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관계 프레임, 그 뫼비우스의 띠
[415호 세상 읽기]
북한이탈주민 프레임
심리학·정치학 등의 분야에서 활용되는 용어인 ‘프레임’은 세상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특정하게 구조화된 심리적 체계나 방식을 의미한다. 흔히 정치권에서, 의도적인 메시지 유포 등을 통해 자신 혹은 상대방에 대한 특정 이미지가 즉각적으로 연상되게 하는 경우, ‘◯◯ 프레임이 성공했다’라고 표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즉, 프레임은 어떤 관점의 틀을 제공함으로써 주관적 판단 없이 무의식적 자동으로 대상을 개념화하도록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70년 넘게 분단이 지속된 우리 사회에서 프레임에 따른 판단이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어찌 보면 프레임 자체가 필요 없는 대상은 단연 북한이라고 할 수 있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우리 사회에서 북한은 ‘악’으로 규정하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 존재다. 반대로 북한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불분명한 태도를 보이면 곧바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통일 인식 제고를 위해 통일 교육을 담당하는 초중고 교사는 통일 교육에서 북한에 대해 다루는 경우,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없는지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이탈주민은 북한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지만, 다행히 북한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진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간 적대적 경쟁과 갈등이 극에 달했던 과거, 북한을 버리고 투항한 귀순 용사로 추앙받던 시기를 지나, 자유를 찾아온 이들로 환영받는 현재까지 체제의 희생자로 인식되면서 북한과의 거리 두기에 성공했다. 낯선 남한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때때로 ‘문제 유발자’가 되기도 하지만, 남한 사회가 절대적으로 보듬어야 하며 적극적인 이해와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서 우리와 함께하고 있다.
프레임을 뒤흔든 북한 어민 북송 사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온 ‘선량한 북한이탈주민’이라는 프레임을 뒤흔드는 사건이 지난 2019년 발생했다. 2019년 11월, 북한 해상에서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동료 16명을 살해한 후 북한을 빠져나와 북상과 남하를 반복하던 북한 어민 2명이 해군에 붙잡혔다. 남한으로 들어온 북한 주민은 대개 남한 주민으로서의 지위가 인정되므로 북한이탈주민으로서 보호 및 지원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며칠간 조사를 받은 뒤 북한으로 보내졌다. 북한 주민을 북한이탈주민으로 수용하는 법적 근거는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착지원법’)이다. 정착지원법 제9조는 다음과 같은 사유에 해당하는 북한 주민의 경우 관계 법규에 따라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는 보호 대상자, 즉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9조(보호 결정의 기준 등) ①제8조 제1항 본문에 따라 보호 여부를 결정할 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보호 대상자로 결정하지 아니할 수 있다. 〈개정 2019. 1. 15., 2020. 12. 8.〉
1. 항공기 납치, 마약 거래, 테러, 집단살해 등 국제형사범죄자
2.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
3. 위장 탈출 혐의자
4. 삭제 〈2020. 12. 8.〉
5. 국내 입국 후 3년이 지나서 보호 신청한 사람
6. 그 밖에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에 대한 중대한 위해 발생 우려, 보호 신청자의 경제적 능력 및 해외 체류 여건 등을 고려하여 보호 대상자로 정하는 것이 부적당하거나 보호 필요성이 현저히 부족하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
② 제1항 제5호의 경우 북한이탈주민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4. 5. 28., 2020. 12. 8.〉
③ 통일부장관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등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협의회의 심의를 거쳐 제1항 제1호 또는 제2호에 해당하는 사람을 관할 수사기관에 수사의뢰하거나 그 밖의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신설 2024. 1. 9.〉
④ 통일부장관은 북한이탈주민으로서 제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여 보호 대상자로 결정되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경우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보호 및 지원을 할 수 있다. 〈개정 2014. 5. 28., 2017. 3. 21., 2019. 1. 15., 2020. 12. 8., 2024. 1. 9.〉
위 내용을 보면, 언뜻 북한 어민 2명은 동료 어민 16명을 살해한 중대 범죄자이므로 보호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북송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안의 특수성 때문에 국내법을 적용하지 않았고, 이에 보호 여부를 판단하는 정착지원법에 따른 판단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업무의 주무 부처인 통일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육로와 달리 해상으로 들어온 북한 주민의 경우, 종종 법적 근거 없이 처리되었다. 귀순 의사가 명확한 경우에는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했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자 하면 송환했다. 해당 사건의 북한 어민은 살인 후 도주하다가 붙잡혔으므로 관계 기관은 도주로 판단하여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도주의 경우라도 본인 의사가 있으면 북한이탈주민으로 인정하지만, 이들은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대한민국 해군을 접한 뒤에도 이틀가량 시간을 끌었다. 해군 특전요원에게 붙잡힌 뒤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조사 과정에서 “일단 돌아가자, 죽더라도 조국(북한)에서 죽자”라고 모의한 점과 남하하다가 다시 NLL 이북으로 도주한 점 등을 고려해 귀순 의사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들이 동료 어민 16명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관계 기관은 ‘흉악범’인 이들이 남한에 들어왔을 경우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측면을 고려했다. 국가의 기본 책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우리 국민이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북송을 결정했다.
