 활동하며 여러 신학자와 공동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다. 주요 저술로는 《사건과 세계》·《사건과 시간》·《이성의 핵심, 현상학》·《색에 관해서》·《대화 속의 인간 동일성》 등이 있다. 인터뷰는 2024년 3월 28일 파리 오데옹 광장 인근의 카페 르 이부(Le Hibou)에서 이루어졌으며, 파리 소르본 누벨 대학교 박사과정에서 알베르 카뮈의 글쓰기 속 예수 형상을 연구하는 장수민 선생이 동행해서 도움을 주었다. 인터뷰 후에도 이메일로 추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다.

- 선생님께서 철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지요? 특히 선생님은 68혁명 이후 세대에 속하시며,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하던 시기에 공부하셨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의 학업 경험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제 철학적 여정은 고등학교 시절 여러 영향력 있는 철학자들을 접하면서 시작되었어요. 특히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메를로-퐁티에게 매료되었지요. 비록 어린 나이에 그들의 저작을 읽기 시작했지만, 그 시절 공부 단계에서 제 이해는 당연히 제한적이었습니다.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는 문학과 철학의 갈림길에서 철학을 탐구하기로 선택했는데, 철학과 글쓰기 사이의 관계가 비평 연구와 글쓰기 사이의 관계보다 더 조화롭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후자는 종종 충돌하곤 합니다.

글쓰기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곧 철학이 제 진정한 소명임을 깨달았습니다. 이 시기는 철학적 사유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던 때와 일치했기 때문에 특히 매력적이었어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지배적인 학파들—구조주의, 미셸 푸코의 이론, 그리고 프랑스 이론—은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도전받고 있었는데, 발리바르와 랑시에르 같은 저명한 인물들이 이 분야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었음에도 그랬습니다. 이 과도기 동안, 철학적 담론은 주로 분석철학과 유럽대륙철학 내의 현상학으로 나뉘어졌고요. 저는 유럽대륙철학으로 기울었는데, 제 문학적 관심사와 더 일치하고 접근 방식에서 더 구체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기술적이고 협소하게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당시 분석철학의 특징에 비해 더 큰 창의적 자유를 제공했죠. 인간 경험에 연관된 더 넓은 실존적 의미와 관련성을 가진 광범위한 질문들을 다루는 데 끌렸습니다.

디디에 프랑크 교수의 지도하에, 저는 후설(Edmund Husserl)의 작업에 몰두했고 루뱅의 후설문서보관소에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제 초기 연구는 후설의 작업에서 선험적인 것과 사실성 사이의 관계에 집중되었으며, 이 개념들 사이에 있는 명백한 모순을 탐구했고요. 석사학위를 마친 후, 저는 하이데거의 작업, 특히 사실성의 문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연구를 확장했지요.

이 시기는 라캉주의를 포함한 주요 사상 학파의 쇠퇴 이후 프랑스에서 현상학에 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는 때였습니다. 현상학은 더 개방적이고 대화적인 철학 접근법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호소력이 있었으며, 엄격한 교리적 구성 틀을 준수하기를 요구하지 않고 유연성을 제공했어요. 제가 현상학을 추구하기로 한 선택은 구체적인 접근 방식, 문학과의 연결성, 창의성에 대한 열린 태도, 그리고 열린 사고방식 등과 같은 요인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정해진 교리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다양한 철학적 접근법을 탐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현상학을 특히 더 매력적인 연구 분야로 만들었죠.

- 저는 에마뉘엘 팔크 교수님과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2025년 1월·410호). 그는 “나와 로마노는 68세대 이후의 세대이며, 우리는 메를로-퐁티적 현상학을 추구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선생님은 이에 동의하시는지요?

전혀 동의하지 않아요. 저는 후설과 하이데거로 현상학을 시작했으며, 제 저서 《사건과 세계》에서의 목표는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분석이었죠. 저는 이 책에서 결정적으로 빠져있는 어떤 것—사건의 차원—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만약 인간 실존에 관한 분석에 사건의 차원을 재도입한다면, 하이데거가 분석한 모든 실존 범주를 변형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 출발점은 실제로 하이데거였어요.

