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멸종 혹은 생존에 관하여

[415호 특집]

2025-05-31     녹색정치연구소

위험은 유전자를 통해 정보로 전해진다. 인간은 위험 신호를 본능적으로 저장하고 중요하게 다루면서 생존해왔다. 지형을 익히고 도구를 사용하는 등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인류가 축적해온 정보와 기울여온 노력을 압도하는 변화, 대멸종을 앞당기는 기후위기의 시간 가운데 서있다.

문제는 우리가 마주한 이 위기를 해결해야 할 정치가 실종된 듯 제 기능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7월 ‘녹색’과 ‘정치’가 교차하는 연구와 활동을 하겠다며 ‘녹색정치연구소’(greenpolitics.kr)를 만든 손어진·박진영·박제민 공동대표가, 대멸종과 생존 가능성이라는 갈림길에서 인류의 향방을 결정할 정치의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박진영, 손어진, 박제민. 좌담은 5월 3일에 진행되었다. (이하 사진: 녹색정치연구소 제공)

박제민: 인류가 멸종할 것인가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기나긴 지구의 역사에서 생명체는 주기적으로 멸종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전에 있던 대멸종은 생명체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었지만, 지금 벌어지는 대멸종은 철저하게 인간 때문이라고 한다.

손어진:  지금도 하루에 10여 종씩 멸종하고 있는데, 그 속도가 이전의 대멸종과 비교했을 때 1,000배 가까이 된다는 연구도 있다. 인간도 결국 지구상의 생명체라서, 멸종에 이르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한다.

박진영: 이번 대멸종이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더 이상 살아남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만든 문명사회가 사라지는 것도 포함된다고 본다. 인간이 발전시킨 기술이나 예술 같은 모든 인위적인 것들이 사라지거나 쓸모가 없어지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 인류의 멸종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핵발전이라는 주술

박제민: 인류가 멸종할 거라고 확신하는 요인은 많다. 최근에는 기후위기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예전에는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다. 냉전 시대가 끝나면서 핵전쟁 위협은 다소 줄어들었지만 핵사고 위험은 커지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는 1986년 체르노빌 핵사고와 함께 7등급으로 분류한다. 7등급은 방사선 피해가 한 국가를 넘어 광범위한 지역으로 퍼진 대형 사고를 의미한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일은 천만다행이나, 굉장한 우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경우 세계에서 핵발전소가 가장 밀집해있는 동아시아에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지구상에서 동아시아가 사라지고, 세계에는 경험해보지 않은 혼란과 위기가 찾아왔을 것이다.

손어진: 최근 읽고 있는 《일본은 왜 원전을 멈추지 않는가?》(마르코폴로)에서 지적하는 부분이다. 정말 기적 같은 우연에 의해서 핵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 2011년 이전 사례들이 나온다. 그래서 일본의 핵 연구자들이나 과거 정책 결정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진짜 천운이었다고 강조하면서 핵발전 폐지를 주장한다. 고이즈미 전 총리도 반핵 활동가가 되지 않았나. 모두가 예상했듯이 일본 정부와 핵산업계는 돈과 이권이 걸려있어서 핵발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박진영: ‘과학’과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신화가 붕괴하고 있다. 핵발전이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이고 경제적이고 심지어 환경적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실상은 천운에 기대어 사고가 안 나기를 바란다니, 이건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라 주술 아닌가. 한국의 핵발전소들에서도 월평균 한 건 이상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2019년에는 한빛 1호기에서 시험 도중에 열출력 초과가 발생했는데, 원인은 계산 착오였다. 후쿠시마 핵사고와 같이 7등급 대형 사고인 체르노빌 핵사고의 원인 역시 열출력 초과였다. 자칫하면 대한민국 땅에서도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핵사고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인데….

손어진: 후쿠시마 핵사고는 바로 직전 지진과 쓰나미로 침수가 일어나고 전력 시스템이 망가지면서 냉각장치에 이상이 생겨 핵폭발로 이어졌다. 미국식 설계로 지은 탓에 허리케인과 토네이도만 대비했을 뿐 쓰나미를 고려하지 않았다. 2022년과 2025년에 경북에서 일어난 산불이 쉽게 꺼지지 않고 넓게 퍼져 울진으로 향했는데, 핵발전소에 옮겨붙으면 초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앞으로 기후위기로 인한 쓰나미, 산불 등 자연재해가 더 크고 빈번하게 일어날 텐데 정부와 핵산업계는 무슨 대비를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박제민, 손어진 공동대표.

