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뒷모습(下)
[416호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5
“우리는 교회를 나갈 겁니다. 대신, 그동안 우리가 낸 십일조와 헌금을 돌려주세요.”
가만 보니 이번에도 입을 맞추고 왔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하던 집사님들도 침묵한다. 그분들도 나처럼 말대꾸할 가치조차 없어서 가만있는 건지, 아니면 동조한 건지 모르겠다. 그분들의 표정에서 편승 아니면 묵인을 읽었다. 아무튼, 그러고는 대다수가 교회를 떠났다. 나를 그렇게도 힘들게 한 집사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사실이 반전이었다. 고난의 연대기는 종착지를 향해 속도를 내고 있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나는 결심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리처드 포스터가 《영적 훈련과 성장》에서 유용한 금식을 하나 알려주었다.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꾸준히 금식하는 방법이었다. 간단하다. 점심 식사만 하면 된다. 그 이후 물 위주로 마시는데, 포스터는 과일 주스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아침은 거르기 쉬우니, 저녁 한 끼만 참으면 된다. 그렇게 몇 달을 기도했다. 못 견디겠다고, 이제는 끝내고 싶다고.
즉각 응답받은 것은 아니다. 몇 달 동안 서서히 생각이 바뀌었다. 교인들은 직간접적으로 내게 떠나라는데, 떠날 수 없었다. 외적으론 하나님의 종이니, 하나님 뜻대로 움직인다고 주장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갈 곳이 없었다. 학교도, 교회도, 기관도, 어떤 곳도. 내 자존심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떠날 곳이 정해지지 않아서 못 떠났다.
금식 기도를 마칠 즈음에 나는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결단했다. 교인들 의사에 거취를 맡겼다. 떠나라고 하면 떠난다. 길가에 나앉아도 나간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처음에는 남 탓, 이태쯤 지나니 내 탓이다. 목회 역량이 부족하니까 질질 끌면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 탓이 아니다. 하나님 탓이다. 나를 수렁으로 밀어 넣으셨다. 금식 기도의 끝은 이랬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 탓을 수십 번 하면, 뜻이 된다. 탓탓탓타타타트트트뜨뜨뜨뜻뜻뜻!
그 후 얼마나 흘렀을까? 한 무리가 한 번에 교회를 떠났다. 새로운 청년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교회는 또다시 활기를 띠었다. 와중에 바로 그 집사님이 갑자기 아팠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식해야 하는 중병이었다. 이식하는 일이 어디 쉬운가. 생사의 기로에 섰다, 나의 원수는. 그때, 나는 정말 감, 사, 했, 다. 그가 죽을 만큼 위중하다는 소식이 말이다.
내가 감사했던 것은, 내가 내 원수를 위하여, 내 원수의 생명을 살려달라고, 금식하며 울부짖을 수 있어서였다.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어찌 내가 그런 착한 마음을 품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진실이다. 내가 나를 위해 금식 기도했듯이, 그를 살려달라고,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했다. 때로는 눈물도 흘렸다. 그 마음을 주님이 주셨다는 것, 내가 그분을 진정으로 용서했기에 진심 어린 기도를 바치게 되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와 교우들의 기도로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할렐루야!
어려운 시기, 가장 믿었던 집사님 부부가 있었다. 신실한 분들이었다. 한 번은 두 분과 식사를 나누었다. 그때 여자 집사님이 말하기를 “우리는 모두 목사님이 옳다는 것을 알아요. 그 집사님이 목사님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면 다들 왜 그래요?”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이 부부도 나와 그 집사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예배 때 자리를 옮겨 앉는다. 그 집사님의 부인 옆에서 팔짱을 끼고 예배한다. 말하지 않아도, 오히려 착한 분들이기에 나에게는 더 큰 압력이었다. 그 집사님의 대답은 이랬다.
“집사는 집사 편을 들어야죠.”
