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 사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
[416호 구선우의 동물기]
첫째 아들이 갓 돌을 넘긴 어느 겨울, 바쁜 아내를 두고 아들과 단둘이서 짧은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겨울방학 끝자락을 그저 흘려보내기가 아쉬워 아들을 위해 두 가지를 다짐했다. 집 밖에서 하룻밤 보내기, 사자 보러 가기. 아들은 동물 중에서도 유난히 사자를 좋아했다. 진짜 사자를 보여주고 싶었다. 서울보다 부산이 따듯하다는 말을 듣고 기차에 올랐다. 바람 부는 부산 시내를 걸었고, 그날 엄마 없이도 잠든 아들과 무사히 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부산의 한 동물원을 찾았다. 아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유리 벽 너머 사자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거대한 갈기부터 폭신한 발바닥까지, 작은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생김새를 살폈다. 한가롭게 누워 하품하는 모습에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다른 동물을 보고 나서, 다시 사자 앞으로 돌아와 오래 머물다 집에 돌아왔다. 아내 없이 아들과 함께한 첫 1박 2일은 내게 뿌듯한 기억을 남겼다. 무엇이 사람을 실제 동물에게 끌리도록 하는 걸까. 왜 많은 아이가 유독 사자에게 끌리는 걸까.
사자는 문화적으로 용맹과 힘을 상징해왔고, 생태적으로 아프리카 초원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왕처럼 군림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인간은 유리 벽 너머에서 길들여져 전시되는 이 동물에 대해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만약 사자가 말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그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철학적 탐구》, 제223항) 사자가 인간의 말을 하더라도 세계 경험이 다르기에, 우리는 사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비인간 동물과 인간 사이의 경계를 묻게 한다.
권력과 위엄을 상징하는 ‘동물의 왕’
C. S. 루이스는 자신이 창조한 마법과 모험의 세계인 나니아를 통치하는 왕의 형상으로 사자를 택했다. 사자 아슬란은 인간이 감히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위엄 있는 선한 구원자로 등장한다. “아이들은 아슬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려고 했지만 황금빛 갈기와 근엄하고 엄숙하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커다란 두 눈을 힐끗 보았을 뿐이다. 아이들은 사시나무 떨 듯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1) 루이스가 사자에게 부여한 것은 독창적으로 창안한 이미지가 아니다. 성경에서 사자는 ‘짐승 중에 가장 강하여 아무 짐승 앞에서도 물러가지 아니한다’(잠 30:30)고 묘사되며, 100회 이상 언급된다. 왕권·심판·구원 등, 양(羊) 못지않게 중요한 신학적 상징을 담당한다.
사자는 인간에게 중요한 상징물로서 오랫동안 관심을 받아온 동물이다. 고대이집트의 스핑크스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네메아의 사자, 중국 전통 건축물에 장식으로 자주 쓰인 돌사자 등은 권력과 위엄을 드러낸다. 영국 왕실을 비롯해 유럽의 왕가 혹은 영주가 사용하는 많은 문장에 사자가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불교에서는 부처가 앉는 자리를 사자좌(獅子座), 부처가 전하는 설법을 사자후(獅子吼)라고 표현하는데, 부처를 ‘사람 중의 사자’로 보기 때문이다. 플라톤·마키아벨리·홉스 같은 사상가도 사자가 힘·권력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 가치에 저항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해방의 존재로서 사자를 그려냈다.
이처럼 사자가 문학과 철학, 종교와 신화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아온 것은 실제 생태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사자는 최상위 포식자 위치에 있고, 특히 수컷은 왕관을 연상케 하는 화려한 갈기를 갖고 있다. ‘동물의 왕’이라는 호칭에 걸맞은 모습이다. 강력한 포효는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들을 수 있다. 사자 무리를 ‘프라이드’(pride)라고 부르는데, 같은 피가 섞인 암사자들 중심의 모계사회를 형성해 새끼들을 공동 양육하고 협업해서 사냥하며 엄격한 질서를 지킨다. 무리 바깥에서 들어와, 영역 방어와 외부 위협 차단에 힘쓰는 수사자 모습에서 ‘왕’ ‘지도자’ 이미지가 생겨났다. 수사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한 권력 다툼이 영화 〈라이온킹〉 등의 작품에 익숙하게 그려졌고, 사자 무리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삶과 질서는 오랜 세월 경외와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사자는 언제부터 한반도에 살았나
야생 사자는 현재 아프리카 초원과 인도의 일부 지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때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 살았으나 대부분 멸종되었다. 한반도에는 사자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외래동물은 우리 문화와 상상 곳곳에 등장한다. 한반도에 사자가 전래된 시기는 삼국시대라고 한다. 인도에서 시작해 중국을 거쳐 불교문화와 함께 들어왔으며, 사자상이나 사자춤을 비롯해 미술·문화재 등 다양한 영역에서 만날 수 있다. 환상 동물처럼 여겨졌는데, 정월대보름에 진행된 민속놀이 중 하나인 북청사자놀음이 대표 사례다.
