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로잔대회가 남긴 것
[417호 로잔 1974-2024]
로잔운동은 1974년 제1차 대회를 시작으로 사회참여를 배제하지 않는 복음전도의 근거를 마련하고, 비서구권 복음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1차 대회에서는 복음전도 중심의 선교 시급성을 천명하면서도, 사회참여를 복음전도와 동등한 수준의 의무로 인정한 ‘로잔언약’이 채택되었다. 이후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2차 대회(마닐라선언),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3차 대회(케이프타운서약)가 이어졌다. 각 대회를 대표하는 문서들은 로잔언약 정신을 계승하며 전도 우선성과 총체적 선교를 아우르는 다양한 신학적 논의를 담아냈다.
제4차 대회는 2024년 9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렸다. 로잔운동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5천여 명이 참가했다. 이번 대회에서 어떤 선언문이 채택될지 기대를 모았으나, 공식 문서인 ‘서울선언’은 발표에서부터 매끄럽지 않았다.
서울선언은 대회 도중 참가자들에게 메일을 통해 발표되었다. 초안인지, 최종본인지도 설명하지 않았고, 참가자들 의견 수렴 과정이 부재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선언문 발표 후 여러 매체에서 한글 번역본을 게재했으나, 곧 로잔 공식 웹사이트에서 사라지고, 다음 날 일부 수정한 버전으로 다시 공개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에 서울선언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고, 토론 및 의견 수렴 미팅이 ‘총체적 선교를 추구하는 한국의 복음주의자들’(KEEIM) 주도로 진행되었다. 로잔 본부 측은 9월 27일 오전, 선언문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온라인 링크를 공유했지만, 이후 개정된 최종본은 따로 나오지 않았다.
4차 대회 이후 9개월 만의 기자회견
4차 대회가 끝나고 9개월이 지난 6월 19일, 서울선언에 관한 의견과 제안을 담은 성명서가 발표되는 기자회견이 서울 마포구 동교동교회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을 주최한 ‘총체적 선교를 추구하는 한국의 복음주의자들’(KEEIM)은 2023년부터 4차 로잔대회를 향한 우려와 기대를 전방위적으로 표명해온 그룹이다. (김종호 대표(동북아화해포럼), 문지웅 목사(보성교회), 오형국 목사(청년신학아카데미 공동대표), 이강일 소장(한국복음주의운동연구소), 조샘 선교사(전 인터서브코리아 대표) 등)
KEEIM은 2023년 3월 로잔운동 학습과 토론을 시작으로, 같은 해 10월과 12월 온·오프라인 집담회를 거쳐 로잔대회를 주시하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의견을 취합했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4차 대회 방향성을 놓고 로잔 본부와 지속적으로 소통을 시도해왔다. 2024년 2월에는 ‘총체적 선교를 추구하는 한국 복음주의자들의 제4차 로잔대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2024년 9월 23일, 4차 대회에서 서울선언이 발표되자 KEEIM은 대회 현장에서 참가자들 의견을 모으기 위해 움직였다. 논의를 거쳐, 선언문 수정을 요청하는 286명의 서명을 받은 입장문을 본부 측에 전달했다. 서명자 중에는 3차 대회 문서 케이프타운서약 작성을 주도한 크리스토퍼 라이트와, 신학위원회에서 서울선언 초안을 만드는 데 직접 참여한 이들도 포함되었다.
이후 별다른 안내가 없다가, 올해 5월부터 신학위원회 공동위원장 중심의 서울선언 온라인 설명회가 열리고, 공식 번역본 출간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선언문 내용이 개정 없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KEEIM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에 대한 문제의식과 제안을 로잔 본부 측에 전달할 필요성을 절감해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로잔대회, 이전과 무엇이 달랐나
기자회견에 참여한 발언자들은 다양한 관점에서 4차 대회를 평가하고 제언했다.
