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418호 내향인의 마음 탐구 생활]

2025-08-30     이승은·정민호

후회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표준국어대사전)

유의어
감회, 뉘우침, 반성

두고두고 후회하는 일은 별로 없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가지 않은 일이나, 고등학교 때 신학대학 진학을 포기한 일?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당시에도 그 길에서 잘할 거라는 확신은 없었으니까. 탁월한 재능도 없었을 것이다. 프로 축구선수 나이로는 전성기이자 베테랑에 속하는 서른 살에 나는 지인들과 혼성 풋살팀을 만들고 3년째 격렬하지 않은 운동을 주말마다 즐기고 있다. 교회도 여전히 열심히 다닌다.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사역자나 신학자가 된 분을 보면 절로 대단하다고 느낀다. 내가 못 한 걸 하시는 분이라 그런 듯하다.

돌이켜보면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아쉬움은 있다. 재수 시절, 제대로 수능 공부에 몰입해야 했는데. 일 년을 허비하고 나서 세 번째 수능을 볼 때 매진해서 공부했다. 지금 생각해도 시간과 돈이 아깝고, 그때 달리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부질없는 상상이 이어진다. 동시에 여태 내가 만난 소중한 인연과 기회를 떠올린다.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다며 나를 다독인다. 사실, 해보지 않은 일은 모른다. 그 선택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을지는. 그래서 이런 합리화도 유효하다. 해보지 않은 일에만 미지의 가능성이 존재하니까. 어딘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나. 태어난 순간 셀 수 없는 경우의 수에 놓였다가 살아가며 그 수가 줄어드는 삶에서, 단 하나의 현실만이 정답일 수 있을까.

그러나 해보면 안다. 지나온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였고, 나를 어떻게 빚어왔는지를. 내가 선택한 일에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3년 전부터 탈모약을 먹고 있다. 숱이 얇아지는 현실을 알면서도 전문 병원에 가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진료받았을 땐 이미 남성형 탈모가 어느 정도 진행된 후였다. 그 후 매일 아침 탈모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다. ‘좀 더 일찍 병원에 갈걸’ 후회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양치도 열심히 한다. 식사 후에는 바로 치실을 사용한다. 치과에서 치실 사용을 권유했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재작년 내 돈으로 치과 치료를 받고 나서는 매 식사 후 치실을 사용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듯 내 행동을 건강해지는 쪽으로(?) 교정하는 걸 보면, 후회가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도 든다. 진정 뉘우치면 사람은 변하니까. 어떤 후회는 내가 지금 좋다고 생각하는 것, 바라는 이상을 결국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합리화하지 않고 아쉬움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 결국 계속해서 우리의 유한함을 직면하게 되는 일이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니 이제라도 후회 없도록….

그래도 미래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나중에 후회하게 될 일도 피하고 싶다. 꼭 열심히 산다고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나마 후회하지 않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

① 미래를 미리 그려본다. ②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한다. 나를 속이지 않고 상황을 냉철하게 본다. ③ 내 소신을 따른다. 타인의 말이나 상황에 휩쓸리기보다 마음이 시키는 일을 한다. (이러면 나중에 누구도 탓할 필요가 없다.) ④ 기회가 있고, 뜻이 있다면 시도해본다.

이렇게 해도 후회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지금 내가 발견하지 못하는, 볼 수 없는 문제들이 미래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고, 지금의 나와 후회하는 순간의 나는 다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과거의 선택과 삶을 굳이 후회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그저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을 테니.

후회는 나를 과거로, 때론 미래로 이끈다. 아무리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신중한 사람일지라도, 설령 과거와 미래를 오갈 수 있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지금’. 과거를 후회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미래에 후회하게 될지 결정하는 것도 ‘현재’에 달려있다.

메모장을 켜서 ‘후회’라는 단어를 검색하고, 쓴 글을 모두 읽었다. 그중 이 글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대개 과거의 선택이 진심으로 안타깝고 아쉬워서가 아니라, 과거를 돌아보는 현재의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 후회하곤 했다. 과거에는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원망하거나 탓하고 싶을 때 나는 후회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선택을 기꺼이 후회해버리면, 현재를 쉽게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일까. 후회는 내게 현재를 부정하는 밑천 같아 보여서, ‘후회’라는 단어를 자주 붙들지는 못했다.

