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과 하나님 나라
[418호 이한주의 책갈피]
젊은 시절 읽었던 소설 중 제목에 ‘방’이 들어간 작품이 꽤 있다. 《지상의 방 한 칸》·《숲속의 방》·《숨어있기 좋은 방》. 여기서 방은 가족의 공간 ‘집’에 대비되는 개인의 공간을 의미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방은 개인의 은밀하고 고유한 장소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임시 거처, 삶을 유지하는 최소 공간을 의미하게 되었다. 많은 청년이 고시원, 원룸, 다세대주택, 반지하 단칸방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세태 탓이겠다. 그래서인지 200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 김애란 작가의 작품에는 유난히 ‘방’이 자주 등장한다.
벌집 같은 구조를 가진 다섯 개 방에 사는 젊은 여성의 일상을 그린 소설 〈노크하지 않는 집〉(2002)으로 등단한 작가는, 2007년 발표한 두 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에서도 취준생, 알바생, 재수생처럼 작은 방에 사는 청년들의 삶을 그린다. 이런 작품 중 하나인 〈기도〉에는 직장을 그만둔 백수 동생과 몇 년째 공무원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언니가 나온다. 이들 자매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 왔지만 함께 지내지 못한다. 동생이 막냇동생과 사는 원룸은 셋이 함께 살 만큼 넓지 않기 때문이다. 고시원에 사는 언니는 가끔 동생들이 사는 원룸을 찾아온다.
언니는 한밤중 홀연히 나타나 새까매진 얼굴로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적당히 달궈진 온돌 위에 고꾸라져 사정없이 잤다. 마치 우리 집에 온 이유는 딱 하나 ‘깊은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는 듯, 그렇게 자니 참 좋다는 듯, 오래, 꼼짝 않고. 언니가 오면 이불을 가로로 펴고 잤다. 이불 밖으로 우리의 발목과 머리통이 튀어 나왔다. (190쪽)
잠을 자기 위해 한밤중에 현관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피곤함을 생각해본다. 제대로 잘 수 없는 공간에서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언니에게 동생의 원룸은 깊은 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만, 이 공간도 세 자매가 함께 발을 쭉 뻗을 여유를 주지 않는다.
좁은 방에 자기 삶을 구겨 넣으며 미래를 준비했던 청춘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김애란 작가가 10년 뒤 출간한 네 번째 소설집 《바깥은 여름》(문학동네)에 실려있는 〈입동〉에 나오는 미진은 〈기도〉에 나오는 언니를 떠올리게 한다. 젊은 시절 그녀는 요 대신 은박 돗자리를 갖고 독서실을 전전했고,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세 번 떨어졌고, 공무원이 되는 대신 노량진 공무원 입시학원에서 사무를 봤다. 결혼 후 난임 치료를 받다 두 번 유산한 끝에 영우를 가졌고, 다섯 번 이사 끝에 집값의 반 이상을 대출로 끼고 20년 된 아파트의 주인이 된다. 그때의 느낌을 미진 남편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랬다.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느낌.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튕겨진 것도 아니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왔다.”(33쪽)
고시원과 독서실에서 청춘을 보낸 미진은 정착 욕구가 강했던 만큼 어렵게 얻은 자기 집에 남다른 애착을 보인다. 이사도 하기 전에 인테리어를 하고, 부엌과 마주한 작은 방을 정성껏 아들 영우의 방으로 꾸민다. 부부는 이 집에서 아이와 함께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되는 행복을 경험한다. 하지만 영우가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영우가 떠난 집은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지고, 미진은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매일 흐느낀다. 집값은 샀을 때보다 시세가 2천만 원이나 떨어져,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갈 수도 없다. 봄에 사고를 당한 후 두 계절을 더 보내고 겨울이 되었을 때, 미진은 실의에서 벗어나려고 미루어두었던 집 도배를 한다. 도배를 하던 미진은 갑자기 꼼짝하지 않고 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 미진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도배지 든 양손을 벽에서 떼지 못한 채 아내를 내려다 봤다.
- 여기…
- 응?
- 여기… 영우가 뭐 써놨어…
- …뭐라고?
- 영우가 자기 이름… 써놨어. (34쪽)
미진은 벽 한쪽에서 영우가 ‘김’자와 ‘이응’을 써놓은 것을 보고 울음을 터뜨린다. 울고 있는 아내를 보며 미진의 남편도 영우를 떠올린다.
제대로 앉거나 기지도 못했던 아이가 어느 순간 훌쩍 자라 ‘김’자와 ‘이응’을 썼다니, 대견해 머리통이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영우의 새까만 머리카락은 또 얼마나 차지고 부드러웠는지.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영우를 다시 안아보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도 치를 수 있을 것 같았다. (35쪽)
이 부부가 처음 마련한 집은 아이가 사라진 적막한 공간이 되었고, 현실은 아이의 사망 보험금으로 대출금을 갚아야 할 만큼 냉혹하다. 그러나 한구석에서 아이가 직접 쓴 이름을 발견했을 때, 집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었던 것이 밝혀진다. 집에는 함께했던 삶이 담겨있고, 그 덕분에 지나간 시간과 사랑을 공유하며 그리운 사람을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된다. 이것이 모든 사람이 집을 갖고 싶어 하는 이유이며, 누구나 방이 아닌 집에 살아야 하는 이유 같다.