조샘 선교사는 4차 대회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사회적 사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논의된 선교가 ‘지역교회 중심’에 머물렀고, 사회 전반의 문제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선교’ 개념이 충분히 공유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27일 한국교회 보수 세력이 반동성애와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를 주장하며 개최한 ‘연합예배’의 상당수 리더가 4차 대회를 주최한 이들이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12·3 내란 이후의 목소리들 또한 아쉬운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에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면서, ‘타 문화 선교’에 열심을 내고 비용과 자발적 기도로 대회를 지원한 면은 훌륭하지만, 선교에 대한 좁은 인식이 복음의 해석을 협소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회에서 발표한 문건 중 ‘대위임령 현황 보고서’(State of the Great Commission)가 세계 선교 현황과 방향을 확인하는 데 통찰을 제공하는 좋은 자료이지만, 전략 보고서 성격의 접근 방식은 선교에 있어 ‘실용주의적’ 측면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선교 영역은 신학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상상력을 부여해야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샘 선교사는 이번 기자회견을 연 이유 중 하나가 로잔운동 자체에 대한 고민 때문이라는 것도 밝혔다. 로잔운동은 역사상 지금처럼 중앙 조직이 강화된 적이 없었고, 3차와 4차 대회 사이의 14년을 수많은 풀뿌리 이슈 그룹이 채워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4차 대회부터 이어진 모습은 급격한 ‘제도화’를 보여준다고 진단했다. 대회 프로그램도 세상을 섬기고 나아가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겠다’ 선을 긋고 세상과 교회의 경계를 짓는 쪽이었다며, 선교적이기보다는 종교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감지했다고 덧붙였다.
이문식 목사(광교산울교회 원로) 역시 통계를 통한 선교 접근의 위험성을 말했다. 미전도종족 강조가 지나치면 하나님 나라 선교의 현재성을 상실하고, 선교가 근본주의화되고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로잔언약의 큰 특징으로 ‘총체성의 신학’을 꼽았으나, 4차 대회가 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은 주최 측의 중요한 축인 한국 대형교회 복음주의자들이 가진 문제였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 한계점이 4차 대회와 ‘10·27 연합예배’ ‘12·3 내란’ 이후의 일들로 드러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가 보여준 성숙한 민주주의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교회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로잔대회가 세계 개신교 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선교 현장 이슈를 통합하고 그렇게 살기로 언약하는 ‘현대의 개신교 공의회’와 같은 곳인데, 이를 이탈했다고 말했다.
김종호 대표는 로잔대회가 선교 대회이기도 하지만 ‘문서 운동’ 성격도 지닌다고 강조했다. 대회를 통해 발표되는 공식 문서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많은 그리스도인 지도자에게 영감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망스러운 문서가 인용되고 선교의 방향을 좌우하는 근거로 결정적 역할을 맡게 된다면 매우 안타까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형국 목사(하나님나라복음DNA네트워크)는 “로잔이 복음주의의 중심에 서려면 변혁 공동체의 총체적 선교가 다양하게 연구되고 실천된 사례가 발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4차 대회가 제국주의와 냉전, 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인 분단이라는 현실을 여전히 안고 있는 한반도에서 열렸음에도, 한반도 분단과 그에 따른 군사적 긴장, 국제정치적 갈등을 해소하는 논의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전쟁에 대한 신학적·실천적 논의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논의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어서 김 목사는 ‘새로운 교회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비서구권에서 일어나는 흐름이 머지않아 서구권과 한국교회의 추이를 따르게 될 것이라며, 종교개혁 이후 500년 동안 지속돼온 제도화된 교회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변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는 예배당 중심, 목회자 중심으로 구성된 교회가 전체적으로 갱신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삶의 터전과 일터에서 성도 중심으로 구성된 비제도권 공동체에 관한 연구와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하며, 제도권 교회와 비제도권 교회가 서로 협력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공교회적 연대’를 일으키는 새로운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인이 시민사회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로잔운동 역시 대형교회나 유명 목사가 이끌어가는 운동이 아닌, 예수를 따르는 모든 성도가 자신의 삶과 사역의 자리에서 복음을 펼쳐내며 연대하는 ‘풀뿌리 운동’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로잔대회가 앞으로 더 검소하게 치러지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번영하는 서구권과 한국교회 모습이 모든 그리스도인을 대변할 수 없기에, 현재 개신교가 부흥하는 비서구권 생활 수준보다 과하지 않은 선에서 대회가 치러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잔 본부의 재정적 운영 또한 투명하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서울선언, 왜 문제인가
서울선언이 4차 대회에서 갑작스럽게 발표된 것은, 이전 대회 선언문 채택 과정과는 달리 합의 과정과 투명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황을 보아 신학위원회의 적극적 참여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의견 통합이나 채택 과정이 분명하지도 않았다. 공동 작업이라는 이유로 대표 집필자가 명기되지 않고, 신학위원회 명단도 발표되지 않은 점 역시 이전 대회와 달랐던 점이다.