그런데 중요한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1998년과 1999년, 한 세기의 끝자락에 박사논문으로 시작된 이 텍스트들(《사건과 세계》·《사건과 시간》)의 개정을 완료했을 때, 저는 원래 했던 방식으로 계속 나아갈 수 없다고 느꼈지요. 하이데거적 관용구는, 비록 제 책이 하이데거에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우리 시대에 제기된 많은 철학적 문제를 논의하기에는 너무 좁다고 느꼈습니다. 단지 하이데거나 현상학적 전통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더 많은 도구, 더 많은 지적 장치, 더 많은 방법을 습득해야 했어요. 이것이 2000-2001년이라는 새로운 세기의 초반부에 제가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세미나를 5-6년간 조직하기 시작한 이유예요. 저에게는 이것이 일종의 실험실이었고, 먼저 이 전통을 더 잘 이해하고, 전통들 사이의 대화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시도였죠.

제 생각에, 논의가 실제로 매우 수월했다는 점에서 잘 운영되었어요. 저는 고등사범학교에서 교육받았고, 이전에는 두 전통 간에 연결점이 없다—그들 사이에 가능한 대화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1) 그러나 실제로 텍스트를 읽기 시작하고 문제가 어떻게 제기되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때, 곧 두 전통 간 대화가 전적으로 가능하다는 점을 발견했어요.

어떤 면에서 그것이 그렇게 쉬웠던 이유는 단순히 두 전통이 같은 나무의 줄기라는 점 때문일 거예요. 볼차노, 브렌타노, 프레게(프레게는 오스트리아인이 아니었지만)의 오스트리아 전통은 러셀, 카르납, 비엔나 학파의 방향으로 가는 한 줄기와 후설, 그리고 현상학적 전통으로 성장하는 또 다른 줄기가 있죠. 아주 초기에, 문제는 정확히 동일했어요. 그래서 양 진영 간 양립 불가능성이나 논의 불가능성은 저에게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따라서 제 진정한 철학적 제스처는 현상학을 뒤로 물리는 것이 아니었어요. 저는 제가 여전히 현상학자라고 주장합니다. 오히려 지난 50년 동안 형성되고 전개된 철학의 도움에 힘입어 현상학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저의 작업이죠. 메를로-퐁티와 사르트르 이후 많은 일이 일어났고, 그것은 현상학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제 제스처였습니다. 이는 1980년대 유럽, 미국, 그리고 모든 곳에서 등장한 주요 발전 중 하나와 유사한 점이 있지요. 바로 인지과학의 주도적 중요성이에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메를로-퐁티가 인지과학에서 매우 중요해질 아이디어들을 이미 예견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에, 인지과학이 메를로-퐁티를 중요한 인물로 재도입했습니다. 저 또한 제 사고에 지각의 현상학 문제, 추상적 대상의 현상학 문제, 본질의 문제 등, 색을 포함한 많은 주제를 도입했지요.

또한 현상학에 대한 제 태도의 변형에 있어서 부가적 원천은 하이데거의 나치즘 관여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증가한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의 정치적 헌신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우리는 나치즘이 하이데거 사유의 특정 측면에 어떤 유효한 영향을 미쳤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 모든 것이 저에게 하이데거로부터 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하이데거가 중요하다고 믿으며, 그의 아이디어 중 일부는 매우 가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러한 아이디어들이 다른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확신해요. 하이데거의 언어는 어떤 면에서 너무 협소하거나 독특합니다. 따라서,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저는 메를로-퐁티적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세대를 본 적이 없어요. 메를로-퐁티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그 중요성이 우리 세대를 정의하지는 않습니다.

- 선생님은 첫 번째 저서 《사건과 세계》에서, 사건 개념을 독자적인 방식으로 재정의하려고 시도하셨습니다. 한국 독자들이 사건을 생각할 때, 하이데거의 존재사건(Ereignis)을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요. 선생님은 하이데거를 따르는 대신, “사건을 일상적 의미에서 이해”하고자 하셨죠. 왜 하이데거에 만족하지 않으셨나요?

사건에 대한 저의 접근은 통상적인 사건 개념, 곧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에 더 가까워요. 저에게 중요한 일이 발생할 때, 저는 그 사건을 개인적 실존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이 다른 유의 문제(역사가의 활동과 연결된 방법론적 문제들)를 제기하기 때문이죠. 저에게 사건은 근본적으로 예측할 수 없이 발생하고 나의 실존을 심오하게 변형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형은 단지 한두 가지 가능성만이 아니라 나의 가능성의 전체 스펙트럼에 영향을 미칩니다. 중요한 사건 이후에는 삶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요. 사람들이 종종 말하듯이, “내 삶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습니다.” 사건 개념은 매우 구체적이고 직관적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의미 있는 만남, 세계관을 바꾸는 변혁적 여정, 직업 변경, 또는 질병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입니다.