아래쪽부터 죽는다

박진영: 과거에는 ‘자연재해’라고 했지만, 요즘은 ‘기후위기’라는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그만큼 인간 활동에 의한 위기가 증가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자연재해가 태풍, 지진 등 자연현상에서 비롯된 단기적인 상황이라면 기후위기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과 같은 인간 활동에 의한 장기적 지구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지질학적 구분에 따르면 지금은 신생대 제4기 홀로세다. 인간에 의해 지구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으므로 새로운 시대 구분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따라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용어를 새로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인류세란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의미한다. 인간에 의해서 수많은 생명이 멸종하고 있고, 핵물질이나 플라스틱같이 인간이 만들어낸 물질이 토양에 흔적을 남길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질시대로 구분하기에는 시기가 너무 짧고 광범위한 변화로 볼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국제지질학연합에서 채택하지 않았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인간의 책임 인식은 더 강화되어야 한다.

손어진: 여전히 기후위기가 인간의 책임이 아니고 그저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며 인간 활동이 없을 때도 기후는 변해왔다고 말한다. 심지어 기후위기는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이자 미국의 제조업을 약화하려는 음모라고까지 주장한다. 독일의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기후위기를 정치적 주장이나 이념적 선동으로 치부하며 기후 정책에 반대하고 화석연료나 핵발전을 옹호하면서, 기후 예산을 경제개발이나 세금을 감면해주는 데 쓰자고 주장한다. 이런 사람들은 인간이 기후위기 주범이라는 과학적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박진영: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지만, 이미 현실이 된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문제에서 사회 불평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본과 자산을 갖춘 사람은 위기에 적응할 수단을 여러 개 갖고 있고, 또 적응할 시간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회적 약자는 곧바로 기후위기, 기후 재난에 당하는 수밖에 없다. 그냥 당하는 정도가 아니라, 곧장 죽음으로 연결된다.

박제민: 2022년 침수로 서울 반지하 주택에서 살던 일가족이 죽임을 당했다. 그때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이 했던 말이 선명하다. “퇴근하면서 보니까 아래쪽이 물이 차기 시작하더라.” 당연히 대통령으로서 자격 미달의 발언이지만, 내가 주목한 부분은 그들이 사는 공간적 차이다. 윤석열이 퇴근하고 살던 곳은 값비싼 고층 아파트였고, 희생자들이 살던 곳은 윤석열의 말마따나 ‘아래쪽’, 즉 반지하였다. 기후위기가 자연재해에서 사회적 재난이자 구조적 문제로 연결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희생된 분들이 여성이고 노동자고 장애인인 점 또한 그렇다.

손어진: 기후위기로 인해서, 지구에 악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출산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도 늘고 있다. 인류 멸종을 이야기할 때 저출생을 빼놓을 수 없다. 출산을 선택하는 것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출생률 저하는 사회구조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저출생은 인간 스스로 인간 사회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나 역시 출산 계획이 없다. 기후위기, 젠더 불평등, 지역 격차와 지역 소멸 등 이 사회가 너무 불공평하고 살기 힘든데 아이에게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다. 젠더 불평등과 기후위기 등으로 생존하는 일조차 너무 버거워서 다른 인간에게 이것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박제민: 저출생뿐 아니라 자살률도 높지 않은가. 사회 전체가 삶을 이어갈 의미를 상실했다는 구조적 징후다. OECD 국가끼리 등수 경쟁은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이고 특히 청소년과 노인 자살률이 높다. 인류 멸종의 위험이 크게는 핵사고와 기후위기 때문일 수 있지만, 구조를 들여다보면 촘촘하게 펼쳐진 불평등 때문에 일어날 것이다.

박진영 공동대표

정치가 멸종을 막을 수 있을까

박진영: 요즘 정치를 향한 무력감과 분노를 넘어서 ‘정치 우울’이 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던 박근혜 파면은 정치효능감을 끌어올렸고, 새로운 정부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를 향한 기대감을 품게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정치는 진영을 막론하고 여전히 무능하고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줬다. 두 번째로 겪는 대통령 파면이라는 ‘초유의 사태’ 이후 조기 대선 과정에서 사회를 대개혁하자는 목소리는 나중으로 치부한 채 정권 교체에만 매달리는 정당이나, 민주주의를 훼손하려고 했던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이 후보 단일화를 두고 점입가경의 행태를 보여주는 상황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손어진: 지금같이 기울어진 정치 지형에서는 국회나 정부에 나를 대표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당연한 귀결로 나를 위한 정치도 없고 정책도 없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로만 구성된 국회, 정부에서 벌어지는 정치가 잘될 일이 없다.

