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책방이 있으면 생기는 일들

[417호 책방에서] 브릿지 총서

2025-07-26     박용희
브릿지 총서 | 스탠퍼드 철학백과(SEP) 선집 | 비매품(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후원 리워드)

2018년 부천으로 이사 와서 역곡동 용서점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 동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책방은 용서점뿐이었습니다. 현재 부천은 동네책방 다섯 곳이 네트워크를 이루어 서로 기대며 문을 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동네책방은 존재 이유를 의심받는 현실입니다.

“요즘 누가 책을 사나요?” “책방이 없어도 책이나 다른 콘텐츠를 읽는 건 문제없지 않아요?” “먹고살 수 있나요?” 책방 운영 9년 차. 도움을 주기보다 힘 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여전히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방 문을 여는 이들은 각자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볼 뿐입니다. 저는 책방이라서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일들이 있기 때문이라 답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 부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부천아트벙커 B39 담당 관리자가 용서점에 방문했습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는 부천시에서 적지 않은 예산으로 문화 전시나 작가 지원을 하는데, 이를 구현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마을 골목 사이의 갤러리가 손에 꼽을 정도로 부족한 현실을 말하면서 책방 공간이 지닌 갤러리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부천의 ‘광역동’ 단위로 매력 있는 동네책방이 하나씩 생긴다면 어떤 일이 가능해질까, 비전을 공유했습니다.

요즘 문화 공간 활용만큼 꽂혀있는 건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책방입니다. 이미 역곡동에서 2018-2019년에 경험해본 일이기도 합니다. 단 세 명으로 시작한 소모임이 8개월 만에 매주 100명 정도 모이는 모임으로 자랐던 경험입니다. 숫자보다 중요했던 건 모임 구성원과 내용이었습니다. 중학생부터 팔순 넘은 노인까지, 무학부터 변호사 등 전문직까지 한동네에 산다는 공통점을 가진 온갖 사람들이 함께 모였거든요.

원미동에서 알게 된 단골 어르신과 얼마 전 대화를 나누다가 그분의 비전을 들었습니다. 시니어 독서 토론 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것. 내년이면 은퇴하는 어르신께 뜻을 정하시면 힘껏 돕겠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그런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으로서 책방도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용서점이 원미동에 와서 의미 있게 했던 활동 중 하나가 동네 인문학 수업이었습니다. ‘골목학교’라는 이름으로 소통·예술·철학 공부를 동네 사람들과 함께했습니다. 하반기에는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와 함께 브릿지 총서 읽기 모임 ‘브릿지 리더스’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경인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문학 연구자들이 다양하게 연결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동네책방이 있으면 뭐가 좋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이처럼 다양한 일 중 몇 가지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여기에 적은 몇 가지 프로그램 외에도 책방지기의 달란트에 따라, 동네 특성에 따라 얼마나 다양한 일이 가능할까요. 그런 가능성의 공간이 동네마다 생기기를 여전히 꿈꿉니다.

박용희
부천시 원미동에서 동네책방 ‘용서점’을 아지트 삼아, 이웃들과 책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일을 시도해볼 예정이다. 《낮 12시, 책방 문을 엽니다》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