에르아이크니스(Ereignis)라는 이 개념에 관해, 저는 하이데거가 전회 이후의 후기 사상 단계에서 이 개념을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에르아이크니스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사건을 뜻하지 않아요. 대신, 매우 특정한 것을 지칭하죠. 하이데거는 이 독일어 단어가 “er-äugen”이라는 어근에서 파생되었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시야에 가져오는 것, 누군가의 눈앞에 배치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는 “eigen”(고유한)이라는 말도 언급합니다. 에르아이크니스는 존재와 시간을 서로의 관계로 가져오는 일종의 전유(專有)예요. 하이데거는 이것을 단순히 사건으로 번역할 수 없다고 강력히 강조했습니다.

제가 《존재와 시간》과 관련된 강의, 특히 1919년 아우구스티누스와 종교적 삶의 현상학에 대한 강의를 자세히 연구했을 때, 두 가지를 발견했어요. 첫째, 바울의 그리스도교 종말론에 관한 설명에서, 우리는 《존재와 시간》과 존재하는 탈자적 시간성에 관한 초기 밑그림을 발견합니다. 하이데거는 종말(eschaton)을 기다리는 것이 미래의 것을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순간에서 일어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형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종말론 개념은 이미 《존재와 시간》에서 나중에 발전될 많은 중요한 관점을 포함하고 있죠. 저는 하이데거의 종말론에 대한 성찰과 《존재와 시간》에서의 후기 논의 사이의 연결성을 처음 발견했어요.

둘째, 이 강의에서 하이데거는 미래의 사건을 기다리는 것으로 이해되는 종말론 이해를 완전히 거부했습니다. 그는 종말론이 미래의 사건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전하거나 임박할 가능성에 대한 개방성을 통한 삶의 변형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죠. 여기서 우리는 일종의 현상학적 환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환원은 그리스도인에게 항상 순수한 가능성으로 현전하는 가능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삶의 개방성을 드러내는 종말론적 사건의 환원입니다. 이를 《존재와 시간》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점이 드러나지요.

《존재와 시간》에서 에르아이크니스나 게셰니스(Geschehnis, 둘 다 ‘사건’으로 번역될 수 있음) 개념이 사용될 때마다, 그것들은 항상 현존재(Dasein)의 오해나 퇴락(Verfallen)에 귀속됩니다. 예를 들어, 하이데거는 양심의 부름을 사건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지요. 그는 죽음을 향한 존재에서의 죽음이 앞으로 다가올 단순한 발생이 아니라 매 순간 현전하는 순수한 가능성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그의 초기 종말론적 시간성 논의를 반영하고 있어요. 하이데거는 같은 방식으로 역사를 사건들의 연속과 접합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를 존재론적 차원에서 역사성의 오해로 봅니다.

저는 《존재와 시간》과 1919년 강의를 비교하여 이전에 간과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존재와 시간》에 나오는 에르아이크니스의 일관되게 파생적인 지위입니다. 이것이 제 출발점이 되었어요. 저는 《존재와 시간》의 개념적 틀에 따르자면, 사건들이 항상 파생적 지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지요. 이는 현존재가 본질적으로 제가 사건에 부여하는 강한 의미에서 실제로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존재는 근본적으로 변형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실존론적 분석의 한계예요. 제 후기 작업에서, 저는 계속해서 관습적인 사건 개념에 초점을 맞추었고, 하이데거가 전회 이후 후기 작업에서 이 개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습니다.

- 선생님은 인간 존재의 특성화를 위해 사건의 우선성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자아를 재고하려 시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사건에 대한 개방성을 가진 advenant, ‘도래하는 자’라는 개념을 제시하는데요.

저는 사건(event)의 현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주체 개념에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주체는 정의상 모든 변화 뒤에 불변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휘포케이메논”(hypokeimenon)과 “수비엑툼”(subiectum)이라는 용어는 항상 모든 변화 이후에도 변하지 않는 것을 지칭하니까요.2) 그러나 사건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사건을 겪을 때 우리의 존재 속에서 정말로 완전히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형이상학에서 지배적인 변화 개념보다도 더 강력한 변화 개념을 수용해야 하며, “주체”라는 단어로는 적절히 포착될 수 없는 다른 개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다른 용어가 필요했고, 앞서 설명한 이유로 “현존재”(Dasein)를 수용할 수 없었지요.

