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해결사들의 느린 폭력
[418호 법의 길, 신앙의 길]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항상 가방에 넣고 다니고, 가까운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한다. 케이블카와 신공항 건설 반대 캠페인에 서명하고, 기후정의행진에도 성실히 참여한다. 하지만 지구는 계속 뜨거워지고, 기후 재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다 헛된 노력인 것 같은데, 정말로 이 위기를 해결할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
회의감에 빠질 때쯤, 기후위기 해결사로 나선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가 쫑긋 선다. 그들은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면, 휘발유를 에너지로 삼는 내연기관차만 사라져도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으니, 새로운 연료를 사용해 새로운 자동차를 사서 기후위기를 해결하라고 말한다.
바이오연료의 등장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식물이나 폐유를 원료로 하는 바이오연료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바이오연료는 연소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가 원료 성장 과정에서 흡수된 CO2로 상쇄되어 ‘탄소중립’에 가깝다는 논리하에, 국제기구에서도 재생에너지로 인정받는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바이오연료로는 바이오디젤과 바이오중유가 있다. 바이오디젤은 수송용 연료로, 주로 경유에 의무적으로 혼합되어 공급되고 있다. 한편, 바이오중유는 발전용 연료로, 기존에 석유계 중유를 연료로 사용하던 발전소에 공급되고 있으며, 제주도에 집중되어있다.
바이오연료는 폐기물을 원료로 활용하기 때문에 친환경 연료로 홍보되고 있다. 바이오디젤은 폐식용유를 수거하여 원료로 사용하고 있으며, 바이오중유는 동물성 유지와 음폐유, 바이오디젤 공정 부산물 등을 활용하고 있어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1)와 연료혼합의무화제도(RFS)2)의 시행으로 바이오디젤과 바이오중유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자, 국내에서 회수되는 폐식용유나 음폐유, 동물성 유지만으로는 바이오연료의 원료를 충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바이오디젤과 바이오중유의 원료로 쓰이는 인도네시아산 팜유와 팜 부산물의 수입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열대우림 파괴의 주범, 팜유
팜유는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기름야자나무에서 수확한 열매를 착유 및 가공한 것으로, 국내 생산이 불가능하여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바이오연료의 탄소중립 논리가 무색하게, 팜유 생산과정 전반에서 디젤 소비, 질소비료 사용, 아산화질소 배출, 팜오일 폐수(POME)로 인한 메탄 발생 등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특히 팜유 플랜테이션 개간을 위한 열대우림 파괴로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었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nternational Council on Clean Transportation, ICCT)는 세계 1-2위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팜유 플랜테이션 개간을 위한 토지 이용 변화로 2010년부터 매년 약 5억 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되었다고 추정했는데, 이는 전 세계 온실가스 순배출량의 약 1.4퍼센트에 이르는 양이다.
세계 1위 팜유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에서는 산림 외에도 이탄지(peatland)가 개간되어 막대한 양의 탄소가 배출된다. 이탄지는 유기물질이 오랜 시간 퇴적하여 탄소 저장량이 일반 토양의 18~28배에 이르는 지역이다. 팜유 플랜테이션 개간을 위해 이탄지가 배수되면 토양의 가연성이 높아져 화재 발생 원인이 된다. 이탄지 화재는 지하에서 장시간 연소되어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연무(haze)의 원인이 되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 인근 국가에도 심각한 피해를 유발한다.
하지만 산림 파괴의 영향은 온실가스 배출량만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숲이 사라진다는 것은 숲에 의존하여 살아가던 모든 생명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이다. 팜유 플랜테이션이 자리 잡은 열대 지역은 본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반면, 단일종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플랜테이션은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생물다양성의 손실이 필연적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IUCN)에 따르면, 오랑우탄 외에도 긴팔원숭이, 호랑이, 코끼리, 코뿔소 등 팜유 플랜테이션 개발 때문에 세계적으로 405개 종이 서식지가 사라져 위협을 받고 있으며, 최소 193종의 동식물이 멸종위기에 처했다.
멸종위기에 놓인 숲의 사람들
팜유 플랜테이션의 확장은 숲에 의존해 살아가는 토착민(Indigenous Peoples)의 생존 또한 위협하고 있다. 토착민은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왔던 사람들로, 근대국가의 주류 문화에 편입되지 않고, 고유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지켜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연에서 얻으며, 자연을 착취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큰 존재로 인식하면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토착민 공동체가 각자의 전통적인 영토와 생활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숲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먹거리를 구하고,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찾고, 생필품을 만들기 위한 모든 재료를 구한다. 또한 이들은 조상의 무덤이나 부족 간에 큰 전쟁이 벌어진 장소를 신성한 곳(sacred place)으로 기념하고 기억한다. 이들에게 숲과 땅은 단순히 생계유지를 위한 곳으로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 공동체의 역사와 정체성과 깊이 얽혀있는 존재의 기반이다.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토착민이 땅과 맺고 있는 특별한 관계를 ‘땅과의 영적 관계’라 강조하며 이들이 이러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강화할 권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팜유 플랜테이션 개발 과정에서 토착민의 이러한 권리는 철저하게 무시되어왔다. 정부와 기업이 토착민들의 자유로운 사전인지동의(FPIC)3) 없이 이들의 토지를 강탈하는 사례가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착민들은 자신들의 토지에 대한 관습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우는데, 이 과정에서 위협, 협박, 폭행, 형사 고발, 구금을 당한다.
