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동네 아랫동네 하나 되는 날 ― 더불어하나되는다음세대 정혁구 대표

[417호 특집]

2025-07-28     차에녹
ⓒ복음과상황 정민호

서울에서 북한이탈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자치구 중 하나인 노원구에는 이들을 위해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활동해온 특별한 단체가 있다. 2021년 정혁구 대표가 설립한 NPO 더불어하나되는다음세대(이하 ‘더하다’)이다. 정 대표는 북한이탈주민이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더 나아가 남북 주민이 어울려 살아가는 통합 사회를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노원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 입주한 사무실을 찾아가 정 대표를 만났다.

- 안녕하세요, 대표님. 2021년부터 ‘더하다’의 대표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어떤 단체인지,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더하다’는 남북 주민 간의 사회 통합을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소외된 이웃 없이, 누구나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시작했습니다.

단체를 시작한 계기는 2019년에 발생한 ‘탈북 모자 아사 사건’이었어요. 관악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굶주림 때문에 세상을 떠난 매우 안타까운 사건이었죠. 이 소식을 접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우리 사회는 소외된 이웃을 제대로 돌보고 있는 걸까’라는 걱정이 생겼고, 뭔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특히 제가 주목한 문제는, 북한이탈주민 정착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었습니다. 업무 강도에 비해 처우가 좋지 않다 보니 장기근속이 어려웠죠. 북한이탈주민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었어요. 고민 끝에, ‘지역의 소규모 민간단체가 직접 이들과 관계하며 지역사회의 연결망을 만든다면, 이들이 더욱 유연하게 이 역할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2021년 도봉구 마을 사업을 통해 뜻이 맞는 지역 주민 4명과 함께 자조모임을 시작했고, 그해 연말에 단체를 설립할 수 있었죠. 2022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왔어요.

-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면서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셨을 텐데요.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오해나 편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는, 북한이탈주민은 모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매스컴을 통해 북한의 열악한 현실을 접하면서, 많은 분이 가슴 아파하잖아요?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북한이탈주민 전체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은 정말 각양각색이었어요. 특히 평양 출신의 남성 중에는 한국에 오자마자 제약회사나 IT 기업에 취업해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한 분은 유럽의 명문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마치고 연구소에 근무했던 경력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개별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또 다른 오해는,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까 당연히 비슷할 것이다’라는 생각이에요. 같은 뿌리를 가졌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이 자라온 문화와 사고방식은 우리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개인 중심의 사고 안에서 자라왔다면, 북한에서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라는 집단 중심의 사고 체계가 익숙해요. 같은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감정 표현이나 반응하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요. ‘같은 민족인데 왜 다르지?’라는 당혹감 때문에 상처받는 분들도 종종 봅니다. 그래서 저는 북한이탈주민을 ‘타 문화권에서 온 사람’으로 보아야, 진정한 이해와 교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2025년 어린이날 ‘윗동네, 아랫동네 모엿수다’ 프로그램을 통해 대부도로 봄 소풍을 다녀왔다. (이하 사진: 더하다 제공)

- 더하다에서 진행하고 있는 주력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저는 남북의 문제는 ‘오해’에서 비롯되고, 해답은 ‘이해’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인 관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로서요. 더하다가 남북 주민 간의 ‘만남’을 가장 중요한 활동으로 생각하는 이유지요.

저희 단체의 주력 프로그램은 ‘윗동네, 아랫동네 모엿수다’인데요. 남북 주민 간의 사회 통합을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입니다. ‘윗동네’는 북한, ‘아랫동네’는 남한을 의미하고, ‘모엿수다’는 함께 모여 수다를 떤다는 따뜻한 느낌의 표현이죠. 작년부터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어요. 제가 나고 자란 도봉구와 인근 노원구에는 북한이탈주민뿐 아니라 전라도·경상도 등 다양한 지역 출신 주민들도 거주하고 있어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소통은 거의 없어요. 서로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더 커지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저는 ‘윗동네, 아랫동네 모엿수다’를 통해 남북 주민이 실제로 만나고 어울리는 시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음식 클래스를 비롯해 봄·가을 소풍, 송년회 등 연중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관계를 쌓아가는 모임이에요. 일회성 만남이 아니라,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시간을 함께 보내며 공동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소수자가 아니에요. 약 3만4천 명으로 추산되는 국내 정착 북한이탈주민들은 소수자 중에서도 소외된 존재이지만, 모임 참여자 비율을 남북 49:51로 구성하고 있어요. 북한이탈주민이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죠. 이곳에서는 말투와 옷차림이 달라도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먹고 마시며 이야기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만남이고, 사회 통합의 출발점이라 생각해요.

‘음식 클래스’에서 정 대표가 더하다 회원들과 함께 배추를 씻고 있다.

- 단체가 사회적경제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 오셨는데요. 지난 6월에 ‘압록각맛집’ 협동조합을 출범했습니다.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들려주세요.