저는 새로운 창조물이 아닌 프랑스어 단어를 정식화하려고 시도했어요. ‘advenant’(아드브낭)은 단순히 일반적인 프랑스어 동사인 ‘advenir’(아드브니르)의 현재분사입니다. 이는 자신에게 ‘일어나는’(advient) 것을 가리키죠. 프랑스어에서는 ‘미래’(avenir)—미래에서 오는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을 위해 제가 사용한 ‘다가올 가능성’(possibilité à venir)—와 ‘일어남’(advenir), ‘모험’(aventure)이라는 단어 사이에는 밀접한 어원적 연관성이 있습니다.

- 한국 독자들은 철학적 해석학을 생각할 때, 종종 가다머나 리쾨르의 해석학을 떠올립니다. 선생님의 사건적 해석학과 가다머나 리쾨르의 해석학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저 자신을 가다머의 추종자라고 주장합니다. 이 해석학적 접근법에서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과 철학사의 불가분성이에요. 문제의 역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서는, 문제 자체가 어떻게 발생하고, 출현하고, 현재의 방식으로 구조화되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좋은 철학을 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다른 철학적 전통들은 종종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관념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문제를 취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다른 대학의 동료 논문을 읽고 응답할 수 있다는 생각이죠. 이런 생각이 분석철학에서 매우 흔했지만, 지금은 다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해석학적 전통은 이런 식의 작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죠. 그렇게 해버리면, 문제의 바로 그 기원을 놓치게 되어 진정 심오한 방식으로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제가 해석학의 가장 가치 있는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된 문제로, 철학적 활동에서 해석의 역할에 관한 물음도 있어요. 저는 현상학이 후설이 주장한 바와 같이, 곧 단순히 명증성에 기반하고 절대적 확실성을 부여받은 본질적 기술에 관한 것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접근법은 작동할 수 없어요. 무언가를 기술하기 시작할 때, 필연적으로 언어와 철학적 전통에서 빌린 개념을 사용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개념들을 의문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술은 부적절할 것입니다. 따라서 현상학을 수행할 때, 다음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현상을 기술하고, 더 적절한 것을 찾기 위해 자신의 개념과 전제를 의문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현상학이 오직 해석학적일 수 있다고 믿어요. 저는 절대적 시작, 새로운 출발, 또는 명증적 주장을 믿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소수의 본질적 진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주황색이 노란색과 빨간색 사이의 중간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본질적 진술이죠. 필연적으로 참이에요. 하지만 이는 단지 출발점일 뿐입니다. 색상의 현상학을 발전시키려면, 그 이상의 많은 것을 말해야 하며, 그때 해석학적 접근이 중요해지죠. 따라서 저는 동시에 분명하게 기술적이고 해석학적인, 개념과 문제의 바로 그 기원을 의문시하는 논증적인 현상학을 옹호합니다. 우리는 이런 논증적 차원을 피할 수 없어요. 후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심리학주의에 반대하고, 브렌타노와 그의 학파에 반대하는 등 끊임없이 논증을 전개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제 작업에서, 현상학적 방법, 해석학적 방법, 그리고 분석철학에서 더 일반적인 논증적 방법을 조화시키려 노력하며, 이런 방법들을 동시에 사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 한국은 전통적으로 강한 공동체 문화를 가지고 있었지만, 급속한 서구화로 (단지 서구화의 문제는 아니지만) 훨씬 더 개인화된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성은 단순히 자유주의적 의미의 개인주의는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는 SNS을 통해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삶을 노출하고 때로는 과장하기도 하죠. 분명 개인 또는 주체는 중요합니다. 동시에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의 가치도 중요합니다. 주체와 공동체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요?

