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공포정치에 맞서는 미국 교회
[417호 무브먼트 투게더]
한인 정 모 씨가 체포됐다. 자진 출국을 하루 앞둔 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항공권까지 구매하고 법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총으로 무장한 채 얼굴을 가린 이민세관단속국(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이하 ICE) 요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체포를 감행했다. 임신한 아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하고, 나이 든 어머니가 통곡했지만 소용없었다. 내일이면 로스앤젤레스(LA)를 떠나 한국행 비행기에 있으리라 기대했던 정 씨는 수갑이 채워진 채 차에 올라탔다. 다음 날, 정 씨가 텍사스 엘파소에 있는 구금 센터에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현재 미국에서 벌어지는 대대적인 이민자 단속과 추방의 일면이다. 마치 유대인을 색출하던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를 연상케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ICE 요원들의 무자비한 단속과 체포가 이민자 커뮤니티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1기 행정부 출범 전부터 미국 내 1천1백만 명의 ‘서류 미비 이민자들’1)을 다 추방하겠다고 장담한 바 있었다. 올해 1월 20일 출범한 2기 행정부는 이민자들을 향해 훨씬 더 노골적인 혐오를 드러내며, 적극적인 반이민정책을 펼치고 있다. 정 씨와 같은 처지의 서류 미비자는 물론, 합법적 신분의 이민자들 또한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의 미국에 이민자가 설 자리는 과연 얼마나 남아있을까.
문제는 교회다. 이방인과 사회적 약자를 향한 이 공포정치의 한복판에서 교회는 우리의 안전을 위해 문을 걸어 잠글 것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문을 열어 낯선 이들을 맞이할 것인가. 게토가 될 것인가, 도피성이 될 것인가.
선동을 넘어선 권력의 기술
지난 6월 초, 트럼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주 LA에 주방위군 2천 명을 투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과도한 이민자 단속 및 추방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화되면서 연방 인력과 재산 보호를 명분으로 이루어진 조치였다. 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Gavin Newsom) 주지사가 강하게 반대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무시하고 주방위군을 보냈고 상황은 예상대로 악화됐다. 1992년 LA 폭동 이후 33년 만에 다시 주방위군이 투입된 장면을 보며(당시는 주지사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고 도시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다.
LA 경찰 등 현지 치안력이 충분했음에도, 주지사 동의 없이 주방위군을 동원한 일은 시위 진압이나 치안 유지 목적을 넘어 정치적 의도와 전략이 작용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시위가 진정세로 접어드는 시점에 오히려 추가 병력 투입을 발표한 점은 혼란을 일부러 조장한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캘리포니아가 ‘불법 이민자들’과 폭도들의 과격한 시위로 통제 불능 상황에 있다고 강조할수록 보수 지지층 결집, 법과 질서 유지 능력 과시, 반이민정책의 정당성 확보 등 정치적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혼란과 공포 분위기 조성을 통한 정치적 퍼포먼스인 셈이다. 오죽하면, 이번 주방위군 투입이 트럼프의 ‘계엄령 예행연습’이라는 분석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런 효과를 노리는 권력의 아주 오래된 전략 중 하나는 바로 ‘적’을 설정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자들을 침입자 혹은 범죄자로 묘사하거나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로 낙인찍고 있다. 2024년 대선 토론 및 유세에서 트럼프 당시 후보가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 거주하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허위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곳의 아이티 출신 이민자들은 실제로 위협을 받고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이처럼 언론과 SNS에서 이민자를 향한 근거 없는 혐오와 공포를 끊임없이 조장함에 따라, 이민자 문제는 단순한 정책 이슈가 아니라 미국인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는 국가 안보 문제로 재구성된다.
이것은 단순한 선동을 넘어선 권력의 기술이다. 누가 미국인이고 누가 외부인인지, 누가 시민이고 누가 시민의 안녕을 위협하는 적인지, 경계를 강화하고 전선을 구축한다. 이것은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며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두려움과, 이에 따른 분노로 이어진다. 트럼프의 강경한 반이민정책이 다수 미국인에게 여전한 지지를 받는 이유이자, LA에 시위 진압을 위한 주방위군 투입이 가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볼 때 미국의 현 상황은 국가적 위협 세력들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언제든지 중단할 수 있는 ‘예외상태’이기 때문이다.
서류 미비 이민자들이 체포되어 끌려가는 구금 센터는 —조르조 아감벤이 말한 ‘캠프’(camp) 개념을 빌리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법적·정치적 예외상태가 일상적으로 제도화된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무장한 ICE 요원에 의해 수갑이 채워진 채 체포되어 차에 실려 간 서류 미비 이민자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주의 구금 센터로 보내진다. 자녀들과 분리되는 것은 물론, 법률 대리인을 구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는 서류 미비 이민자에 대한 단속과 추방 강화를 넘어 예외상태를 국가의 상시적 통치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우선주의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명분으로 낯선 이를 적으로 만들고, 경계를 강화하고, 배제를 제도화한다.