단체를 시작하면서부터 북한이탈주민, 특히 한부모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조모임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경제 형편이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보통 탈북 남성은 바로 일을 시작해서 3-4년이 지나면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성들, 특히 엄마들 상황은 좀 다르더라고요.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제가 만난 여성들은 대부분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 오랜 시간 체류하다가 한국에 입국한 경우였습니다. 이들 중에는 생존을 위해 중국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렇게 한국에 오더라도, 어린 자녀를 돌봐야 하니 안정된 일자리를 갖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됩니다. 탈북민 정책의 혜택도 충분히 받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놓이지요.

저와 아내는 단체를 시작할 때부터 늘 이야기해 왔어요.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세 가지는 꼭 해보고 싶다고요. 하나는 엄마들을 위한 건강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아이들을 위한 배움터를 세워 정서적 지지와 성장을 돕는 것, 마지막은 남북 주민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주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압록각맛집은 그중 첫걸음입니다. 협동조합을 함께하는 분들은 모두 양강도 혜산 출신 여성들입니다. 혜산에는 북한 고위 간부들이 찾는 ‘압록각’이라는 식당이 있다고 해요. 북한에서는 귀빈을 위한 장소에 ‘각’(閣)이라는 단어를 붙이곤 하는데요. 저희도 고객 한 분 한 분을 귀빈처럼 맞이하겠다는 의미를 담아 이름을 지었어요.

협동조합 ‘압록각맛집’에서 나들목동행교회 교인들을 대상으로 케이터링을 제공했다.

- 어떤 음식을 판매할 계획인가요?

푸드트럭과 케이터링을 통해 북한 음식들을 소개하고 판매하려 합니다. 북한이탈주민 엄마들이 고향의 맛을 살려 인조고기밥, 콩고기밥, 옥수수국수, 청수냉면 등을 요리할 거예요. 단순히 ‘북한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역사와 기억, 삶이 담겨있죠.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음식으로 전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평화를 위한 밥상이 아닐까요? 식사 한 끼에 사람을 잇는 힘이 있다 믿어요. 언젠가 평화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푸드트럭 한 대와, 이동식 케이터링을 위한 주방 설비, 초기 창업 자금이 필요해요. 공간이 있어야 요리를 할 수 있고, 이동 수단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찾아갈 수 있으니까요.

- ‘희망의 인문학, 마음성장 독서맛집’을 통해 북한이탈주민 가정 자녀들을 위한 독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해 오셨는데요. 자녀 세대에 대해 어떤 계획과 기대를 가지고 계신가요?

북한이탈주민 자녀들을 위한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건 2021년 남북 주민 자조모임을 통해서였어요. 많은 분이 의견을 모아주셨고, 그 결과 2022년부터 ‘희망의 인문학, 마음성장 독서맛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원봉사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프로그램이에요. 맛있는 간식도 함께 먹으며, 책 속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따뜻한 시간이죠. 특히 방과 후에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아이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돌봄 기능도 함께 제공하고 있어요. 참여하는 아이들 중에는 학습 과정 자체를 따라가기 어려워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독서를 바탕으로 문해력과 어휘력, 의사소통 능력을 키워주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벌써 이 프로그램도 4년 차를 맞아, 병아리 같던 아이들이 어느새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요. 이 아이들이 나중에 ‘어릴 적에 그런 따뜻한 시간이 있었지’ 하고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그 기억이 아이들 마음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를 바라고요. 앞으로는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돌봄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 시기를 함께할 전문성과 따뜻한 마음을 갖춘 동역자가 절실합니다. 어디 좋은 분 안 계실까요?(웃음)

- 더하다의 강점은 꼭 필요하지만 티가 나지 않는 사역을 끈질기게 이어가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 주민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우리 사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누군가를 대할 때 ‘환대의 마음’을 갖고, 그런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북한이탈주민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소수에 해당하고, 어쩌면 많은 분이 이들을 직접 만나 알아갈 기회조차 못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소외된 이웃들에게 따뜻한 환대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이웃이 외국인노동자일 수도, 장애인일 수도, 성소수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환대하는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그것이 나비효과처럼 확산되어 언젠가는 북한이탈주민을 포함한 다양한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건강한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낯선 이를 환대하라’는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잖아요. 이 작은 환대의 실천이 우리 사회를 더 풍성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북한이탈주민과의 공존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일상 속 환대에서 시작됩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 앞으로의 계획과,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저의 바람은 2019년에 외롭게 죽어간 탈북민 모자 사건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이 사회에 없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민들에게 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을까요? 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주위에 관심을 가지고 이웃을 환대한다면, 소외되는 이 없이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저와 단체가 여러 실험적인 일들을 시도해볼 텐데, 혹시 저희 소식을 듣게 된다면 기도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진행 차에녹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