저는 제 책 《자기 자신이 됨》에서, 루소와 더불어 등장한 진정성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점점 더 강력해졌는지, 개인주의적 경향과 병행하여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주려고 시도했어요.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이 자기실현을 추구하며, 자신의 삶을 일종의 예술 작품으로 변형시키려 하죠. 소셜미디어나 다른 유사한 현상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개인적 진정성을 강조하는 철학적 전통에서 비롯되었지만, 위험한 형태의 나르시시즘이나 유아론으로 이어질 수 있지요. 제 책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현대의 과도한 개인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 문제에 대한 다른 접근법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에는 자율적인 방식으로 자기 돌봄 및 자기실현과,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사회적 통합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사회성 사이에 일종의 균형이 있었죠. 라 로슈푸코와 라 브뤼예르와 같은 프랑스 도덕주의자들은 자연스러움(“le naturel”)을 논할 때, 개인적 자발성과 사회적 규범성의 조합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해요. 그들은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통합됨으로써 자발적이고 진정성 있게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제안하지요.

저는 이처럼, 우리의 현재 상황에서 현대적 이상의 다양한 역사적 뿌리를 인식하고, 어쩌면 그것들로부터 더 많은 영감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르네상스와 17세기의 이 저자들은 진정성을 셀카와 소셜미디어 퍼포먼스로 축소하기보다는—이는 우리의 과도한, 초개인주의적 사회에서 일종의 문화적 불안 증상에 가깝죠—공동체와 인간 존재의 본질적 사회성에 더 큰 강조를 두지요.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정당한 개인주의예요. 인간으로서 자기를 실현하고 우리 자신의 욕망과 열망을 추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이 정당한 개인주의와, 우리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타인에게 요구하는 인정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누구도 고립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될 수 없어요.

- 한국인들은 유럽 국가 간의 전쟁을 비롯한 다양한 위기에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유의미한 저항과 평화에 대한 희망이 어떤 모습일지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철학자로서, 이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진단하시며,  우리가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는 전 지구적 상황과 계속 늘어나는 전쟁 및 잠재적인 여러 분쟁에 깊은 우려를 품고 있어요. 한국 사람들은 파괴적 무기의 위협 아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중국 제국주의의 위협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이 모든 상황은 극도로 우려스럽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글을 쓴 바 있지만, 현 상황에서 저를 가장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의 퇴행이에요. 이러한 퇴행은 놀라운 진화 양상을 보여주죠. 1980년대 후반을 회상해보면,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습니다. 민주주의가 승리했고, 세계는 보편적으로 민주화될 것이라고 말이죠. 이러한 이념들이 모든 곳에 퍼질 것이며, 우리가 알던 역사는 종결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발생한 것은 정확히 그 반대의 현상이었어요.

민주주의는 내부에 반민주적 세력이 증가하면서 점점 더 취약해지는 반면, 독재 정권은 더욱 강화되고 있으며 무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민주주의가 무가치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단지 서구적 관념에 불과하며 비서구 사회에는 불필요하다고 주장해요. 그저 무시해도 되는 편협한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저는 19세기 서구가 인권을 세계에 강제하는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죠. 하지만 대만과 한국을 위협하고 현재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고 있는 이 강력한 역사적 퇴행에 깊이 우려하고 있지요.

다음 물음이 아마도 현대 정치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일 거예요. 민주주의가 어떻게 충분히 자신을 쇄신하여 회복력을 유지하고, 하나씩 더 폭압적인 체제로 전락하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응하려면 여러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소셜미디어의 역할, 가짜뉴스 문제, 다양한 형태의 허위 정보, 그리고 자본주의와 정보 간의 복잡한 관계 등이죠. 제가 정치철학자는 아니지만, 지난 30-40년간 우리 민주주의가 직면한 주요 도전은 불평등의 확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민주주의가 법적 평등과 경제적 평등 모두를 촉진하고, 모든 이에게 번영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었어요. 그러나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고 있죠. 불평등은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해결하지 않으려 하거나,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극도로 비민주적인 체제가 주목할 만한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그 체제하의 국민에게 일종의 물질적 번영을 가져다주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중국이 대표적인 예이지요. 이는 민주주의·번영·평등 사이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가정을 재고하게 만들죠. 일부는 자유를 포기하고 강력한 정부 통제를 선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제안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해결책이 아니에요. 민주주의의 이러한 심오한 위기가 제가 가장 우려하는 바이며, 최근 수십 년간의 전쟁—그리고 가능한 미래의 분쟁들—은 단지 이 전반적인 위기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시작되지요. 하나의 소박하지만 필수적인 단계는 가짜뉴스와 이데올로기적 도구로서의 소셜미디어 오용을 퇴치하기 위한 더 강력한 법안을 시행하는 것이죠. 우리는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서 폭력, 인종차별주의, 반유대주의가 증가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포함하여 많은 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서구 국가들이나 한국과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 모두 이러한 문제들에 더욱 엄격한 접근법을 채택할 필요가 있어요.

