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침묵에 균열 내기
[417호 책방에서] 미리엄 테이브스, 《위민 토킹》(은행나무)
소설은 2011년 볼리비아 메노파 공동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잔혹한 현실이자, 명료한 은유이지요. 공동체 여자들은 읽을 줄 모릅니다. 교육 기회는 남자들에게만 주어집니다. 당연히 의사 결정권은 남자들이 쥐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공동체 살림 전반과 육아를 담당하지만, 남자들은 농사를 짓고 물건(여성들이 만든 바느질 제품)을 내다 파는 경제활동을 수행합니다. 과중한 노동에 시달린 여자들이 잠든 사이, 남자들은 동물용 마취제를 써서 여자들의 의식을 잃게 하고 강간합니다. 아침에 일어난 여자들이 피를 흘리고 몸에 멍이 들어 고통을 호소하면, 공동체는 이 모든 일이 망상이거나, 간통을 감추기 위한 거짓이거나, 악마의 소행이라고 덮어씌웁니다.
반복되는 폭행에 당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성인 딸을 둔 여자 중 한 명은 졸린 눈을 부릅뜨고 잠을 이겨냈고, 창문을 넘어오는 남자와 마주합니다. 치열한 몸싸움 끝에 엄마와 딸은 범인을 잡았고, 폭행에 가담한 다른 일곱 명의 이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법정에 넘겨진 여덟 남자는 결국 공동체가 마련한 보석금으로 석방될 것이고,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여자들은 용서를 강요당할 것입니다.
남자들이 돌아오기까지 이틀 남았을 때, 여자들은 헛간 다락에 모여 회의합니다. 결론은 세 가지로 좁혀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남아서 싸우기, 떠나기.”
회의는 서로 발을 씻겨주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양말을 벗으니, 밧줄에 묶인 자국과 긁힌 상처가 드러납니다. 고된 노동으로 신경통을 앓는 울퉁불퉁한 손가락이 상처 난 몸을 어루만집니다. 부드러운 손길이 발에 닿자, 간지러움을 느낍니다. 터져 나오는 웃음, 생명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세족 의식 후, 날것의 말들이 치열하게 부딪힙니다. 그럴듯한 말로 직조한 세계는 신물이 나거든요. 진실한 말은 에두르지 않기에 날카롭지만 서로를 찌르지 않습니다. 진심과 진심이 오가며 말들은 겹겹이 쌓입니다.
떠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지만, 가장 논쟁적인 부분을 정리해야 합니다. 소년들, 아들들을 두고 갈 것인가? 긴 대화 끝에 결정을 내립니다. 따라나서는 데 찬성하는 15세 미만 소년들과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연약한 남자들을 데리고 가자.
약속한 시간, 각자 짐을 챙겨 마차에 싣습니다. 짐은 소박하지만 그 안에 담은 결심은 무겁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까요? 공동체 밖이라고 안전할까요? 걱정을 가장한 회의적 전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랑과 평화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공동체에서 부도덕한 여자로 손가락질당하는 오나는 답합니다. “우리는 영혼을 따라야 해요. 우리의 영혼은 신의 현현이니까요.”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거대한 침묵에 균열을 낼 수 있게!
이수진·김희송
경기도 연천 조용한 마을에서 작은 빵집이자 동네책방, 그리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인 ‘오늘과내일’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