“교회가 피난처가 되겠습니다”
경계 짓기와 배제의 정치적 논리에 맞서 교회는 새로운 공동체적 상상력을 가지고 실천적 저항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이방인을 위협적 존재로 상정하고 권리를 제한하거나 정지시키는 국가권력의 논리를 수용할 것인가, 그들이 그어놓은 경계를 넘어 급진적 환대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필자가 몸담은 이민자보호교회 운동(Sanctuary Church movement)은 이러한 정치적·신학적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1980년대 중앙아메리카에서 넘어온 이주민들에게 교회들이 예배당을 피난처로 제공하면서 시작된 미국의 이민자보호교회 운동은 2017년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조직적이고 대대적인 반이민정책에 따라 이민자 단속과 추방이 증가했고, 추방 명령을 받은 서류 미비자들 중에 교회로 피신하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인 이민 사회에서도 뉴욕과 뉴저지의 일부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Korean Sanctuary Church Network)가 구성됐다. ‘교회가 피난처가 되겠습니다’라는 구호 아래 목회자들과 시민단체들과 이민법 전문 변호사들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서류 미비 이민자들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민자보호교회는 구약의 도피성 제도에 성서적 근거를 두고, 박해받는 이들을 위해 피난처를 제공한 기독교 역사의 긴 흐름 위에 서있다. 특히, 1850년대 흑인 노예들의 탈출과 이주를 도왔던 ‘지하 철도’(Underground Railroad) 운동은 현대 이민자보호교회 운동에 가장 직접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을 제공해주었다. 이민자보호교회가 되겠다고 선언한 교회들은 ICE의 단속과 체포에 맞서 서류 미비 이민자와 그 가족들을 보호해주고 있다.
현재 뉴욕·뉴저지·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한인 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민자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있다. 추방 위기에 놓인 이들을 위한 핫라인 운영, 이민법 전문 변호사들의 무료 법률 상담과 지원, 이민자들을 위한 기도회, 증오 범죄 대응 매뉴얼 제작, 인종주의 관련 교육이나 세미나, 서류 미비 신분의 한부모 가정을 위한 렌트비(월세)나 대학생 장학금 지원 등이다. 불합리하고 비인도적인 반이민정책의 문제를 알리고 이민법 개정을 위해 힘쓰는 일도 주요 활동 중 하나이다.
“교회가 왜 불법 이민자들을 돕고 보호합니까? 그거 불법 아닌가요?” 자주 듣는 질문이다. 이민자보호교회 운동은 국가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없게 한 미국 수정헌법 제1조(the First Amendment)에 근거하여 활동해오고 있다. 교회로 피신해온 사람을 보호하거나 곤경에 처한 이들을 돕는 일은 성서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기독교인들의 자유로운 신앙고백이자 실천이다. 국가가 함부로 제지할 수 없다.
문제는, 이 오랜 헌법적 가치가 트럼프의 재집권과 함께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ICE 요원들은 ‘민감 지역’으로 분류된 학교와 병원을 비롯해 종교 시설에 함부로 들어와 단속하거나 체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2기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민감 지역 단속 활동을 허용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민 옹호 단체와 주요 교단들의 강한 반발과 소송에도, 교회 앞에서 체포당하는 서류 미비 이민자들에 관한 뉴스가 계속 들려오고 있다.
이제 미국 교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우리의 안전을 위해 문을 걸어 잠그고 피난처의 정체성을 포기할 것인가, 공포정치에 맞서 낯선 이를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환대의 공간으로 자신을 재구성할 것인가. 국가권력이 이민자 구금 센터를 통해 예외상태를 일상적으로 제도화한 공간을 만들어낸다면, 교회는 낯선 이를 위한 환대의 공간을 통해 예외상태를 중지시키고 혐오를 자원으로 하는 정치적 전략에 저항해야 한다.
본래 환대는 위험을 수반한다. 그러나 바로 그 위험을 감수하는 실천이야말로 혐오와 증오를 자양분 삼아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 앞에 선 이 시대 교회의 책임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환대는 교회 정체성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자격 없는 이에게 자리를 내어주신 하나님의 환대가 타자를 향한 환대의 근거이며 토대다. 하여,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민자보호교회 운동을 한다.
환대의 정원을 꿈꾸며
글을 맺으며, 최근 뜻밖의 위로를 얻었던 책의 한 부분을 소개한다.
미국 환경청EPA과 뉴욕주 환경부DEC는 침입종을 “지역 자생 식물이 아니면서 생태, 환경, 보건상 해를 끼치는 식물”로 정의하고 있다. … [그러나] 모든 외래종이 침입종은 아니다. 외래 식물 중 많은 것들이 지역의 생태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고, 정원을 아름답게 하는 데 기여한다. (이성희, 《정원에서 길을 물었다》(선율), 243쪽)
이방인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심화되어가는 요즘, 주변의 정원들이 분명한 증거로 우리를 설득한다. 외래종이 다 침입종은 아니라고. 낯선 존재가 우리를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그러니 그들을 침입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갈 이웃으로 대해달라고. 교회는 환대의 정원이 될 수 있을까.
1) 체류 신분상 서류 미비 또는 미등록 상태인 이민자를 가리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용어 ‘불법 체류자’는 범죄자라는 편견을 심어줄 수 있기에 지양하는 게 좋다. 이 글에서는 중립적 의미의 ‘서류 미비 이민자’(undocumented immigrants)로 표현할 것이다.
손태환
목원대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드루 신학대학(Drew Theological School)에서 미국종교사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시와 롱보드 덕분에 중년의 위기를 잘 넘기고 있는 중이다. 현재 시카고기쁨의교회를 담임하며, 시카고 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 위원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