- 한국은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이후 중대한 정치적 격변을 겪었습니다. 시민들과 정치인들이 이 논란이 많은 조치를 뒤집기 위해 신속히 움직이고 있지만, 극우 정치인들과 극우 종교 지도자들의 영향력은 오히려 커지고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이 이러한 국내 상황을 깊이 우려하는 동시에, 유럽과 미국 전역에서 극우 정치 운동이 탄력을 얻는 것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우 운동 확산을 이끄는 근본적인 요인들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러한  시기에 철학자들과 시민들이 어떻게 적절하고 건설적으로 대응해야 할까요?

서방국가들보다 한국의 상황이 제게 익숙하게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도 계엄령 선포를 시도한 후 전 대통령이 체포되는 것을 보았지요. 전 세계적으로 독재 정권에 대한 강한 유혹이 있습니다. 트럼프의 임기 시작은 매우 끔찍한 일이죠. 그는 민주주의의 모든 기반, 사법부의 모든 독립성, 모든 국제법을 위태롭게 하려 하고, 연구의 독립성을 훼손하며 대학에 대한 자금 지원을 삭감하고 있어요(어쩌면 전체 데이터베이스까지 파괴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1930년대 유럽을 연상케 하는 방식을 동원하여, 자신들은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새로운 극우 운동에 대처해야 해요. 민주적 가치의 중요성과 유럽 계몽주의 유산의 중요성을 확신하는 모든 시민은 이 운동에 강력하게 저항해야 하죠. 이는 이제 더 이상 우파나 좌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적·국제적 수준에서 평화를 가져온 가치에 대한 위협입니다.

■ 주

1) 두 전통, 곧 유럽대륙철학과 분석철학은 20세기 이후 서양철학을 대표하는 양분된 전통이다. 현상학·해석학·구조주의·비판이론 등으로 대변되는 유럽대륙철학은 거칠게 말해 우리 세계와 인간의 삶을 완전히 해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로 보고, 그 실존적·구조적 의미의 탐색을 철학의 과제로 설정한다. 분석철학 진영은 철학의 과제가 문제를 설정하고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삶의 문제를 해결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통념상 구별해 설명하자면, 전자는 철학의 진리를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 찾고자 하여 역사·문학·정신분석학 등의 다양한 학문과의 대화를 통해 여러 해석된 진리를 제시한다. 후자는 논리적·언어적·개념적으로 명료하지 못한 사고가 제대로 된 철학 문제 설정을 가로막는다고 보고, 언어의 의미, 논리적 구조, 명료한 분석에 중점을 둔다. 이에 과학적 발견과 더 매끄럽게 접속하는 가운데 철학적 진리를 실제 현대사회 맥락에 명석판명하게 적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구별법도 과거의 통념에 근거한 것이고, 로마노 교수처럼 두 진영 간의 활발한 대화와 대결을 시도하면서 철학적 사유를 발전시키는 시도가 늘고 있다.

2) 휘포케이메논은 그리스어로 ‘아래에 놓이는 것’을 의미하며, 기체로도 번역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실체의 기본 요소로서 변화하는 가운데서도 동일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을 의미하는 용도로도 쓰이며, 구체적으로 질료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수비엑툼은 휘포케이메논의 라틴어 번역으로, 앞서 언급한 뜻 외에 문법적 의미의 주어나 실체를 뜻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하이데거는 이 말이 데카르트를 위시한 근대철학으로 넘어오면 인간 ‘주체’를 가리키는 말로 확장되었다고 본다. 말하자면, 이는 수비엑툼이 인간 이외의 다른 것을 표상화하고, 인간 이외의 다른 모든 것을 아래에서 떠받치는 세계의 중심으로서 인간 주체/주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는 해석이다.


김동규
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연구교수. 현상학, 해석학, 종교철학 등을 주로 연구한다. (신학적 전제를 괄호 치고) 철학적 상상력을 통해 신과 신앙을 다시 사유하는 일이 (비)신자들을 위해 필요하다고 믿으며 여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