올해 출간된 김애란 작가의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문학동네)에 수록된 〈좋은 이웃〉의 주인공 주희는 아파트 가정집을 개조해 아이들 독서 교실을 운영하는 독서 지도사다. 몇 해 고생한 끝에 독서 교실이 겨우 자리를 잡았는데,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 집을 비워주어야 하는 형편이라 억울하고 서운하다. 어느 날 위층에 새로 이사 온 젊은 부부가 한 달 동안 인테리어 공사를 하게 되었다며 양해를 구하러 찾아온다. 자기 집이니 한 달 동안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일 텐데, 그들은 30대 초반에 불과해 보인다. 자신은 전세로도 살지 못하는 집을 젊은 나이에 소유한 이웃에게 주희는 묘한 질투심을 느낀다.
한편,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을 것이라 여겨 시급도 올리지 않고 가르쳤던 시우네가 더 넓은 새 아파트로 이사 간다는 소식에 마음이 허전하고 휑해진다. 뭔가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주희 남편도 마찬가지여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언제로 가고 싶냐는 아내 질문에 “이 집 계약할 때지, 왜 그때 집주인이 우리한테 조금 더 대출받아 이 집 사라 했을 때”라고 대답한다.
신혼 초 ‘우리 시작을 이웃과 함께하자’며 유니세프 정기 후원을 먼저 권했던 남편은 집값 폭등 후 마음이 인색해져서 매주 책을 내다 판다. 주희는 남편의 폐지 상자에서 한때 사랑해 마지 않았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발견하고,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쏟아낸다.
젊은 시절 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는데 요즘은 자꾸 ‘재산’을 지키고 싶어집니다. 그래야 나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불안이 들어서요. 그런데 얄궂게도 남의 욕망은 탐욕같고 내 것만 욕구처럼 느껴집니다. 기본욕구, 생존욕구 할 때 그런 작은 것으로요. 그런데 그곳에 생존이란 말을 붙여도 될까, 그런 건 좀 염치없지 않나 자책하다가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합니다. (141쪽)
주희의 고민을 읽으며 몇 년 전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성경공부를 했던 일이 생각났다. 젊은 그리스도인 몇 명과 한 달에 한 번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성경공부를 했다. 그러다 ‘코주부 문제’를 만났다. (‘그리스도인도 코인·주식·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 문제를 코인·주식·부동산의 앞 글자만 따 ‘코주부 문제’라 불렀다.) 이미 코인과 주식에 투자하고 있던 사람들과 이걸 부정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격렬하게 논쟁하고 부딪쳤다.
코인과 하나님 나라가 무슨 관계이며, 주가의 흐름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돈을 심고 이익을 거두는 시대에 코인과 주식은 한 알의 씨앗으로 30·60·100배 열매를 거둘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듯했고,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노동 소득으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에 불로소득은 필수라는 주장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맘몬의 유혹을 경계하자”는 원론적인 말로 겨우 중재했는데, 모임의 가장 연장자였던 30대 가장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집주인이 전세 자금을 올려달라는데 차라리 그 돈이면 대출을 더 받아서 집을 사는 게 낫겠다 싶다. 그런데 추가로 이자 나갈 것을 계산해보니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후원금과 십일조는 당분간 끊으려고 한다.”
난감한 표정으로 고민을 털어놓는 그에게 나는 목사답게, “헌금을 못 내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무리하게 대출을 받는 건 신앙적으로 옳지 않은 것 같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정부 정책을 믿어보자”고 했다.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그는 ‘하나님 나라도 내 집 장만하고 나서의 문제 아닌가?’ 했던 것이고, 나는 ‘아파트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포기하면 어떡하냐?’ 반박했던 거다. 그리고 얼마 뒤 수도권 주택 가격이 폭등했다. 하루에도 아파트 가격이 억 단위로 오른다는 소식을 듣고, 성경공부 모임에서 했던 말 때문에 그가 아파트 구입 계획을 취소했으면 어쩌나 걱정했다.
다시 만났을 때 확인해보니 원래 계획대로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고, 이사까지 마친 후였다. 정말 다행이다 싶어 농담처럼 “역시 현실감각 없는 목사 말은 듣는 게 아니라니까” 했다. 우리는 코주부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고, 답을 찾을 생각도 못 하고 하나님 나라 성경공부를 끝냈다. 제사에 관한 구약 율법처럼 재물에 관한 성경 가르침도 자본주의에서는 모두 폐기된 것 같았다.
김애란 작가가 20년 넘게 써온 소설 속에는 집을 갈망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작은 방에서 미래를 준비했던 청년 시기를 지나, 셋방을 떠돌아다니는 30대를 보내며 중심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애를 썼던 사람들이 이제 중년의 문턱에서 혼란스럽다. 깊은 잠을 자고, 시간과 사랑을 공유할 수 있는 당연한 장소를 갖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잃어버린 것이 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것은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142쪽)는 주희의 고백에 하나님 나라를 공부했던 모임을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좋은 이웃’을 ‘하나님 나라’로 바꿔 읽고 더 끈질기게 질문해야 했다. 주식과 코인에 대해 아무 말도 못 하는 성경이, 내 집 마련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하나님 나라가 좋은 이웃이 되는 삶은 가르쳐주지 않냐고. 좁은 방에 갇힌 청춘도, 내 집이 아니어서 떠나는 사람도, 내 집에서 지치고 슬픈 사람도, 하나님 나라를 찾는 우리가 이 시대에 좋은 이웃이 되는 법을 찾아내길 바라지 않겠냐고 말해야 했다. 다시 하나님 나라를 생각한다. 좋은 이웃과 함께.
이한주
대전 주사랑교회 담임목사. 중앙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석사(M.Div.)를 했다. 책과 책 읽는 사람과 책 읽고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좋아한다.