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세계

[416호 공간을 찾아서]

2025-06-30     박진영
이하 사진: 필자 제공

봄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이완(가명, 37세)을 만났다. 벚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하천길을 지나 그의 집으로 가는 길, 평소 출퇴근하면서 보는 이 하천길을 좋아한다고 했다. 동네의 예쁜 풍경을 소개하기 바쁜 그를 보며 아름다움을 찾는 사람의 시선은 이토록 부지런하구나 싶었다. 청소는 했지만 지저분하다는 말과 달리, 집은 단정하고 온화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답게 영화 포스터와 기념품이 곳곳에 있었는데, 비닐에 곱게 싼 〈콘클라베〉 포스터와 그가 2024년 ‘올해의 영화’로 꼽은 〈로봇 드림〉 속 주인공 ‘로봇’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놓은 이완의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8년 전 어느 날, 그는 마침내 다른 세계의 문을 열었다. ‘게이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들어간 이쪽 세계는 검열과 의심 없이 자기 색깔로 선명하게 빛나도 안전한 공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성 친구들과 유난히 마음도 잘 맞고 대화도 잘 통했던 그에게 “너 중성이지?”라고 놀리듯 던진 친구의 물음은 올무가 되어 어린 마음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었다. 그 말은 수십 년 동안 어느 쪽 세계에도 속하지 못한 자로 살게 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나를 좀 바꿔달라” 간절하게 기도했다.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찌릿’ 하고 내 속에서도 뭔가를 바꿔놓아 달라고 숨죽여 호소했다. 한 살 위 형에게 자꾸만 빼앗기는 시선을 거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음을 ‘제자리’로 되돌려놓기를 바랐다.

‘혼돈’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기도로 그치지 않았다. 소개팅도 하고, 이성 친구를 만나 짧은 연애도 했다. 이성 친구와의 만남이 주는 두근거림의 정체를 알 길이 없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정상’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과 애정에 확신이 없다는 죄책감 사이를 비틀거렸다. 어렵게 애쓰며 아슬아슬하게 이어온 인연이 3개월 만에 끝나자 그는 깨달았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겠구나.’ 내가 아닌 채로 애쓰는 세계의 문을 닫았다.

대문호의 말대로,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때문일까. 자신을 바꾸려고 애쓴 만큼 크게 방황했던 그가 다른 세계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건 영화 〈위켄즈〉 덕분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놀러 갔다가 국내 최초 게이 코러스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위켄즈〉를 통해 스스로를 억압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계를 보았다. ‘뿔 달린 북한 사람’을 상상했던 옛날 사람들이 자기와 비슷한, 한반도 이북에 사는 사람의 평범한 얼굴을 봤을 때 느꼈을 충격과 비슷할까? 그토록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던 이쪽 세계에 대한 무지를 단숨에 깨트렸다.

웃다가 울고, 기쁘다가 슬프고, 싸우다가 사랑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이쪽 세계 사람들 이야기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대만에서 들려온 동성결혼 합법화1) 소식에 용기를 얻어 몇몇 친구에게 커밍아웃했다.

“애쓰지 않아도, 애가 타더라고요.”

이쪽 세계로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 애쓰지 않아도 애가 타는 사랑이 생겼다. 일방통행으로만 흘렀던 지독한 짝사랑은 그에게 시련을 주었다. 보고 싶고, 울고 싶고, 한강공원을 하염없이 걷고 싶고, 너무 힘들어 잠 못 이루는, 드라마에서나 보았던 그 마음을 똑똑히 경험하게 되었다. ‘남자라면’ ‘여자라면’이라는 어떤 단서나 조건 없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해도 괜찮은 이쪽 세계에서는 상처받을 자유까지 허락되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면 시선이 흐르고 몸도 기운다. 좋아하는 사람과 손잡고, 친구들에게 소개도 하고, 좋은 곳에 가서 밥도 먹고, 여행도 가고, 사진도 찍고, 애정 행각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이쪽과 저쪽 모두 다르지 않다. 그에게 이쪽 세계는 안전한 세계, 풀어져도 괜찮은 나의 세계가 되었다.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간 이쪽 세계에 적응하는 데는 친구들 도움이 컸다. 여러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친구들, 새로운 교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고, 밥 먹고, 운동하고,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는 평범한 생활을 이어갔다. ‘왜 남자가 그런 걸 해’라는 평가와 판단, 압력 없이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주제로 소모임을 열고, 같이하고 싶은 사람이 모이면 그것으로도 즐거웠다. 지금도 풋살, 악기, 영화, 기록 등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며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는 그의 얼굴이 밝은 이유다.

