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3천 원, 기분 좋게 한턱내세요 ― 따뜻한밥상 숭실대점 박성용 대표
[415호 사람과 상황]
숭실대학교 건너편 골목 모퉁이를 돌자, 어귀에 정겨운 가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김치찌개 3천 원. 배고픈 행인들의 발걸음을 잡는 ‘따뜻한밥상’이다. 지역의 대학생·청년을 비롯해 이웃들을 위해 운영하는 식당으로, 3천 원만 내면 김치찌개 한 상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밥을 제공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이웃을 위한 식당이라지만, 고물가 시대에 어떻게 이런 가격으로 식당을 운영할 수 있을까. 이곳, 따뜻한밥상 숭실대점(이하 따밥)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박성용 대표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복음과상황 후원독자이기도 한 그는 주일에 다함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평일에 따밥지기로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중직 목회자이다. 한 주의 영업을 마무리하는 금요일 저녁에 박 대표와 만났다.
- 가게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예쁘네요.
그런가요?(웃음)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어요. 아무래도 식사가 3천 원이면, 손님들이 편견을 가질 것 같아서요. 최소한의 서비스만 제공받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요. 중앙에 놓인 피아노는 교회에서 쓰던 걸 가져왔어요. 주일에 예배할 때 사용합니다. 저희가 지향하는 것을 심볼화해서 한쪽에 장식하기도 해요. 작은 ‘평화의 소녀상’을 가져다 두기도 했죠. 이런 것들을 어색해하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 따밥은 언제, 어떤 이유로 시작하게 되셨는지요?
2017년 10월에 사역하던 교회로부터 분립하게 됐어요. 교회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면서 이중직 목회를 하게 됐는데요. 교우분들과 함께 나아갈 방향이나 가치관을 점검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따뜻한밥상을 알게 됐습니다. 2022년 말부터 교우들과 따밥의 다른 지점을 방문해보기도 했죠. 기도하고 고민한 끝에 결정했어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자’는 생각이었죠.
이곳에 오기 전에 예배당이 상가 안에 있었어요. 그 공간을 팔고 교회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자고 했어요. 따밥을 시작할 때 작은 교회의 특수성을 크게 본 것인데요. 이 공간에서 평일에는 저와 교우들이 함께 일하는 사역의 장을, 주일에는 교우들과 예배하는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을 목표로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협동조합 형식으로 해볼까 했는데요. 저나 교우들이나 식당 일이 처음이었거든요.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일단 운영은 제 책임 아래 하기로 하면서, 저는 식당 대표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따밥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이고요. 월세를 반반 부담하고 있습니다.
- 이중직 목회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목회와 일 사이에서 어려운 점은 없으신지요?
가장 어려운 건 언어의 변화예요. 이중직을 할 때, 주중에 쓰던 언어가 저도 모르게 주일에 튀어나올 때가 있거든요. 예전에는 도시재생 사업에 참여하면서 목회했는데요. 사업 현장에서 썼던 언어가 예배 중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주중에 열심히 일하다 보면 사고가 빠르게 전환되지 않거든요. 그런 부분을 극복하려 하죠. 그리고 작은 교회는 정체되어있는 것이 늘 고민거리예요. 같은 사람, 같은 언어로부터 탈출하기가 어렵거든요. 교우분들이 같이 여행도 자주 다니고, 주일 오후에 책을 읽거나, 외부 강사에게 강의를 듣기도 하면서, 정체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저희는 이미 따밥을 해오고 계신 분들에게서 노하우를 받아 비교적 쉽게 시작한 편인데요. 그럼에도 자영업은 하나부터 열까지 책임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해야 하잖아요? 그런 스트레스나 부담감은 있는 것 같아요. 시작한 지 2년이 되어가는데, 완전히 익숙해지지 않았어요. 손은 빨라졌어도, 아차 하는 순간에 실수하거나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요. 항상 책임감 있게 일하려고 합니다.
- 따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최운형 목사님이 어려운 시기 연신내역 근방에서 따뜻한밥상 1호점을 시작하셨죠. 처음에 최 목사님은 ‘청년밥상문간’을 운영하던 이문수 신부님에게 허락을 받아 2호점으로 시작하셨다가 2022년 ‘따뜻한밥상’으로 간판을 바꿔 다셨죠. 전국에 17개 정도 매장이 있는데, 매장별로 상황에 맞춰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신내점이나 홍제점은 어르신이 많고, 저희 같은 대학가 쪽은 학생이 많으니까요. 매장마다 지향하는 부분이 다를 수 있지만, 3천 원이라는 가격은 똑같이 유지합니다.
저도 장사가 처음이라 몰랐는데, 오픈할 때 주변 상권에서 긴장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곳 상인분들과도 연대해서 살아가야 하잖아요? 이 근처에 있는 가게들은 주로 저녁 장사를 많이 해서, 저희는 저녁 시간에 운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 따밥에서는 어떻게든 3천 원이라는 가격을 지켜오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물가 상승이 크다 보니, 이 가격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최운형 목사님이 이 일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아낌없이 노하우를 알려주고 도와주시는데요. 저희도 레시피를 그분에게 받아왔어요. 몇 가지 원칙을 지켜달라고도 하셨는데요. 그중 하나가 가격을 3천 원으로 유지하는 거였죠.