후회하기 싫은 마음은 내 존재를 오해받기 싫은 마음을 닮았다. 후회하더라도 타인은 내 선택에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달까. “후회하지 않는다” 말하면 누구도 내 선택에 토를 달지 않을 테니, 타인에게서 자유를 얻기 위한 즉각적 모면책으로 ‘후회’를 역이용했다. 과거를 후회하면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일이야말로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어서, 나는 제법 오랫동안 “후회하지 않는다” 말해왔다. 추구미와 도달가능미의 차이를 모르던 시절,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모습이 아니라는 이유로 후회를 옥죄고, 후회하는 마음이 탄로 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곧 죽어도 후회한다고 말을 하기 싫었다. 그 마음 바탕에는 후회가 선택의 영역, 책임의 영역과 관련 있다는 인식이 존재했다. 내 선택이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후회 같은 거 잘 안 해”라며 자주 괜찮은 척을 해댔다. 하지만 중학생 때부터 숱하게 해온 자기 검열이 매일의 후회가 낳은 산물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수긍한다.

사실 나는 지금껏 후회로 자라온 인간이었다.

내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나의 허점과 오류를 받아들이는 일과 유사했다. 내 약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나는 후회하는 순간마저 괘씸했다. 어리석은 내 모습을 긍정할 수 있게 됐을 때 후회를 내 것으로 삼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짙게 후회하고, 곱씹다 보면 과거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붙는 듯했다. 후회는 진심 어린 바람의 잔재라고, 과거의 내가 행동했고 오늘의 내가 살아있기에 후회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조금씩 후회를 내 삶에 익숙하게 만들어갔다.

메모장에서 후회를 언급한 가장 최근의 글을 다시 찾아 읽었다. 그날 나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껴서 속상한 마음에 기도하며 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도 모르게 우는 일이 무슨 소용인가’ 생각하다가, 사랑받지 못해 혼자 슬피 우는 일은 아깝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나님이 내게 ‘사랑받아라’ 하시지 않았고, 어쩌면 ‘사랑하라’ 하신 말에도 어긋나는 셈이니까. 받기만 하는 사랑이 충만한 사랑이 아니라고 다시 깨달은 순간, ‘최선을 다하고 속상해서 눈물 흘릴지언정 후회 남게 사랑하지는 말자’ 다짐했다.

다른 글에서도 나는 일관되게 관계 문제로 후회하고 있었다. 연말마다 한 해를 돌아보며 ‘왜 더 다정하게 굴지 못했는지’ 후회했다. 사랑하지 못해서, 솔직하지 못해서, 용기 내지 못해서 후회했다. 나는 감정과 생각을 내면에 쌓아두는 사람이었고, 내 마음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표현되었다. 나는 투박하게 말한 일을 자주 후회했다. 말과 행동을 돌아볼 때마다 만족보다 후회가 많은, 후회 상습범이었다.

이제는 후회하는 나를 자책하지 않는다. 삶에서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 ‘-하지 않기’로 일관할 때는 늘 난관을 부딪혔는데, ‘그냥 -해버리기’로 기준을 바꾸자 모든 것이 한결 가벼워졌다. 예를 들어, 슬픔이 많은 사람이 ‘울지 않기’를 목표로 설정하면 자주 실패하겠지만 ‘슬플 때는 그냥 울기’로 기준을 바꾸면 운 사실 자체는 부정당하지 않는다. 이 마음을 후회에도 동일하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후회가 부정 요소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인간은 후회하며 더 성장한다는 사실을 목격하자는 자세로 살아가면 어떨까. 후회는 잘못을 바로잡을 기준점이자, 인간이 자라는 데 필요한 적당한 수치심일 수 있다.

후회하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려면, 후회해도 괜찮다는 자기 이해를 전제해야 한다. 언제든 실수할 수 있다는 넉넉한 마음도 필요하다. 내면을 보듬는 데 손이 참 많이 간다는 생각이 들지만, 후회라는 결론보다 ‘나는 언제 무엇을 후회하는 사람인가’ 질문하면서 과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우선돼야 할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각자 후회하는 영역이 다르고,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는 방향도 다를 테니까. 후회하면서 사는 사람은 ‘좀 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라는 바람을 품고 사는 사람이 아닐까.

퇴고하듯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마땅한 삶의 궤적이 생기기 마련이다. 후회가 만든 궤적까지도 온전히 당신 것이길 소심하게 방구석에서 응원해본다.

독자님은 ‘후회’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가요? 독자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일상단어집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내향인들의 속마음 토크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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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호
본지 기자. 신비로운 일들은 가까운 곳, 익숙한 장소에서 벌어진다고 믿는다. 개신교 월간지를 만들며 조심스레 세상을 알아가는 중이다.

이승은
본지 독자위원. 엄마에 의하면 자아가 건강한, 아빠에 의하면 생각을 잘 묘사하는 사람이다. 기독교 대안학교를 다니며 길러진 사회성 덕에 E(외향형)냐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최측근은 모두 내향인이란 사실을 긍정한다. 사람을 사랑하기 어려워서 관찰하기를 습관처럼 하다 보니 자주 글을 쓰게 됐고, 쓰다 보니 주어진 삶을 소화할 수 있게 됐다. 매일 반복되는 자기 검열과 자기 긍정 사이에서 고군분투 중인 4년 차 직장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