느린 폭력의 도래
팜유 플랜테이션은 토착민 외에도 플랜테이션 주변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주민들은 플랜테이션이 들어오자 인근 강물이 오염되어 식수 등 생활용수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게다가 농지에 해충이 급증해 수확량이 감소했고, 과일나무에 꽃이 피지 않아 더 이상 열매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한다. 이는 단일종 재배를 위해 팜유 플랜테이션에서 대규모로 살포되는 제초제, 화학비료 등 화학물질의 영향일 것이라 추정되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기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또한 팜유 플랜테이션의 등장 이후로 변화된 식생활은 사람들의 영양 상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숲에서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워지고 가공식품에 노출되는 토착민들은 늘 ‘배고픔’을 느낀다고 한다.
플랜테이션이 들어온 이후로 토착민과 인근 주민들이 겪는 이러한 변화는 시간과 공간에 분산되고, 피해가 지연되어 발생하는 느린 폭력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유해 물질이 이들의 몸과 땅에 누적되고, 고유한 삶의 양식과 문화를 점점 이어갈 수 없게 되는 느린 폭력은 플랜테이션 주변 토착민과 주민들의 생존 조건을 점점 악화시키고, 갈등을 장기적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발전과 노동의 현실
정부와 기업은 팜유 플랜테이션이 개발되면 전기가 무상으로 제공되고, 팜유 운송을 위한 도로가 정비되고, 학교와 의료 시설이 세워지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지역이 발전할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발전’의 혜택에서 소외된다. 전기도 여전히 들어오지 않고, 큰 트럭이 하루 종일 먼지를 날리며 다니고, 학교나 의료 시설에도 접근하기 어렵다. 더욱이 토착민이나 지역 주민들에게 기회가 제공될 거라고 했던 플랜테이션의 일자리는 청소, 경비, 떨어진 열매 줍기 등 대다수가 일용직이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팜유 플랜테이션의 주요 업무인 팜 열매 수확, 운반, 화학물질 살포 등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노동자들이 주로 고용된다. 이들은 이주노동자로서 일자리를 얻는 과정에서 착취당하기도 하고, 인근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한편,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은 과도한 업무 할당량과 열악한 노동 환경, 저임금으로 착취를 당한다. 화학물질 살포를 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나 보호 장비 없이 작업에 투입되어 건강에 해를 입기도 한다. 성폭력 피해를 겪는 경우도 있다.
공급망 책임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
팜유 생산과정에서의 인권·환경 문제로 인해, EU의 경우에는 팜유 기반의 바이오연료를 재생에너지에서 배제하는 추세이다. 재생에너지를 도입하는 데 있어 온실가스 외에도 원료, 생산 방식, 공급망 경로에 따른 환경·사회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바이오연료 관련 정책은 생산과정에서의 온실가스 감축이나 인권·환경 문제에 대한 고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늦었지만 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와 연료혼합의무화제도의 혼합 의무 대상에서 팜유와 같은 인권·환경 고위험 원료를 제외하고, 팜유 기반 바이오연료에 보조금·인센티브 지원을 배제하는 등, 지속가능성을 기준 삼은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
또한 기업이 원료 생산과정이나 해외 사업장 등, 공급망에서 인권·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이에 대해 무관한 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공급망에서 인권·환경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이끄는 법이 필요하다. 유럽에서는 기업이 자신의 공급망에서 인권·환경 문제를 검토하고 대응하는 것을 의무로 하는 법이 이미 제정되었는데, 한국에서도 이러한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도 입법 운동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인권·환경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21대 국회에서 발의되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고, 22대 국회에서도 재발의되었으나 통과되기까지 많은 관심과 지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
인도네시아 토착민 공동체 마을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발이 푹푹 꺼지는 늪지대를 겨우겨우 걸어가던 나와는 달리, 토착민 청년들은 우리가 먹을 식량과 물을 양손 가득 무겁게 들었음에도 성큼성큼 맨발로 늪을 헤쳐나갔다. 늪을 지나 강을 건너, 겨우 도착한 그 마을에서 묵는 동안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발로 갈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가고, 자기 손으로 얻을 수 있을 만큼의 식량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숙소가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마을 주민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집주인 아주머니는 우리를 살뜰히 챙겨주시고, 사려 깊게 말씀을 나누어주셨다. ‘필요한 모든 것을 숲에서 구할 수 있었다’는 아주머니는 숲이 모든 것을 내어주는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아주머니가 멋있는 비유를 든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인식하는 현실을 그대로 기술한 표현이었다. 아주머니는 숲을 없애는 것은 어머니의 자궁을 상처 내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이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다. 숲이 사라진 것이 아주머니 잘못도 아닌데, 죄책감을 느끼며 흐느끼는 아주머니 앞에서 동주의 시가 떠올랐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기후위기가 해결될 수는 없을 텐데,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크게 외치는 이들은 부끄럼이 없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아주 작아서, 그 곁에 가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다. 뜨거워지는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후위기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이 아니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찬찬히 살피고 보살피는 마음이 아닐까.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소박한 삶과 연대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절실한 밤이다.
정신영
공익법센터 어필 상근변호사. 어필에서 취약한 이방인들을 만나며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만들거나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어필의 활동이 선명한 경계를 만드는 일이 아닌, 담을 허물고, 생명과 평화를 피어내는 데에 기여하는 일이기를 소망하며 일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