혼자 사는 그의 집은 의자가 너무 많았다. 서재처럼 꾸민 거실에는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게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들이 마련되어있고, 가장 큰 안방에는 네댓 명이 함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해도 충분해 보이는 소파를 두어 라운지처럼 꾸몄다. 주방 한편에는 2인용 식탁이 있고,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어두워진 도시 야경을 조망할 수 있는 베란다에 놓인 2인 바(Bar) 테이블까지. 혼자 사는 집이지만, 삶은 사람들과 ‘함께’였다.

함께 안전한 공간

인터뷰하는 동안 “이쪽”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반복되는 단어가 보안이 철저한 영역에서 사용하는 암호문 같았다. 언어는 습관이라서 혹여 실수하게 될까 스스로 조심한다고 말했다. 아직 물리적 폭력이나 위협을 직접 느낀 적은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니까.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계속되고 있다. 이 억압과 구분, 편견과 차별이 이쪽과 저쪽을 나누어, 하나의 시공간에 있어도 다른 세계를 사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구분된 세계는 편리해 보이지만, 분열·갈등·긴장을 위태롭게 품고 있어 언제든 폭력의 세계를 열 준비를 한다.

합가를 앞둔 그에게 다시 부모님과 함께 사는 생활이 괜찮을지 우려 섞인 질문을 했다. 내 예상과 달리 그는 “혼자도 살아봤으니 함께 또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혼자 살면서 버거운 것들이 좀 있었어요”라고 선선히 답한다. 그러고 보니, 이완은 혼자도 잘 놀지만 ‘함께’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집에 있는 의자 개수만큼이나 마음속에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있는 걸까. 미래(가족) 계획의 꿈을 물었더니 친구들과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축구를 하고, 책을 읽고, 영화도 보는, 본인이 바라는 미래를 이미 살고 있다고, 친구들이 곧 교회이고, 공동체라고 답한다.

내가 아닌 나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사람, 자기 아닌 누군가로 사는 삶의 문을 닫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연 사람, 자기 검열의 삶을 끝내고 자기로 괜찮은 인생을 선택한 용기 있는 사람. 결국 이런 사람들이 구분과 억압, 단서와 조건의 세계를 허물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같다. 안전한 공간은 하나로 통일된 세계가 아니라, 사랑받는 것에만 몰두하는 자기중심성을 내려놓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함께’를 염두에 둔 사람들이 만드는 공동체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 날, 이완에게서 연락이 왔다. 1년 남짓 만난 애인과 헤어졌다고. 미리 마음을 정리하고 있었더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예쁘다고 해주던 이와의 이별은 언제든, 누구든 쉽지 않다. 담담하게 그동안의 미안하고 고마웠던 마음을 주고받은 뒤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는 그에게 ‘걸음걸음마다 사랑이 가득하기를’ 빌어주었다. 그러나 안다. 나의 기도 없이도 그는 또 당당하게 사랑을 찾고 만들어 아낌없이 줄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를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타인을 위한 자리가 있다. 볼품없고, 부족하고, 지질하고, 악하고, 약한 자기 내면을 가장 오랫동안 자세히 지켜봐온 관찰자로서 자기 자신을 끌어안은 사람의 세계는 무엇이든 품을 각오가 되어있으니까. 이쪽과 저쪽의 세계를 허물고 중심과 주변의 경계를 지우면 의심과 혐오, 척결과 제거 없이도 안전한 공동체를 지금부터 시작할 수 있다.

■ 주

1) 2019년 5월 24일 아시아 최초 동성결혼 법제화 법안 통과 시행


박진영
본지 객원기자. 기독교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책 읽기와 걷기, 여행을 좋아하고 “one life, live it”의 줄임말 ‘올리’로 활동하는 자기(self) 연구자. 녹색정치연구소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