6
대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친다. “야, 김기현 나와.” 동네 창피해서 집으로 들였다. 그 소리에 놀란 유치원생 아들은 부스스한 눈으로 쳐다본다. 몇 마디 언성을 높이자, 아내는 얼른 아들 눈을 가리고 방으로 데려가고, 그도 할 만큼 했다 싶은지 돌아갔다.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 같다. 숨도 제대로 못 쉬겠고, 내가 내 몸을 마구 때려주고 싶다. 겨우겨우 교회로 다시 가서 불도 켜지 않고, 꺼이꺼이 울었다. 가슴을 치며, 고개를 조아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제발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제발 어떻게 좀 해 줘요. 제발요.” 반복하고 반복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도 무섭고 몸서리쳐져서 차마 발설하지 못한 그 말이 무엇인지를 내 주님은 잘 아시리라.
이 이야기를 훗날 칼럼으로 썼다. 2018년 11월 27일 자 〈국민일보〉에 실렸다. 제목은 ‘시편으로 지랄하기’. 온라인판에는 ‘시편으로 성질부리기’로 실렸다. 순화되기 전 원문의 마지막 부분을 옮긴다.
미치지 않고, 죽이지도, 스스로 죽지도 않은 비결은 내 나름 그나마 거룩하게 지랄을 떨었기 때문이다. 내게 한스러운 것은 좀 더 많이 복수 시편을 읽지 않은 거다. 그랬더라면, 내 자신에게, 가족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성질을 훨씬 적게 부렸을 것인데 말이다.
복수 시편이 필요 없는 인생이 있다면 더없이 복되지만, 하늘은 우리 인생에게 그런 길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에는 원수가 있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고통당하는 것이 필연이고, 그것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미치거나 죽거나 일 텐데, 어떤가. 시편으로 성질부리기, 거룩한 지랄을 떨어보는 것은.
아무튼,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렸다. 날 부르는 소리다. ‘기현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을 들으면 일단 의심부터 한다. 용의자를 잡으면, 경찰은 일단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 반대로 기독교 신앙 안에서는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환상이나 착각이고 거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부터 해야 한다. 그러다가 도무지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제시될 때에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안에서 내 이름을 불러주신 그분은 딱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나는 그도 사랑한다.” “너는 죄가 없니?” “가서 용서해줘라.”
하나하나가 가슴을 후벼 팠다. 아주 잠깐이지만, 내 전공을 살려서 저 말을 논파했다. “그도 사랑한다고요? 좋아요. 첫째, 당신이 내 원수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왜 내게 말하는 거지요? 마치 시어머니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우울증에 빠져 병원에 입원한 며느리에게 찾아온 시모 친구 권사님들이 ‘너희 시어머니는 참 좋은 사람이다, 신심이 깊다, 너에게 정말 잘해준다, 그런데 너는 왜 이러니, 왜 네 시어머니를 나쁜 사람 만드니?’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겁니까?”
울분이 가시지 않는다. 다시 대들었다. “나더러 너는 죄가 없냐고 하셨나요? 당신의 거룩한 말씀인 로마서와 욥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요? 로마서가 법적인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고 하지만, 욥기는 무릇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죄 없는 사람 없고, 모두가 죄인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런 고난을 받을 정도로 큰 죄를 지은 것은 없다고 말하는 책이잖아요. 지금 내게 맞는 성경은 로마서가 아니라 욥기라고요. 나는 저 사람에게서 이런 대우 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 왜 이러는 겁니까?”
나중에 교인들이 우르르 교회를 떠나갈 때도 그들이 내게 고마운 것이 하나 있다고 했다. ‘성경으로, 설교로 까는 설교를 안 해서 고마웠다’라고. 나는 하나님의 종이고, 말씀을 섬기는 자인데, 내 욕망과 이익을 위해 말씀을 구부러지게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나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그런데 하나님마저 나보고 죄 없느냐고 타박하니 서러움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마지막 말도 기가 막혔다. “내가 왜 그를 먼저 찾아가야 하나요? 그가 날 찾아와서 머릴 조아리고 사죄해야지요.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목사로서 그를 안아주면서 ‘괜찮다고, 용서한다고, 함께하자고’, 그리 말해야 권위도 서고, 모양새가 좋지, 내가 왜 모양 빠지게. 당신이 목사 체면을 이리 구기니 내가 교회에서도 개무시 당하잖아요. 이러지 말아요, 나 좀 살려주세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하나님과 언쟁을 벌였지만, 나는 이미 무너져 있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아니 내 의사에 반하여 이미 그를 용서했던 거다. 잔잔한 물결처럼 내 마음을 바꾸셨다.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한다. 그때 내 몸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그렇게 그를 용서했다.