조선시대에는 간접적으로나마 실물로도 등장한 흔적이 남아있다. 태종실록과 세종실록에는 명나라 황제가 외국에서 사자를 선물로 받은 일이 기록되었다. 특히 세종실록은 사자를 “온갖 짐승의 어른”2)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니, 동물의 왕으로서 존재감은 분명했다. 성종실록에는 ‘아라비아는 오가는 데 칠팔 년이나 걸려도 올해 사자를 바쳤는데, 조선은 북경까지 오가는 데 수십 일에 지나지 않으면서 사소한 물건을 바쳐도 어렵다고 말한다’고 나무라는 중국 사신의 말이 담겼다.3) 박지원은 《열하일기》(1780)에서 청나라 여행길에 이상한 새, 곰, 호랑이 등은 보았으나 사자는 보지 못해 유감이라 기록하고 있다. 당시 중국인들은 100여 년 이내에 사자를 진상한 자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명나라 도종의가 쓴 《철경록》을 인용해 “사자는 몸뚱이가 짧고 작아서 흡사 가정에서 기르는 금빛 털을 지닌 삽살개처럼 생겼는데, 여러 짐승이 이를 보면 무서워 엎드리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한다”라고 전한다.4) 실존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이질적인 동물이었던 셈이다.
실제 사자가 한반도 땅을 직접 밟아 모습을 드러낸 시점은 20세기 초로 추정된다. 창경원 동물원을 통해서였다. 일제는 1909년 창경궁을 개명해서 유원지로 조성하게 했다. 1910년 봄에 일본 교토 동물원에서 태어난 사자 남매가 가을께 서울로 옮겨졌는데, 긴 여행으로 건강을 해치게 되어 약을 먹고 있다는 소식이 1911년 일본인 관리의 〈조선휘보〉 탐방기에서 확인된다. 1926년 한 마리가 더 들어왔으나, 그사이 기록은 희미하다. 1928년 4월 4일 자 〈조선일보〉 기사에는 홀로 남은 수사자 사진이 첨부되어있다. 사자 수명이 15년 정도라는 점을 미루어 보아, 처음 들어온 사자와 같은 개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현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자 사진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이후 몇 차례 입수와 출산이 이어졌다. 1933년에는 사자가 열 마리까지 늘어나지만, 결국 두 차례에 걸쳐 전멸하는 아픔을 겪는다.
1934년 11월 사자 한 마리와 호랑이 두 마리가 원인 모를 병으로 죽었는데, 1935년 1월까지 맹수 우리에 사는 동물들에게 급성전염병이 유행하면서 사자·표범·호랑이 등이 집단 폐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총독부 세균검사실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가 제시한 사인(死因)이 엇갈려 의학계에 파문이 일었으나, 마비저에 걸린 말을 잡아서 먹인 일이 실제 원인이었다. 창경원 동물원은 철저히 일본에 의해 관리되었는데, 1936년에는 복원을 핑계로 도쿄 우에노 동물원에서 부녀자를 공격한 사자를 데려오기도 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7월 25일, 일제 당국은 패색이 짙어지자 맹수들이 탈출하면 도시가 위험해진다는 명분 아래 창경원 동물원에 남아있던 동물을 독살했다. 사자·호랑이·곰·악어·독수리 등 맹수와 맹금 30여 마리가 극약이 들어간 먹이를 먹고 숨을 거두었다.5) 이국에서 영문도 모른 채 울부짖으며 갑작스러운 최후를 맞은 맹수들 이야기는 식민지 백성들이 겪은 고통과 무력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여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1955년 복원 사업을 통해 맹수들이 동물원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사자는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추었다. 한반도 사자는 한민족 수난의 역사와도 함께한 셈이다. 사자를 비롯한 창경원 동물들은 1983년 창경궁 복원 공사가 진행되면서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옮겨졌다.