프레임 밖 북한이탈주민을 둘러싼 갈등
기본적으로 공무원은 모든 일을 관련 규정에 근거해 실행한다. 실행한 업무의 적절성을 규정에 따라 평가받기 때문에 이는 공무원 개인의 안위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안이다. 북한 어민의 북송 결정 또한 북한이탈주민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주무 부처인 국가정보원, 통일부 등의 종합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문제를 강조하는 보수층은 북한 어민을 북한으로 돌려보낸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해당 북한 주민이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강제로 판문점 북측으로 끌려가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여론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지원하는 변호사 단체는 정착지원법 제9조가 해당 범죄를 저지른 북한 주민에 대해 북한이탈주민에게 제공되는 보호나 경제적 지원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일 뿐, 강제로 북송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남한 주민으로서의 지위가 인정되는 북한 어민을 남한 법원에서 재판하지 않고 북한에 넘긴 것은 국가로서 주권과 자주성을 스스로 손상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2022년 보수 정부가 등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북송 사건을 처리했던 부처와 기관의 입장이 뒤집혔다. 통일부는 ‘사건 처리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라며 이전 태도를 바꿨고, 기관장이 바뀐 국정원은 사건을 처리했던 전 정부 시절의 기관장을 고발했다. 북한 인권 관련 민간단체가 사건 관련 기관의 고위 관계자를 대거 고발하면서 수년간 재판이 진행되었다.
프레임의 균열
재판 과정에서 해당 사건을 처리했던 이전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해상에서 북한 어민이 16명의 북한 주민을 살해한 특수한 상황에서 한국 사회의 안전을 위한 고도의 통치행위 차원에서 북송했다”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사건을 처리한 재판부 또한 북한 어민 북송이 국내법과 국제법을 막론하고 해당 사건 처리에 참조할 어떤 법률이나 지침도 없는 상황에서 내려진 불가피한 결정이었다는 그들의 입장을 수긍했다. 명백한 살인의 경우라도 물증 없이는 처벌할 수 없는 국내법 체계, 처벌 없는 남한 정착 허용의 부적절성, 예상되는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3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2025년 1월 법원은 기소된 고위 관계자들에 대해 같은 행위가 다시 행해지지 않을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고 형량을 확정하지 않는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사안을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정황을 고려하여 처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부처의 관계자는 법원의 판단에 대해,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결과라는 입장을 보였다.
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안 향후 유사 사례 발생에 대비하기 위해 정착지원법이 개정되었다. 이를 통해 보호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북한 주민도 국내에서 수사받을 수 있고, 필요한 보호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정착지원법 제9조 제3항, 제4항 참조). 그렇게 프레임 밖 북한이탈주민 사건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마무리되었다.
통일 미래를 향한 새 프레임
2019년, 이 사건을 심도 있게 살펴본 당시 여야 국회의원들 또한 정부 입장에 공감했다. 이는 보수 정부가 사안을 다뤘더라도 처리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정권이 바뀌자마자 대통령까지 나서 법적 잣대를 들이댄 것은 인권이라는 명분으로 기존 프레임을 이용해 사건을 정쟁화하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적대시하는 프레임이 끊임없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실존하는 북한의 특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한 거부감이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들었다는 점도 이해할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와 북한 주민 개인을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음에도 북한이탈주민 또한 우리 사회에 내재한 북한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적지 않은 북한이탈주민들은 “취업지원서에서 북한 주민 이력을 삭제하니 수십 번 시도해도 되지 않던 취업이 바로 되었다”라며 한탄한다.
우리는 북한을 철저히 적대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살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라는 집단과 통일하는 일이 정말 가능할 것인가? 그런 대상과의 통일을 희망하는가? 이러한 프레임이 한반도의 미래에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실존하는 북한의 특성을 부정하거나 미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 스스로 또 다른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는 프레임이 자신들의 결정이 항상 옳다는 과신에 빠지게 하고, 사안에 대한 비판적 사고나 대안적 관심을 억제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고 강조한다. 수십 년에 걸쳐 깊이 각인된 관념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지만, 남북 어느 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프레임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통일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점 사라져가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통일을 포기할 수 없다면.
강구섭
훔볼트 대학에서 ‘독일 통일 후 동서독 주민의 내적통합’이라는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교육개발원 통일교육연구실장,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8년 전 ‘복상이 주목한 100인의 그리스도인’에 선정됐고, 본지 2021년 6월호 ‘사람과 상황’에 소개된 바 있다. 저서로는 《독일 통일의 또 다른 이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