박진영: 정치는 어떤 의제를 ‘우선’할 것인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를 다루는 일인데, 치우쳐진 정치 지형에서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일에 사회 전체 목소리를 균형 있게 담아내기 어렵다. 문제는 다양성이 없다는 점이다. 국회의 성비, 연령대, 출신 학교, 출신 직업을 보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있다. 재산 규모도 대한민국 평균 이상이다. 자기 이익과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의 이익을 대표할 뿐이다.

박제민: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 핵심 원리로 ‘정치적 평등’을 꼽았다. 시민이 정치적 평등을 누리기 위해서는 첫째는 참정권을 확보해야 하고, 둘째는 의회를 통한 대표성을 확보해야 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은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의회를 통한 대표성을 확보하는 일이 관건이다. 의회의 대표성에 관한 관점 중 하나가 의회 구성이 전체 사회 구성과 일치해야 한다는, 이른바 ‘축소판 모델’이다. 녹색정치연구소에서 22대 국회 구성이 과연 사회 축소판이라 할 수 있을지 조사해서 보고서를 냈다. 그 결과 22대 국회는 돈 많고, 좋은 대학을 나온, 50-60대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 축소판은 아니지 않나.

박진영: 시민들이 정치 혐오를 넘어 정치적인 무기력과 우울을 느끼게 되면 민주주의는 약화하고 다시 사회적 약자가 정치로부터 소외되어, 빈곤과 불평등을 겪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한 줌의 녹색정치가 추구하는 공존

손어진: 비상계엄이라는 시대착오적인 일을 겪을 줄은 몰랐다. 추운 광장에 4개월 내내 나와있었던 게 쉽지는 않았지만, 광장에 나온 시민들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이번 탄핵 광장에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며 탄핵 이후 세상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 속에서,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차별 없는 세상, 함께 사는 세상, 인간만이 아니라 비인간 동물의 생명도 존중되는 세상, 기후정의가 실현되는 세상…. 우리가 오랫동안 얘기하고 있던 녹색정치가 작동하는 사회 모습이었다. 우리처럼 녹색정치를 주제로 활동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한 줌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 사회에 차별을 반대하고 불평등을 해결하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간과 여러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를 바라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

박진영: 다양한 사회가 더 좋은 사회이고, 위기에 더 강한 사회라고 믿는다. 생물다양성이 있어야 멸종을 피할 수 있듯이, 정치 다양성이 있어야 핵 위험, 기후위기,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더 다양한 목소리들이 정치적 힘을 가져야 한다. ‘광장의 응원봉이 국회의 의사봉을 쥘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한 표가 하나도 버려지지 않고 정치권력으로 연결되도록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새로 만들 헌법은 멸종이 아니라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담아야 한다.

박제민: ‘평범한 사람들이 주권자로 사는 세상’은 나의 정치 표어다. 그런 세상을 보고 싶고, 또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매번 선거 때마다 투표하지만 아무런 정치적 권력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49.9% 시민의 목소리가 49.9%의 권력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싶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정치를 나는 ‘녹색정치’라고 부른다. 그래서 녹색정치를 하고 녹색정치연구소를 한다.

오늘 이야기한 대로 언젠가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앞당기지는 말자. 그 역할을 맡은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들자. 녹색정치연구소는 이런 마음을 품고 연구하고 활동해나갈 것이다.

인간 중심의 활동으로 인한 생태계 변화와 가속되는 기술 발전에 대한 무책임으로 인류는 커다란 위기 앞에 서있다. 이 위기를 돌파하는 힘은 몇몇 영웅에게 있지 않다. 소수 대기업을 위한 ‘먹고사니즘’으로 인한 낙수 효과 신화도 폐기된 지 오래다. 서로를 멸종시킬 듯이 싸우지만, 기득권은 사이좋게 나눠 갖는 양당 독식-정치 체계로는 멸종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다. 인류가 멸종의 시기를 조금씩 밀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우울감을 느끼면서도 무언가 해보려는 사람들, 아직 오지 않은 동료 시민을 염두에 둔 사람들,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생명에 접속되는 사람들이 만드는, 우리가 ‘녹색정치’라고 부르는 작지만 커다란 힘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녹색정치연구소
역사의 순간에는 우연을 가장한 섭리가 있다고 믿는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시민단체, 의회, 정당 등에서 활동한 공통점을 갖고 있는 어진, 진영, 제민은 2019년 독일 베를린의 케테 콜비츠 박물관에서 우연히 만났다. 지구를 지키고 삶을 보호하기 위해 녹색정치가 필요하다고 믿는 세 사람은 2024년 7월에 다시 만나 녹색정치연구소를 만들어 연구하고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