내 부모 세대에는 창경원 동물원이 유년 시절의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난 3월 창경궁을 방문했는데, 동물원이 있었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창경원은 역사적 아픔과 함께 도시 한복판에서 사라졌지만, 동물원은 우리 사회에 건재하다.
동물원에서 생츄어리로
국내 등록 동물원 숫자는 2023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127곳이다. 이 중 민간동물원 100곳이며, 2022년 12월 기준 실내동물원은 46곳이었으나 개정된 법률에 따라 실내 시설 동물 전시는 크게 제한되었다. 동물자유연대 한국동물복지연구소가 2023년 5월에 발행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동물 전시·체험 시설은 300개소에 달한다. 이 중 70퍼센트가 넘는 212개소가 미등록 업체이다. 아직도 많은 동물이 협소한 공간에서 사육되고, 만지기·먹이주기 체험 등에 이용되어 동물복지와 안전·위생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몇 년 전, 늑골이 드러날 정도로 마른 사자가 좁은 우리에 갇혀 숨을 헐떡거리는 영상이 화제가 됐다. ‘갈비 사자’라는 호칭이 붙은 이 사자는 시민들과 동물단체의 구조 노력 끝에 2023년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져 넓은 흙바닥과 햇볕을 누리게 되었다. 7년 동안 바깥바람을 쐬지 못하고 갇혀있던 사자는, 이제 더 좋은 삶을 살기 바란다는 뜻에서 ‘바람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고 건강을 회복했다. 현재 바람이는 청주동물원에서 암사자 도도, 딸 구름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청주동물원은 구조된 동물들에게 임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보호가 필요한 다른 동물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는 순환 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추모관 설치, 건강검진 과정 공개 등 생명과 존엄을 고민하는 새로운 동물원 문화도 만들어가고 있다. 청주동물원 사례는 동물원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동물의 권리와 복지, 생명의 가치도 고민해야 할 공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렇듯 동물복지를 지향하며 행동 풍부화, 체험 제한 등 동물의 행복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는 동물원들이 있다. 2023년 동물원수족관법과 야생동물법이 개정되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전환되고, 보호 정책도 강화되었다. 멸종위기종 보전, 번식, 야생 방사 등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들도 있다.6) 반면, 첫째 아들과 함께 갔던 부산의 동물원은 2020년 운영난으로 휴장 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논란 때문에 사실상 폐업 상태이다. 갈비 사자 바람이가 있던 실내동물원 역시 문을 닫았다. 이제 동물원의 미래는 체험형 실내동물원이 아니라, 동물을 보호하고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생츄어리(Sanctuary)로의 변화에 달려있다. 인간의 유희를 위한 전시 공간을 넘어,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보호와 보전의 전진기지로 거듭나야 한다.7)
첫째 아들과 부산 여행을 다녀온 후 6년이 흘렀다. 그사이 태어난 둘째 아들은 다섯 살이 되자 형처럼 사자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사자를 꼭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얼마 전 서울대공원 동물원을 찾았다. 제3아프리카관 사자사에는 암사자 한 마리만 넓은 방사장 한쪽에 누워서 쉬고 있었다. 관람객들과 거리를 둔 채 휴식하는 사자를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동물원 한쪽에 붙은 ‘자율 입방사’ 안내문을 보니, 동물들이 내실과 방사장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원할 때만 관람객에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암사자만 봐서 실망한 아이에게 “여기는 동물들의 집이야. 우리는 손님이니 동물이 원하는 대로 해야 하겠지?”라고 설명해주었다. 순간의 재미보다 동물의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아들은 다음에 또 오자며 동물원을 나섰다.
외래종 사자는 결국 한반도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함께 꿈꿔야 할 미래일지 모른다. 사자가 인간의 말을 해도 사자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언어가 통하는 존재들조차도 다른 문화에 있다면 진정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사자가 인간의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자를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꾸준히 이어진다면, 벽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동물원에 가둬야만 사자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원에서 포효하는 사자가 더욱더 많아졌으면 한다.