나는 그때의 일을 수년 동안 되새김질했다. 그때 그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 나는 왜 용서한 걸까? 내가 거칠게 대들었던 그분의 그 말씀을 뒤집어 보니, 놀라운 진실이 담겨있었다. 첫 번째 말씀에서 놓쳤던 것은 ‘조사’였다. 정녕 그분은 말씀하셨다. “나는 그‘도’ 사랑한다.” 이미 날 사랑하심이 전제되어있다. 십자가의 원수 된 나를 사랑하듯이, 십자가의 원수인 그 역시 사랑하신다는 말이었다. 내 원수인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원수인 나도 사랑받지 못한다. 그를 사랑하기에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사랑하시기에 그도 사랑하신 거다.
두 번째 말씀에 나는 성경적으로 또박또박 대들었지만, 내 죄는 로마서냐 욥기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하지 않는 죄,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고도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감옥에 처넣은 죄, 내 원수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진 그를 그의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품어주지 못한 죄, 무엇보다도 목사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었고, 교회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싶었던 은밀한 욕망에 사로잡힌 죄. 이렇게 내 죄는 차고 넘쳤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마지막 말씀도 다르지 않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먼저 찾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완전히, 온전히 비우시고, 종의 모습이 되셨던 것이 육화의 신비요 스캔들이 아니던가. 우리 주님은 하늘 영광 버리셨거늘, 나는 한 줌도 안 되는, 알량한 자존심 세우며 주님을 본받기를 거절하고 있었다. 내가 종주먹을 쥐며 외쳤던 말대로, 그 집사님이 먼저 나를 찾아와 사과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하면, 이 세상에는 어떤 구원도, 용서도 없다.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그날 그 음성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내가 홀린 것인지. 하지만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원수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상황 속에서 느껴져 너무 미운 그를 용서하게 되었다는 것은 내 인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경험은 복음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복음이란 용서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셨나? 왜 십자가에 못 박혔나?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여기서 죄지은 자의 다른 단어는 ‘원수’이다. 하나님과 원수인 나를 용서하셨다는 선포가 복음이다. 그렇다. 복음은 용서다. 용서가 복음이다.
이 경험은 기독교 평화주의에 대한 확신도 갖게 해주었다. 평화주의는 거창한 윤리 이론이나 실용적인 전술 이전에 복음이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출발하고 십자가로 돌아온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로 타인을 용서하며 사는 자의 삶의 방식이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악을 다루는 법의 결정체다. 기독교 평화주의는 복음대로 믿고 복음대로 살자는 것에 불과하다. 십자가의 방식 그대로 내게 악인인 자를 용서하는 것이 제자도이다. 한 꼬집의 소금이나 설탕이 풍미를 더하듯, 십자가의 길에 한 꼬집의 이론과 실천으로 다듬었을 뿐이다. 이것이 내가 유배지에서 만난 네 번째 하나님이다. 용서하는 하나님, 용서받는 나. 기독교 평화주의 연구자가 되라는 하나님의 뜻!
그런데 왜 이 글 제목이 ‘하나님의 뒷모습’일까? 자녀들은 길 가다 넘어지면 괜스레 울며 엄마 아빠 탓을 한다. 엄마 아빠니까. 그렇다. 나는 내 아빠 하나님을 사랑한다. 좋아한다. 그래서 내 아빠 하나님께 투정을 부린 거다. 하나님께 떼 한 번 안 쓴 사람은, 글쎄, 그에게 하나님은 아빠일까? 아저씨일까?
그렇게 내가 넘어져도 왜 내 손 안 잡아주는지, 무릎이 까져도 호, 다친 데를 어루만져주지 않는지, 아파서 우는데도 못 본 척하는지, 어린 마음에 눈물이 차오르는데 아무 말 않고 돌아선 그분이 왜 이리 서러운지. 그러다가 알았다. 하나님이 등지고 울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나를 업어주려고 돌아서 있었음을.
김기현
로고스교회의 담임목사이자,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교수로 있다. 이사야 50장 4절의 학자와 제자가 되어, 작가와 목사가 되어 말과 글로 주님과 교회, 이웃을 섬기는 비전을 품고 있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하며, 《고난은 사랑을 남기고》, 《부전자전 고전》 등 스무 권 이상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