손님들이 3천 원으로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지 많이 물어보세요. 저희는 이렇게 답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오시는 것만으로 도움이 됩니다. 여기에 자원봉사자들의 수고가 더해져서 인건비를 낮추고, 마음을 같이하는 분들이 쌀이나 기본적인 것을 후원해주세요.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고 말씀드려요.
가격이 싸다고 해도, 음식 맛이 별로고, 분위기도 안 좋고, 퀄리티도 떨어지면 손님들 입장에서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요. 만약 음식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거나, 머리카락 같은 이물질이라도 나오면 ‘3천 원짜리라서 그런가?’ 오해를 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위생에 정말 많이 신경을 씁니다. 매년 위생 점검을 오는 분들이, 너무 깨끗해서 힐링이 된다고 말씀하세요.
단가를 맞춰서 좋은 재료를 저렴하게 사기 위해 많이 노력해요. 가격 비교는 물론이고, 김치 하나만 하더라도 더 좋은 맛을 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이죠. 육수도 직접 끓이고, 고기도 매일 가서 생고기로 사옵니다. 비계를 잘 안 드시는 분이 많아, 가능한 만큼 제거하고 담백하게 준비해서 드리려 해요.
- 손님이 하루에 몇 명 정도 오시나요?
요즘에는 80-90명 와요. 작년보다 조금 늘었죠. 손님이 많아서 중간에 브레이크 타임을 넣기는 하거든요. 이런 걸 보면, 경제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고 가늠하죠. 주 고객층은 숭실대 학생들이고, 원룸에 사는 청년들, 지역 주민들도 오십니다. 최근 주민들 사이에 소문이 났는지, 혼자 식사하러 오시는 분이 꽤 있어요. 특히 혼밥하는 분 중에 단골이 많은데요. 많게는 주중에 서너 번씩 오시고. 하루에 한 끼는 여기서 드시는 거죠.
- 따밥에 가장 시급한 필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자원봉사자에 대한 부분이 계속 고민이죠. 오히려 수익을 내서 일자리 창출을 하는 게 맞지 않나 싶고요. 인건비를 낮춰야 하는 현실 때문에 자원봉사자에게 보수 없이 열정을 기대하는 게 요즘 시대에 잘하는 일인가 싶기도 해요. 이것도 사실 누군가의 노동인데, 자원봉사라는 명목으로 정당한 대가 없이 퉁치는 게 아닌가 해서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사회에서 요청하고 있기도 하잖아요. 앞으로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 계속 고민이에요.
-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저희는 손님들에게 복음을 직접 전하지는 않습니다. 원색적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죠. 교회가 공동체적 삶이잖아요. 그런 삶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을, 가랑비에 옷 젖듯이 몸으로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행히 손님들이 가끔 이런 걸 알아주시는 것 같아요.
요즘 청년들이 지갑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해요. 먹는 건 주로 사 먹어야 하는데, 하루 두 끼가 쉽지 않은 상황이죠. 빈곤은 단지 돈이 없는 문제가 아니라 가능성의 상실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저희 교우들과 하는 얘기가 있어요.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자본주의에 저항하고 있다.(웃음) 모두의 마음이 모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에요. 저희 자랑 중 하나가 뭐냐면, 가끔 손님 중에 식사 마치고 ‘내가 살게’ 하는 분들이 있어요. 기분 좋게 한턱내는 거죠. 물론 사는 사람이 선배 같기는 한데.(웃음)
두세 사람이 넉넉하게 먹고도 1만 원, 2만 원이면 계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여유를 상실하거나 여유를 주지 못하는 사회는 구조적인 ‘악’이죠. 저희는 여유가 없는 분들에게 마음의 여유, 삶의 여유, 크지는 않지만 3천 원에 한 끼 해결하고 친구들과 커피 한잔할 수 있는 여유, 또 맥주 한잔 마시면서 삶을 이야기할 여유를 선물해드리는 거죠.
작은 소망이 있다면, 이곳에 오시는 분 중에 한두 분이라도, ‘내가 대학 다닐 때 학교 앞에 있는 식당이 하나 있었는데…’ 하고 떠올리면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애써왔던 시간이 있다는 걸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것만 해도 사실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저희 교우들도 같은 마음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데,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은 넉넉했다. 문간을 넘으며 생각했다. 이곳을 다녀간 이들은 배만 부른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찾았을 거라고. 어쩌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건, 허기를 달래기 위한 한 끼보다 사랑과 정성이 담긴 만찬이 아니었을까. 따뜻한밥상은 숭실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다. 대표님의 마음이 전달되어 더 많은 청년이 이곳을 찾기를 바란다. 문 앞까지 나와 배웅해주시는 목사님 부부의 미소가 참 따뜻했다.
진행 차에녹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