철창에서 바라본 세상
청주동물원에 직접 방문해 건강해진 바람이를 만났다. 바람이뿐 아니라, 사육곰 농장에서 구조된 반달가슴곰들, 부리가 비뚤어져 아사 위기에 처했던 독수리 ‘하나’ 등 보호받고 있는 동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동물 사육사를 복지사로 부르는 등, 동물복지를 위한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청주동물원은 언덕과 빈 사육장이 많아 낯설고 불편했다. 실내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 익숙해진 내게는 정말 불편한 동물원이었다. 동물에게는 가장 편한 동물원이지 않을까? 동물 묵상을 하며 동물을 많이 만날수록, 어쩌면 인간과 동물이 멀어지는 것이 동물에게 가장 좋은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과 함께했을 때 행복한 동물도 있지만, 멀어져야지만 행복한 동물이 더 많다. 인간에게 보살핌을 받기보다 자연에서 살아가는 삶이 소중할 것이다.
청주동물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사람관’이었다. 스라소니가 사용하던 사육장을 비워서 ‘사람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관람객이 직접 사육장 안에 들어가 전시 동물이 되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그 흔한 먹이주기 체험조차 없는 동물원의 유일한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빈 사육장에 들어가보았다. 철창 안은 갑갑했으며, 바깥보다 습하고 더웠다. 무엇보다 거기서 바라본 동물원의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동물들은 좁은 사육장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을 보인다. 나는 과연 이곳에서 며칠이나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싶었다. 철창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동물의 왕이 인간에게 잡혀 전시되듯, 언젠가 정말 인간이 전시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 하고.
영국의 동물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1969년 《인간 동물원》(물병자리)을 통해 현대사회의 인간 역시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살아간다고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도시는 안전과 편의를 주지만, 인간을 타인의 시선 아래 놓고 본성과 자유를 잃게 만든다. 문명은 진보했지만, 온전히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더 강한 자극을 찾는다. 50여 년 전 모리스가 내린 진단은 현재도 이어져, 인간은 서로에게 ‘전시된 동물’로서 도시 감옥에 갇혀 살아가고 있다.
동물의 멸종을 걱정하는 시대다. 이제 인간도 안전하지 않다는 경고가 들려온다. 어쩌면 인간 동물원 역시, 이 시대의 생츄어리로 변화해야 할지 모른다. 성경에서 ‘생츄어리’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지극히 거룩한 장소를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회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오늘날 동물 생츄어리 역시 상처받은 생명이 안전하게 머물고 존엄을 회복하는 ‘거룩한 처소’가 되어야 한다. 이 사회와 세계가 동물‘원’을 넘어 창조세계가 회복된 하나님의 거룩한 ‘집’, 참된 생명의 공간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1) C. S. 루이스, 햇살과나무꾼 옮김, 《나니아 연대기》(시공사, 2005), 225쪽.
2) 한국고전종합DB, 《세종실록 62권》, 세종 15년 12월 25일 갑술 1번째 기사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3) 한국고전종합DB, 《성종실록 155권》, 성종 14년 6월 21일 임오 2번째 기사 1483년 명 성화(成化) 19년
4) 한국고전종합DB, 《열하일기(熱河日記)》, 〈구외이문(口外異聞)〉
5) 오창영 편, 《한국동물원 80년사 - 창경원 편 1907-1983》(서울특별시, 1993), 176쪽.
6) 청주동물원은 2024년 환경부 지정 제1호 거점동물원으로 선정되어, 국내 동물원 생태 전환의 선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에버랜드 동물원과 서울대공원 동물원은 AZA(미국 동물원 수족관 협회)의 동물복지 및 운영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7) 야생동물 보호소로서의 동물원과 야생동물 구조에 관한 내용은 다큐멘터리영화 〈생츄어리〉(2024)를, 동물원이 모색해야 할 변화의 방향에 대해서는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가 쓴 《코끼리 없는 동물원》(MID, 2021)를, 국내의 소·말·돼지 등 가축 생츄어리 이야기는 《동물의 자리》(김다은·정윤영 글, 신선영 사진, 돌고래, 2024)를 참고하라.
구선우
좋은 답을 찾기보다, 좋은 질문을 하려고 애쓰는 사람. 관계의 얽힘에 관심이 있다. 《배트맨 크리스천》 《다음세대입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