실제로 1차 대회에서는 첫날 모든 참가자에게 선언문 초안이 공유되고 매일 저녁 토론회가 진행된 후, 마지막 날 참가자들 의견을 반영하여 채택되었다고 한다. 4차 대회에서는 이 과정이 없었다. 조샘 선교사는 서울선언문이 합의 과정이 없이 어떤 권위를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선언문의 내용 또한 비판을 받았다.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소수자 배제 및 동성애를 경계하는 내용이다. 김종호 대표는 2010년 3차 대회의 케이프타운서약이 ‘복음주의권의 걸작’이라 불릴 만큼 탁월했던 반면, 서울선언은 내용 면에서 퇴행적이며 특히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듯한 뉘앙스의 표현들이 문제라고 했다. 기자회견 입장문에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 없이 동성 성관계와 동성혼을 ‘죄’로 규정하는 내용에 유감을 표명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둘째, 선교단체와 지역교회의 관계를 위계화하는 내용이다. 이강일 소장은 로잔운동이 선교단체와 지역교회의 수평적 파트너십에 기반해왔으나, 서울선언은 이를 위계화해 지역교회 아래 선교단체와 교회 밖 사역자들이 위치한다는 문구를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50년간 이어온 선교단체와 교회의 협력적 역동을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우려했다. 셋째,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회피하는 내용이다. 이번 선언문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통적 복음주의권이 고수했던 ‘교회의 선교’ 개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선교’가 지닌 총체성이 개인의 총체성에 국한되며, 총체성이라는 단어가 사용돼도 의미가 축소되어 ‘하나님의 선교’ 지향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로잔운동과 복음주의를 향한 촉구
이날 발표한 성명서는 이미 국제 로잔 본부에 전달되었으나, 응답받지 못했다. 국내 388명, 해외 51명 등 총 439명이 성명서에 서명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정회 개최 및 개정 작업 착수 요구’ ‘복음주의 교회의 공공성 회복 촉구’. 로잔운동 신학분과가 서울선언 공청회를 개최하고 개정 작업에 착수할 것을 요청하고, 복음주의 교회가 공공성을 외면하고 기득권 수호에 집착하는 태도를 극복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KEEIM은 또한 선언문 작성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신학분과 모든 구성원에게 동의를 받았는지 확인하고 답해줄 것을 요구했다. 최종적으로 서울선언 전면 개정을 요청하며, 풀뿌리 그룹 의견을 경청하여 시대적·성경적 요구에 맞게 내용을 고쳐 선교적 방향을 제시하고 로잔운동의 교회적 권위를 높일 것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서울선언 개정 가능성이 낮다고 보았다. 이문식 목사는 대회에서 의결된 문서는 다음 대회까지 수행할 책임만 주어지고, 의결되지 않은 것을 수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 했다. 로잔운동 지도부는 올해 2월 진행된 온라인 회의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와 우려를 인지하고 있고, 피드백은 받겠지만 추가 개정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조샘 선교사는 여전히 로잔운동은 중요하며, 복음주의 전통과 한국교회에 흐르는 약한 부분을 놓고 계속 소통하는 작업은 개인적으로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형국 목사는 한국교회 지형 안에서 로잔을 이야기하고 복음주의의 본질을 추구하는 그룹은 과거에도 소수였고, 앞으로도 소수일 것이며, 당분간은 극복되기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그는 소수이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얘기를 계속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 KEEIM을 향한 비판과 제안의 목소리도 있었다. 한 참석자는 이번 기자회견 주체인 KEEIM이 다양한 연령과 성비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며, 이 같은 상황 인식과, 4차 대회 중 일어난 일에 대한 지적은 더욱 날카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을 청년부 사역자로 소개한 다른 참석자는 서울선언의 성소수자 관련 부분을 향한 비판이 미흡했다는 의견을 더했다. 한 지역교회 목사는 지역교회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상황에서 서울선언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쉽다며, 서울선언과 이번 성명서가 부록처럼 함께 읽힐 수 있도록 공개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낭독된 〈제4차 로잔대회 ‘서울선언문’에 대한 우리의 의견과 제안〉 전문과 서울선언 전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로잔 1974-2024 연재를 마칩니다.
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