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모으는 장서가의 꿈

[416호 책방에서]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정은문고)

2025-06-26     박용희
장서의 괴로움 |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13,000원

용서점의 시작은 헌책방이었습니다. 책 관련 일을 하는 지인이 꽤 있었는데, 이들 중 ‘소장파’ 비율이 적지 않다는 걸 깨닫고 시작한 일이었지요. 읽힐 줄 알고 기대하며 서가에 들어갔다가 끝내 펼쳐지지 못하는 책들을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습니다. 내 책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깝고 책에게 미안했던지. 책을 모은다는 소식을 알리고 두 달 만에 용서점 서가는 만 권의 책으로 가득 찼습니다.

수년 만에 다시 용서점이 책을 모은다는 글을 SNS에 올렸습니다. 용서점의 세 번째 공간을 어떻게 꾸려갈까 고민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내용이었죠. 전국에서 다양한 독자들이 책 박스를 보내주셨고, 몇몇 분은 직접 차에 싣고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누군가 이 책을 다시 잘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10여 년 전, 장정일은 《장서의 괴로움》 추천의 글에서 독서가와 장서가가 나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책이 물질성을 잃고 난 전자서적 천지에서는 독서가와 장서가가 분명히 나뉠 것이다. … 전자서적을 읽은 독자가 그 단계에서 정보를 얻거나 이용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독서가가 되고,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책’이라는 물질을 추구하면, 그때에야 비로소 장서가가 탄생하는 이원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둘을 딱 잘라 나눌 수는 없겠지만, 책의 물질성 자체를 애정해서 구매하고 수집하는 이들은 장서가라는 단어가 더 어울립니다. 용서점이 ‘책 모으기’를 통해 만나는 독자들도 아마 ‘장서가’가 많겠지요.

물질성 없는 전자책으로는 독서가가 될 수는 있어도 장서가는 될 수 없습니다. 서점이 10평쯤 되는 역곡동에 만족하지 않고, 4배 넓혀서 원미동에 무리한 공간을 (그것도 지하에!) 얻은 것도 바로 물질성에 대한 책방지기의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장서가들의 꿈을 용서점을 통해 누리게 하고 싶었죠.

용서점에 들어오는 누군가의 책들은 한동안 주제별, 출판사별 분류가 아닌 장서가 단위로 입구 가까운 서가에 꽂혀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누군가의 장서였던 책들, 의도를 갖고 모았던 책 리스트를 보며 마치 그 사람의 서재를 구경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가능하면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이 모은 책들을 접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았죠.

책 읽는 사람도 거의 없는 판에 무슨 장서가 타령이냐 하실 수 있겠지만 오히려 물성에서 오는 다양한 매력을 물고 뜯고 맛보게 하는 게 독서가를 넘어 장서가를 양성(!)하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길이 아닐까요. 아, 그리고 13년 전에 기독 지성인(대부분 장서가)의 서재에 직접 찾아가 책과 삶 이야기를 나눈 《그 사람의 서재》(새물결플러스)도 이미 나온 바 있습니다. 장서가라는 단어에 끌리는 분들은 이 책도 읽어보시길.

박용희
부천시 원미동에서 동네책방 ‘용서점’을 아지트 삼아, 이웃들과 책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시도해볼 예정이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